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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YD 폴리티션 스토리] (상) 자선 사업가 꿈 꿨던 조경태, 정치 뛰어든 계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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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신정인 기자 = 국민의힘 6선 조경태 의원이 정치인의 인생 여정을 돌아보는 뉴스핌 '폴리티션 스토리'에 출연해 정치 입문 스토리를 공개했다.

조 의원은 13일 오후 '뉴스핌 TV'를 통해 공개된 폴리티션 스토리에서 학창시절 꿈부터 정치에 입문하게 된 계기까지 모두 털어놓았다.

조 의원은 1968년 경상남도 고성군에서 태어났다. 사하중과 경남고를 나와 부산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했다. 동 대학원에서 토목공학과 석·박사 과정을 마쳤다.

대학생 때인 1988년 총선 당시 노무현 부산 동구 통일민주당 후보 선거사무소에서 자원 봉사를 하며 정치에 입문했다.

이후 17대 총선에서 36살에 첫 금배지를 달고 22대 총선까지 부산 사하을 지역에서만 내리 6선을 하고 있다.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 [사진=뉴스핌DB]

다음은 조 의원과의 폴리티션 스토리 인터뷰 전문이다.

-(신정인 기자. 이하 신)의원님 근황 먼저 여쭤볼게요. 좀 요즘 굉장히 바쁘신 걸로 아는데 어떻게 지내셨는지.

▲(조경태 의원. 이하 조)최근에 당에서 격차 해소위원회를 좀 맡아달라 해서 격차 해소위원장으로서 열심히 하고 있고요. 우리 사회가 특히 자본주의가 발달될수록 격차가 많이 벌어지고 또 새로운 영역에서의 격차들이 생기지 않습니까? 그런 부분에 대해서 사회적 갈등을 해소시키고 나아가서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이런 위원회가 만들어진 것 같거든요. 그래서 제가 좀 열심히 해서 우리 국민들 모두가 다 행복해질 수 있는 그런 사회를 만드는 데 조금이나마 이바지하고 싶습니다.

-(신)바쁘신데 혹시 여름 휴가는 다녀오셨는지

▲(조)휴가를 가려고 마음을 상당히 많이 먹었다가도 휴가철 되면 또 지역의 현안들도 많고 국민들을 위한 정책이라든지 이런 부분에서 좀 살펴야 할 게 좀 많이 있고 아직도 제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많이 해가지고 제가 국회의원을 하는 동안만큼은 휴가를 가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한 10년 이상 아마 휴가를 안 간 것 같습니다.

-(신)10년째 휴가를 안 가신 거예요?

-(최연혁 교수. 이하 최)국민들은 휴가 떠난다고 그러면 부산으로 많이 가거든요. 부산에 계신 자체가 휴가 기간이 아닌가 또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조)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정치라는 영역이 국민들 마음을 조금 더 편안하게 해줘야 하는데 제가 휴가를 가지 못하는 점부터 보면 좀 정치가 많이 국민들 마음에 쏙 들지는 않은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신)의원님 제가 찾아보기로는 경남 고성군에서 태어나셔서 이제 부산에서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모두 졸업을 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학창시절에 의원님 좀 어떤 분이셨는지 궁금합니다.

▲(조)저희 때는 이제 초등학교라고 표현을 안 하고 국민학교라고 표현했거든요. 국민학교 전부터 영유아 시절 쭉 부산 사하구, 그때는 서구였는데 신평동이라고 있어요. 신평동에서 제가 유년 시절을 보냈고 거기가 이제 부산에서도 좀 변두리다 보니까 상당히 좀 시골스러운 그런 전경들이 많이 있었거죠. 논도 있고 밭도 있었고 거기서 친구들과 또 동료들과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그게 상당히 정서적으로 좋았던 것 같습니다. 가난했던 그 유년 시절이 오히려 지금 저에게 이렇게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지 않았나 이렇게 봅니다.

-(신)혹시 의원님 어린 시절에도 꿈이 약간 정치 쪽으로 있으셨는지.

