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이강인 묵은 갈등 폭발... 이강인은 "죄송" 뒤늦게 사과
클린스만 다툼 보고도 무시... 능력 부족에 선수 관리까지 도마
외신 '탁구 내분' 보도에 축협은 입장발표 없이 "그런 일 있었다"
[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64년 만의 아시안컵 우승은 신기루였음이 드러났다. 꾸역꾸역 4강까지 오른 클린스만호가 요르단전에서 '유호슈팅 0개'라는 굴욕적인 패배뒤 총제적 문제점이 쏟아졌다.
결전 앞둔 태극전사 불협화음
요르단전 전날 저녁 식사자리에서 사건이 벌어졌다. 고참들이 늦은 저녁을 먹는데 이강인 등 젊은 선수들이 시끌벅적하게 탁구를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 주장인 손흥민이 제지하는 과정에서 언쟁이 벌어졌고 격분한 손흥민이 이강인의 멱살을 잡았다. 이강인은 주먹질로 맞대응했고 이는 손흥민이 피했다. 다른 선수들이 둘을 떼놓는 과정에서 손흥민의 손가락이 탈구됐다. 이는 영국 대중지 더선이 14일 한국 대표팀 내 심각한 불협화음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보도를 하면서 알려졌다.
[알 라얀 로이터 =뉴스핌] 박상욱 기자 = 오른 손가락에 테이핑한 손흥민이 지난 7일 아시안컵 요르단과 4강전에서 주심의 손을 잡고 일어서고 있다. 2024.2.7 psoq1337@newspim.com |
손흥민은 요르단전 직후 "너무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고 소속팀 토트넘으로 돌아간 뒤 SNS를 통해 "주장으로서 부족했고 팀을 잘 이끌지 못했던 것 같다"고 밝혔다. 영국 매체 이브닝스탠다드와의 인터뷰에서는 "아시안컵 얘기는 다시 꺼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이강인도 14일 SNS를 통해 "아시안컵 4강전을 앞두고 손흥민 형과 언쟁을 벌였다는 기사가 보도됐다"며 "언제나 저희 대표팀을 응원해주시는 축구 팬들께 큰 실망을 끼쳐드렸다. 정말 죄송하다"고 밝혔다. 이어 "제가 앞장서서 형들의 말을 잘 따랐어야 했는데, 축구 팬들에게 좋지 못한 모습을 보여드리게 돼 죄송스러울 뿐"이라며 "저에게 실망하셨을 많은 분께 사과드린다"고 썼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형들을 도와서 보다 더 좋은 선수, 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대표팀 내 세대간, 유럽-국내파간 갈등은 종종 불거졌다. 이강인·설영우·정우영·오현규·김지수 등 어린 선수들끼리, 손흥민·김진수(전북)·김영권(울산)·이재성(마인츠) 등 고참급 선수들끼리 공을 주고받았으며 훈련한다. 오랜 시간 해외파-국내파 사이도 좋지 않았다. 아시안컵 토너먼트 경기를 앞둔 훈련에서 한 해외파 공격수가 자신에게 강하게 몸싸움을 걸어오는 국내파 수비수에게 화풀이하는 장면이 취재진에 포착됐다. 지난해 11월 중국과의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원정 경기를 마친 뒤 손흥민, 김민재, 황희찬, 이강인 등 유럽파 선수들이 한국에 일찍 돌아가기 위해 사비로 전세기를 임대해 귀국했다. 팀워크와 '원팀'을 중요시하는 축구에서는 피해야 할 개별행동으로 국내파 선수에겐 상대적 박탈감을 줬다. 축구협회가 허락해서 벌인 일이라지만 한 축구 전문가는 "이런 부분은 지도자들이 정리를 좀 해줘야 한다. 그런 일을 마음대로 하게 하면 안 된다"고 꼬집었다.
이강인. [사진 = KFA] |
클린스만 감독 전술 무능과 무관심
클린스만 감독은 '저녁식사 사태' 장면을 지켜봤다. 선수들이 화해하면서 당시엔 사건이 일단락됐다. 고참급 선수들은 클린스만 감독을 찾아가 요르단전에 이강인을 제외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클린스만 감독은 조별리그에서 3골을 터뜨렸던 이강인을 주전으로 기용했다. 이강인은 부임 초반 극심한 부진에 시달리던 클린스만호가 지난해 하반기 5연승 반전을 이루는 데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 '황태자'였다. 이미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강인과 손흥민 등 고참 선수들 사이에 갈등의 골이 깊어지던 터에 '탁구 사건'으로 감정이 폭발한 것으로 보인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 [사진 = KFA] |
소통 잘하는 매니저형 사령탑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클린스만 감독은 '탁구 사태'를 정리하지도 못하고 다시 '원팀'으로 뭉치는 데 무심했다. 근무 태만과 전술 능력 부족에 더해 선수단 관리도 낙제점인 것이다. 축구협회는 15일 전력강화위원회 회의를 열어 클린스만 감독 경질 여부를 결정한다. 정몽규 회장 등 축구협회 집행부는 전력강화위원회의 평가를 참고해 클린스만 감독의 거취를 최종적으로 결정한다. 아시안컵에서 귀국한 지 이틀 만인 지난 10일 자택이 있는 미국으로 출국한 클린스만 감독은 이 회의에 화상으로 참여한다.
'탁구 사태' 입장발표 없는 축구협회
영국 매체의 '한국팀 불화' 보도가 나오자 축구협회는 이례적으로 일찍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입장은 밝히지 않았다. "대회 기간에 선수들이 다툼을 벌였다는 보고를 받았다"라며 "일부 어린 선수들이 탁구를 치러 가려는 과정에서 손흥민과 마찰이 있었고 이 과정에서 손흥민이 손가락을 다쳤다"고 설명했다. 아무리 외신에 의해 들통난 선수간의 불미스러운 사태이지만 협회 입장에서 축구팬들에 사과 한마디가 없다.
클린스만 감독 경질을 논하는 과정에서 축구협회의 무책임한 행정지원에 대한 충격적인 발언도 나왔다. 13일 YTN '더뉴스'에 나온 한 스포츠 평론가는 이번 한국 남자축구 대표팀의 국내 아시안컵 준비 훈련이 파주 국가대표 트레이닝 센터가 아닌 호텔에서 이뤄졌다고 밝혔다. 잔디밭이 아닌 호텔에서 실내 훈련만 했다는 것이다. 평론가는 "올해 1월 파주시와 계약기간이 만료된다. 연간 사용료로 파주시에 축구협회가 26억원 정도를 지급해야 한다. 그 액수를 두고 이견이 있었는데 합의가 되지 않았다. 결국 NFC 파주대표팀트레이닝센터를 이용할 수 없어서 지난해부터 호텔을 이용하게 됐다"라고 털어놨다.
무능한 감독에 무책임한 축구협회까지 한국대표팀이 아시안컵 4강에 오른 게 대견할 정도다. 축구협회는 클린스만 감독 경질로 가닥을 잡을 것으로 알려졌다. 새 감독 체제가 들어선다고 해도 대표팀은 선수들 간 갈등의 불씨가 그대로 남아있는 상태로 3월 A매치 기간을 맞는다. 동남아 맹주 태국을 상대로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3, 4차전을 소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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