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조준경 기자 = 지난 2월부터 의과대학 입학정원 증원 정책으로 시작된 의정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의료계는 정부를 향해 모든 사안을 원점 재검토할 것을 요구해왔지만, 정부 역시 양보하지 않으며 2025년도 의대정원 증원을 당초 2000명보다 줄어든 1509명으로 사실상 확정 지은 모양새다.
의료계는 정부 정책이 발표되자 강하게 반발하며 집단 행동을 개시했다. 전국 수련병원 전공의 거의 대부분인 1만 1900여 명이 2월 하순부터 단체로 의료 현장을 떠났다. 다섯 달여가 지난 지금, 이 싸움, 그래서 누가 이기고 있나?
조준경 기자 |
전공의들은 그동안 의료계의 강력한 대정부 협상 카드로 사용돼 왔다. 과거 의사 직역 전체가 휴진으로 맞섰던 2000년 의약분업 사태부터 2020년 공공의대 설립에 반발해 들고 일어난 전공의 집단 휴진, 그리고 올해 단체 사직 등 전공의들은 의료계의 입장을 관철시키기 위한 전위대였다.
현재의 수련병원 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의 중진들도 2000년 의약분업 사태 당시 전공의들이었다. 이들은 단체 투쟁을 통해 얻어낸 승리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이들의 영향력이 큰 것은 우리나라 대학병원의 의료체계를 저임금과 고강도의 노동으로 지탱해왔기 때문이다. 헌신은 자본주의 논리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료인에게는 사회적 명예가 뒤따랐다. 하지만 급격한 의대 정원 증원 정책이 이들의 역린을 건드렸고, 결국 의사 가운을 집어 던지게 만들었다.
고생을 버티면 보상이 기다린다는 약속이 사라지면 화가 날 만하다. 그러나 이번 의정갈등은 통상 파국으로 진입하기 전 정부가 양보했던 과거와는 다르게 진행되고 있다.
의정 양방은 상대의 굴종적 항복만을 요구하며 충돌했다. 그 충격 손상은 국민 모두가 누려온 세계적 수준의 의료 인프라 훼손이고 이는 현재 진행형이다. 또 의료인이 받아온 사회적 명예도 타격을 입었다. 의료계 인사가 말했던 것처럼 싸우더라도 의료 현장을 벗어난 것은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현재 메가폰을 쥐고 있는 의료계 대표 단체들이 사직한 전공의들에 대한 통솔력을 쥐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사직한 이들은 각자 살 길을 찾아 떠났다. 의대 증원이 결정됐다면 기민하게 대처하는 것이 개인 입장에서는 옳은 전략이다.
대부분은 피부미용 시장에 뛰어들 것으로 관측되지만, 기존의 시장이 자신들의 파이를 수천여명의 신규 인력에게 순순히 나눠줄지는 지켜봐야 한다. 한동안 시일이 걸릴 것이다.
더러는 외국으로 의사를 하러 나가겠다고 하고, 더러는 포도 농부 등 다른 직업을 갖겠다고도 포부를 밝혔다. 외국에 10년 가까이 살았던 입장에서 말하자면 타향살이가 쉽지는 않을 것이라 조언한다. 농사는 안 지어봐서 모르겠다.
정부는 미복귀 전공의들의 공백을 메꾸기 위한 방편으로 진료보조인력(PA) 합법화를 고려 중이다. 보건복지부는 최근 간호사들의 업무범위를 재조정하는 '간호법 제정'과 관련해 국회 보건복지위에 구체적 방안을 제시했다.
간호법 제정은 지난해 의료계의 강한 반발이 나오자 대통령 거부권 행사로 좌절됐다. 한쪽이 파국을 피하지 않았다면 다른 한쪽도 더 이상 배려할 필요가 없다.
지난 21일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설문 조사한 결과 국민 62%가 의대 정원을 증원한 것을 긍정한다고 답했다. 정부로서는 아슬아슬하게 정책 추진력을 확보했다.
그러나 알 길이 없는 증원 규모 2000명의 과학적 근거와 향후 일어날 의대 부실교육 문제는 지속적으로 평가를 받을 것이다. 대학병원들이 전공의 공백으로 인해 파산한다면 빠르면 올해 말이라도 여론은 뒤집힐지 모른다.
의료계 일각에선 범의료계 의결기구가 해체되고 전공의 중심의 새로운 대정부 대화기구가 설립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 싸움, 아직 안 끝났다면 진짜 누가 이기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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