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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YD 폴리티션 스토리] (상) 자선 사업가 꿈 꿨던 조경태, 정치 뛰어든 계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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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신정인 기자 = 국민의힘 6선 조경태 의원이 정치인의 인생 여정을 돌아보는 뉴스핌 '폴리티션 스토리'에 출연해 정치 입문 스토리를 공개했다.

조 의원은 13일 오후 '뉴스핌 TV'를 통해 공개된 폴리티션 스토리에서 학창시절 꿈부터 정치에 입문하게 된 계기까지 모두 털어놓았다.

조 의원은 1968년 경상남도 고성군에서 태어났다. 사하중과 경남고를 나와 부산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했다. 동 대학원에서 토목공학과 석·박사 과정을 마쳤다.

대학생 때인 1988년 총선 당시 노무현 부산 동구 통일민주당 후보 선거사무소에서 자원 봉사를 하며 정치에 입문했다.

이후 17대 총선에서 36살에 첫 금배지를 달고 22대 총선까지 부산 사하을 지역에서만 내리 6선을 하고 있다.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 [사진=뉴스핌DB]

다음은 조 의원과의 폴리티션 스토리 인터뷰 전문이다.

-(신정인 기자. 이하 신)의원님 근황 먼저 여쭤볼게요. 좀 요즘 굉장히 바쁘신 걸로 아는데 어떻게 지내셨는지.

▲(조경태 의원. 이하 조)최근에 당에서 격차 해소위원회를 좀 맡아달라 해서 격차 해소위원장으로서 열심히 하고 있고요. 우리 사회가 특히 자본주의가 발달될수록 격차가 많이 벌어지고 또 새로운 영역에서의 격차들이 생기지 않습니까? 그런 부분에 대해서 사회적 갈등을 해소시키고 나아가서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이런 위원회가 만들어진 것 같거든요. 그래서 제가 좀 열심히 해서 우리 국민들 모두가 다 행복해질 수 있는 그런 사회를 만드는 데 조금이나마 이바지하고 싶습니다.

-(신)바쁘신데 혹시 여름 휴가는 다녀오셨는지

▲(조)휴가를 가려고 마음을 상당히 많이 먹었다가도 휴가철 되면 또 지역의 현안들도 많고 국민들을 위한 정책이라든지 이런 부분에서 좀 살펴야 할 게 좀 많이 있고 아직도 제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많이 해가지고 제가 국회의원을 하는 동안만큼은 휴가를 가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한 10년 이상 아마 휴가를 안 간 것 같습니다.

-(신)10년째 휴가를 안 가신 거예요?

-(최연혁 교수. 이하 최)국민들은 휴가 떠난다고 그러면 부산으로 많이 가거든요. 부산에 계신 자체가 휴가 기간이 아닌가 또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조)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정치라는 영역이 국민들 마음을 조금 더 편안하게 해줘야 하는데 제가 휴가를 가지 못하는 점부터 보면 좀 정치가 많이 국민들 마음에 쏙 들지는 않은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신)의원님 제가 찾아보기로는 경남 고성군에서 태어나셔서 이제 부산에서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모두 졸업을 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학창시절에 의원님 좀 어떤 분이셨는지 궁금합니다.

▲(조)저희 때는 이제 초등학교라고 표현을 안 하고 국민학교라고 표현했거든요. 국민학교 전부터 영유아 시절 쭉 부산 사하구, 그때는 서구였는데 신평동이라고 있어요. 신평동에서 제가 유년 시절을 보냈고 거기가 이제 부산에서도 좀 변두리다 보니까 상당히 좀 시골스러운 그런 전경들이 많이 있었거죠. 논도 있고 밭도 있었고 거기서 친구들과 또 동료들과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그게 상당히 정서적으로 좋았던 것 같습니다. 가난했던 그 유년 시절이 오히려 지금 저에게 이렇게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지 않았나 이렇게 봅니다.

-(신)혹시 의원님 어린 시절에도 꿈이 약간 정치 쪽으로 있으셨는지.

