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가격 결정시 '정부'보다 '수요'를 우선시해야
정부, 과도한 시장 개입은 왜곡 불러
[서울=뉴스핌] 백진엽 선임기자 = '보이지 않는 손.'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애덤 스미스가 저서 '도덕감정론'(1759)과 '국부론'(1776)에서 주창한 원리로 수요와 공급이 만나 형성되는 '가격'을 의미한다. 이는 현재까지 경제나 시장에서 가장 기본이자 핵심적인 개념이다.
식품업체들은 올해 하반기에 접어들면서 밀가루, 라면을 시작으로 우유, 과자, 빵, 컵커피 등의 가격을 줄줄이 내렸다. 장바구니 물가가 높아져 힘들어 하던 소비자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다.
하지만 업체들이 가격을 인하한 이유를 보면 뒷맛이 개운하지 않다. 업체들은 수요가 줄거나 원가가 크게 바뀌지 않았지만 정부의 협조 요청으로 가격을 내렸다. 여러 이유로 물가 인상 우려가 큰 상황에서 정부는 물가 안정을 위해 기업들에게 협조를 요청했고, 이에 기업들이 화답한 것이다.
사실 정부 입장에서는 기업들에게 협조를 요청한 것일지 몰라도, 이를 받아들이는 기업 입장에서는 '압박'이 된다. 당시 한 유통업체 관계자에게 가격 인하 이유를 묻자 "수요-공급 법칙은 '보이지 않지만' 정부는 '보이기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즉 시장 법칙과 관계없이 정부의 요청을 무시할 경우 돌아올 보복이 두려워 가격을 낮춰야 했다는 의미다.
애덤 스미스가 이야기한 '보이지 않는 손'은 현대 시장경제에 꼭 들어맞는다고 하기는 어렵다. 당시에도 '참여 주체들 간의 완전한 정보' 등 완전경쟁시장을 전제로 했던 내용이고, 그때와 비교해 수없이 많은 가격 결정 요인들이 늘어난 현대에는 더 그렇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보이지 않는 손'이 유효한 것은 시장 가격 결정의 기본은 수요와 공급이 돼야 하기 때문이다. 시장 경제는 이같은 가격 결정 원리를 바탕으로 하면서 여러 변수들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장경제학자들은 시장 원리가 아닌 외부적인 요인(정부의 압박 등)으로 가격이 왜곡될 경우 결국 그 피해는 시장 주체들에게 돌아온다고 경고한다. 한국전력의 부실과 전기요금 문제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기업들이 가격을 결정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당장 눈에 보이는 정부의 압박이 아닌 '수요곡선', 즉 소비자다. 소비자들이 비싸다는 이유로 구매하지 않아서 판매가 부진해도 요지부동 가격을 고수하다가, 정부의 한마디에 가격을 내린다면 결국 소비자들로부터 외면을 당할 가능성이 높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시장에 대한 심판관이어야 한다. 시장주체들의 잘못을 잡아내 바로 잡는 역할을 해야지 정부가 시장을 좌지우지해서는 안된다. 최근 스포츠 경기에서 오심이나 심판의 권위적인 행동 등 관객들의 눈살을 찌푸리는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이를 두고 관련인사들은 "심판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명심판"이라고 입을 모은다. 시장에서 정부의 역할도 비슷하다.
260여년전 스미스에 의해 정립된 '보이지 않는 손'은 이후 수많은 이론들로 보완을 거쳐오면서 여전히 시장경제의 기본 사상으로 자리잡고 있다. 즉 경제주체들이 '보이지 않는 손'을 무시할 경우 '시장경제를 표방한 자유경제주의'라는 말은 허공에 뜬 메아리가 될 수 있다.
jinebito@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