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현대, 정상화 개인전 '무한한 숨결' 개최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내 그림은 평면에서 평면으로 끝난다."
2차원 캔버스 위에 고령토를 올리고 조수 없이 혼자 힘으로 '뜯어내기'와 '메우기'를 반복하며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 작가 정상화(92)는 독창적인 화풍에 대해 이와 같이 소개했다.
수행과도 같은 반복적인 행위로 새로운 차원의 평면성을 탐구하는 정상화 작가는 구순이 넘은 시점에도 개인전을 열고 대중과 만나는 중이다. 정상화의 70년 작품 세계는 지난 1일 갤러리현대서 개막한 개인전 '무한한 숨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1층 전시장 전경 [사진=갤러리현대] 2023.06.16 89hklee@newspim.com |
이번 전시는 정상화 작가와 갤러리현대가 함께하는 아홉 번째 개인전이다. 갤러리현대는 파리에서 활동 중이던 그의 예술성에 반해 1983년 첫 개최한 이후 현재까지 40여년간 그의 예술 세계를 국내외 무대에 알려왔다.
전시 제목 '무한한 숨결'은 작가의 모든 숨결이 닿은 캔버스 화면이 화폭 너머의 무한한 시공간으로 확장되길 바라는 정상화 작가의 세계관을 은유한다. 그는 신체적, 정신적 노동이 집약된 방법을 통해 2차원 평면을 숨결이 존재하는 공간으로 확장해 왔다. 미술평론가 이일은 1980년 발표한 글에서 정상화의 작품을 '은밀한 숨결의 공간'이라 평한 바 있다.
1층 전시장에 들어서면 그만의 화면 구축 방법론을 확인할 수 있다. 작가가 생각하는 공간과 면, 선에 대한 이야기를 꿰뚫어볼 수 있는 작품들이다. 그는 고령토를 평면에 힘을 축적시키는 재료로 사용했다. 고령토와 물감을 들어냈다 메우는 과정을 통해 선과 면과 공간을 캔버스 위에 구성한다. 작가는 "죽 그었다고 해서 선이 아니고, 평평하다고 해서 면이 아니요, 비워뒀다고 공간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1층 전시장 전경 [사진=갤러리현대] 2023.06.16 89hklee@newspim.com |
지하 전시장에는 백색 작품들을 통해 작가가 구축하려고 한 평면의 다양성을 보여준다. 작가는 1970년대부터 기존의 강렬한 색채와 거친 마티에르를 사용한 비정형 앵포르멜식 회화에서 점차 벗어나 평면에 깊이를 탐구하며 변화를 모색한다.
이 시기 엄격하게 색을 절제하고 내용에 있어서는 철저하게 평면화를 추구한다. 비슷한 작품처럼 보이지만 같은 백색이라고 해도 구성하는 요소가 작업마다 다르고 개별 격자의 크기와 형태, 색채와 높낮이도 모두 다르다.
2층 전시장에서는 종이를 재료로 한 작가의 평면을 향한 탐구 정신을 확인할 수 있다. 정상화는 1970년대 들어서면서 캔버스를 이용한 평면 실험 이외에도 종이라는 매체를 적극 활용했다. 고령토를 올린 후 뜯어내고 메우기를 통해 공간을 구축한것과 달리 종이 작업은 데꼴라주, 프로타주 기법을 통해 평면 실험을 진행했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2층 전시장 전경 [사진=갤러리현대] 2023.06.16 89hklee@newspim.com |
정상화 작가는 "내 작업은 들어내는 작업을 반복하는 것"이라며 "사람이 산다는 것은 반복이다. 그 속에 가지는 게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남이 아니라 본인만 알 수 있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정상화 작가는 1932년 경상북도 영덕에서 태어나 마산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한국전쟁이 진행되던 1953년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입학해 1957년 대학 졸업 후 '한국현대작가초대전'(1960), '악튀엘 그룹전'(1962), '세계문화자유회의초대전'(1963) 등 다수의 정기전, 그룹전에 참여했다.
1968년 짧게 도불을 마치고 돌아왔고 이듬해 일본 고베로 건너가 평면에 깊이 탐구하는 작업을 하게 됐다. 1970년대 중반부터 격자의 형태 및 규칙을 가졌고 이러한 반복적인 기법은 현재까지도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전시는 7월16일까지.
89hkle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