▲(조)나이가 들었을 때 이제 결혼 정년기에 접어들었을 때는 제 꿈이 이제 자선 사업가였거든요. 그래서 이제 저의 아내한테 자선 사업가가 제 꿈이다라고 이야기하니까 아내가 되게 표정이 안 좋더라고요. 남한테 봉사하면서 살아간다는 게 그게 좀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제가 아마 중학교 때쯤 제 동료한테 제가 제 꿈을 이야기를 했대요. 저는 기억이 안 나는데 그때 제가 정치인이 꿈이었다고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근데 저는 정말 기억이 안 나거든요. 이십여 년 전에 당선됐을 때 이 친구가 저한테 이제 메일을 보내왔는데 '우리 경태의 꿈이 이루어졌다'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때 이제 제가 '중학교 때 청소년 시기의 꿈이 정치인이었구나' 제 친구를 통해서 알게 됐거든요. 간접적으로 정치에 대한 관심은 어릴 때부터 좀 있었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신)어렸을 때부터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되신 계기가 따로 있으셨을까

▲(조)저는 약간 이상적인 생각인지 모르겠는데 정치라는 영역을 통해서 가난하고 힘 없고 어려운 사람을 보듬어주고 도와줘야 된다 이런 직업군이 저는 정치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지금 보니까 그거는 아니더라고요. 자기들의 이익, 계파의 이익, 어찌 보면 기득권의 못된 어떤 세력들의 어떤 권력 다툼 권력화 이게 세계사적으로 다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가 어릴 때 생각했던 정치에 대한 어떤 교육 또는 정치에 대한 영역이 성인이 됐을 때의 정치에 대한 영역하고는 완전히 반대인 것 같아요.

-(최)제가 경력을 쭉 봤더니 토목공학을 전공을 하셨습니다. 토목공학을 전공하고 정치에 뛰어든다라는 것이 어떻게 보면 좀 상식과는 조금 멀어지는데, 어떻게 보면 또 다른 세계에서 시작을 하셨는데 그 계기를 듣고 싶습니다.

▲(조)제가 가지고 있었던 생각 중에 하나는 저는 문학 소년이었거든요. 약간 서정적인 부분에 가까운 사람 같았는데 이제 정부 정책에 의해서 이공계를 많이 지원하도록 그때 부추겼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제가 이과 쪽으로 이 가게 됐는데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가난한 유년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우리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은 생각이 좀 많았거든요. 그래서 이제 '공대에 나와가지고 건설 현장에 뛰어들면 빨리 돈을 벌 수 있겠다' 이 생각으로 그쪽 과를 선택했는데 하다 보니까 또 공부에 대한 욕심이 또 생기더라고요.
학사 과정을 마치고 석사를 마치니까 저희 학교에 선생님들께서 원서를 가져왔는데 포스코 관련된 회사의 연구원으로 신청 안 해보겠느냐 하시더라고요. 그때만 해도 대기업이고 또 연구소니까 좀 괜찮은 직장 같아 보였는데 그때 만약에 제가 포스코로 갔었으면 아마 정치인 조경태는 없었겠죠.
그래서 정치를 하게 된 계기는 앞서 제가 꿈을 이야기했을 때의 그 자선사업가의 영역과 정치의 영역이 좀 유사하다고 보거든요.
우리 정치가 조금만 더 어떤 정치 본연의 정신으로 돌아간다면 저는 국민들이 좀 안심하고 이쪽 정치인들을 바라보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합니다.

-(최)거기서 한 가지만 더 질문을 좀 드리고 싶은 것은 자선 사업가와 정치를 아까 지속적으로 말씀을 주셨는데 부모님의 역할입니까? 아니면 본인의 어떤 그런 소년 시절에 책을 읽거나 혹은 어떤 영향을 받아서 누구를 좀 도와줘야 되겠다, 또 약자를 위해 살아야 되겠다 그런 생각을 갖게 된 계기가 혹시 있었습니까?

▲(조)아무래도 저 같은 경우는 어릴 때 소망 중에 하나가 새 학기가 되면 새 학습지하고 새 전과가 그때 유행이었잖아요. 동아전과, 표준전과라고 있었습니다. 이게 유행했는데 보통의 집들은 새 학기니까 새 책을 주잖아요, 부모님이. 그런데 저희들 같은 경우는 가난하다 보니까 새 책을 못 주고 이제 헌책을 물려받을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데 그때 어린 마음에 보면 새로운 걸 갖고 싶어 했거든요. 남의 손때가 안 묻는 새책. 근데 그걸 한 번도 가진 적이 없거든요.
저희 부모님들께서 자식을 키우면서 그 과정들을 상당히 어렵게 하다 보니까 제 이웃 세대는 좀 더 건강하고 구김살이 없는 그런 삶을, 그런 학창 시절을 보냈으면 좋겠다 해서 아마 자선 사업가가 돼서 그 사람들을 좀 도와야겠다라고 정말 순진한 마음으로 한 것 같아요.

