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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YD 폴리티션 스토리] (상) 자선 사업가 꿈 꿨던 조경태, 정치 뛰어든 계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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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신정인 기자 = 국민의힘 6선 조경태 의원이 정치인의 인생 여정을 돌아보는 뉴스핌 '폴리티션 스토리'에 출연해 정치 입문 스토리를 공개했다.

조 의원은 13일 오후 '뉴스핌 TV'를 통해 공개된 폴리티션 스토리에서 학창시절 꿈부터 정치에 입문하게 된 계기까지 모두 털어놓았다.

조 의원은 1968년 경상남도 고성군에서 태어났다. 사하중과 경남고를 나와 부산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했다. 동 대학원에서 토목공학과 석·박사 과정을 마쳤다.

대학생 때인 1988년 총선 당시 노무현 부산 동구 통일민주당 후보 선거사무소에서 자원 봉사를 하며 정치에 입문했다.

이후 17대 총선에서 36살에 첫 금배지를 달고 22대 총선까지 부산 사하을 지역에서만 내리 6선을 하고 있다.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 [사진=뉴스핌DB]

다음은 조 의원과의 폴리티션 스토리 인터뷰 전문이다.

-(신정인 기자. 이하 신)의원님 근황 먼저 여쭤볼게요. 좀 요즘 굉장히 바쁘신 걸로 아는데 어떻게 지내셨는지.

▲(조경태 의원. 이하 조)최근에 당에서 격차 해소위원회를 좀 맡아달라 해서 격차 해소위원장으로서 열심히 하고 있고요. 우리 사회가 특히 자본주의가 발달될수록 격차가 많이 벌어지고 또 새로운 영역에서의 격차들이 생기지 않습니까? 그런 부분에 대해서 사회적 갈등을 해소시키고 나아가서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이런 위원회가 만들어진 것 같거든요. 그래서 제가 좀 열심히 해서 우리 국민들 모두가 다 행복해질 수 있는 그런 사회를 만드는 데 조금이나마 이바지하고 싶습니다.

-(신)바쁘신데 혹시 여름 휴가는 다녀오셨는지

▲(조)휴가를 가려고 마음을 상당히 많이 먹었다가도 휴가철 되면 또 지역의 현안들도 많고 국민들을 위한 정책이라든지 이런 부분에서 좀 살펴야 할 게 좀 많이 있고 아직도 제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많이 해가지고 제가 국회의원을 하는 동안만큼은 휴가를 가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한 10년 이상 아마 휴가를 안 간 것 같습니다.

-(신)10년째 휴가를 안 가신 거예요?

-(최연혁 교수. 이하 최)국민들은 휴가 떠난다고 그러면 부산으로 많이 가거든요. 부산에 계신 자체가 휴가 기간이 아닌가 또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조)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정치라는 영역이 국민들 마음을 조금 더 편안하게 해줘야 하는데 제가 휴가를 가지 못하는 점부터 보면 좀 정치가 많이 국민들 마음에 쏙 들지는 않은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신)의원님 제가 찾아보기로는 경남 고성군에서 태어나셔서 이제 부산에서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모두 졸업을 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학창시절에 의원님 좀 어떤 분이셨는지 궁금합니다.

▲(조)저희 때는 이제 초등학교라고 표현을 안 하고 국민학교라고 표현했거든요. 국민학교 전부터 영유아 시절 쭉 부산 사하구, 그때는 서구였는데 신평동이라고 있어요. 신평동에서 제가 유년 시절을 보냈고 거기가 이제 부산에서도 좀 변두리다 보니까 상당히 좀 시골스러운 그런 전경들이 많이 있었거죠. 논도 있고 밭도 있었고 거기서 친구들과 또 동료들과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그게 상당히 정서적으로 좋았던 것 같습니다. 가난했던 그 유년 시절이 오히려 지금 저에게 이렇게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지 않았나 이렇게 봅니다.

-(신)혹시 의원님 어린 시절에도 꿈이 약간 정치 쪽으로 있으셨는지.