▲(조)나이가 들었을 때 이제 결혼 정년기에 접어들었을 때는 제 꿈이 이제 자선 사업가였거든요. 그래서 이제 저의 아내한테 자선 사업가가 제 꿈이다라고 이야기하니까 아내가 되게 표정이 안 좋더라고요. 남한테 봉사하면서 살아간다는 게 그게 좀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제가 아마 중학교 때쯤 제 동료한테 제가 제 꿈을 이야기를 했대요. 저는 기억이 안 나는데 그때 제가 정치인이 꿈이었다고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근데 저는 정말 기억이 안 나거든요. 이십여 년 전에 당선됐을 때 이 친구가 저한테 이제 메일을 보내왔는데 '우리 경태의 꿈이 이루어졌다'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때 이제 제가 '중학교 때 청소년 시기의 꿈이 정치인이었구나' 제 친구를 통해서 알게 됐거든요. 간접적으로 정치에 대한 관심은 어릴 때부터 좀 있었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신)어렸을 때부터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되신 계기가 따로 있으셨을까

▲(조)저는 약간 이상적인 생각인지 모르겠는데 정치라는 영역을 통해서 가난하고 힘 없고 어려운 사람을 보듬어주고 도와줘야 된다 이런 직업군이 저는 정치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지금 보니까 그거는 아니더라고요. 자기들의 이익, 계파의 이익, 어찌 보면 기득권의 못된 어떤 세력들의 어떤 권력 다툼 권력화 이게 세계사적으로 다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가 어릴 때 생각했던 정치에 대한 어떤 교육 또는 정치에 대한 영역이 성인이 됐을 때의 정치에 대한 영역하고는 완전히 반대인 것 같아요.

-(최)제가 경력을 쭉 봤더니 토목공학을 전공을 하셨습니다. 토목공학을 전공하고 정치에 뛰어든다라는 것이 어떻게 보면 좀 상식과는 조금 멀어지는데, 어떻게 보면 또 다른 세계에서 시작을 하셨는데 그 계기를 듣고 싶습니다.

▲(조)제가 가지고 있었던 생각 중에 하나는 저는 문학 소년이었거든요. 약간 서정적인 부분에 가까운 사람 같았는데 이제 정부 정책에 의해서 이공계를 많이 지원하도록 그때 부추겼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제가 이과 쪽으로 이 가게 됐는데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가난한 유년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우리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은 생각이 좀 많았거든요. 그래서 이제 '공대에 나와가지고 건설 현장에 뛰어들면 빨리 돈을 벌 수 있겠다' 이 생각으로 그쪽 과를 선택했는데 하다 보니까 또 공부에 대한 욕심이 또 생기더라고요.
학사 과정을 마치고 석사를 마치니까 저희 학교에 선생님들께서 원서를 가져왔는데 포스코 관련된 회사의 연구원으로 신청 안 해보겠느냐 하시더라고요. 그때만 해도 대기업이고 또 연구소니까 좀 괜찮은 직장 같아 보였는데 그때 만약에 제가 포스코로 갔었으면 아마 정치인 조경태는 없었겠죠.
그래서 정치를 하게 된 계기는 앞서 제가 꿈을 이야기했을 때의 그 자선사업가의 영역과 정치의 영역이 좀 유사하다고 보거든요.
우리 정치가 조금만 더 어떤 정치 본연의 정신으로 돌아간다면 저는 국민들이 좀 안심하고 이쪽 정치인들을 바라보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합니다.

-(최)거기서 한 가지만 더 질문을 좀 드리고 싶은 것은 자선 사업가와 정치를 아까 지속적으로 말씀을 주셨는데 부모님의 역할입니까? 아니면 본인의 어떤 그런 소년 시절에 책을 읽거나 혹은 어떤 영향을 받아서 누구를 좀 도와줘야 되겠다, 또 약자를 위해 살아야 되겠다 그런 생각을 갖게 된 계기가 혹시 있었습니까?

