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영섭 정치부장 = 얼마 전 사석에서 만난 한 여당 정치인이 이런 농담을 던졌다.
"최근 돌아가신 송해 선생님이 오랜 기간 '전국노래자랑' 사회를 맡으셨는데, 이 분 후임이 누가 될 지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당연하다는듯 '검찰 출신으로 뽑으면 되지 않습니까'라고 말해 크게 웃은 적이 있습니다"
다시 언급하자면 야당 정치인이 한 말이 아니다. 여당 정치인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정도로 윤석열 대통령의 인사는 특정 집단에 쏠림 현상을 보였다.
이영섭 정치부장 |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연일 폭락하고 있다. 지지율이 20%대까지 떨어지면서 취임 100일도 되기 전에 '레임덕'이란 말이 나오고 있다. 레임덕은 원래 임기 말 권력 누수 현상을 일컫는 말인데 취임하자마자 레임덕이라서 '취임덕'이란 신조어까지 만들어졌다. 이걸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되기 전부터 준비되지 않은 대통령에 대한 우려는 존재했다. 검찰총장직에서 내려온 후 불과 몇 달 만에 야당의 대선 후보가 됐고, 또 몇 달이 지나지 않아 대통령에 당선됐기 때문이다. 대통령직을 생각지도 않다가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대통령 자리까지 올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준비된 대통령'이란 슬로건으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김 전 대통령은 1971년 대선에 첫 출마한 후 1997년 대통령에 당선됐으니 무려 27년의 준비기간을 거친 셈이다. '준비된 대통령'이란 말이 그리 틀리지 않은 것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김대중 전 대통령에 비견될 만큼 오랜 기간 대선을 준비했고,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전 대통령 모두 지자체장이나 국회의원 등을 지내면서 5년 이상 대통령을 준비했다. 박 전 대통령은 '준비된 여성 대통령', 문재인 전 대통령도 '준비된 대통령'이란 슬로건을 사용하며 국정을 운영할 준비가 됐다는 점을 강조했다.
물론 모든 대통령의 성과는 명과 암이 존재하기 때문에 준비가 충분히 됐다고 해서 '성공한 대통령'이란 타이틀을 거머쥘 수는 없었다. 가장 오랜 준비기간을 가졌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도 잘한 부분이 있고, 잘못한 부분이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경우 너무 준비가 안 됐다. 국정 비전을 보여주는 대신 부동산 폭등 등으로 문재인 정권에 분노한 민심에 호응하는 이미지로 당선됐다는 것이 더 솔직할 것이다.
그럼에도 국민들이 윤 대통령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었다. 바로 윤 대통령이 가장 강조한 '공정과 상식'이다.
지지율 추락의 가장 큰 책임은 윤 대통령 자신에게 있다. 국민들이 윤 대통령에게 가장 기대를 걸었던 공정성 문제가 대통령의 첫 인사에서 제대로 구현되지 못했다. '공정과 상식'을 기대했던 국민들의 바람을 스스로 무너뜨린 것이다.
또 하나 잘못을 지적하면 '이전 정권에서도 그랬다'는 반응을 보이며 내로남불에 지친 국민들에게 헛웃음 나오는 실망을 안겼다.
이뿐인가. 만 5세 취학연령 인하, 경찰국 신설, 김건희 리스크, 내부총질 논란, 고물가 등등. 추락한 지지율을 상승 반전시키기 어려운 난제가 산적해 있다.
집권 여당은 어떤가. 우리는 대통령 선거와 지방 선거에서 승리한 당이 '비상상황'이라며 비대위 체제로 들어가는 아이러니를 보고 있다. 국민들 잘 살게 해 달라고 뽑았더니 내부 권력투쟁에만 몰두하는 모습으로 비쳐지고 있다.
그러면서 지지율 하락에 대해 남 탓을 하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
'윤핵관' 중 한명으로 꼽히는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은 9일 한 라디오 방송에서 지지율 하락 원인을 당내 분란으로 지적하면서도 "여론조사 기관에서 조사하는 설문을 봤는데, 그분들의 면면을 보면 어떤 성향을 가진 분들인지 전부 다 알 수 있다. 저는 이 정부의 추동력을 약화시키고 힘을 빼서 정부가 올바로 국민들을 위해 해야할 일을 못하게 환경을 조성하는 분들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고 음모론적 시각을 보이기도 했다.
정가에서는 벌써부터 공무원들이 '복지부동'하고 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남 탓 할 때가 아니다. 전형적인 임기말 레임덕 현상이다. 위기감을 느껴야 한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국민적 지지는 국정 운영의 최우선 동력이다. 국민적 지지를 잃게 되면 윤 대통령의 리더십은 상실될 수밖에 없다. 국민들이 왜 윤 대통령에게 투표했는지, 그 의미를 되새겨 봐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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