▲(조)나이가 들었을 때 이제 결혼 정년기에 접어들었을 때는 제 꿈이 이제 자선 사업가였거든요. 그래서 이제 저의 아내한테 자선 사업가가 제 꿈이다라고 이야기하니까 아내가 되게 표정이 안 좋더라고요. 남한테 봉사하면서 살아간다는 게 그게 좀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제가 아마 중학교 때쯤 제 동료한테 제가 제 꿈을 이야기를 했대요. 저는 기억이 안 나는데 그때 제가 정치인이 꿈이었다고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근데 저는 정말 기억이 안 나거든요. 이십여 년 전에 당선됐을 때 이 친구가 저한테 이제 메일을 보내왔는데 '우리 경태의 꿈이 이루어졌다'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때 이제 제가 '중학교 때 청소년 시기의 꿈이 정치인이었구나' 제 친구를 통해서 알게 됐거든요. 간접적으로 정치에 대한 관심은 어릴 때부터 좀 있었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신)어렸을 때부터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되신 계기가 따로 있으셨을까

▲(조)저는 약간 이상적인 생각인지 모르겠는데 정치라는 영역을 통해서 가난하고 힘 없고 어려운 사람을 보듬어주고 도와줘야 된다 이런 직업군이 저는 정치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지금 보니까 그거는 아니더라고요. 자기들의 이익, 계파의 이익, 어찌 보면 기득권의 못된 어떤 세력들의 어떤 권력 다툼 권력화 이게 세계사적으로 다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가 어릴 때 생각했던 정치에 대한 어떤 교육 또는 정치에 대한 영역이 성인이 됐을 때의 정치에 대한 영역하고는 완전히 반대인 것 같아요.

-(최)제가 경력을 쭉 봤더니 토목공학을 전공을 하셨습니다. 토목공학을 전공하고 정치에 뛰어든다라는 것이 어떻게 보면 좀 상식과는 조금 멀어지는데, 어떻게 보면 또 다른 세계에서 시작을 하셨는데 그 계기를 듣고 싶습니다.

▲(조)제가 가지고 있었던 생각 중에 하나는 저는 문학 소년이었거든요. 약간 서정적인 부분에 가까운 사람 같았는데 이제 정부 정책에 의해서 이공계를 많이 지원하도록 그때 부추겼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제가 이과 쪽으로 이 가게 됐는데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가난한 유년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우리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은 생각이 좀 많았거든요. 그래서 이제 '공대에 나와가지고 건설 현장에 뛰어들면 빨리 돈을 벌 수 있겠다' 이 생각으로 그쪽 과를 선택했는데 하다 보니까 또 공부에 대한 욕심이 또 생기더라고요.
학사 과정을 마치고 석사를 마치니까 저희 학교에 선생님들께서 원서를 가져왔는데 포스코 관련된 회사의 연구원으로 신청 안 해보겠느냐 하시더라고요. 그때만 해도 대기업이고 또 연구소니까 좀 괜찮은 직장 같아 보였는데 그때 만약에 제가 포스코로 갔었으면 아마 정치인 조경태는 없었겠죠.
그래서 정치를 하게 된 계기는 앞서 제가 꿈을 이야기했을 때의 그 자선사업가의 영역과 정치의 영역이 좀 유사하다고 보거든요.
우리 정치가 조금만 더 어떤 정치 본연의 정신으로 돌아간다면 저는 국민들이 좀 안심하고 이쪽 정치인들을 바라보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합니다.

-(최)거기서 한 가지만 더 질문을 좀 드리고 싶은 것은 자선 사업가와 정치를 아까 지속적으로 말씀을 주셨는데 부모님의 역할입니까? 아니면 본인의 어떤 그런 소년 시절에 책을 읽거나 혹은 어떤 영향을 받아서 누구를 좀 도와줘야 되겠다, 또 약자를 위해 살아야 되겠다 그런 생각을 갖게 된 계기가 혹시 있었습니까?