▲(조)아무래도 저 같은 경우는 어릴 때 소망 중에 하나가 새 학기가 되면 새 학습지하고 새 전과가 그때 유행이었잖아요. 동아전과, 표준전과라고 있었습니다. 이게 유행했는데 보통의 집들은 새 학기니까 새 책을 주잖아요, 부모님이. 그런데 저희들 같은 경우는 가난하다 보니까 새 책을 못 주고 이제 헌책을 물려받을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데 그때 어린 마음에 보면 새로운 걸 갖고 싶어 했거든요. 남의 손때가 안 묻는 새책. 근데 그걸 한 번도 가진 적이 없거든요.
저희 부모님들께서 자식을 키우면서 그 과정들을 상당히 어렵게 하다 보니까 제 이웃 세대는 좀 더 건강하고 구김살이 없는 그런 삶을, 그런 학창 시절을 보냈으면 좋겠다 해서 아마 자선 사업가가 돼서 그 사람들을 좀 도와야겠다라고 정말 순진한 마음으로 한 것 같아요.

-(최) 정치를 입문하시게 돼서 첫 번째로 접했던 분이 정치인으로서는 어떤 분이셨습니까?

▲(조)정치에 입문한 게 제가 28살이었거든요. 정치에 들어와서 보니까 이제 알게 된 첫 인연이 돌아가신 노무현 전 대통령. 좀 제가 마음에 들었던가 봐요. 그때부터 대통령 된 이후까지 제가 지속적인 관계를 맺게 되죠. 그래서 제가 남들은 저보고 친노라고 하는데 저는 친노가 아닙니다. 노무현 대통령 입장에서는 제가 제 친조가 되겠죠.
나이적으로는 그리고 훨씬 그분이 더 여러 가지 많이 갖췄지만 제가 누구 누구가 좋아서 일방적으로 쫓아가는 그런 스타일은 아닌 것 같아요.
저는 제 나름대로의 독자 영역에서 열심히 했고 또 그분은 그분대로 독자 영역에서 열심히 하다 보니까 만난 거고 그분이 좀 도와달라고 해서 좀 도와드린 거고 뭐 이런 거거든요.

-(최)그분께 받은 어떤 정치적인 영향력이랄지 혹은 그분이 정치적 멘토로서 어떤 역할을 해주셨는지, 또 그것을 가지고 지금 어떻게 정치에서 풀어내고 계신지

▲(조)제가 96년도에 첫 정치에 들어와 왔습니다마는 그전에 참 인연이라는 게 묘하더라고요. 1988년도에 전국 선거가 있었거든요. 총선. 제가 그때 대학교 3학년인가 그랬거든요. 제 선배분이 한 분이 어느 날 저보고 부산 동구에 노무현 변호사라는 분이 있는데 한번 가서 들러보자, 그냥 단순히 들러보자는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분이 누군데요?' 그러니까 인권 변호사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선배가 한번 가자 하니까 한번 가봤어요. 가서 보니까 이제 선거가 한참 진행 중이더라고요.
저는 한 번 빠지면 또 좀 깊숙이 빠져들어가는 그런 성격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한 달 동안 제가 거기 가서 자원봉사를 했어요.

그때만 해도 선거가 굉장히 좀 험악해서 개표하는 날도 투표함이 뒤바뀔까 싶어서 그 투표함을 지켜야 된다는 그 마음을 가지고 끝까지 남아서 새벽 찬이슬 맞아가면서 꼬박 하루를 밤샘을 했답니다. 상상이 잘 안 되죠. 운동장에 앉아가지고 그때만 해도 숫자로 몇 명인지 기억이 안 납니다. 처음에는 숫자가 좀 많았다가 다 집에 가버리더라고. 그런데 저 같은 경우는 끝까지 남아서 동이 틀 때까지 계속 그 구호 외치고. 이겼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노무현 그분이 이제 저희들한테 와서 고맙다고 인사하고 갈 거 아닙니까?
인사할 때가 첫 만남이거든요. 96년도니까 8년 전에. 그런데 그 이후에 저는 정치할 생각은 꿈에도 안 하다가 8년 이후에 제가 출마를 한 거예요. 그 인연은 제가 나중에 이야기를 했어요. 대통령 되시고 나서.