-(최) 정치를 입문하시게 돼서 첫 번째로 접했던 분이 정치인으로서는 어떤 분이셨습니까?

▲(조)정치에 입문한 게 제가 28살이었거든요. 정치에 들어와서 보니까 이제 알게 된 첫 인연이 돌아가신 노무현 전 대통령. 좀 제가 마음에 들었던가 봐요. 그때부터 대통령 된 이후까지 제가 지속적인 관계를 맺게 되죠. 그래서 제가 남들은 저보고 친노라고 하는데 저는 친노가 아닙니다. 노무현 대통령 입장에서는 제가 제 친조가 되겠죠.
나이적으로는 그리고 훨씬 그분이 더 여러 가지 많이 갖췄지만 제가 누구 누구가 좋아서 일방적으로 쫓아가는 그런 스타일은 아닌 것 같아요.
저는 제 나름대로의 독자 영역에서 열심히 했고 또 그분은 그분대로 독자 영역에서 열심히 하다 보니까 만난 거고 그분이 좀 도와달라고 해서 좀 도와드린 거고 뭐 이런 거거든요.

-(최)그분께 받은 어떤 정치적인 영향력이랄지 혹은 그분이 정치적 멘토로서 어떤 역할을 해주셨는지, 또 그것을 가지고 지금 어떻게 정치에서 풀어내고 계신지

▲(조)제가 96년도에 첫 정치에 들어와 왔습니다마는 그전에 참 인연이라는 게 묘하더라고요. 1988년도에 전국 선거가 있었거든요. 총선. 제가 그때 대학교 3학년인가 그랬거든요. 제 선배분이 한 분이 어느 날 저보고 부산 동구에 노무현 변호사라는 분이 있는데 한번 가서 들러보자, 그냥 단순히 들러보자는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분이 누군데요?' 그러니까 인권 변호사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선배가 한번 가자 하니까 한번 가봤어요. 가서 보니까 이제 선거가 한참 진행 중이더라고요.
저는 한 번 빠지면 또 좀 깊숙이 빠져들어가는 그런 성격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한 달 동안 제가 거기 가서 자원봉사를 했어요.

그때만 해도 선거가 굉장히 좀 험악해서 개표하는 날도 투표함이 뒤바뀔까 싶어서 그 투표함을 지켜야 된다는 그 마음을 가지고 끝까지 남아서 새벽 찬이슬 맞아가면서 꼬박 하루를 밤샘을 했답니다. 상상이 잘 안 되죠. 운동장에 앉아가지고 그때만 해도 숫자로 몇 명인지 기억이 안 납니다. 처음에는 숫자가 좀 많았다가 다 집에 가버리더라고. 그런데 저 같은 경우는 끝까지 남아서 동이 틀 때까지 계속 그 구호 외치고. 이겼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노무현 그분이 이제 저희들한테 와서 고맙다고 인사하고 갈 거 아닙니까?
인사할 때가 첫 만남이거든요. 96년도니까 8년 전에. 그런데 그 이후에 저는 정치할 생각은 꿈에도 안 하다가 8년 이후에 제가 출마를 한 거예요. 그 인연은 제가 나중에 이야기를 했어요. 대통령 되시고 나서.

저는 마음으로만 갖고 있다가 96년도에 제가 같은 당을 하게 됐거든요. 또 부산이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이제 저하고 자연스럽게 만나게 된 그런 계기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모임이 있었거든요. 일요회라고 한 열 서너명이 모이는 모임에 같은 멤버였습니다. 지금 민주당에 있는 사람들은 한 사람도 없어요. 문재인 전 대통령도 그 멤버는 아닙니다. 제가 오리지널이죠. 노무현 전 대통령하고 인연이 그렇게 된 거고요.

영향력이라고 하면 이분이 굉장히 좀 정직한 분이잖아요. 지금 뭐 민주당에 그런 정치인이 없잖아요. 자기들이 죄를 지었으면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되잖아요. 맞죠. 노무현 대통령은 그랬거든요. 노무현 대통령은 굉장히 양심적이었어요. 자기가 조금 부족하다 싶으면 그걸 인정할 줄 아는 용감한 사람이죠. 용기 있는 사람.

