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강주희 기자 = 교제 사실을 지인들에게 알렸다는 이유로 여자친구를 무차별 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한 30대 남성의 데이트 폭력 동영상은 충격적이었다. 이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데이트 폭력 혐의를 받는 남성이 여자친구를 만나게 해달라며 병원까지 쫓아갔다가 음주운전 사실이 적발돼 경찰에 입건됐다. 지난 한 달 여간 발생한 데이트 폭력 사례들이다.
데이트 폭력의 심각성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연인 간의 사랑 싸움으로 치부되던 때가 있었지만 명백한 범죄행위다. 극단적인 경우 피해자가 사망하거나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와 같이 생명을 위협할 수준의 극심한 스트레스, 불안, 분노 등을 겪을 수 있다.
강주희 사회문화부 기자 |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데이트 폭력의 현실, 새롭게 읽기' 보고서를 보면 데이트 폭력의 참담함은 더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2020년 기준 경찰청이 전국 자료로 집계한 데이트 폭력 신고 건수는 1만9940건이다. 이는 1만4136건이 신고된 2017년과 비교할 때 41.1% 늘어난 수치다.
범죄 유형별로는 폭행·상해가 7003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경범이 1669명, 체포·감금·협박 1067명, 성폭력 84명 순이었으며 끝내 살인으로 이어진 경우는 35명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폭력에 대한 적극적인 신고 문화와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진 결과이기도 하지만 다행이라고도 볼 수 없다.
문제는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를 처벌하는 법적·제도적 대응책이 부재 중이라는 점이다. 데이트 폭력 방지법은 19대 국회부터 매년 발의되고 있지만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21대 국회에선 윤영석 국민의힘 의원이 관련 법안을 발의했으나 소관 상임위인 여성가족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이 일어났을 때 반짝 주목을 받은 법안들이 뒷전으로 밀려나는 현실이 안타깝다.
관련 부처와 여야의 대응이 더딘 사이 데이트 폭력 방지법을 촉구하는 목소리는 아이러니하게도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내고 있다. 지난 7월 서울 마포구 한 오피스텔에서 남자친구에게 폭행을 당해 숨진 고 황예진(26)씨의 모친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가해자의 엄벌을 촉구하며 '데이트 폭력 가중처벌법'을 신설한 것을 요청했다. 이 글은 13일 기준 40만392명의 동의를 얻었다.
약자에 대한 폭력은 피해자와 그 가족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아픔을 남긴다. 이제 정부와 국회가 데이트 폭력 피해자들의 요청에 답을 해야할 때다. 더이상 늦춰져선 안된다. 젠더폭력 근절은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가 아닌가. 임기가 끝나도록 데이트 폭력에 대한 구체적인 대응을 내놓지 못한 사이 피해자가 늘어나고 있음을 정부는 깊이 반성해야 한다. 데이트 폭력에 대한 실효성 있는 대책이 하루빨리 나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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