저는 마음으로만 갖고 있다가 96년도에 제가 같은 당을 하게 됐거든요. 또 부산이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이제 저하고 자연스럽게 만나게 된 그런 계기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모임이 있었거든요. 일요회라고 한 열 서너명이 모이는 모임에 같은 멤버였습니다. 지금 민주당에 있는 사람들은 한 사람도 없어요. 문재인 전 대통령도 그 멤버는 아닙니다. 제가 오리지널이죠. 노무현 전 대통령하고 인연이 그렇게 된 거고요.

영향력이라고 하면 이분이 굉장히 좀 정직한 분이잖아요. 지금 뭐 민주당에 그런 정치인이 없잖아요. 자기들이 죄를 지었으면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되잖아요. 맞죠. 노무현 대통령은 그랬거든요. 노무현 대통령은 굉장히 양심적이었어요. 자기가 조금 부족하다 싶으면 그걸 인정할 줄 아는 용감한 사람이죠. 용기 있는 사람.

근데 지금 뭐 정치인들 보면 막 생까잖아요. 죄를 지어도 안 지은 것처럼. 노무현 대통령은 그렇게 안 했습니다. 저는 노무현 대통령의 묘에 가는 분들 있잖아요. 정말 그 사람들은 망자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해요. 자기들은 그런 정신은 1도 없으면서 가서 막 우는 척하고 인연도 없잖아요. 따져보면 인연도 없는데 왜 부모, 형제를 빼고 생판 모르는 사람한테 가서 울음이 나옵니까? 그건 가식과 위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영향을 그걸 받은 것 같아요. 겸손하되 당당해라.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 같은 경우에는 개혁에 대한 마인드도 있었지만 통합에 대한 마인드도 많았거든요. 이분은 보면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어떤 잘못에 대해서는 용서를 안 했어요. 굉장히 엄격했거든요. 그런데 타인에 대해서는 굉장히 관대했단 말이에요. 기억나실지 모르겠지만 참여정부 때 노무현 정부 때 보면 박근혜, 그 당시에 야당이었거든요.

대연정을 제안하지 않습니까? 그 내각까지 다 책임지게 되니까 우리 같이 하자 했거든. 그걸 대연정이라고 합니다. 선거가 끝났으니까 이젠 우리가 한마음이 돼 가지고 국가 발전을 위해서 크게 같이 이바지하자. 노무현의 대연정은 노무현의 대통합과 같은 의미입니다. 근데 지금 그렇게 실천하는 정치인이 누가 있습니까? 거기 가서 읊조리고 하는 사람들 중에서 상대당하고 잘 지내보자 하는 사람이 누가 있어요?

이 노무현이라는 사람은 너희들이 말할 만한, 너희들이 입에 오르내릴 수 있는 그런 분이 아니다. 굉장히 솔직하고 또 정직한 분이었고. 또 이분이 가지고 있는 저하고 일치되는 철학이 뭐냐 하면 '열심히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이 잘 사는 사회 대접받는 사회를 만들겠습니다' 이거에요. 이게 정직한 사회잖아요. 저는 이게 바로 자본주의의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본 정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잘 살아야지, 사기치는 사람이 잘 살면 안 되잖아요. 학생들의 입장에서도 그래요. 열심히 공부한 학생이 좋은 대학 들어가야 되는 거 아닙니까? 인정받아야 되죠. 아버지, 어머니 백으로 들어가면 가짜잖아요.

열심히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이 대접받고 잘 사는 사회, 이게 노무현 정신이고 조경태가 그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우리가 어떤 사람을 모시거나 어떤 사람에 대해서 정신을 기린다고 하면 그분이 했던 그 철학을 그대로 본받아야 되는 거 아닙니까? 반대의 길을 가면서 그분이 인기가 있으니까, 그분이 조금 더 존경받으니까 그 이름만 따가지고 빌린다? 우리 국민들께서, 지금 이 방송을 듣고 계시는 시청자 여러분께서는 꼭 그것을 명심하시고. 진짜 노무현 대통령의 이름을 올리려면 내 자신이나 내 주변에 있는 사람보다도 타인에 대해서 타 세력에 대해서 더 존중할 줄 알아야 된다는 것을 제가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신)찾아보니까 의원님께서 처음에는 민주당 전신 정당에서 활동을 쭉 해오시다가 이제 보수 정당으로 오셔서 활동을 하고 계시는데 혹시 그렇게 활동을 하시게 된 계기가 있으신지

