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 뉴스핌] 김범주 기자 = 마을 어르신이 모여 여가를 선용할 수 있도록 지어 놓은 집을 경로당이라고 한다. 어르신들이 동년배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며 정보를 얻거나 취미 생활을 하는 공간으로도 활용된다.
2024학년도 새학기를 불과 한 달 앞두고 초등학교 교사들 사이에서 '경로당 빼도 다 들어올 기세'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정부가 새학기가 시작되는 3월부터 '늘봄학교' 2000개를 운영하겠다는 계획을 밝혔기 때문이다.
김범주 사회부 차장 |
늘봄학교는 오전 7시부터 오후 8시까지 초등학교 자녀를 학교에 맡길 수 있도록 하겠다는 제도다. 방과후 이른바 '학원 뺑뺑이'를 막고, 공교육 체제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겠다는 취지다. 대체로 이 같은 분위기에 동조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자 정부가 속도를 내고 있다. 올해 2학기에는 모든 초등학교에 도입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늘봄학교 도입을 두고 '경로당' 얘기는 왜 나왔을까. 모든 문제를 학교로 떠미는 구조, 복잡하게 얽힌 학교 구성원 구조 등을 지적한 것이 아니었을까.
정부가 새학기부터 도입하겠다는 늘봄학교는 현재 학교구성원간의 갈등 상황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학교는 '교사' 이외에도 학교 행정을 담당하는 일반직 공무원, 교육공무직 등 다양한 직군이 있다.
갈등은 '새롭게 만들어지는 업무'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늘봄학교 업무도 그렇다. 기존에 해야 할 일은 그대로 남아 있는데 새로운 업무가 추가되면서 '본인의 업무가 아니다'며 미루는 일들이 반복되는 것이다.
정부의 정책사업을 비롯해 시도교육감들의 공약 사업 등이 학교에 적용되면서 복잡한 구조를 만들어가고 있다. 시도교육청마다 각각의 다른 이름으로 추진 중인 디지털 기기 보급 사업의 경우 관리부터 운용까지 모두 학교에서 해결해야 한다.
특히 학교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이유로 학교 자체에서 책임져야 할 일들도 벌어지고 있다. 기초학력은 어떤가. 수업에 전념할 환경이 부족한데도 학생들의 학력 저하만 부각된다.
새로 추진 중인 늘봄학교와 학교 혼란의 맥락이 크게 다르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늘봄학교 기간제 교사 모집부터 수업 공간까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더미다.
학생 밀집 지역인 수도권은 교실 한 칸을 넷으로 나눠 교장실, 행정실 등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돌봄 업무를 결국 본인들이 맡게 될 것이라는 교사들의 우려를 해결할 방안도 보이지 않는다.
중장기적으로 추진되는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통합하는 유보통합 시대에는 또 다른 형태의 혼란이 학교를 덮치지 않을지 걱정부터 앞선다. 단순히 학교에서 하면 되겠지라는 생각을 버리고 인력수급 등 체계적인 설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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