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판정 해석 정정 및 취소소송 제기
취소 소송 수용, 연평균 10% 그쳐
법조계 "승소 가능성 희박, 실익 적다"
[서울=뉴스핌] 김신영 기자 = 정부가 미국계 사모펀드 엘리엇에 1300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분쟁(ISDS) 판정에 불복해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 중재판정부가 한미 FTA(자유무역협정)상 관할 인정 요건에 따른 재판권 여부를 잘못 판단했다는 점을 취소 사유로 들었는데 승소 가능성이 있을지 주목된다.
법무부는 한국시간 기준 18일 중재판정부에 판정 해석·정정을 신청하고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엘리엇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 등이 투표 찬성 압력을 행사하는 바람에 손해를 입었다며 2018년 7월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은 우리 정부에 7억7000만달러(환율 1288원 기준, 9917억원)의 배상금을 청구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달 20일 엘리엇 측의 주장을 일부 인용해 배상원금과 이자, 법률 비용을 포함해 약 1300억원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법무부는 중재판정부의 손해액 산정이 잘못돼 정부 부담 원금이 60억원 이상 증가했으며 손해배상금 원금에 붙는 판정 전 이자를 '원화'로 지급해야 한다고 설시해놓고, '미화'로 지급해야 하는 것처럼 판시해 명확한 해석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판정 해석·정정을 신청했다.
아울러 중재판정부가 '한미 FTA상 관할' 인정 요건을 잘못 해석해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관할은 'ISDS를 제기할 수 있는 사건인지 여부에 대한 사전적 판단'을 뜻한다.
관할이 인정되려면 ▲정부의 조치 ▲투자자의 투자와의 관련성 ▲조치에 대한 책임이 국가에 귀속될 것 등의 요건을 충족해야 하는데, 엘리엇이 제기한 ISDS의 경우 이를 충족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상업적 지분권을 행사한 것이 다른 소수주주인 엘리엇의 투자에 조치를 취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국민연금을 한미 FTA가 예정하지 않고 있는 '사실상의 국가기관'으로 판단해 의결권이 정부에 귀속된다고 판단한 점 또한 부당하다고 봤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사안의 성격을 충분히 검토하면 승소 가능성이 있다"며 이번 판정을 받아들일 경우 국고펀드들에 좋지 않은 선례가 될 수 있어 세계 각국에서도 정부의 취소 소송 근거를 지지할 것이라는 취지로 말했다.
하지만 법조계는 승소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전망했다. 지난 10년간 ISDS에 제기된 취소 소송 중 수용 비율은 연평균 10%에 그치기 때문이다. 취소 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지연이자 등이 더 늘어난 탓에 세금만 낭비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송기호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이번 사안의 경우 한미 FTA 투자 인정 범위가 넓기 때문에 이란 다야니 가문 사건보다도 관할 인정 범위가 더 넓다"며 "판정문을 분석해 앞서 관할이 없다고 한 정부의 주장이 배척된 이유를 확인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중재부가 법리나 근거를 토대로 관할을 주장했는지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며 "취소 소송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희박하고 실익이 적다"고 주장했다.
오현석 계명대 경제통상학부 교수가 지난해 발표한 'ICSID(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 취소결정의 최근 동향 및 사례 분석' 논문에 따르면 2020년 기준 ICSID의 경우 165건의 중재판정 취소신청 중 19건만 전부 또는 일부 취소된 것으로 나타나 성공률이 11.5%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된 바 있다.
sykim@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