▲(조)아무래도 저 같은 경우는 어릴 때 소망 중에 하나가 새 학기가 되면 새 학습지하고 새 전과가 그때 유행이었잖아요. 동아전과, 표준전과라고 있었습니다. 이게 유행했는데 보통의 집들은 새 학기니까 새 책을 주잖아요, 부모님이. 그런데 저희들 같은 경우는 가난하다 보니까 새 책을 못 주고 이제 헌책을 물려받을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데 그때 어린 마음에 보면 새로운 걸 갖고 싶어 했거든요. 남의 손때가 안 묻는 새책. 근데 그걸 한 번도 가진 적이 없거든요.
저희 부모님들께서 자식을 키우면서 그 과정들을 상당히 어렵게 하다 보니까 제 이웃 세대는 좀 더 건강하고 구김살이 없는 그런 삶을, 그런 학창 시절을 보냈으면 좋겠다 해서 아마 자선 사업가가 돼서 그 사람들을 좀 도와야겠다라고 정말 순진한 마음으로 한 것 같아요.

-(최) 정치를 입문하시게 돼서 첫 번째로 접했던 분이 정치인으로서는 어떤 분이셨습니까?

▲(조)정치에 입문한 게 제가 28살이었거든요. 정치에 들어와서 보니까 이제 알게 된 첫 인연이 돌아가신 노무현 전 대통령. 좀 제가 마음에 들었던가 봐요. 그때부터 대통령 된 이후까지 제가 지속적인 관계를 맺게 되죠. 그래서 제가 남들은 저보고 친노라고 하는데 저는 친노가 아닙니다. 노무현 대통령 입장에서는 제가 제 친조가 되겠죠.
나이적으로는 그리고 훨씬 그분이 더 여러 가지 많이 갖췄지만 제가 누구 누구가 좋아서 일방적으로 쫓아가는 그런 스타일은 아닌 것 같아요.
저는 제 나름대로의 독자 영역에서 열심히 했고 또 그분은 그분대로 독자 영역에서 열심히 하다 보니까 만난 거고 그분이 좀 도와달라고 해서 좀 도와드린 거고 뭐 이런 거거든요.

-(최)그분께 받은 어떤 정치적인 영향력이랄지 혹은 그분이 정치적 멘토로서 어떤 역할을 해주셨는지, 또 그것을 가지고 지금 어떻게 정치에서 풀어내고 계신지

▲(조)제가 96년도에 첫 정치에 들어와 왔습니다마는 그전에 참 인연이라는 게 묘하더라고요. 1988년도에 전국 선거가 있었거든요. 총선. 제가 그때 대학교 3학년인가 그랬거든요. 제 선배분이 한 분이 어느 날 저보고 부산 동구에 노무현 변호사라는 분이 있는데 한번 가서 들러보자, 그냥 단순히 들러보자는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분이 누군데요?' 그러니까 인권 변호사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선배가 한번 가자 하니까 한번 가봤어요. 가서 보니까 이제 선거가 한참 진행 중이더라고요.
저는 한 번 빠지면 또 좀 깊숙이 빠져들어가는 그런 성격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한 달 동안 제가 거기 가서 자원봉사를 했어요.

그때만 해도 선거가 굉장히 좀 험악해서 개표하는 날도 투표함이 뒤바뀔까 싶어서 그 투표함을 지켜야 된다는 그 마음을 가지고 끝까지 남아서 새벽 찬이슬 맞아가면서 꼬박 하루를 밤샘을 했답니다. 상상이 잘 안 되죠. 운동장에 앉아가지고 그때만 해도 숫자로 몇 명인지 기억이 안 납니다. 처음에는 숫자가 좀 많았다가 다 집에 가버리더라고. 그런데 저 같은 경우는 끝까지 남아서 동이 틀 때까지 계속 그 구호 외치고. 이겼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노무현 그분이 이제 저희들한테 와서 고맙다고 인사하고 갈 거 아닙니까?
인사할 때가 첫 만남이거든요. 96년도니까 8년 전에. 그런데 그 이후에 저는 정치할 생각은 꿈에도 안 하다가 8년 이후에 제가 출마를 한 거예요. 그 인연은 제가 나중에 이야기를 했어요. 대통령 되시고 나서.

