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시총 상위 7위 내 바이오 종목 2개 진입 눈길
구매력 높은 2차 베이비부머 세대 "헬스케어" 관심
삼성이 '신약개발' 말고 '위탁개발생산' 시작한 이유?
상장 당시 인기 없던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질주
[서울=뉴스핌] 한태봉 전문기자 = '삼성'이라는 브랜드의 존재감은 강력하다. 그럼에도 '삼성' 브랜드를 가진 모든 회사가 다 1등을 하는 건 아니다. 그런 측면에서 상장된 지 불과 8년밖에 안 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성장은 눈에 띈다. 이는 삼성의 뛰어난 전략과 제약∙바이오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이 맞물린 대성공 사례다.
특정 국가의 시가총액 순위를 살펴보면 그 나라의 주력 산업을 파악할 수 있다. 한국 증시에서 시가총액 부동의 1위는 삼성전자다. 시총은 무려 453조원이다. 2위는 SK하이닉스로 시총 120조원을 기록했다. 한국 증시의 원투펀치가 모두 반도체 분야라는 점이 특징적이다.
3위는 LG에너지솔루션으로 시총은 88조원이다. 2차전지 분야도 한국의 주요 산업 중 하나임을 알 수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22년초에 공모가 30만원에 상장된 후 한 때 주가가 63만원까지 폭등하며 SK하이닉스를 제치고 시총 2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둔화) 영향으로 업황이 부진해지면서 다시 시총 3위로 내려앉았다. 그런데 LG에너지솔루션은 기존 상장회사였던 LG화학의 배터리부문을 물적 분할한 회사다. 따라서 엄밀히 말하자면 신규 회사는 아니다.
4위는 삼성바이오로직스로 시총은 69조원이다. 한국의 대표 자동차 회사인 현대차보다도 순위가 높은 게 눈에 띈다. 6위인 셀트리온도 바이오시밀러 회사다. 한국 시총 상위 7개 종목 중에 바이오 회사가 무려 2개나 진입해 있다. 한국의 주력산업이 바이오 쪽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 고령화 맞물려 베이비부머 의약품 소비 폭증
한국의 건강보험 총 진료비는 2023년에 드디어 100조원을 돌파해 107조원을 기록했다. 여기서 주목할 건 '의약품비'다. 2023년의 총 의약품비 청구금액은 25조6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무려 12% 급증했다. 이렇게 증가율이 가파른 이유가 뭘까?
한국의 1차 베이비부머 세대(1955년~1963년생)는 이미 대부분 은퇴했다. 이들을 포함한 한국의 만65세 이상 노인 인구수는 2024년 7월에 드디어 1000만명을 돌파했다. 여기서 주목되는 건 만 65세 이상 노인의 '의약품비'다. 2023년 노인 의약품 청구금액은 11조8000억원으로 전체 의약품 청구액의 45.7%를 차지했다.
나이가 많아질수록 의료비가 급증하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따라서 노인 의약품비 지출의 폭발적인 증가추세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저출산 고령화로 대표되는 한국의 인구구조 상 앞으로도 노인들의 의약품비 증가세는 급증할 수 밖에 없다.
미국 역시 고령화가 심각하다. 미국의 '메디케어(Medicare)'는 65세 이상 미국 국민과 일부 장애인을 위한 연방정부의 건강 보험 프로그램이다. 2022년 기준 가입자수는 무려 6200만명이다. 전체 인구 중 20%가 '메디케어'에 가입한 셈이다.
아이큐비아(IQVIA)는 전 세계 의약품 시장 규모를 2027년 기준 2500조원(1조9000억달러)으로 전망했다. 전 세계적인 고령화 현상으로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제약∙바이오 시장은 더 확대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 구매력 높은 2차 베이비부머 세대 "헬스케어" 관심
한국의 1차 베이비부머 세대(1955년~1963년생)에게는 만성 질환, 관절염, 심장병, 뇌졸중, 당뇨병, 고혈압 등의 건강 문제가 발생할 확률이 높다. 이에 따라 정기적인 의료 검사와 약물 치료 필요성이 증가한다. 이 세대는 수명에 영향을 미치는 필수 의약품 소비에 돈을 쓰고 있다.