▲(조) 그 시기가 이제 노무현 대통령 돌아가시고 나서 문재인 세력 일파가 당을 장악하게 되거든요. 그러면서 제가 했던 얘기가 '패권화시키지 마십시오'. 이 패권화가 굉장히 무서운 거잖아요. 패권 세력들은 자신들의 세력을 제외한 나머지 세력들은 다 무시해버리거든요.
능력을 보고 사람을 뽑는 게 아니고 차별을 시킨다는 말입니다. 자기들의 세력들만 막 보태기를 하고 그렇지 않은 세력들은 다 배척해버리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 친문 패권화를 갖다가 제가 없애라고 이야기를 주장하거든요.
우리 사회가 병들고 힘들어지는 어떤 시점들이 보면 조선시대도 그렇고 고려시대도 그렇고 패권화가 되면 일종의 독재화가 되는 거거든요. 그래서 이런 것을 배격해야 된다라고 주장했는데 제 이야기를 안 듣더라고요.

저 역시도 그 권력을 더 많이 크게 쥐고 있는 사람하고 타협해서 아부하고 하면 주류로 편성될 수 있겠지만, 특권 의식을 가지고 이 세력화하는 패권 세력들하고 야합하는 것은 저는 맞지 않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뭐 하다 하다 안 되니까 제가 이제 민주당을 떠날 시기가 왔구나. 왜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지 않습니까? 그러고 나서 이제 당시 새누리당으로 영입돼서. 제가 영입 1호거든요.

어차피 정치는 똑같아요. 지금 국민의힘이나 민주당이나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정치인의 정신이라는 것은 오로지 국민을 위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이 당이나 저 당이나 별로 차이가 없다 생각을 하거든요. 다만 아쉬운 것은 양 정당이 아직도 국민들이 원하는 정치에 좀 미흡하다. 이 당에서는 거의 뭐 50보 100보입니다.

아마 민주당 지지하는 사람들은 민주당 좋다라고 하지만 속살을 탁 들어가 보면 비슷한 그런 점수를 먹이면 거의 뭐 대동소이 한 50점 정도. 둘 다 그렇게 국민을 위하는 그런 마음에 있어서는 높은 점수를 줄 수가 없다. 그러면 민주당에 있지 왜 떠났냐고 했을 때 그 패권 세력들은 저는 보기 싫더라고요. 여기는 안 그렇거든요.

-(신)제가 보니까 또 되게 화제를 모았던 게 첫 출마인 15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에 공보 포스터의 상반신 탈의로 되게 많은 화제를 모으셨더라고요. 누구 아이디어였는지 궁금한데요.

▲(조)저희 아내가 이제 조금 상당히 좀 진보적 사고, 앞선 사고를 한 것 같아요. 저한테 그 제안을 하더라고요. 어찌 보면 신출내기 신인이 그 인지도가 약하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이제 선거 비용도 거의 없었거든요. 당시에는 선거 홍보물을 두 번을 보낼 수 있는데 한 번은 4면짜리를 보내고 하나는 또 8면짜리를 보낼 수 있도록 돼 있거든요. 그런데 저희들은 가난한 정치 지망생이다 보니까 8면짜리 홍보물은 보낼 돈이 없었어요. 딱 한 번 4면짜리를 보내는데 좀 충격을 좀 줘야겠다. 그래서 아마 아내가 그런 아이디어를 생각한 것 같아요.
감출 것 없는 어떤 깨끗한 정치를 하겠다 이런 것을 당시에 주제로 해서 그런 정신을 좀 살렸던 것 같아요.

-(최)효과는 많이 보셨습니까?

