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도 재계 인사 트렌드 '성과주의'
연공서열 타파하고 능력으로 임원 발탁
'실리콘밸리식' 조직문화 글로벌 트랜드
열려있는 기회만큼 '쉬운 해고' 우려도
[편집자] 코로나19 팬데믹 장기화와 미국,중국 간 무역 갈등, 이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불안까지. 예상하지 못한 위기를 맞닥드린 기업들은 "안주하면 도태된다"며 혁신의 고삐를 바짝 죄고 있습니다. 내년 농사를 준비하는 기업들. 파격적인 연말인사로 비장한 각오를 드러냈습니다. 인적 쇄신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주요 기업들의 2022년도 인사 트렌드를 짚어봤습니다.
[서울=뉴스핌] 서영욱 기자 = 2022년도 재계 인사를 관통하는 트렌드는 '성과주의'다. 직급과 연차에 상관없이 성과를 내고 능력이 있는 인재는 과감히 임원으로 발탁했다. 30대 최연소 임원, 40대 부사장들이 대거 발탁됐다. 직급 체계도 간소화하며 사내 수평적인 조직 문화를 갖추는 주력했다. 능력만 있다면 언제든지 기회를 주는 미국 실리콘밸리 방식의 유연하고 수평적 분위기로 체질을 전환하려는 시도다. 전형적인 피라미드형 구조 속에서 성장해온 국내 대기업들이 생존을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다.
[서울=뉴스핌] 사진공동취재단 =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2020.10.28 photo@newspim.com |
◆능력만 있다면 30대도 '별'다는 시대
삼성전자는 이 보다 앞서 인사를 실시했던 LG그룹, SK그룹과 달리 주요 사장단을 전면 교체하며 쇄신에 방점을 찍었다. 이에 따른 임원 인사 역시 파격적이었다. 삼성전자는 10명의 40대 부사장과 4명의 30대 상무를 발탁했다. 30대 상무 승진은 2012년과 같은 역대 최다 타이 기록이다. 삼성전자의 최연소 부사장은 삼성리서치의 김찬우(45) 부사장이다.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출신의 음성처리 개발 전문가로, 애초 삼성에서 터를 잡았던 인재도 아니었다.
삼성의 파격 인사는 앞서 발표한 '미래지향 인사제도' 혁신안에서 예고된 바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29일 인사제도 혁신안을 발표하고 직급별로 일정 기간 이상 근무해야 하는 표준 체류 연한을 폐지했다. 연차에 상관없이 능력 있는 직원은 언제든지 승진시키겠다는 의미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연공서열을 타파하고 나이와 상관없이 인재를 과감히 중용해 젊은 경영진을 조기에 육성할 수 있는 '삼성형 패스트트랙(Fast-Track)을 구현하겠다"고 설명했다. 성장 가능성이 있는 직원들을 핵심 보직에 전진배치해 미래 경영자로서의 자질을 실험하겠다는 의도다.
'연공서열 파괴'와 '젊은 인재 양성'은 삼성에만 국한된 양상은 아니었다. SK하이닉스에서는 1975년생인 노종원 사장(46)이 승진하며 올해 그룹 내 사장 승진자 중 최연소 기록을 세웠다. SK하이닉스에서는 1982년생인 이재서 담당(39)이 임원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에 따르면 국내 30대 그룹에서 1969년 이후 출생한 임원이 올 3분기 46.8%를 차지했다. 지난해 3분기(27.3%) 보다 19.5%포인트 늘어난 수치다. 그룹별로 보면 삼성이 55.5%, SK 53.6%, LG 50.7%로 1969년생 이후 출생 임원이 모두 절반을 넘겼다. 특히 네이버(94.2%)와 카카오(93.3%)의 경우 1969년생 이후 출생 임원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학벌 파괴 역시 빠르게 이어지고 있다. 헤드헌팅 전문기업 유니코써치에 따르면 CEO 층에서 과거 10명 중 6명 정도 하던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출신의 명문대 비중이 최근 3명 미만 꼴로 감소했다. 올해 1000대 기업 조사에서 SKY 출신 CEO 비중은 28% 수준으로까지 떨어졌다. 과거와 달리 단순한 학벌이나 스펙보다는 능력과 성과에 기반한 CEO 인사 등용이 대세로 이어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젊어진 총수들..임원도, 감각도, 문화도 '젊게'
임원들의 세대교체는 재계 총수들의 세대교체와도 맞물려 있다. 기존 총수급 오너들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젊은 오너 3~4세들이 경영 전반에 나서는 흐름이 뚜렷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53),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51), 구광모 LG그룹 회장(43) 등 젊은 총수들의 등장으로 그와 손발을 맞출 임원들도 젊어지고 있다는 관측이다. 일찌감치 글로벌 감각을 익힌 총수들이 애플, 구글, 페이스북 등 '실리콘밸리 문화'를 적극적으로 주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수평적이고 유연성이 강한 애자일(Agile) 조직 문화가 대표적이다. 애자일한 조직 문화의 핵심은 부서 간 경계를 허물고 직급 체계를 없애 팀원 개인에게 의사 권한을 부여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기존의 상명하복(上命下服)에 의해 움직이는 조직 문화와는 대척점에 있다. 대기업도 기존의 관성에서 벗어나 새로운 변화의 흐름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지가 경쟁력으로 직결된다는 것을 총수들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MZ세대의 대두로 젊은 직원들과의 의사소통 역시 임원들의 중요한 덕목으로 떠올랐다. 시대가 바뀌면서 경영 성과 못지않게 조직원들과 소통과 공감 능력이 임원들의 승진에 중요한 항목으로 자리매김했다. 성과에서 나타나지 않는 조직원과의 협력 여부가 주요 레퍼런스(Reference) 체크 요소다. 내부 임원의 갑질 등 논란이 자칫 기업 신뢰도 추락은 물론 경영에도 부정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서울=뉴스핌] 김민지 인턴기자 = 중동 출장을 마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9일 오후 서울 강서구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를 통해 귀국하고 있다. 2021.12.09 kimkim@newspim.com |
◆성과주의의 이면..'유연한 노동시장'의 빠른 안착 움직임
사실 '실리콘밸리' 조직 문화는 능력있는 자에게 기회가 열려있는 반면 '쉬운 해고'라는 이면의 모습이 있다. 성과주의를 강조하고 있는 재계가 '위기극복'과 '혁신'을 앞세워 고용시장의 유연성을 강조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현재 우리나라는 저성과자라도 해고가 쉽지 않지만 미국의 경우 사정이 다르다. 이정 한국외대 교수는 "미국은 계약상 해고를 제한하는 특별조항을 두지 않는 한 common-law(보통법)상의 해고자유 원칙에 의해 사용자는 언제든지 어떠한 이유에 의해서도 해고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정규직 해고규제 유연성 순위는 OECD 37개국 중 20위다. 법적 해고비용도 1주일 급여의 27.4배로 G5 평균에 비해 크게 높았다. 한경연은 해고 규제 완화 등 노동시장 유연성을 높여 기업들의 고용 창출 여력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동근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은 "과도하게 경직된 고용규제를 개선하고 근로의 '양'에 맞춘 획일적 근로조건 결정이 아닌 일의 '성과'에 맞춘 다양하고 개별적인 근로조건 결정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syu@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