하지만 2차 베이비부머 세대(1964년~1974년생)는 다르다. 무려 950만명이나 되는 이들은 가장 부유한 세대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부유한 만큼 건강과 웰빙에 대한 관심도가 높다. 이전 세대보다 더 건강하게 오래 살기를 원한다. 본인의 수명을 늘릴 수 있다면 얼마든지 돈을 쓸 준비가 돼 있다.
따라서 2차 베이비붐 세대가 본격적으로 늙어가는 10년 뒤부터 제약∙바이오 트렌드가 바뀔 확률이 높다. 의료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새로운 치료법과 좋은 신약이 이미 대거 등장했다. 수명과 관련 있는 필수 의약품 외에도 건강 유지를 위한 예방 의료 지출이 커질 전망이다.
이미 의약품 시장은 변해 가고 있다. 기적의 비만치료제로 불리는 노보노디스크의 '위고비'나 일라이릴리의 '젭바운드' 의약품 가격은 연간 2000만원 수준이다. 이런 고가에도 비만치료제는 불티나게 팔린다. 두 회사의 비만치료제 모두 2024년 2분기에 사상 최고 매출액을 경신했다.
'비만' 치료는 수명과 직접적으로는 관련이 없다. 예방적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구매력 있는 '베이비부머'들은 예방적 치료나 미용에도 돈을 아끼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일반 사보험 사의 의약품 보장 범위 확대로 비싼 의약품에 대한 접근성이 좋아진 것도 헬스케어 산업에는 호재다.
◆ 삼성이 '신약개발' 말고 '위탁개발생산' 시작한 이유?
삼성그룹은 오래 전부터 미래 신성장 동력으로 바이오산업을 점 찍었다. 이에 따라 2011년 4월에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신규 설립했다. 그런데 왜 삼성은 신약개발이 아니라 CDMO(Contract Development and Manufacturing Organization, 위탁개발생산)부터 시작했을까?
제약∙바이오 시장의 꽃은 신약개발이다. 새로운 블록버스터(1조원 이상 매출) 신약을 개발해 전 세계로 판매하는 건 모든 제약회사의 꿈이자 사명이다. 신약개발이 성공할 경우 그 과실은 달콤하다. '머크'사의 면역항암제 '키트루다'는 2023년에만 33조원(250억달러)의 매출액으로 압도적인 1위를 기록했다.
전 세계 의약품 매출액 2위인 '애브비'사의 '휴미라'는19조원(144억달러)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휴미라는 자가면역질환의 일종인 류머티스 관절염, 건선, 크론병 등의 치료제로 쓰인다.
이렇게 단일 의약품 1개만으로 수십 조원의 매출이 발생할 수 있다. 신약개발이 매력적인 이유다. 또 높은 매출액에 걸맞게 글로벌 대형 제약사들의 시가총액도 어마어마하다.
8월 26일 종가 기준 글로벌 제약회사 시가총액 1위는 '일라이릴리'로 1202조원(9034억달러), 2위는 '노보노디스크'로 618조원(3조900억덴마크크로네), 3위는 '존슨앤드존슨'으로 527조원(3963억달러), 4위는 '애브비'로 464조원(3487억달러), 5위는 '머크(MSD)'로 392조원(2947억달러)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는 승자들의 잔치일 뿐이다. 문제는 신약개발은 실패확률이 매우 높다는 사실이다. 전통적인 신약개발 과정은 후보 물질 발굴, 스크리닝(거르기), 물질 최적화, 독성실험, 임상 1~3상, 허가 및 출시 등의 절차를 따른다.
따라서 후보 물질 발굴부터 독성실험까지 최소 4년 이상, 임상부터 허가까지는 최소 6년 이상 소요되는 경우가 흔하다. 아무리 빨라도 10년은 걸린다는 뜻이다. 비용도 최소 1조~3조원이 소요된다.