저는 마음으로만 갖고 있다가 96년도에 제가 같은 당을 하게 됐거든요. 또 부산이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이제 저하고 자연스럽게 만나게 된 그런 계기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모임이 있었거든요. 일요회라고 한 열 서너명이 모이는 모임에 같은 멤버였습니다. 지금 민주당에 있는 사람들은 한 사람도 없어요. 문재인 전 대통령도 그 멤버는 아닙니다. 제가 오리지널이죠. 노무현 전 대통령하고 인연이 그렇게 된 거고요.

영향력이라고 하면 이분이 굉장히 좀 정직한 분이잖아요. 지금 뭐 민주당에 그런 정치인이 없잖아요. 자기들이 죄를 지었으면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되잖아요. 맞죠. 노무현 대통령은 그랬거든요. 노무현 대통령은 굉장히 양심적이었어요. 자기가 조금 부족하다 싶으면 그걸 인정할 줄 아는 용감한 사람이죠. 용기 있는 사람.

근데 지금 뭐 정치인들 보면 막 생까잖아요. 죄를 지어도 안 지은 것처럼. 노무현 대통령은 그렇게 안 했습니다. 저는 노무현 대통령의 묘에 가는 분들 있잖아요. 정말 그 사람들은 망자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해요. 자기들은 그런 정신은 1도 없으면서 가서 막 우는 척하고 인연도 없잖아요. 따져보면 인연도 없는데 왜 부모, 형제를 빼고 생판 모르는 사람한테 가서 울음이 나옵니까? 그건 가식과 위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영향을 그걸 받은 것 같아요. 겸손하되 당당해라.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 같은 경우에는 개혁에 대한 마인드도 있었지만 통합에 대한 마인드도 많았거든요. 이분은 보면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어떤 잘못에 대해서는 용서를 안 했어요. 굉장히 엄격했거든요. 그런데 타인에 대해서는 굉장히 관대했단 말이에요. 기억나실지 모르겠지만 참여정부 때 노무현 정부 때 보면 박근혜, 그 당시에 야당이었거든요.

대연정을 제안하지 않습니까? 그 내각까지 다 책임지게 되니까 우리 같이 하자 했거든. 그걸 대연정이라고 합니다. 선거가 끝났으니까 이젠 우리가 한마음이 돼 가지고 국가 발전을 위해서 크게 같이 이바지하자. 노무현의 대연정은 노무현의 대통합과 같은 의미입니다. 근데 지금 그렇게 실천하는 정치인이 누가 있습니까? 거기 가서 읊조리고 하는 사람들 중에서 상대당하고 잘 지내보자 하는 사람이 누가 있어요?

이 노무현이라는 사람은 너희들이 말할 만한, 너희들이 입에 오르내릴 수 있는 그런 분이 아니다. 굉장히 솔직하고 또 정직한 분이었고. 또 이분이 가지고 있는 저하고 일치되는 철학이 뭐냐 하면 '열심히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이 잘 사는 사회 대접받는 사회를 만들겠습니다' 이거에요. 이게 정직한 사회잖아요. 저는 이게 바로 자본주의의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본 정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잘 살아야지, 사기치는 사람이 잘 살면 안 되잖아요. 학생들의 입장에서도 그래요. 열심히 공부한 학생이 좋은 대학 들어가야 되는 거 아닙니까? 인정받아야 되죠. 아버지, 어머니 백으로 들어가면 가짜잖아요.