근데 지금 뭐 정치인들 보면 막 생까잖아요. 죄를 지어도 안 지은 것처럼. 노무현 대통령은 그렇게 안 했습니다. 저는 노무현 대통령의 묘에 가는 분들 있잖아요. 정말 그 사람들은 망자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해요. 자기들은 그런 정신은 1도 없으면서 가서 막 우는 척하고 인연도 없잖아요. 따져보면 인연도 없는데 왜 부모, 형제를 빼고 생판 모르는 사람한테 가서 울음이 나옵니까? 그건 가식과 위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영향을 그걸 받은 것 같아요. 겸손하되 당당해라.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 같은 경우에는 개혁에 대한 마인드도 있었지만 통합에 대한 마인드도 많았거든요. 이분은 보면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어떤 잘못에 대해서는 용서를 안 했어요. 굉장히 엄격했거든요. 그런데 타인에 대해서는 굉장히 관대했단 말이에요. 기억나실지 모르겠지만 참여정부 때 노무현 정부 때 보면 박근혜, 그 당시에 야당이었거든요.

대연정을 제안하지 않습니까? 그 내각까지 다 책임지게 되니까 우리 같이 하자 했거든. 그걸 대연정이라고 합니다. 선거가 끝났으니까 이젠 우리가 한마음이 돼 가지고 국가 발전을 위해서 크게 같이 이바지하자. 노무현의 대연정은 노무현의 대통합과 같은 의미입니다. 근데 지금 그렇게 실천하는 정치인이 누가 있습니까? 거기 가서 읊조리고 하는 사람들 중에서 상대당하고 잘 지내보자 하는 사람이 누가 있어요?

이 노무현이라는 사람은 너희들이 말할 만한, 너희들이 입에 오르내릴 수 있는 그런 분이 아니다. 굉장히 솔직하고 또 정직한 분이었고. 또 이분이 가지고 있는 저하고 일치되는 철학이 뭐냐 하면 '열심히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이 잘 사는 사회 대접받는 사회를 만들겠습니다' 이거에요. 이게 정직한 사회잖아요. 저는 이게 바로 자본주의의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본 정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잘 살아야지, 사기치는 사람이 잘 살면 안 되잖아요. 학생들의 입장에서도 그래요. 열심히 공부한 학생이 좋은 대학 들어가야 되는 거 아닙니까? 인정받아야 되죠. 아버지, 어머니 백으로 들어가면 가짜잖아요.

열심히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이 대접받고 잘 사는 사회, 이게 노무현 정신이고 조경태가 그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우리가 어떤 사람을 모시거나 어떤 사람에 대해서 정신을 기린다고 하면 그분이 했던 그 철학을 그대로 본받아야 되는 거 아닙니까? 반대의 길을 가면서 그분이 인기가 있으니까, 그분이 조금 더 존경받으니까 그 이름만 따가지고 빌린다? 우리 국민들께서, 지금 이 방송을 듣고 계시는 시청자 여러분께서는 꼭 그것을 명심하시고. 진짜 노무현 대통령의 이름을 올리려면 내 자신이나 내 주변에 있는 사람보다도 타인에 대해서 타 세력에 대해서 더 존중할 줄 알아야 된다는 것을 제가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신)찾아보니까 의원님께서 처음에는 민주당 전신 정당에서 활동을 쭉 해오시다가 이제 보수 정당으로 오셔서 활동을 하고 계시는데 혹시 그렇게 활동을 하시게 된 계기가 있으신지

▲(조) 그 시기가 이제 노무현 대통령 돌아가시고 나서 문재인 세력 일파가 당을 장악하게 되거든요. 그러면서 제가 했던 얘기가 '패권화시키지 마십시오'. 이 패권화가 굉장히 무서운 거잖아요. 패권 세력들은 자신들의 세력을 제외한 나머지 세력들은 다 무시해버리거든요.
능력을 보고 사람을 뽑는 게 아니고 차별을 시킨다는 말입니다. 자기들의 세력들만 막 보태기를 하고 그렇지 않은 세력들은 다 배척해버리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 친문 패권화를 갖다가 제가 없애라고 이야기를 주장하거든요.
우리 사회가 병들고 힘들어지는 어떤 시점들이 보면 조선시대도 그렇고 고려시대도 그렇고 패권화가 되면 일종의 독재화가 되는 거거든요. 그래서 이런 것을 배격해야 된다라고 주장했는데 제 이야기를 안 듣더라고요.

