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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정착 스토리] ③ 약사자격에 북한학 박사까지 거머쥔 '함경도 오뚝이' 이하나 씨

기사입력 : 2023년05월20일 14:05

최종수정 : 2023년05월20일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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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면허 따던 해 북한학 박사도 받아
대통령 표창에 약국경영대상도 수상
"세금낼 때 대한민국 국민 실감 뿌듯"

[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 한국 정착 후 50대에 약사 자격증을 따고 자신의 약국을 경영하는 탈북민이 있다. 공공 심야약국인 '365 하나약국' 약사인 이하나 씨다.

탈북민 출신 약사 이하나 씨. [사진=남북하나재단] 2023.05.19 yjlee@newspim.com

흔히 탈북민 약사라고 하면 북한에서의 약사 근무 경험이나 자격증으로 여기서도 일한다고 생각하지만 이 씨는 새로 공부해 약사 면허를 땄다. 한국에서 북한의 의사⋅약사 자격증은 인정해주지도 않을뿐더러, 설사 그렇다해도 북한에서의 경력을 입증하기도 쉽지 않은 현실이다. 함흥약학대학 약제학부를 졸업(6년)하고 12년간 병원 약사로 근무했지만 한국에 온 뒤 다시 도전해야 했던 이유다.

경기도 이천에 자리한 하나약국은 1년 내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아침 8시 문을 열고 다음 날 새벽 1시에 문을 닫는다. 약국 근처는 공장 노동자들의 주택지구다. 출퇴근 시간을 이용하여 겨우 시간을 내 병원과 약국을 찾는 사람들의 요청에 맞추기 위해서다.

뉴스핌과의 인터뷰에서 이 씨는 "모든 것은 거기서 시작되었지요. 인생의 곡절이요"라며 어머니 얘기부터 꺼냈다. 서울 태생인 이 씨의 어머니는 6.25 당시 여고생이었는데 무료로 공부시켜 준다는 북한의 감언이설에 속아 혼자 북으로 향했다.

◆엘리트 의사였던 어머니가 광부로 전락하면서 악몽 시작

전쟁이 끝나자 배움의 열정 하나로 평양의학대학을 졸업하고 의사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무남독녀인 이하나 씨가 10대였을 무렵, 고향이 서울이란 이유로 계급적으로 믿지 못할 사람으로 분류되어 북부 지방으로 추방됐다.

이때부터 고행이 시작됐다. 어머니는 하루아침에 탄을 캐는 광부가 되었고 하나 씨는 발가락이 뚫어져 나온 편리화를 신고 십 리가 넘는 시골길을 걸어서 학교에 다녔다.

꿈에서나 존재하던 어머니의 고향 서울과 연이 닿은 건 1998년이었다. 노모가 살아계시다는 연락을 받은 하나 씨의 어머니는 평생을 눌러온 그리움을 참지 못했다. 가족을 만나는 길에서 죽겠다는 결심으로 어머니가 길을 떠났다.

몇 달이 지나도 소식이 없는 어머니를 찾아 하나 씨는 9살 난 맏딸을 데리고 두만강을 건넜다. 하나 씨의 어머니는 남쪽의 가족이 마련해 준 안가에 있었다. 어머니의 안전을 확인하고 나니 이번에는 북에 남겨둔 3살 어린 딸 생각이 못견디게 가슴을 후볐다.

강이 얼기를 기다렸다. 다시 돌아가겠다는 하나 씨의 결단을 들은 어머니는 두 팔로 막아 나섰다. 손녀도 마음에 걸리지만 당장 딸의 목숨이 먼저였다. 한밤중 어머니에게 딸을 부탁하는 편지를 남기고 혼자 안가를 나섰다.

탈북민 출신 약사 이하나 씨가 자신이 운영하는 '365 하나약국'에서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남북하나재단] 2023.05.19 yjlee@newspim.com

무작정 넘은 강가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경비대의 총구였다. 북방의 1월, 대한이 얼어 죽는다는 소한 날이었다. 눈발이 하얗게 날리던 강가에서 하나 씨는 입은 옷마저 빼앗기고 보위부 감옥으로 이송되었다. 보위부 감옥에서 보낸 1년 가까운 시간, 매일 이어진 매질과 취조에 살아서 나갈 길이 보이지 않았다. 서울 출신의 어머니가 중국으로 갔으니 한국행으로 짐작하고 집요하게 심문했다.

밤에도 혹시 입 밖으로 어머니가 계신 곳을 대는 건 아닐까 두려움에 시달려 잠결에도 소스라쳤다. 혁명역사 교과서(북한의 교과서)에 나온 항일투사처럼 혀를 끊어야만 할까 고심하던 그때, 2000년 남북정상회담이 발표되었다. 남북관계가 화해의 분위기로 바뀌고 남쪽 출신이 억울한 점을 없게 하라는 김정일의 '3.13 특별 지시'가 내려졌다. 덕분에 생각지도 못한 사면을 받고 풀려난 하나 씨는 그날을 인생의 기적이라고 말한다.