열심히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이 대접받고 잘 사는 사회, 이게 노무현 정신이고 조경태가 그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우리가 어떤 사람을 모시거나 어떤 사람에 대해서 정신을 기린다고 하면 그분이 했던 그 철학을 그대로 본받아야 되는 거 아닙니까? 반대의 길을 가면서 그분이 인기가 있으니까, 그분이 조금 더 존경받으니까 그 이름만 따가지고 빌린다? 우리 국민들께서, 지금 이 방송을 듣고 계시는 시청자 여러분께서는 꼭 그것을 명심하시고. 진짜 노무현 대통령의 이름을 올리려면 내 자신이나 내 주변에 있는 사람보다도 타인에 대해서 타 세력에 대해서 더 존중할 줄 알아야 된다는 것을 제가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신)찾아보니까 의원님께서 처음에는 민주당 전신 정당에서 활동을 쭉 해오시다가 이제 보수 정당으로 오셔서 활동을 하고 계시는데 혹시 그렇게 활동을 하시게 된 계기가 있으신지

▲(조) 그 시기가 이제 노무현 대통령 돌아가시고 나서 문재인 세력 일파가 당을 장악하게 되거든요. 그러면서 제가 했던 얘기가 '패권화시키지 마십시오'. 이 패권화가 굉장히 무서운 거잖아요. 패권 세력들은 자신들의 세력을 제외한 나머지 세력들은 다 무시해버리거든요.
능력을 보고 사람을 뽑는 게 아니고 차별을 시킨다는 말입니다. 자기들의 세력들만 막 보태기를 하고 그렇지 않은 세력들은 다 배척해버리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 친문 패권화를 갖다가 제가 없애라고 이야기를 주장하거든요.
우리 사회가 병들고 힘들어지는 어떤 시점들이 보면 조선시대도 그렇고 고려시대도 그렇고 패권화가 되면 일종의 독재화가 되는 거거든요. 그래서 이런 것을 배격해야 된다라고 주장했는데 제 이야기를 안 듣더라고요.

저 역시도 그 권력을 더 많이 크게 쥐고 있는 사람하고 타협해서 아부하고 하면 주류로 편성될 수 있겠지만, 특권 의식을 가지고 이 세력화하는 패권 세력들하고 야합하는 것은 저는 맞지 않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뭐 하다 하다 안 되니까 제가 이제 민주당을 떠날 시기가 왔구나. 왜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지 않습니까? 그러고 나서 이제 당시 새누리당으로 영입돼서. 제가 영입 1호거든요.

어차피 정치는 똑같아요. 지금 국민의힘이나 민주당이나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정치인의 정신이라는 것은 오로지 국민을 위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이 당이나 저 당이나 별로 차이가 없다 생각을 하거든요. 다만 아쉬운 것은 양 정당이 아직도 국민들이 원하는 정치에 좀 미흡하다. 이 당에서는 거의 뭐 50보 100보입니다.

아마 민주당 지지하는 사람들은 민주당 좋다라고 하지만 속살을 탁 들어가 보면 비슷한 그런 점수를 먹이면 거의 뭐 대동소이 한 50점 정도. 둘 다 그렇게 국민을 위하는 그런 마음에 있어서는 높은 점수를 줄 수가 없다. 그러면 민주당에 있지 왜 떠났냐고 했을 때 그 패권 세력들은 저는 보기 싫더라고요. 여기는 안 그렇거든요.

-(신)제가 보니까 또 되게 화제를 모았던 게 첫 출마인 15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에 공보 포스터의 상반신 탈의로 되게 많은 화제를 모으셨더라고요. 누구 아이디어였는지 궁금한데요.

▲(조)저희 아내가 이제 조금 상당히 좀 진보적 사고, 앞선 사고를 한 것 같아요. 저한테 그 제안을 하더라고요. 어찌 보면 신출내기 신인이 그 인지도가 약하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이제 선거 비용도 거의 없었거든요. 당시에는 선거 홍보물을 두 번을 보낼 수 있는데 한 번은 4면짜리를 보내고 하나는 또 8면짜리를 보낼 수 있도록 돼 있거든요. 그런데 저희들은 가난한 정치 지망생이다 보니까 8면짜리 홍보물은 보낼 돈이 없었어요. 딱 한 번 4면짜리를 보내는데 좀 충격을 좀 줘야겠다. 그래서 아마 아내가 그런 아이디어를 생각한 것 같아요.
감출 것 없는 어떤 깨끗한 정치를 하겠다 이런 것을 당시에 주제로 해서 그런 정신을 좀 살렸던 것 같아요.