저 역시도 그 권력을 더 많이 크게 쥐고 있는 사람하고 타협해서 아부하고 하면 주류로 편성될 수 있겠지만, 특권 의식을 가지고 이 세력화하는 패권 세력들하고 야합하는 것은 저는 맞지 않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뭐 하다 하다 안 되니까 제가 이제 민주당을 떠날 시기가 왔구나. 왜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지 않습니까? 그러고 나서 이제 당시 새누리당으로 영입돼서. 제가 영입 1호거든요.

어차피 정치는 똑같아요. 지금 국민의힘이나 민주당이나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정치인의 정신이라는 것은 오로지 국민을 위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이 당이나 저 당이나 별로 차이가 없다 생각을 하거든요. 다만 아쉬운 것은 양 정당이 아직도 국민들이 원하는 정치에 좀 미흡하다. 이 당에서는 거의 뭐 50보 100보입니다.

아마 민주당 지지하는 사람들은 민주당 좋다라고 하지만 속살을 탁 들어가 보면 비슷한 그런 점수를 먹이면 거의 뭐 대동소이 한 50점 정도. 둘 다 그렇게 국민을 위하는 그런 마음에 있어서는 높은 점수를 줄 수가 없다. 그러면 민주당에 있지 왜 떠났냐고 했을 때 그 패권 세력들은 저는 보기 싫더라고요. 여기는 안 그렇거든요.

-(신)제가 보니까 또 되게 화제를 모았던 게 첫 출마인 15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에 공보 포스터의 상반신 탈의로 되게 많은 화제를 모으셨더라고요. 누구 아이디어였는지 궁금한데요.

▲(조)저희 아내가 이제 조금 상당히 좀 진보적 사고, 앞선 사고를 한 것 같아요. 저한테 그 제안을 하더라고요. 어찌 보면 신출내기 신인이 그 인지도가 약하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이제 선거 비용도 거의 없었거든요. 당시에는 선거 홍보물을 두 번을 보낼 수 있는데 한 번은 4면짜리를 보내고 하나는 또 8면짜리를 보낼 수 있도록 돼 있거든요. 그런데 저희들은 가난한 정치 지망생이다 보니까 8면짜리 홍보물은 보낼 돈이 없었어요. 딱 한 번 4면짜리를 보내는데 좀 충격을 좀 줘야겠다. 그래서 아마 아내가 그런 아이디어를 생각한 것 같아요.
감출 것 없는 어떤 깨끗한 정치를 하겠다 이런 것을 당시에 주제로 해서 그런 정신을 좀 살렸던 것 같아요.

-(최)효과는 많이 보셨습니까?

