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시카우' 한무쇼핑 자금 투자금으로 활용
'자사주' 활용 정지선·교선 지배력 강화
이종 사업간 얽힌 사업 개편 방향성은 모호
계열분리 혹은 통합 지주사 시나리오 제기
[서울=뉴스핌] 서영욱 기자 = 현대백화점그룹에 정지선 회장과 동생 정교선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두 개의 지주사가 세워진다. 그룹 내 캐시카우 역할을 맡고 있는 '한무쇼핑' 자금의 융통성을 높이고, 이종 사업간 혼재된 지배구조에 교통정리가 필요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유통, 비유통 혹은 온라인, 오프라인으로 사업군을 명확히 나누거나 두 지주사간 구체적인 협력 방안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향후 두 개의 지주사를 합병해 완전한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거나 두 개의 그룹으로 떨어질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는 이유다. 현대백화점그룹은 그룹 계열사간 시너지가 상당한 상황에서 계열분리는 검토한 바 없다며 일찌감치 선을 긋고 있다.
현대백화점그룹은 내년 3월 주주총회 등 절차를 거쳐 두 개의 지주사를 설립한다. 지난 16일 현대백화점그룹은 이사회를 열고 현대백화점과 현대그린푸드를 각각 인적 분할해 투자부문(지주회사)과 사업부문(사업회사)으로 분할하기로 했다. 정지선 회장과 정교선 부회장 두 형제는 각각 현대백화점과 현대그린푸드의 최대주주로 그룹을 지배하고 있다. 두 형제를 중심으로 두 개의 큰 기둥이 세워지는 셈이다.
정지선 회장은 현대백화점의 최대주주(17.05%)로, 현대백화점을 통해 백화점과 면세점, 아울렛, 올 초 인수한 매트리스 판매 업체 지누스를 운영하고 있다. 정교선 부회장은 현대그린푸드 최대주주(23.80%)로, 식품(현대리바트), 중장비(현대에버다임), 여행(현대드림투어), IT(현대IT&E) 등 비 유통업을 주로 맡고 있다.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 [사진=현대백화점] |
◆'알짜' 한무쇼핑 자금, 신사업에 재투자
현대백화점이 밝힌 표면적인 이유는 지배구조 확립과 주주가치 극대화다. 현대백화점과 현대그린푸드가 지금도 실질적인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명확히 구조화하는 절차라는 설명이다. 반대로 지금도 지주사 역할을 하고 있다면 굳이 계열분리나 합병과 같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지주사 전환이 필요한지 의문이 따를 수 있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유통업을 비롯한 다수의 이종 사업간 지배구조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형태다. 이번 결정은 유통과 비유통으로 사업군을 명확히 나누거나 새로 진출할 신시장을 제시하지 않았다. 시장에선 주주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한 방향이었는지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추가적인 설명을 들어보면 우선 현대백화점 부문에서 한무쇼핑의 유보자금을 활용할 방도가 필요했다. 한국무역협회와 공동 출자한 한무쇼핑은 무역점, 킨텍스점, 충청점, 목동점, 남양주아울렛, 김포아울렛 등을 운영하고 있는 회사이다. 지난해 영업현금흐름이 2100억원에 달할 정도로 현금창출력을 갖춘 법인이다.
지금은 현대백화점의 자회사로, 한무쇼핑에서 벌어들인 자금을 현대백화점의 또 다른 자회사인 면세점과 지누스에 활용하기 까다롭다. 신설 지주사가 설립되면 한무쇼핑은 지주사의 자회사가 된다. 신설 지주사가 한무쇼핑에서 벌어들인 수익을 백화점이 추진하는 오프라인 사업 확장과 신사업 투자에 사용할 수 있게 된다. 현대백화점 측은 "한무쇼핑 내의 유보자금 활용도 염두에 뒀다"며 "한무쇼핑의 자금력을 활용 못하는 비효율을 해결하기 위한 측면"이라고 설명했다.
현대그린푸드 부문의 경우 여러 인수합병(M&A)으로 식품사업 외 다양한 사업이 혼재되면서 경영 효율화가 필요했다는 분석이다. 현대그린푸드가 식품사업에 주력하고 신설 지주사는 비식품사업에서 성장동력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지주사 귀속 자사주, 지배구조 강화에 큰 역할
지주사로 전환은 총수일가의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큰 목적이 있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지배구조를 두 개의 지주사를 설립해 정지선·교선 형제의 그룹 지배력을 높일 수 있게 된다.
여기서 자사주가 큰 역할을 맡는다. 지주사 전환을 위해서는 사업회사가 상장사일 경우 지분을 30% 이상 확보해야 한다. 현대백화점이 보유한 자사주 6.6%, 현대그린푸드의 자사주 10.6%는 새 지주사로 귀속되는데, 향후 지주사가 사업회사 지분 취득시 자사주가 활용될 전망이다.
현대백화점은 내년 5월 이후 현물출자와 유상증자 등을 통해 사업회사 지분 40% 가량을 확보해 지배력을 높일 예정이다. 현대백화점 측은 "새 지주사가 사업회사를 지배하는데 자사주가 기본적으로 활용되는 방식"이라며 "시장에 내 놓거나 하진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주사 전환 후 지배구조 변화 [사진=현대백화점] |
◆계열분리 가능성 아직까지 미지수...현대홈쇼핑 향방은?
업계에선 향후 두 개의 지주사가 합병해 하나의 지주사 체제로 전환되거나 아예 계열분리가 될 수 있다는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있다. 이 같은 논란을 의식해 현대백화점그룹은 일찌감치 "두 회사간 사업 시너지가 매우 커 계열 분리는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정교선 부회장은 현대백화점의 지분이 없지만, 정지선 회장은 현대그린푸드의 지분(12.67%)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도 계열 분리가 어려울 것이란 이유 중 하나다. 완전히 계열 분리를 하려면 정 회장이 지분을 완전히 매각하거나 지분을 교환해야 한다. 신세계그룹의 경우 정용진 부회장이 분리경영을 위해 광주신세계 지분을 매각한 바 있어 불가능한 시나리오는 아니다.
지금까지 설명에서 빠진 또 하나의 핵심 계열사 현대홈쇼핑도 향후 지배구조 개편의 키를 쥐고 있다. 현대홈쇼핑은 현대그린푸드(25.01%)와 현대백화점(15.08%)이 보유하고 있는 형태로, 총수 일가는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현대홈쇼핑이 영위하는 사업은 패션(한섬), 건자재(현대L&C), 렌탈(현대렌탈케어) 등 다양하다. 새 지주사간 합병이나 계열분리가 없다면 중간 지주사라는 애매한 역할을 맡게 된다.
업계에선 당분간 백화점과 이마트로 나눠진 신세계그룹처럼 정지선·교선 형제가 협력과 또는 경쟁하며 그룹을 이끌어갈 갈 것으로 보고 있다.
syu@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