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동훈 기자 = "내 돈이면 안산다" 결국 터진 국토교통부 장관의 일갈에 공공기관의 매입 임대주택사업이 전면 재조정되고 있다. 건설업체가 내건 터무니 없는 분양가로 미분양 주택을 사들이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비롯한 공공기관이 혈세를 허투루 쓰고 있다는 지적 때문이다.
이동훈 건설부동산부장 |
사정은 이렇다. LH가 매입임대주택으로 쓰려고 사들인 서울 강북구의 한 미분양 주택은 200가구 남짓한 소규모 주상복합 단지임에도 지역 최고 수준의 분양가를 책정했다. LH는 지난해 말 악성 미분양으로 불리는 준공 후 미분양 상태인 이 아파트 전용면적 19~24㎡ 36가구를 가구당 2억1000만~2억6000만원선, 총 79억4950만원에 매입했다. 이 가격은 지역 최고 분양가였던 이 아파트 최초 분양가 대비 12% 가량 낮은 금액이다. 하지만 LH에 판매한 소형주택을 제외한 나머지 중대형은 당시 15% 할인된 가격에 추가 분양을 진행했다.
그리고 LH가 사들인 소형 주택은 최근 실시된 이 아파트 9차 선착순 분양에서도 미달됐다. 분양가를 LH에 판매한 금액 이하로 낮췄지만 수요자들의 외면을 받은 것이다. 결국 원 장관이 말했던 "내 돈이면 안산다"가 사실로 확인된 셈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시민단체를 비롯해 정부의 고가 미분양주택 매입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민 혈세로 부도덕한 건설업체를 살리고 있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터무니 없이 높은 분양가를 책정한 후 미분양이 나면 LH에 임대주택으로 매각하는 과정에서 분양가를 깎아주는 척 하면서 실속을 차린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국민 혈세가 허투루 쓰여서는 안된다. 특히 모럴헤저드에 빠진 건설업체를 돕는데 사용해선 더욱 안된다. 하지만 구더기 무서워서 장을 안 담글 수는 없다. 여러가지 문제점이 있지만 공공의 미분양 주택 매입임대는 효율성이 좋은 사업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우리 역사에서 중세에 해당하는 고려시대에는 상평창과 의창이란 기구가 있었다. 의창은 춘궁기나 흉년이 들었을 때를 대비해 양곡을 사둬 저장했다가 이를 풀어 국민을 구휼하는 제도다. 상평창은 물가 조절의 기능을 갖는다. 쌀 때 사둬 양곡 가격이 지나치게 떨어지지 않게 하고 비쌀 땐 이를 풀어 양곡값을 떨어뜨린다.
이 제도는 더 이상 춘궁기나 흉년이 없는 지금도 그대로 유지된다. 지금의 '나라미'의 전신인 '정부미'가 그것이다. 정부미는 쌀 생산자인 농민들에게 정부가 직접 사들여 비축하는 쌀이다. 취약층 구휼이 정부미의 원래 기능이지만 쌀값이 폭등했던 시기엔 시중에 풀어 쌀값을 방어했다. 다만 쌀 소비량이 뚝 떨어지고 해외 수입이 활발해진 지금은 물가조절 기능이 없어졌지만.
주택에도 이같은 '정부미'가 있다. 바로 공공의 매입임대주택이다. 공공 임대주택은 의창과 같은 서민 주거복지를 위해 공급된다. 하지만 매입임대주택은 상평창의 기능도 함께 가질 수 있다.
정부가 밝힌 2020년 기준 국내 임대주택 재고는 169만가구다. 이 가운데 민간임대를 제외한 159만 가구가 공공임대주택이며 이를 전체 국내 주택수 2167만가구에 대비하면 약 7%의 재고율을 갖는다. 이같은 공공임대주택 재고율은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 평균과 유사한 수준으로 나쁘지 않은 수준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시민단체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서민을 대상으로 하는 저렴한 임대주택만 계산하면 92만 가구만 남게 되며 재고율은 4%로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수치에 대한 논란은 따르지만 결국 공공임대주택은 재고량을 지금보다 확기적으로 늘려야할 필요성이 있다. 이유는 단 하나다. 집값이 너무 비싸서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주택 가격에서 연 가구 소득을 나눈 PIR수치가 지난해 18배까지 치솟았다고 지적했다. 중위소득자가 18년을 한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집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시민단체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2022년 서울의 아파트 담보대출(PIR)은 14.2로전 세계에서 홍콩(18.8) 다음으로 PIR이 높다.
집을 사기가 힘들어진 만큼 주거복지를 위해서는 마음 놓고 임차할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 재고량 확대가 절실한 부분이다. 최근 공공임대주택의 경쟁률은 강남 프리미엄 아파트 청약경쟁률을 훨씬 뛰어넘는 수백대 1을 보인 것이 방증이다.
이와 함께 물가 조절의 기능도 함께 가질 수 있다. 바로 미분양 아파트나 빌라를 공공이 매입해 임대주택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미분양 주택은 신축주택으로 주택의 품질이 30년이 다돼가는 건설 임대주택보다 훨씬 뛰어나다. 여기에 건설업계가 위험선으로 분류한 미분양 주택 7만 가구를 넘어선 점도 정부의 개입이 필요한 부분으로 꼽힌다.
업계의 모럴헤저드를 정부가 지원해줄 필요는 없지만 자칫 업계가 도산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에선 정부의 '중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는 세계 금융위기 직후인 2010년 국내 미분양주택 해소를 위해 이명박 정부가 단행한 것으로 적잖은 효과를 본 부분이다.
다만 이 경우 논란이 될 수 있는 매입 가격에 대해서는 철저한 검증이 요구된다. 최근 LH가 수립한 매입임대정책에 따르면 매입가격 감정평가를 두번 하기로 했다. 아예 매입가격을 공공 건설임대주택의 비용기준에 맞추는 방법이 옳을 듯 하다. 즉 임대주택 건설비용인 표준건축비를 기준으로 공사비를 산출하고 토지가격은 원가로 산정해 매입가격을 책정하는 것이다. 이렇게하면 건설업계는 분양수익이 줄겠지만 장기 미분양에 따른 비용도 저감시킬 수 있고 자금을 빨리 회수할 수 있어 일단 급한 불은 끌 수 있다.
특히 장기 미분양 물량이 많은 업체는 대부분 중소건설사라는 점에서 정부의 개입은 당위성이 있다. 여기에 최근 벌어진 미증유의 빌라 전세사기를 감안하면 주택임대차 시장의 공공성 강화는 반드시 필요하다.
공공 매입임대주택의 역할과 기능을 재정립해야할 시기다. 문제점도 적지 않지만 서민주거복지라는 의창의 기능과 부동산시장 왜곡 방지라는 상평창을 모두 갖는 '정부미'로서 공공 매입임대주택 활용 가치는 여전히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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