최초 후보물질 탐색부터 도출까지만 해도 1만분의 1에 불과한 낮은 확률이다. 간신히 후보물질을 찾아내 임상 1상을 시작해도 성공확률은 낮다. 미국 바이오협회에서 분석한 임상시험 현황 데이터에 따르면 1상부터 승인까지의 성공률도 7.9%(2012년~2020년)에 불과하다.
반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주력인 CDMO(위탁개발생산)는 주요 제약사로부터 의약품 개발, 생산 및 품질 관리 등을 위탁 받아 수행하는 안정적인 사업이다. 이미 과거부터 수 많은 반도체 공장을 정밀하게 만들어 운용해 온 삼성에게는 익숙하면서도 유리한 분야다.
또 CDMO(위탁개발생산)는 신약 개발처럼 실패할 가능성도 없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않는다. 바로바로 매출과 수익이 인식된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사업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전 세계 주요 제약사들과 파트너십을 통해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해 내고 있다.
신약개발 대신 안정적인 CDMO(위탁개발생산) 사업을 선택한 삼성의 전략은 영리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증시 상장 7년9개월만에 시가총액 69조원을 달성하며 당당히 1위를 달리고 있다. 전통의 제약사인 유한양행 시총이 8조원, 한미약품 시총이 4조원에 불과한 것과 비교하면 성공적인 결과다.
하지만 신약 대신 CDMO(위탁개발생산) 사업을 택한 게 반드시 옳은 전략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SK그룹의 바이오 회사나 전통의 제약사인 유한양행을 제치고 시가총액 3위를 기록한 '알테오젠' 같은 성공사례도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최근 주가가 무섭게 상승한 바이오플랫폼 기업 '알테오젠'은 히알루로니다제를 사용해 정맥주사제형 치료제를 피하주사제형으로 바꾸는 Hybrozyme™(하이브로자임) 기술 개발에 성공해 대박을 쳤다. 이를 통해 환자들의 병원 방문 횟수를 줄이고 편의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특히 하이브로자임 플랫폼 기술을 통해 개발한 물질 'ALT-B4'는 올 초에 세계판매 1위 항암제인 '키투루다'에 적용하는 기술수출 계약을 머크(MSD)사와 체결해 시장을 놀라게 했다.
추가로 2곳의 글로벌 제약사와도 계약해 올해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하지만 신약개발은 실패확률도 크다는 점에서 소수의 성공사례만으로 선뜻 도전하기는 어려운 분야라 할 수 있다.
◆ 상장 당시 인기 없던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질주
제약 바이오 사업 경험이 부족했던 삼성바이오로직스가 2016년 11월에 증시에 신규상장을 진행하자 투자자들은 반신반의 했다. 공모가가 너무 비싸 매력이 없다는 회의적인 시각도 많았다. 그 당시 일반 투자자 대상 공모 경쟁률은 45 대 1에 불과했다. 요즘 같이 수백 대 1이 기본인 상황과 비교하면 격차가 크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공모가는 13만6000원으로 결정됐고 상장 당일 종가는 14만4000원이었다. 결과적으로 투자자 누구나 마음만 먹었다면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상장 당일에 공모가 수준에서 마음껏 수량 제한 없이 매수할 수 있었다.
이렇게 인기 없던 주식이지만 대 반전이 일어났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2024년 8월에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주가는 100만원을 터치했다. 공모가 대비 수익률은 무려 635%다. 하지만 이 달콤한 수익률은 엄청난 고통을 견뎌낸 대가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18년 11월에 분식회계 의혹으로 상장폐지 실질심사에 들어가면서 무려 18거래일 동안 거래가 정지되기도 했다. 그 밖에도 회사와 공장 압수수색, 계속되는 경영권 승계 관련 조사와 재판 등으로 투자자들은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
이런 과정으로 볼 때 삼성바이오로직스 공모주를 상장 후 8년간 지속적으로 보유한 투자자라면 7배의 높은 수익률을 보상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그런데 2021년 8월에 100만원 넘는 고점에 매수한 투자자라면 3년간의 마음고생 끝에 이제서야 겨우 본전에 근접한 상황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주가는 최근 각종 호재를 발판으로 다시 전 고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미래 전망을 궁금해하는 투자자들이 많아지는 이유다.
삼바 ②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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