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제어 부품...도로 위 신호수 역할
글로벌 시장 '한국·일본·대만' 3파전
[편집자] 기업들의 신기술 개발은 지속가능한 경영의 핵심입니다. 이 순간에도 수많은 기업들은 신기술 개발에 여념이 없습니다. 기술 진화는 결국 인간 삶을 바꿀 혁신적인 제품 탄생을 의미합니다. 기술을 알면 우리 일상의 미래를 점쳐볼 수 있습니다. 각종 미디어에 등장하지만 독자들에게 아직은 낯선 기술 용어들. 그래서 뉴스핌에서는 'Tech 스토리'라는 고정 꼭지를 만들었습니다. 산업부 기자들이 매주 일요일마다 기업들의 '힙(hip)' 한 기술 이야기를 술술~ 풀어 독자들에게 전달합니다.
[서울=뉴스핌] 임성봉 기자 = 요즘 한국, 미국 등 국가를 가리지 않고 반도체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입니다. 그런 스마트폰 등에 필수적으로 들어가야 하는 고성능 적층세라믹콘덴서(MLCC)는 더 구하기 어렵다는 게 업계 안팎의 목소리입니다.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하는데, 워낙 고도의 기술이 집적된 부품이다 보니 공급이 이를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MLCC는 머리카락 두께랑 비슷할 수준으로 매우 작지만, 거의 모든 전자제품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전자제품의 쌀'로 불리기도 합니다.
MLCC에 대한 정의는 매우 복잡합니다. 쉽게 설명하면 반도체 내에서 신호수 역할을 하는 부품입니다. 전기를 자동차에 비유하면 MLCC는 이 자동차들이 적재적소에 적당량이 이동할 수 있도록 제어합니다.
만약 교통체증이 심각하거나 자동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에 과속방지카메라나 신호등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차량 흐름이 꽉 막히거나 큰 사고가 날 수 있겠죠.
삼성전기의 MLCC [제공=삼성전기] |
그만큼 반도체에는 필수적으로 들어가야 하는 제품이지만 외형은 다소 깜찍합니다. 제품의 크기는 머리카락 두께 0.3㎜와 비슷하고 최신 스마트폰에는 약 1000개나 들어갑니다. 육안으로는 작은 점 정도만 보이지만 확대해보면 500~600층의 유전체와 전극이 겹쳐있는 모습입니다.
MLCC를 만드는 방법은 단순하지만, 또 매우 어렵습니다. MLCC는 세라믹과 금속(니켈)을 번갈아 쌓아 만듭니다. 니켈은 금속이기 때문에 전기가 통하지만, 세라믹은 흙을 원료로 삼아 전기가 통하지 않습니다. MLCC는 이 원리를 응용해 전기를 통제합니다. 문제는 갈수록 전자제품이 발전하면서 크기는 작고 저장하는 전기의 용량은 더 많은 MLCC가 필요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세라믹과 니켈을 번갈아 쌓는 이 '층'을 많이 쌓을수록 전기를 많이 축적할 수 있는데, 이 과정에서 MLCC를 더 얇고, 작게 쌓는 것이 기술의 핵심입니다.
또 MLCC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 중 하나는 온도입니다. MLCC는 세라믹과 니켈을 교대로 쌓은 뒤 1000℃ 이상의 고온에서 구워 만듭니다. 그런데 세라믹과 니켈이 구워지는 온도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적정 온도를 맞추는 것이 무척 어렵습니다. 특히 적절한 온도에서 잘 구웠다 하더라도 얇은 내부에 미세한 균열이라도 생긴다면 제기능을 할 수 없습니다. 도로 위로 치자면 신호등이 고장난 셈이죠.
제작 과정도 그렇지만 완성품을 꼼꼼하게 점검하는 것까지, 무엇 하나 쉽지 않은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게 MLCC입니다. MLCC를 생산하는 데만 배치, 성형, 압착 등 무려 16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또 MLCC는 크기는 작지만 대표적인 고부가 제품 중 하나입니다. 300㎖짜리 와인잔에 MLCC를 가득 담으면 약 1억원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죠.
현재 MLCC 시장은 한국의 삼성전기와 일본, 대만 기업들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일본에는 무라타, TDK, 다이요 유덴이 있고 대만에는 Yageo, Walsin 등이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삼성전기 외에 삼화 콘덴서도 MLCC를 제작합니다.
삼성전기가 개발한 자율주행용 초고용량 MLCC [제공=삼성전기] |
특히 최근에는 스마트폰이 점점 작고 슬림해지면서 초소형·고용량의 MLCC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지만, 공급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초소형·고용량 등 고사양 MLCC를 생산할 수 있는 곳은 삼성전기, 무라타, 다이요유덴 정도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현재 MLCC 글로벌 점유율은 무라타가 30%대, 삼성전기 20%대, 다이오유덴이 10%대 수준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기술력 확보가 어려운 부품이어서 MLCC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중국 기업들도 쉽사리 진입을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마냥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후발주자들의 추격이 매서워지고 있고 일본은 수성에 나서는 등 경쟁이 한층 치열해졌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고용량·고전압 5G 기지국용 MLCC를 개발한데 이어 자율주행용 초고용량 MLCC를 내놓은 삼성전기가 앞으로 어떻게 경쟁력 우위를 가져갈지 지켜보는 것이 관전 포인트가 될 것 같습니다.
imbo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