▲(조)당시에는 반반이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정치인들은 보통 지금처럼 까만 양복에 흰 와이셔츠의 넥타이 하는 정장 차림, 뭐 지금도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 96년도에 그런 모습을 보였다는 것은 유권자들한테는 가히 충격적이었고 전국적인 매스컴도 그때 탔던 걸로 기억나는데요.
새벽에 전화를 받았는데 한 40대, 50대 되신 분이신데 그 장면 보고 지지하겠다고 하셨습니다. 투표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가지던데요. 그런 효과도 있었던 것 같고요.
그리고 또 하나가 유세하러 쭉 다니면 초등학교 학생들, 중학교 학생들이 그리 저를 좋아하더라고요. 아마 초중학생들이 찍었으면 제가 그때 당선되지 않았는가 생각을 해요.
저한테는 아주 좋은 어떤 기억이고, 추억이고 그런 점에서 그 부분은 제가 굉장히 좀 효과가 있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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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버스킹 축제' 17일 오후 1시 한강공원서 개최 [서울=뉴스핌] 정태이 기자 = 선선한 가을바람이 부는 한강에서 청년 음악가들의 다채로운 공연과 시민 참여형 프로그램이 펼쳐진다. 감엔터테인먼트가 주최하고 서울특별시가 후원하는 '2026 한강 청년 버스킹 축제 : DAY OFF SEOUL'이 오는 17일 여의도한강공원 녹음수광장에서 열린다. 행사는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진행되며 모든 공연과 체험 프로그램은 무료로 운영된다. [사진=감엔터테인먼트] 올해 축제는 '한강 위에서 하루를 통째로 쉬어가는 청년 문화 축제'를 주제로 마련된다. 음악과 피크닉, 한강, 가을을 결합해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열린 문화 공간을 조성하고 시민 참여와 청년 예술가 발굴을 함께 꾀한다. 청년 예술가에게는 시민과 만나는 무대를, 시민에게는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문화와 휴식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는 취지다. 축제의 중심은 청년 음악가들의 버스킹 무대다. 싱어송라이터 오디션 '히든스테이지' 출신의 김은찬밴드,신직선,윤태경,윤준,채수빈,심각한 개구리, 채비(Che!vee), 혼즈(Hon'z) 등 10팀이 참여해 각기 다른 장르와 개성을 담은 음악을 선보인다. [서울=뉴스핌] 정태이 기자 = '히든스테이지' 대상 심각한 개구리(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최우수상 윤태경, 우수상 김은찬밴드. [사진=감엔터테인먼트] 2026.10.08 taeyi427@newspim.com 특히 지난 7일 열린 '히든스테이지' 결선에서 대상을 받은 심각한 개구리를 비롯해 최우수상 윤태경, 우수상 김은찬밴드 등 수상자들도 이번 축제를 통해 다시 관객들과 만난다. 경연 무대에서 실력을 겨룬 청년 음악가들이 이번에는 한강 야외 무대로 자리를 옮겨 시민들과 가까이에서 호흡할 예정이다. 청년 아티스트들의 공연에 더해 특별 초청 무대도 마련된다. 뉴올리언스 사운드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컨템포러리 재즈밴드 '김루꾸밴드'와 국악·비보이·아크로바틱 등을 결합한 퍼포먼스팀 '라스트릿크루', 비트박서 잭브라이언(Jackbryan)이 무대에 올라 축제의 볼거리를 더한다. 싱어송라이터들의 음악부터 재즈와 퍼포먼스, 비트박스까지 서로 다른 장르의 무대를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 [서울=뉴스핌] 정태이 기자 = 사진 위쪽부터 라스트릿크루, 김루꾸밴드, 비트박서 잭브라이언(Jackbryan). [사진=감엔터테인먼트] 2026.10.08 taeyi427@newspim.com 시민도 직접 무대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시민과 함께하는 버스킹' 참가 희망자는 축제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사전 신청할 수 있으며 개인 또는 팀 단위로 지원 가능하다. 신청자의 자기소개와 활동 경력, 희망 공연곡과 장르, 공연 영상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참가자를 선정한다. 선정된 참가자는 '시민과 함께하는 버스킹' 무대에 참여하게 된다. 청년 뮤지션의 공연과 함께 시민에게도 직접 무대에 참여할 기회를 제공한다. 무대 밖에서는 공연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이 이어진다. '서울의 향을 찾아서'에서는 서울을 대표하는 핫플레이스 이미지를 향으로 구현해 시향한 뒤 원하는 향료를 더해 자신만의 맞춤 향수를 만들 수 있다. 