▲(조)당시에는 반반이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정치인들은 보통 지금처럼 까만 양복에 흰 와이셔츠의 넥타이 하는 정장 차림, 뭐 지금도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 96년도에 그런 모습을 보였다는 것은 유권자들한테는 가히 충격적이었고 전국적인 매스컴도 그때 탔던 걸로 기억나는데요.
새벽에 전화를 받았는데 한 40대, 50대 되신 분이신데 그 장면 보고 지지하겠다고 하셨습니다. 투표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가지던데요. 그런 효과도 있었던 것 같고요.
그리고 또 하나가 유세하러 쭉 다니면 초등학교 학생들, 중학교 학생들이 그리 저를 좋아하더라고요. 아마 초중학생들이 찍었으면 제가 그때 당선되지 않았는가 생각을 해요.
저한테는 아주 좋은 어떤 기억이고, 추억이고 그런 점에서 그 부분은 제가 굉장히 좀 효과가 있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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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웨스팅하우스 지분투자 추진 [서울=뉴스핌] 이나영 기자 설희 인턴기자= 정부가 미국 내 대형 원전 건설과 미국 원전 원천기술 기업 '웨스팅하우스' 지분 투자를 대미 전략투자 후속 사업으로 추진하면서 국내 원전 상장사의 실제 사업 참여 범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웨스팅하우스 지분율과 신규 원전 노형이 아직 확정되지 않은 만큼 시장에서는 지분 투자 자체보다 국내 업체가 설계와 설계·조달·시공(EPC), 주기기와 보조기기에서 얼마나 구체적인 사업권을 확보하는지가 향후 수주를 가를 변수로 꼽힌다. ◆ 지분보다 사업권…韓 역할 명문화 관건 23일 산업통상부와 국회 등에 따르면 정부는 미국 내 대형 원전 8기 건설을 후속 대미 투자 프로젝트로 추진하고 있다. 웨스팅하우스 지분은 미국 측과 5~10% 수준에서 협상 중이다. 미국 신규 원전 8기 가운데 웨스팅하우스의 AP1000 6기와 한국이 개발한 APR1400 2기로 구성하는 방안은 아직 합의되지 않았다. [AI 일러스트=설희 기자] 증권가에서는 지분율 자체보다 향후 미국 원전 사업에서 국내 기업이 실제로 확보할 사업 범위를 핵심 변수로 보고 있다. 특히 AP1000 사업에서는 과거 공급 이력과 웨스팅하우스와의 기존 협력관계가 신규 수주로 이어지는지가 상장사별 실적을 가를 요인으로 거론된다. 기업별로는 두산에너빌리티가 AP1000 핵심 주기기 공급 실적을 보유하고 있으며, 비에이치아이도 원전 보조기기(BOP) 공급 이력을 갖고 있다. 현대건설은 웨스팅하우스와 설계·조달·시공(EPC)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있어 향후 미국 원전 사업 구체화 과정에서 실제 수주로 연결될 가능성이 주목된다. 장문준 KB증권 연구원은 "올해 하반기~2027년이 원전투자에 있어 가장 중요한 구간"이라고 평가했다. 장 연구원은 미국 에너지부의 공급망 금융지원과 한국의 대미 원전 투자 구체화가 맞물리면서 미국 원전 관련 프로젝트의 진전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 두산에너빌리티, 美 AP1000 주기기 공급…추가 물량 기대 두산에너빌리티는 미국 AP1000 공급망에서 직접적인 납품 실적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 보글과 V.C.서머 AP1000에 원자로용기와 증기발생기를 공급한 경험이 있어 신규 미국 원전 사업에서도 기존 공급망을 기반으로 한 추가 수주 가능성이 거론된다. 김태형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한국전력의 웨스팅하우스 인수 시 AP1000 사업에서도 원자로용기(RV)·증기발생기(SG) 외 추가 공급 범위(Scope) 발주를 기대한다"고 분석했다. 이어 "대미투자 자금 집행에 따라 공기 단축 위해 동사가 생산하는 장납기 품목에 대해 선발주를 예상한다"고 전망했다. 경남 창원 두산에너빌리티 본사 전경. [사진=두산에너빌리티] 원자로용기와 증기발생기는 제작기간이 긴 핵심 주기기다. 미래에셋증권은 대미 원전 투자 과정에서 기존 원자로용기와 증기발생기뿐 아니라 추가 기자재까지 두산에너빌리티의 공급 범위가 확대될 가능성에 주목했다. 