-(최)효과는 많이 보셨습니까?

▲(조)당시에는 반반이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정치인들은 보통 지금처럼 까만 양복에 흰 와이셔츠의 넥타이 하는 정장 차림, 뭐 지금도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 96년도에 그런 모습을 보였다는 것은 유권자들한테는 가히 충격적이었고 전국적인 매스컴도 그때 탔던 걸로 기억나는데요.
새벽에 전화를 받았는데 한 40대, 50대 되신 분이신데 그 장면 보고 지지하겠다고 하셨습니다. 투표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가지던데요. 그런 효과도 있었던 것 같고요.
그리고 또 하나가 유세하러 쭉 다니면 초등학교 학생들, 중학교 학생들이 그리 저를 좋아하더라고요. 아마 초중학생들이 찍었으면 제가 그때 당선되지 않았는가 생각을 해요.
저한테는 아주 좋은 어떤 기억이고, 추억이고 그런 점에서 그 부분은 제가 굉장히 좀 효과가 있었다고 봅니다.

allpass@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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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체코 2-1로 꺾고 첫 승 [서울=뉴스핌] 한지용 기자 =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에 나선 홍명보호가 산뜻하게 출발했다. 복병 체코를 꺾고 조별리그 첫 승을 거뒀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국가 대표팀은 12일 오전 11시(한국시간) 멕시코 과달라하라 에스타디오 아크론에서 열린 대회 조별리그 A조 체코전에서 2-1로 승리했다. 한국은 2010 남아공 월드컵 그리스전 2-0 승리 이후 16년 만에 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에서 승리했다. 이날 승리한 한국은 멕시코(승점 3)에 골득실 차에 밀린 A조 2위에 자리했다.  [과달라하라 로이터=뉴스핌] 황인범이 12일 오전 11시(한국시간) 멕시코 과달라하라 에스타디오 아크론에서 열린 대회 조별리그 A조 체코전에서 1골 1도움을 기록해 2-1 승리를 이끌었다. 2026.06.12 football1229@newspim.com 홍 감독은 그간 평가전에서 활용했던 3-4-2-1 포메이션을 가동했다. 최전방에는 주장 손흥민(LAFC)이 나섰고, 2선에는 이강인(파리 생제르맹)과 이재성(마인츠)이 배치됐다. 중원은 황인범(페예노르트)과 백승호(버밍엄 시티)가 맡았고, 좌우 윙백으로는 이태석(아우스트리아 빈)과 설영우(즈베즈다)가 출전했다. 스리백은 왼쪽부터 이기혁(강원)-김민재(바이에른 뮌헨)-이한범(미트윌란)으로 구성했으며, 골문은 김승규(도쿄)가 지켰다. 경기 초반 한국은 평균 신장 188cm를 내세운 체코의 압박에 공격 전개를 원활히 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강인이 공격 전개에 관여하며 한국이 흐름을 잡기 시작했다. 이강인은 손흥민의 슈팅의 기점 역할을 했고, 김민재의 패스를 받아 직접 강력한 왼발 중거리 슛을 날리며 분위기를 가져왔다. 전반 15분에는 위기를 맞기도 했다. 수비 왼쪽 지역에서 이기혁의 실수로 공을 빼앗기며 체코에 결정적인 기회를 내줬다. 파트리크 시크(레버쿠젠)에게 슈팅 기회가 연결됐지만, 김민재가 몸을 던져 막아내며 실점을 허용하지 않았다. 이후 체코는 장신 선수들을 활용해 공중볼 공격을 시도했고, 한국은 빠른 전환과 측면 공략으로 맞섰다. 하지만 양 팀 모두 결정적인 찬스를 만들지는 못했다. 전반 막판 손흥민이 슈팅 기회 세 차례를 연거푸 잡으며 상대를 흔들었지만, 골망을 흔들지는 못했다. 전반은 0-0으로 끝났다. 전반 슈팅 숫자는 8-2로 한국이 압도 했다. 후반에도 한국이 주도권을 잡은 채 전개됐다. 후반 4분 황인범이 페널티지역 오른쪽에서 잘 돌아서서 낮고 강한 슈팅을 때렸다. 골키퍼 맞고 나온 공에 이재성이 쇄도해서 득점을 노렸으나, 체코 수비에 막혔다. 후반 10분에도 결정적인 찬스를 맞았다. 이재성의 원터치 패스를 받은 손흥민이 페널티박스 왼쪽 지역에서 골키퍼와 1대 1 찬스를 맞았으나, 왼발 슈팅이 골키퍼 몸에 걸렸다.  