여러 향을 직접 맡아보고 취향에 맞게 조합해 결과물을 만드는 방식이다. '한강 포토 스테이션'에서는 축제 현장의 즐거운 순간을 간직할 수 있도록 즉석 사진 인화 부스 '한강로 사진관'을 운영한다. 현장에서 촬영한 사진을 인화해 축제의 순간을 기록할 수 있도록 마련했다. [서울=뉴스핌] 정태이 기자 = 한강 포토 스테이션 [사진=감엔터테인먼트] 2026.10.08 taeyi427@newspim.com 음악과 한강의 풍경, 청춘에게 전하고 싶은 문장을 엽서에 적어 남기는 참여형 아카이브 프로그램 '한강 사운드 엽서'도 준비된다. 공연 관람에 더해 향수 제작과 사진, 엽서 등 다양한 방식으로 축제를 즐길 수 있도록 구성했다. 주최 측은 "청년 음악가들이 시민과 가까이에서 소통하고, 시민들도 공연과 체험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축제를 준비하고 있다"며 "가을 한강에서 음악과 휴식을 함께 즐기는 특별한 하루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taeyi427@newspim.com 2026-10-13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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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EC 도시 선전 미리 가보니] ⑤ [베이징=뉴스핌] 최헌규 베이징 특파원= 뒷자리에 앉아 보니 앞쪽 운전석과 조수석은 텅 비어 있었다. 운전대가 혼자서 빙글빙글 돌면서 자동차는 이리저리 복잡한 도로를 잘도 질주한다. 교차로 신호대기 앞에서는 부드럽게 속도를 줄이고, 차선을 바꿔야 할 때는 미리 방향을 틀었다. 마치 유령이 움직이듯 운전대가 저절로 돌아가는 모습은 공상과학 영화를 떠올리게 했다. 지난 10월 9일 중국 광둥성 선전시 난산구 난유 거리에서 체험한 바이두의 자율주행 로보택시 '뤄보콰이파오(萝卜快跑)'. 선전 난산구에서는 로봇이 운전하는 자동차가 이미 일상적인 교통수단으로 복잡한 시내 도로를 종횡무진 누빈다. 운행 테스트가 아니라 완전 무인 자율주행 자동차가 혼자 시내를 다니며 택시 영업을 하는 모습은 선전에서 더이상 낯설지 않다. 차량 안의 인공지능(AI) 비서는 사람 운전기사보다 친절한 목소리로 안전한 여행을 돕고 탑승객과 날씨 같은 간단한 대화를 주고받는다. 안전벨트를 착용하라는 안내부터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 소지품을 챙기라는 당부까지, AI 비서는 승객을 챙기는 데 한 치의 소홀함도 없어 보인다. 스마트폰 호출부터… 인터넷 택시와 다를 바 없어 로보택시를 부르고 이용하는 방식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스마트폰에서 중국판 메신저 위챗을 열고 화면을 아래로 쓸어내리자 미니프로그램 형태로 뤄보콰이파오가 나타났다. 이를 클릭하자 일반 차량 호출 플랫폼과 다를 바 없는 화면이 열렸다. 목적지를 선전만 인근 인재공원 옆 식당가로 입력했다. 약 4㎞ 거리로, 예상 이동 시간은 10여 분이었다. [베이징=뉴스핌] 최헌규 베이징 특파원=중국 광둥성 선전시 난산구에서 운행중인 바이두 로보택시 뤄보콰이파오. 사진= 뉴스핌 통신사.  2026.10.15 chk@newspim.com 뤄보콰이파오 로보택시는 호출 후 약 3분 만에 도착했다. 일반 인터넷 차량 호출 서비스와 비교해도 대기 시간이 특별히 길지 않았다. 차량 뒷문 쪽에 부착된 버튼에 휴대전화 번호 뒷자리 네 개를 입력하자 뒷문이 열렸다. 차에 오른 뒤 AI 안내 방송에 따라 안전벨트를 매고 왼쪽 팔걸이에 설치된 작은 액정 화면을 터치하자 차량이 출발했다. 호출과 승차 확인, 출발 등 운행 전 과정에서 스마트폰과 차량 내 AI 비서의 안내에 따라 간단한 절차만 거치면 됐다. 1년여 전 베이징 이좡 뉴타운에서 뤄보콰이파오의 완전 무인 서비스를 이용했을 때와는 사뭇 달라진 모습이다. 당시에는 별도 앱을 설치한 뒤 하루 정도 인증 절차를 거쳐야 했다. 중국 현지 상황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 특히 여권으로 신원을 확인해야 하는 이용자에게는 진입 장벽이 높았다. 이제는 위챗의 미니프로그램을 통해 차량을 호출할 수 있어 절차가 훨씬 간편해졌다. 일반 차량 호출 서비스와 비교해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승하차 지점을 정확하게 지정해야 한다는 점 정도였다. 로보택시가 승객을 태우고 내릴 장소를 명확히 설정해야 원활한 운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운전대는 스스로 움직이고, 급제동도 거의 없어 차량이 도로에 진입하자 무인 자율주행 로보택시의 진면목이 드러났다. 시내 주행 속도는 대체로 시속 40~50㎞ 수준을 유지했다. 교차로에 접근하면 미리 속도를 낮췄고, 차선을 바꾸거나 다른 차량의 움직임에 대응할 때도 당황하거나 서두르는 기색이 없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차선 변경이었다. 