정혜정 KB증권 연구원도 미국 에너지부(DOE)의 금융지원으로 장납기 기자재 발주 시점이 앞당겨질 수 있다고 봤다. 정 연구원은 "지난 6월 DOE가 발표한 장납기 기자재 조달 대출 프로그램에 따라 최종투자결정(FID) 이전 주요 기자재 발주가 가능해졌다"며 "AP1000 핵심 장납기 기자재 공급업체인 두산에너빌리티의 수주가 당겨지면서 원전 기자재 생산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특히 KB증권은 향후 가장 먼저 나올 대형원전 기자재 발주 대상으로 웨스팅하우스와 미국 전력사업자가 구성하는 특수목적법인(SPV)의 장납기 기자재를 제시했다. 이에 따라 증권가에서는 미국 신규 원전 사업이 구체화될 경우 두산에너빌리티가 다른 원전 밸류체인 업체보다 먼저 수주를 가시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 현대건설, 웨스팅과 EPC 협력…美 사업 확대 기대 현대건설은 기자재가 아닌 EPC 분야에서 웨스팅하우스와 직접적인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현대건설은 지난 2022년 웨스팅하우스와 AP1000 글로벌 사업 공동 참여를 위한 전략적 협약을 체결하고 향후 프로젝트별 계약을 통해 EPC 분야 우선 참여 협상권을 확보했다. 이후 웨스팅하우스와의 협력은 실제 해외 프로젝트로 이어지고 있다. 현대건설은 2024년 불가리아 코즐로두이 원전 설계계약을 시작으로 슬로베니아 원전 타당성조사, 핀란드 원전 사전업무착수 계약에 참여했으며 미국 페르미 아메리카의 프로젝트 매터도어에서는 기본설계(FEED)를 수행하고 있다. 현대건설과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공동으로 글로벌 확대 추진 중인 대형원전 AP1000 조감도. [사진=현대건설] 증권가에서는 이 같은 파트너십을 현대건설의 미국 원전 진출 경쟁력으로 평가한다. 장문준 KB증권 연구원은 "웨스팅하우스 노형의 경우 벡텔과 함께 핵심 건설 파트너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며 "머지않아 원전 영역에서 실질적 수주와 착공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망했다. 배세호 iM증권 연구원은 "미국 에너지부(DOE)의 금융 지원, 웨스팅하우스와 잠재적 파트너들과의 의향서(LOI), 그리고 한국의 대미투자 가능성 등을 감안 시 미국 내 원전 프로젝트가 조만간 구체화될 가능성이 높다"며 "이 경우 현대건설의 미국 원전 프로젝트 참여 가시성도 보다 분명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김도엽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대형원전은 팀코리아 및 웨스팅하우스 파이프라인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다"며 "불가리아 AP1000 대형원전은 하반기 중 엔지니어링 서비스 계약(ESC) 2차 계약 체결이 기대된다"고 내다봤다. ◆ BHI, 美 AP1000 복수기 공급…BOP 수주 주목 비에이치아이도 미국 AP1000 공급 실적을 갖고 있다. 비에이치아이는 발전용 설비를 설계·제작하는 에너지 인프라 기업으로, 주력 제품인 배열회수보일러(HRSG)와 함께 원자력발전 보조기기(BOP)를 공급하고 있다. 미국 보글과 V.C.서머 AP1000에는 복수기를 공급한 이력이 있다. 원전 BOP는 아직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다. 리딩투자증권이 제시한 올해 2분기 기준 매출 구성은 HRSG가 65%로 가장 높고 보일러 22%, BOP 5%, 기타 8% 순이다. 미국 신규 원전 발주가 본격화될 경우 현재 비중이 낮은 BOP 사업이 추가 성장 축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주목된다. 비에이치아이 로고. [사진=비에이치아이] 한제윤 리딩투자증권 연구원은 비에이치아이의 수주 흐름과 관련해 "연간 신규 수주는 올해도 1조원을 상회할 전망이다"고 분석했다. 올해 상반기 HRSG 신규 수주는 약 5000억원이며, 하반기에도 약 4000억원 이상의 프로젝트가 수주 대기 중인 것으로 추산했다. 