헤어진 지 1년이 못되었지만 어린 딸은 달라진 엄마를 알아보지 못했다. 처음 보는 이를 대하듯 불러도 오지 않는 딸을 무릎에 앉히고 사진첩을 펼쳤다. 가족이 찍은 사진 앞에서 물었다.

"ㅇㅇ아, 이건 누구니?"

"나, 언니, 아빠, 이건 엄마야."

사진을 들여다보고 다시 엄마를 바라보던 딸이 그제야 "엄마"를 부르며 울음을 터뜨렸다. 딸은 그날부터 한시도 엄마 옆에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작은딸과 함께하자 이번에는 떠나보낸 엄마와 맏딸의 생사가 자나 깨나 걱정이었다. 손녀와 함께 한국에 잘 정착하였다는 어머니의 연락이 왔다.

"모녀가 대를 이어 갈라져 살아야 할까."

어머니의 일생을 곁에서 지켜보며 그리움의 비극을 누구보다 잘 아는 하나 씨는 결국1년 후 다시 운명에 도전했다. 목숨처럼 소중한 딸을 업고 얼음이 떠다니는 강을 무사히 넘어 한국행 길에 올랐다. 

◆'못 배운 고통 평생 간다' 버스 글귀에 약대 진학 결심

북한의 약사 자격은 어디서도 통하지 않았지만, 대한민국에서는 굶어 죽을 염려는 없었다. 슈퍼에서 비품을 정리하는 일이 이 씨가 맡은 일이었다. 어머니는 약학대학에 다시 입학하여 면허를 취득하라고 권고했지만 40대 중반의 나이에 20대 친구들과 경쟁할 자신이 없었다고 한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지만 약사와 슈퍼 일은 전혀 다른 세계였다. 마치 다른 사람의 허울을 쓴 것 같았다. 자신에게 맞는 옷을 입어야 했다.

어느 날 출근길 버스 안에서 "배우는 고통은 잠깐이지만 못 배운 고통은 평생 갑니다"라고 쓴 글줄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래, 다시 시작하는 거야."

그러나 배움의 길도 쉽지 않았다. 결심한다고 대학이 그를 반겨준 건 아니다. 북한 대학 졸업장을 가져오라는 어느 대학 입학처의 설명을 듣고 절망했다.

"생사도 담보하지 못하는데 졸업장을 어떻게 가져옵니까?"

절규해 봐도 넘을 수 없는 법의 울타리 앞에 예외는 없었다. 실망을 거듭하며 이곳저곳, 또 다른 대학을 찾아 나서던 그때, 삼육대학교에서 배움의 문을 열어주었다. 실향민 1세대들이 세운 대학이었다. 소중한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남보다 몇 곱절 노력하자고 결심했다. 대학에 입학하자 첫 강의부터 낯선 외래어와 영어 강의에 숨이 막혔다. 영어학원에 등록하고 A,B,C부터 배워나갔다.

강의를 마치면 아르바이트가 기다렸다. 두 아이를 키우며 대학을 마칠 때까지 4년, 한 푼도 아쉬운 그는 점심을 거르고 라면으로 저녁을 대신하기 일쑤였다. 대학교 1학년 때 600원이었던 라면은 2학년에 올라가자 1,000원이 되었다. 그 값을 잊지 못하는 건 남다른 그의 기억력 때문만이 아니다.

대학을 졸업했지만 더 큰 일이 앞에 있었다. 한 번, 그리고 또 한 번 약사면허시험의 벽을 넘지 못했다. 금싸라기 같은 그 시간이 아까웠던 하나 씨는 북한대학원에서 박사 과정 공부를 시작했다. 박사논문과 국가고시 시험을 함께 준비하며 1년, 2년, 시간이 흘렀다. 결국 약사면허를 받던 그해 이하나 씨는 박사학위도 함께 취득했다. 나이 쉰에 이루어낸 그의 인간 승리였다.

◆첫 개업 약국 1년 만에 닫는 실패 끝에 '하나약국' 문열어

이하나 씨의 카톡명은 '오뚝이'다.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그것만으로 그의 삶의 태도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약사 면허는 시작에 불과했다. 고군분투하면서 동업으로 시작한 약국은 1년 만에 문을 닫아야 했다. 재개발을 앞둔 지역에 주민들이 떠나버리자 약국에는 파리만 날렸다. 가게 운영 경험이 없어 위치 선정에서 실패한 것이다.

산더미 같은 대출을 안고 있던 하나 씨는 약국 문을 닫고 출발점으로 돌아갔다. 첫 번째 실패의 경험을 살려 영등포의 대로변, 새로 짓는 건물에 입주 계약을 했다. 성공을 보장한다는 건물주의 말을 믿었으나 계약금 2000만 원이 사라질 때까지 병원이 들어오지 않았다. 결국 두 번째 선택도 실패였다.

2016년 11월 29일 지금의 '365 하나약국'을 개업하게 되었다. 집에서 두 시간 거리지만 여러 기업의 생산라인이 있어 주민이 밀집한 곳이었다. 명절날, 휴일을 가리지 않고 1년 365일 문을 연다는 건 사실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고 하나 씨는 말한다.