기회를 살리지 못한 한국은 후반 13분, 끝내 상대 세트피스를 막지 못하고 먼저 실점했다. 오른쪽 지역에서 길게 날아온 스로인을 라디슬라프 크레이치(울버햄프턴)가 헤더로 연결했고, 그대로 한국 골망을 흔들었다. 0-1로 뒤진 상황에서 홍 감독은 이재성을 빼고 황희찬(울버햄프턴)을 투입해 득점을 노렸다. 한국은 다시 주도권을 쥔 채 공격을 전개했다. [과달라하라 로이터=뉴스핌] 황인범이 12일 오전 11시(한국시간) 멕시코 과달라하라 에스타디오 아크론에서 열린 대회 조별리그 A조 체코전에서 동점골을 넣고 있다. 2026.06.12 football1229@newspim.com 후반 22분 황인범이 동점골을 터트렸다. 이강인의 킬패스를 받은 후 페널티박스 왼쪽에서 왼발로 한 번 접은 후 오른발로 침착하게 마무리하며 1-1을 만들었다.  이후 홍 감독은 손흥민과 이태석을 불러들이고, 오현규(베식타시)와 엄지성(스완지시티)를 투입하며 승부수를 띄었다.  후반 32분 체코가 프리킥 상황에서 한국의 골망을 흔들었으나, 오프사이드가 선언됐다. [과달라하라 로이터=뉴스핌] 오현규가 12일 오전 11시(한국시간) 멕시코 과달라하라 에스타디오 아크론에서 열린 대회 조별리그 A조 체코전에서 역전골을 넣고 있다. 2026.06.12 football1229@newspim.com 후반 34분 홍 감독의 승부수가 통했다. 백승호가 오른쪽 넓은 지역으로 침투하는 황인범에게 공을 건넸다. 황인범은 페널티 박스 안으로 오현규에게 패스를 건넸다. 오현규가 지체 없이 원 터치 슈팅으로 연결했고, 골키퍼 맞고 들어가며 한국이 2-1 역전에 성공했다.  한국은 중원에서 활약한 황인범과 백승호를 불러들이고, 박진섭(저장)과 김진규(전북)를 투입해 경기를 지켰다. 이후 체코는 높이를 앞세워 동점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으나, 한국 수비가 잘 막았다. 수문장 김승규가 결정적인 세이브 2차례를 기록하며 팀의 승리를 지켰다.  football1229@newspim.com 2026-06-12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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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무인기' 윤석열 징역 30년 선고 [서울=뉴스핌] 박민경 기자 = 12·3 비상계엄 선포 명분을 만들기 위해 평양에 무인기 투입 작전을 지시한 혐의로 기소된 윤석열 전 대통령이 1심에서 징역 30년을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재판장 이정엽)는 12일 윤 전 대통령의 일반이적 및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 사건 선고 공판을 열어 이 같이 선고했다. 재판부는 함께 재판에 넘겨진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은 각각 징역 30년,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무인기 작전 수행을 지휘한 혐의를 받는 김용대 전 드론작전사령관에게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12·3 비상계엄 선포 명분을 만들기 위해 평양에 무인기 투입 작전을 지시한 혐의로 기소된 윤석열 전 대통령이 1심에서 징역 30년을 선고받았다. 사진은 '건군 76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윤 전 대통령과 김용현 장관의 모습. [사진=뉴스핌 DB] ◆ 재판부 "계엄 명분 위해 北 도발 유도"…일반이적·직권남용 유죄 재판부는 윤 전 대통령 등이 북한을 군사적으로 도발해 비상계엄 선포 명분을 만들 목적으로 2024년 10월께 드론작전사령부에 평양 무인기 투입 작전을 지시한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윤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 여 전 사령관은 비상계엄 선포를 위한 명분과 법적 요건을 마련하기 위해 북한의 무력 도발을 유도하고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켜 국가 비상상황을 조성하기로 공모한 것으로 인정됐다. 