앞쪽 교차로에서 좌회전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미리 여유를 두고 좌우와 전후의 교통 흐름을 살피면서 옆 차선으로 안전하게 진입했다. 끼어드는 차량이 있거나 주행 경로를 바꿔야 할 때도 급격하게 브레이크를 밟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베이징=뉴스핌] 최헌규 베이징 특파원= 바이두의 로보택시 뤄보콰이파오. 사진=뉴스핌 통신사.   2026.10.15 chk@newspim.com 사람이 운전하는 택시에서는 운전자의 판단이나 운전 습관에 따라 가속과 감속이 거칠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이날 이용한 바이두의 뤄보콰이파오 로보택시는 속도를 줄이고 높이는 과정이 매우 부드러웠다. 운전석에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잠시 잊을 만큼 승차감이 안정적이었다. 무인 자율주행 로보택시가 인간 운전자보다 안전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도로 상황과 날씨, 차량의 센서 및 인식 능력에 따라 주행 성능은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이날 선전의 도심 도로에서 경험한 로보택시는 복잡한 교통 흐름을 읽고 대응하는 능력이 상당한 수준이라는 인상을 줬다. 차량 내부에는 승객 편의를 위한 다양한 기능이 갖춰져 있다. 왼쪽 팔걸이의 작은 액정 화면은 음악을 고르거나 차량 내 기능을 조작할 수 있는 일종의 소형 컴퓨터였다. 승객의 불안감을 달래듯 AI 비서는 "겁내지 마세요", "안심하세요", "심호흡하면 도움 돼요"라고 말한다. 첨단 기술이 사람 없이 자동차를 움직이는 데 그치지 않고 승객의 심리까지 고려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4㎞에 11위안… 가격 경쟁력까지 갖춘 무인택시 목적지에 가까워지자 차량은 남은 거리를 안내했다. 약 400m를 앞두고 AI 비서가 소지품을 잘 챙겨 내리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도착 후 요금 화면에는 약 4㎞ 이동에 11위안(약 2200원)이 표시됐다. 로보택시 요금은 일반 인터넷 차량 호출 서비스보다 저렴하고, 전통적인 택시에 비해서는 훨씬 싸다. [베이징=뉴스핌] 최헌규 베이징 특파원= 선전의 시내 도로를 질주하는 바이두의 뤄보콰이파오 무인 로보택시. 사진=뉴스핌 통신사.   2026.10.15 chk@newspim.com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안내를 듣고 오른쪽 문 옆 버튼을 손가락으로 터치했다. 문이 열리고 차에서 내린 뒤에도 차량은 한동안 출발하지 않았다. 주변 상황을 살피며 안전을 확인한 뒤 조용히 다음 행선지를 향해 멀어져 갔다. 로보택시는 더 이상 기술 박람회에서나 볼 수 있는 미래형 자동차가 아니었다. 스마트폰으로 호출하고, 뒷좌석에 앉아 목적지까지 이동한 뒤 요금을 결제하는 일련의 과정은 일반 택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달라진 것은 운전석에 사람이 없다는 사실뿐이었다. 중국의 첨단 기술 도시 선전에서는 로보택시가 일상적인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여러 기업이 선전의 다양한 구에서 로보택시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기자가 체험한 바이두의 뤄보콰이파오는 난산구에서 운행하고 있으며, 인근 바오안구에서는 샤오마즈싱(小马智行·포니AI)의 자율주행차가 운행된다. 중국은 베이징과 상하이, 광저우, 선전 등 여러 도시에서 로보택시 시범 운행과 상용화를 확대하고 있다. 이 가운데 선전은 전기차와 배터리, 드론, 통신, 인공지능 기업이 집적된 도시답게 자율주행 기술을 실제 생활에 접목하는 데 적극적이다. 선전의 로보택시는 올초만해도 1200대 정도였으나 6월 기준 최대 2000대 까지 증가했다. 혁신도시 선전은 불과 4년 뒤인 2030년까지 자율주행 로보택시 운행 차량을 1만 대로 늘린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운전자 없이 소프트웨어와 스마트 센서, AI의 결합만으로 도로를 달리는 무인 자동차가 도시 교통의 한 축이자 일상적인 이동수단으로 확실하게 자리 잡는다는 얘기다. [베이징=뉴스핌] 최헌규 베이징 특파원 chk@newspim.com 2026-10-15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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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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