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정유사, 고유가 배경으로 막대한 수익"
"손실 볼 때도...'횡재 이익' 아냐" 반론도
野, 정부여당 반대에도 횡재세 입법 추진
[서울=뉴스핌] 홍석희 기자 = '난방비 폭탄에 이어 전기료 인상...취약계층 지원책 시급'
1월 기록적인 한파 속에 '난방비 폭등' 사례가 속출하며 고물가로 인한 고통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올해 전기료·수도요금·교통비 인상 등도 줄줄이 예정돼 있어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책이 시급한 상황이다.
극심한 '에너지 대란'을 앞둔 상황 속에 고유가로 막대한 수익을 올린 정유사들에게 '횡재세'를 걷어야 한다는 주장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정유사들이 연초 '월 기본급의 1000%'를 성과급으로 지급했다는 소식은 이같은 횡재세 논의에 기름을 부었다. 정부여당과 석유업계는 완강히 반대하고 있지만 야당은 우호 여론을 등에 업고 입법을 강행하겠다는 입장이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대부분 정유사 직영 주유소와 알뜰 주유소가 오는 12일부터 정부의 유류세 인하 조치를 가격에 즉시 반영하기로 했다. 정부는 물가 안정과 서민 경제의 유류비 부담 완화 차원에서 11월 12일부터 4월 말까지 약 6개월간 유류세 20%를 인하하기로 했다. 사진은 2일 서울 시내의 한 주유소. 2021.11.02 pangbin@newspim.com |
◆ "국내 정유사, 인플레 배경으로 '횡재 이윤' 누려"
횡재세(windfall profit tax)란 대외 환경 변화나 정부의 정책 지원으로 기업이 얻은 막대한 초과 이익에 추가로 징수하는 소득세를 의미한다. 지난해 국내 정유업계는 국제 유가 상승에 따른 정제 마진 초강세로 역대급 수익을 얻을 수 있었다.
GS칼텍스는 지난해 3분기까지 연결 기준 4조309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전년 동기 대비 186% 증가한 수준이다. 현대오일뱅크 역시 2022년 3분기까지 2조7700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전년 동기 대비 226% 증가세를 기록했다.
이를 두고 나원준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해 국회에서 열린 '한국형 횡재세법 쟁점과 입법과제' 토론회에서 한국 정유사들이 인플레이션을 배경으로 '횡재 이윤'을 누리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나 교수는 "한국 정유업체들의 수익성을 결정하는 핵심 요인은 정제마진(원유 1배럴을 정제해 석유 제품을 판매하고 남는 이익)이다. 정제마진은 국제 유가를 비롯한 다양한 요소가 반영되어 결정되는 구조"라고 언급했다.
이어 "국제 유가가 상승하면 상승 전 가격으로 원유를 정제한 다음 국제 기준 가격인 싱가포르 현물시장 가격으로 비싸게 팔 수 있다"며 "이에 따라 유가 상승은 정제마진 상승을 가져오며 그로 인해 정유사 수익성도 개선됐다"고 덧붙였다.
결국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고유가와 글로벌 공급망 불안으로 촉발된 고물가 상황에서 정유사들이 정상적인 수준을 넘어서는 초과 이윤을 기록했다는 것이다. 나 교수는 횡재 이윤을 거두는 일부 기업들에 항구적으로 횡재세를 부과해 재분배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원유 가격에 대한 통제력이 없는 국내 정유사가 지난해 거둔 고수익을 '횡재 이윤'이라고 규정하기 어렵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깁갑순 동국대 회계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정유사가 싸게 사온 원유를 정제해 비싸게 파는 경우도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생긴다"며 "손실과 상계를 한다고 가정하면 '횡재적 이익'이라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지난 7년 정도를 주기로 정유 산업의 이익을 계산해보면 일정하다"며 "다른 산업에 비해 영업이익률이 그렇게 높지 않다"고 주장했다.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난방비 폭탄 민주당 지방정부·의회 긴급 대책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23.01.26 leehs@newspim.com |
◆ 野 "위기 극복 동참해야"...여당 반대에도 입법 추진
야당은 정유사들이 난방비 폭등으로 인한 국민들의 고통에 동참해야 한다며 지속적으로 '횡재세 도입'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달 2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들이 난방비 폭탄을 맞고 있어 횡재세 도입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27일 전북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도 "천문학적 영업이익을 거둔 거대 기업이 위기 극복에 동참할 길을 마련해야 한다"며 "횡재세든 연대기여금이든 국회와 기업이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민주당은 이미 석유사업법에 횡재세와 유사한 제도가 마련되어 있다며 정부를 향해 시행을 촉구하고 있다. 현행 석유사업법 제 18조에 따르면 정부는 석유 수급과 석유 가격의 안정을 위해 부과금을 징수할 수 있다. 그 대상으로 '국제 석유 가격의 현저한 등락으로 지나치게 많은 이윤을 얻는 석유정제업자·석유수출입업자'가 명시돼 있다.
이같은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횡재세 시행을 강제하는 입법에 착수하겠단 입장이다. 김성환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지난달 31일 "석유사업법 18조에 따라 지나치게 많은 이익을 낸 석유 사업자에 부담금을 징수해 난방비 폭탄으로 고통 받는 국민에게 되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법이 없는 게 아니지 않느냐. 있는 법으로라도 잘해보라는 것"이라며 "굳이 표현하자면 오늘 산업부 장관에게 최후통첩을 한 것"이라고 압박했다.
이성만 민주당 의원·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정유사들의 이익에 극에 달한 지난해 횡재세 도입을 위한 법인세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그러나 정부여당은 횡재세 도입과 관련해 완강하게 반대 입장으로 일관하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26일 기자간담회에서 "(횡재세 도입에) 전혀 동의할 수 없고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도 지난달 27일 "재원 등에 대한 어떤 준비도 없이 (이 대표) 본인의 사법리스크를 덮기 위해 30조원 추경을 무리하게 주장하다 보니 비논리적인 '횡재세' 발상이 나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부여당이 계속 반대할 경우 법사위·본회의 통과 등에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이지만 민주당은 일단 입법까진 추진하려는 분위기다. 소관 상임위인 기획재정위원회가 열리는 2월 임시회부터 '횡재세 강제' 입법화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입장에선 난방비 폭탄 등으로 '에너지 대란' 분위기가 조성되는 등 여론 상황이 불리하지 않단 해석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민주당의 한 기재위원은 "일단 당대표도 언급을 했고 기재위 소관 사업이니 당연히 논의를 하게 될 것"이라며 "민생 위기 상황에 고통 분담을 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어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전했다.
hong90@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