처음 지역에서 약국을 여니 그의 북한 사투리를 들은 손님들이 의아한 눈길을 보냈다. 외국인 노동자도 많고 중국 조선족도 많은 지역이다. 그 어렵다는 약학대학을 나온 약사의 사투리는 어떤 이들에게는 친근함을, 또 다른 이에게는 미심쩍은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약국에는 나이 성별을 불문하고 많은 사람이 온다. 지역 주민이라 한두 번 보고 말 사이가 아니다. 늘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는 비결은 약에 대한 친절한 설명과 함께 베푸는 마음이라고 한다.

그의 피나는 열정에 대한 보답인 듯 약국에는 여러 상장과 상패가 있다. 대통령 표창장(2014년)도 있고 약학기술인상(2021년), 제6회 자랑스러운 대한약사상(2019년), 그리고 올해 받은 약국경영대상(2023년)도 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 당당히 살아가는 모습이다.

"해마다 세금을 낼 때면 긍지를 느끼죠. 제가 받은 정착지원금보다 훨씬 더 내고 있으니까요."

이야기를 마치며 이하나 씨가 던진 말이다.

[뉴스핌-하나재단 공동기획] 

yjlee@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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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 7·8호-부앙가 23호...환상 '흥부 듀오' [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손흥민이 시즌 7·8호골을 연달아 터뜨리며 4경기 연속골을 기록했다. 드니 부앙가도 시즌 23호골을 넣어 '흥부 듀오'는 3골을 합작하며 팀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LAFC 손흥민은 28일(한국시간)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의 에너자이저 파크에서 열린 2025 MLS 정규리그 서부 콘퍼런스 세인트루이스 시티SC와의 원정 경기에서 3-4-3 포메이션의 원톱 스트라이커로 선발 출전했다. LAFC는 '흥부 듀오'의 활약을 앞세워 3-0으로 완승을 거뒀다. LAFC는 승점 53을 기록하며 서부 콘퍼런스 4위 자리를 유지했다. [세인트루이스 로이터=뉴스핌] 박상욱 기자= 손흥민이 28일(한국시간) MLS 34라운드 세인트루이스 시티 SC와의 원정 경기에서 자신의 첫 번째 골을 넣고 '찰칵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2025.9.28 psoq1337@newspim.com [세인트루이스 로이터=뉴스핌] 박상욱 기자= 손흥민이 28일(한국시간) MLS 34라운드 세인트루이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자신의 첫 번째 골을 넣고 골 셀레브레이션을 하고 있다. 2025.9.28 psoq1337@newspim.com 손흥민은 1-0으로 앞선 전반 추가시간 시즌 7호골을 뽑아냈다. 그는 중원에서 단독 드리블로 페널티박스 왼쪽까지 돌파한 뒤 오른발 슈팅으로 골망을 흔들며 선제골을 기록했다. 후반 15분에는 페널티박스 정면에서 수비수를 앞에 두고 오른발 슈팅으로 시즌 8호골을 추가, 이날 멀티골을 완성했다. 손흥민은 이번 시즌 MLS에서 8경기 만에 8골 3도움을 기록하며, 출전 경기마다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MLS 기록 기준으로 이번 4경기 연속골은 지난 2021년 12월 토트넘 소속으로 EPL 14라운드부터 4경기 연속골을 기록한 이후 약 3년 9개월 만이다. 경기를 중계하던 현지 해설진은 "손흥민과 부앙가는 피할 수 없다(inevitable)"며 두 선수의 뜨거운 활약을 추켜세웠다. [세인트루이스 로이터=뉴스핌] 박상욱 기자= 손흥민이 28일(한국시간) MLS 34라운드 세인트루이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자신의 두 번째 골을 넣고 골 셀레브레이션을 하고 있다. 2025.9.28 psoq1337@newspim.com [세인트루이스 로이터=뉴스핌] 박상욱 기자= 손흥민이 28일(한국시간) MLS 34라운드 세인트루이스 시티 SC와의 원정 경기에서 골을 넣고 부앙가과 손을 마주치고 있다. 2025.9.28 psoq1337@newspim.com 손흥민과 함께 공격을 이끄는 드니 부앙가(31)도 전반 15분 선제골을 터뜨리며 5경기 연속골로 시즌 23골을 기록, 리오넬 메시에 이어 득점 랭킹 2위에 올랏다. 두 선수는 최근 LAFC가 터트린 15골 중 절반 이상을 책임지고 있다. 경기 도중 손흥민과 부앙가는 높이 뛰어올라 하이파이브를 주고받는 세리머니를 펼치며 팀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세인트루이스에서는 정상빈이 왼쪽 날개 공격수로 선발 출전하며 '코리안 더비'가 성사됐다. 정상빈은 전반 2분 수비 뒷공간으로 빠르게 침투하다 LAFC 골키퍼와 충돌하며 경고를 받았지만 경기 내내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다. 그는 후반 20분 공격포인트 없이 교체돼 벤치로 돌아갔다. 이날 승리로 LAFC의 스티브 체룬돌로 감독은 2022년 1월 지휘봉을 잡고 나서 통산 100승(36무 9패)째를 달성하는 기쁨을 맛봤다. psoq1337@newspim.com 2025-09-28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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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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