고객 유치에 고가 경품, 사상 최고 수준
충성고객 아닌 체리피커만 양성 우려
[서울=뉴스핌] 임성봉 기자 = 최근 벌어지고 있는 증권사의 이벤트 경쟁을 보고 있자면 정신이 아찔하다. 고급 초콜릿처럼 달콤한 고가품을 내 건 이벤트가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월급쟁이의 얇은 주머니로는 구매하기 어려운 고급 차량부터 명품가방까지, 그 면면이 화려하다 못해 눈부시다. 현금을 뿌리는 일도 적지 않다. 증권사가 최근 2년 동안 개인 투자자들의 폭증으로 때 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다는 게 실감날 정도다.
대표적인 고가품 이벤트를 살펴보자. 유진투자증권은 거래금액에 따라 총 1억원 상당의 경품을 제공하는 '주식레이스 2.0 경품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국내 주식 거래금액 100만원당 응모권 1장을 받게 되며 해당 응모권으로 자신이 원하는 경품에 응모할 수 있다. 1등 경품은 벤츠 E클래스 AV다. 가격만 6500만원에 달하는 수입 고급차량이다. 2등은 LG 오브제 워시타워, 3등은 삼성 비스포크 냉장고, 4등은 갤럭시 Z 플립3다. 경품 하나하나가 100만원을 훌쩍 넘는다.
[서울=뉴스핌] 임성봉 금융증권부 기자 |
키움증권 역시 같은 형태의 이벤트를 실시했다. 400만원 상당의 스메그 냉장고, 삼성그랑데세탁기·건조기, 아이패드 프로, 갤럭시탭 S7+ 등이 경품이다. 이외에도 다이슨 에어랩, 소니 헤드셋, 발뮤다 토스터기 등 모두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경품을 내 걸었다.
KTB투자증권은 롯데카드와 제휴해 롯데카드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KTB투자증권 신규계좌를 개설하면 샤넬백 추첨 기회를 제공한다. 이벤트 기간 동안 3회 추첨을 통해 3명의 고객에게 샤넬백을 증정한다.
벤츠와 샤넬백, 그리고 스메그 냉장고. 달다 못해 입이 쓰다. 이런 경품을 받는다고 한들 그 증권사의 충성고객이 될까. 결국 이벤트가 끝나면 금새 휘발되는, 실제로는 별다른 실익도 없이 마케팅 비용에 대한 영수증만 남게 되지는 않을까. 증권사라고 해서 고가품의 경품 이벤트를 하지 말라는 법은 없으나, 그렇다고 꼭 고가품을 내걸어야 할 별다른 이유도 없다.
미국에서는 케이크는 먹지 않으면서 그 위에 올려진 체리만 빼먹는 사람을 일컬어 '체리피커(cherry picker)'라고 부른다. 마케팅 용어로는 기업의 상품이나 서비스는 구매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실속만 차리는 고객을 이렇게 부른다. 고가품 이벤트에서 체리만 빼먹는 투자자, 경품 이벤트를 계기로 주거래 증권사를 바꿀 고객. 어느 쪽이 더 많을까.
마케팅의 궁극적인 목표는 충성고객의 확보다. 벤츠와 샤넬백이 없어도 이 증권사라면 믿고 거래하는 고객을 만드는 것이 실력이고 경쟁력이다. 금융투자에서 고객의 마음을 얻는 가장 빠른 방법은 현금성 이벤트가 아닌 질좋은 서비스 제공에 있다. 적게는 수천만원, 많게는 수억에 달하는 단발성 이벤트 비용을 아끼고 아껴 홈트레이딩시스템,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 금융상품 개발에 투입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증권사와 개인 투자자 모두 '윈윈'하는 길일 수 있다.
증권사 무한경쟁 시대, 체리피커가 아닌 각 증권사의 충성고객을 만들 수 있는 건강한 마케팅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imbo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