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인 제도 "철지난 낡은 규제" 비판 목소리
규정 손 봤으나 역차별·형평성 논란은 계속
도입 취지 무색...글로벌 기준에 맞게 개정해야
[서울=뉴스핌] 서영욱 기자 = 정부가 매년 5월이면 선정하는 대기업집단 규제는 어느덧 철지난 낡은 규제라는 인상을 주고 있다. 지난 1986년 도입돼 38년이 지난 이 제도는 전문경영인 체제가 안착하고 친족 경영이 줄고 있는 지금의 기업 문화와는 동 떨어진 제도다. 전향적인 규제 해소도 아닌 역차별과 형평성 논란 등이 꾸준히 반복되면서 제도 존재 자체에 대한 불만도 커지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기업의 총수를 '동일인'으로 지정하고 규제의 틀 안에 두고 있다. 동일인으로 지정되면 기업집단과 관련한 각종 신고와 자료 제출 의무를 지고 사익편취 규제도 적용받는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총수가 짊어져야 하는 책임과 의무도 커졌다.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에만 있는 제도다.
서영욱 산업부 차장 |
재계에선 기업집단을 사실상 지배하는 '동일인'으로부터 시작해 범위를 획일적으로 정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현행 대규모기업집단 규제는 과거 창업주 개인이 순환출자형 또는 피라미드형 기업집단 형태로 운영하며 경영권을 승계했던 폐해를 억제하기 위해 설계된 것이다. 이 때문에 ESG 공시 도입 등으로 기업의 자율적인 지배구조 개선이 강조되는 최근 경향과는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이를 위해 동일인으로 지정하는 제도는 폐지하고 '핵심기업'을 중심으로 기업집단을 지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공정위는 최근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규정을 최근 손봤는데 그간 대기업집단 규제가 불러온 역차별, 형평성 논란을 해소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동일인 판단 기준을 명문화 한 독점거래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그런데 기존처럼 '실질적인 지배력'을 동일인 판단 기준을 삼으면서도 쿠팡과 같은 특정 기업에게만 해당하는 예외조항을 만들면서 규제의 허술함을 스스로 드러냈다.
공정위는 개정안 예외조항으로 ▲기업집단의 범위가 동일하고 ▲자연인이 국내 계열회사에 출자하지 않으며 ▲자연인 친족이 국내 계열회사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계열사 간 채무 보증이나 자금 대차가 없는 경우 법인을 동일인으로 정할 수 있도록 했다.
김범석 쿠팡 의장은 쿠팡의 지주회사 격인 미국 법인 쿠팡 Inc.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쿠팡 Inc.가 쿠팡 국내 법인 등 계열회사의 지분 100%를 보유하는 구조다. 그러다 보니 김 의장이나 그 친족의 국내 쿠팡 법인 지분은 없고 계열사 채무 보증이나 자금 대차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쿠팡만 예외조항에 해당돼 김 의장의 동일인 지정을 피할 수 있게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정위 스스로 이 제도에 대한 모순점을 지적한 사례도 있다. 지난 2021년 김재신 당시 공정위 부위원장은 "페이스북코리아의 자산총액이 5조원을 넘었다고 마크 저커버그를 동일인으로 지정할 수 있겠냐"고 되물었다. 이 이야기는 지금도 유효하다. 쿠팡의 대항마가 된 알리익스프레스는 향후 3년간 1조5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국내에 물류센터를 짓고 자산 규모가 5조원을 넘어서면 알리바바그룹의 마윈을 동일인으로 지정하고 규제의 틀 안에 놓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돈을 벌어가는 외국기업에 대해서는 손을 쓰지 못하면서 정작 국내 기업들만 옭아매는 대기업집단 제도는 결국 시대에 맞지 않는 낡은 규제일 뿐이다. 38년 전과 달리 대부분 기업들이 글로벌 무대를 누비고 있고, 일감 몰아주기 등 계열사 간 지원 등은 투명해진 감시 체계와 관련 법 강화로 이중, 삼중으로 규제할 필요가 없어졌다. 글로벌 경쟁이 격화되고 있는 지금의 경영환경을 고려할 때 글로벌 기준에 맞는 제도 개선이 절실한 상태다.
syu@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