한 연구원은 미국 텍사스에서 추진되는 대미 투자 1호 가스복합화력발전 사업과 관련해서도 비에이치아이의 직접적인 수혜가 기대된다고 밝혔다. HRSG 8~10기 발주를 가정할 경우 잠재 수주 규모를 약 4000억~5000억원으로 추정했으며 과거 미국 칼파인(Calpine)에 HRSG를 공급한 이력이 있다는 점도 수혜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제시했다. 조재원 키움증권 연구원도 대미 투자에 따른 미국 사업 확대 가능성에 주목했다. 조 연구원은 "미국 시장 진입이 현실화될 경우, 추가적인 멀티플 확장을 기대한다"며 비에이치아이가 미국 사업에 진입할 경우 기존 국내와 아시아 중심의 사업 지역을 북미로 확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winter1004@newspim.com 2026-09-23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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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은, 女공기권총 10m 금메달 [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한국 사격의 에이스 추가은(임실군청)이 눈부신 총성을 울리며 이번 대회 한국 선수단에 일곱 번째 금메달을 선사했다. 한국 사격이 거둔 첫 번째 금메달이다. 세계랭킹 23위 추가은은 일본 도요타시 아이치 종합사격장에서 열린 여자 10m 공기권총 개인전 결선에서 246.3점을 쏴 셴이야오(중국)를 무려 5.0점 차로 따돌리고 정상에 올랐다. 추가은은 고니시 유카리가 2017년 세운 결선 아시아 기록(245.3점)과 팔락(인도)이 항저우 대회에서 세운 아시안게임 기록(242.1점)을 모두 갈아치우는 기력을 발휘했다. 조라나 아루노비치가 세운 세계기록(246.9점)에도 불과 0.6점 모자란 엄청난 기록이다. [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추가은. [사진=대한사격연맹] 2026.09.23 psoq1337@newspim.com 앞서 열린 본선에서도 추가은의 활약은 빛났다. 추가은은 582점(엑스텐 19개)을 기록해 종전 아시안게임 본선 기록을 1점 경신하며 전체 1위로 결선에 올랐다. 김보미(부산시청), 오예진(IBK기업은행)과 함께 나선 단체전에서도 1,730점을 합작해 값진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이 이 종목 단체전에서 메달을 획득한 것은 2010년 광저우 대회 이후 16년 만이다. [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추가은. [사진=대한사격연맹] 2026.09.23 psoq1337@newspim.com 다만 김보미와 오예진은 각각 574점(엑스텐 22개, 20개)으로 10위와 12위를 기록해 8위까지 주어지는 결선행 티켓을 아쉽게 놓쳤다. 두 선수 모두 8위와 1점 차에 불과해 아쉬움을 삼켰다. 홀로 결선 무대에 선 추가은은 흔들림 없는 집중력을 발휘했다. 결선 첫 번째 스테이지 첫 발을 10.1점으로 기분 좋게 출발한 그는 네 발을 모두 10점대 언저리에 맞추며 51.8점으로 단숨에 선두에 올랐다. 두 번째 시리즈 초반 주춤하기도 했으나 10.3점으로 마무리하며 청연칭, 셴이야오, 장란신 등을 제치고 1위를 굳건히 지켰다. [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추가은. [사진=대한사격연맹] 2026.09.23 psoq1337@newspim.com 본격적으로 한 명씩 탈락하는 엘리미네이션 스테이지에 접어들면서 추가은의 독주가 시작됐다. 10.1점과 10.7점을 연달아 꽂아 넣은 뒤, 두 번째 시리즈에서는 10.8점과 10.7점에 적중하며 143.9점을 기록해 2위 셴이야오와의 격차를 벌렸다. 세 번째 시리즈가 끝난 뒤 격차는 더욱 벌어졌고, 다른 선수들이 실수를 연발하는 사이 추가은은 더욱 달아났다. 셴이야오에 4.1점 앞선 상황에서 맞이한 마지막 시리즈에서도 10.6점과 9.8점에 적중하며 완벽하게 우승을 확정 지었다. psoq1337@newspim.com 2026-09-23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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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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