재판부는 이들이 이른바 '심리전' 형태의 무인기 투입 작전을 통해 북한을 자극하고 군사적 도발을 유도하려 했으며, 김 전 장관의 지시에 따라 실제 작전이 실행됐다고 봤다. 또 "이 사건 작전은 북한을 자극하고 도발 명분을 제공함으로써 군사적 충돌에 따른 국민과 군의 인명·재산 피해 위험을 발생시켰다"며 "대한민국이 보유한 군사력을 국가안전보장이나 국토방위와 무관한 사적 목적으로 사용한 것으로 불필요한 군사력 소모를 초래하고 국가의 군사상 이익을 해했다"고 지적했다. 윤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이 작전 지시 과정에서 직권을 남용한 혐의 역시 유죄로 봤다. 재판부는 "군인에 대한 일반적 지휘권을 가진 피고인들이 위법한 작전을 수행하게 했다"라며 "직권을 남용해 순차적인 지시를 통해 군인들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것"이라고 말했다.  윤 전 대통령측 변호인단은 선고가 끝난뒤 "국가 방위를 위한 군사적 대응을 범죄로 규정하고 이를 이적 행위로 판단한 것은 국가의 기본 책무를 외면한 것"이라며 "특검의 기소와 이번 재판은 대한민국의 안보 역량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상처를 남긴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진은 윤 전 대통령 변호인단.[서울=뉴스핌] 박민경 기자= 2026.06.12 pmk1459@newspim.com ◆ 재판부 "계엄 위해 北 도발 유도" vs 尹 측 "군사 대응을 범죄로 규정" 재판부는 양형 이유를 설명하며 윤 전 대통령 등이 일부러 국가 비상사태를 만들려고 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일반이적 범행의 본질은 비상계엄을 선포할 수 있는 상황을 조성하기 위해 군사작전이라는 외형을 만들어 북한의 도발을 유도한 데 있다"고 밝혔다. 특히 윤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국가의 존립과 안전을 수호할 책무를 지닌 대통령이 국군통수권과 계엄선포권을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사용할 수 있다고 믿고 이 사건 작전을 승인했다"고 질타했다. 김 전 장관에 대해서는 "국방부 장관 취임 직후부터 비상계엄 상황 조성을 위해 작전을 주도적으로 계획·지시했고, 작전 실행 사실을 은폐하기 위한 범행까지 저질렀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은 국가안보와 관련된 기밀 사항을 다룬다는 이유로 그동안 공판이 모두 비공개로 진행됐다. 윤 전 대통령측 변호인단은 선고가 끝난 뒤 "국가 방위를 위한 군사적 대응을 범죄로 규정하고 이를 이적 행위로 판단한 것은 국가의 기본 책무를 외면한 것"이라며 "특검의 기소와 이번 재판은 대한민국의 안보 역량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상처를 남긴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 책임과 평가는 결국 역사의 엄정한 심판 앞에서 가려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은석 내란 특별검사팀은 지난 결심 공판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징역 30년, 김 전 장관에게 징역 25년, 여 전 사령관에게 징역 20년, 김 전 사령관에게 징역 5년을 각각 구형했다.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 등이 단순 군사작전이라는 목적을 넘어 비상계엄 여건 조성을 위한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무인기 침투를 지시했고, 평양에 무인기가 추락해 군사적으로도 해를 끼쳤다고 봤다.  pmk1459@newspim.com 2026-06-12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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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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