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금 1000만원 약식명령 불복
"회사자금으로 기부 알았을 것, 시민 신뢰 훼손"
[서울=뉴스핌] 이성화 기자 = 이른바 '쪼개기 후원' 방식으로 국회의원들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기부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구현모 전 KT 대표가 1심에서 벌금 700만원을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단독 김상일 부장판사는 5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구 전 대표에게 벌금 700만원 다른 전·현직 KT 고위 임원 9명에게는 각 벌금 300~400만원을 선고했다.
[서울=뉴스핌] 황준선 기자 = 국회의원들을 '쪼개기 후원'한 혐의로 기소된 구현모 KT 대표가 2022년 4월 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첫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2022.04.06 hwang@newspim.com |
구 전 대표 등은 재판에서 정치자금을 기부했다는 사실관계를 인정하면서도 대관 담당 부서인 CR 부문 임원들이 자금 조성을 주도해 자금 출처에 대해 몰랐고 협조 요청에 따라 정치자금을 송금하는 것이 법적으로 문제된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했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그러나 김 부장판사는 "피고인들이 자금 조성에 직접 가담하지 않았고 전달받은 자금의 출처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하더라도 당시 경영지원총괄 부사장 등 임원으로서 적어도 해당 자금이 CR 부문 임원들의 개인자금이 아니라 회사자금이라는 사정을 충분히 알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며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이어 "피고인들이 공모와 무관하다거나 단순 사자에 불과해도 정치자금의 기부를 알고 회사자금으로 송금하는 역할을 한 이상 공범으로서의 책임을 진다"고 판단했다.
김 부장판사는 "피고인들은 사회에 직간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치는 대기업인 KT의 임원으로 직접 이해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는 국회 소위원회 소속 의원들에게 법인 관련 자금을 기부해 국회의원 본연의 임무인 입법 직무의 공정성과 청렴성에 대한 일반 시민의 신뢰를 현저히 훼손했다"며 "죄질이 좋지 않을 뿐 아니라 죄책 또한 아주 중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피고인들이 오랜기간 동안 KT에 근무하면서 회사의 발전을 위해 노력한 점, 개인적으로 부정한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정치자금을 기부한 것은 아닌 점, 이 사건 기부로 의원들의 입법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조사되지 않은 점, 기부받은 의원들이 후원액 일부를 KT 측에 반환하고 구현모 피고인 등도 일부를 회사에 반환한 점 등을 고려해 형을 정했다"고 설명했다.
김 부장판사는 법인의 정치자금 기부를 금지한 정치자금법 조항에 대한 구 전 대표 측의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에 대해서도 정치적 표현의 자유 자체를 금지·제한하는 것이 아니어서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는다며 기각했다.
정치자금법 제45조 2항 5호 중 제31조 2항은 누구든지 국·내외 법인 또는 단체와 관련된 자금으로 정치자금을 기부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날 구 전 대표는 법정에 나오지 않았고 김 부장판사도 그대로 선고했다. 형사소송법 제277조에 따르면 법원의 약식명령에 불복해 피고인만 정식재판을 청구한 사건은 판결을 선고할 때 피고인이 출석하지 않아도 된다.
앞서 구 전 대표는 20대 총선 이후인 2016년 9월 경 KT 부사장급 임원으로 재직하면서 국회의원 13명의 후원회에 자신 명의로 100만원씩 총 1400만원의 정치자금을 불법 기부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에 따르면 KT와 대관 담당 임원들은 2014년 5월부터 2017년 10월 사이 상품권 대금을 지급하고 할인된 금액의 현금을 되돌려 받는 소위 '상품권 깡' 방식으로 부외자금을 조성해 쪼개기 방식으로 국회의원 99명에게 약 4억3800만원을 불법 기부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맹모 씨 등 대관 담당 임원 4명과 KT 법인을 정치자금법 위반 및 업무상횡령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고 구 전 대표 등 명의를 빌려준 임원들은 벌금형에 처해달라며 약식기소했다.
KT 법인은 1·2심에서 벌금 1000만원을 선고받고 불복해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맹씨 등 대관 담당 임원들은 1심에서 각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항소하지 않아 형을 확정받았다.
구 전 대표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벌금 1000만원, 업무상횡령 혐의로 벌금 500만원 등 총 벌금 150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고 불복해 정식 재판을 받았다. 구 전 대표의 업무상 횡령 사건은 같은 법원 형사17단독 김한철 판사가 심리 중이다.
shl2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