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 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시집 전문 출판사 '북인'에서 나온 이건행 시인의 '상사화 지기 전에' 실린 시들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읽는 것만으로도 화면 가득 장면들이 떠오른다. 그러나 한 편씩 읽을 때마다 가슴이 저릿하다.
[서울 = 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이건행 시집 '상사화 지기 전에' 표지. [사진 = 북인 제공 ] 2024.10.14 oks34@newspim.com |
'사랑에도 무게가 있을까/ 스물한 살 초겨울/ 학내시위 사건으로 쫓기던 나는/ 무작정 서울에서 공주로 향했다/ 멀리서 공주사대 정문을 바라보며/ 온종일 누군가를 찾았다/ 실루엣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슴 졸였지만/ 그녀는 흔적조차 없었다/ 시내 여인숙에서/ 강소주를 마시며 밤새 흐느꼈고/ 그것은 작별의식이 되었다/ 교사 지망생인 가난한 그녀에게/ 나는 위험인물이어서/ 무조건 떠나주어야 했다/ 그 이후로 그녀를/ 단 한 번도 찾지 않았지만/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 이렇게 시시한 사랑을/ 저울에 달면 저울추가 움직일까/ 정말 사랑에 무게가 있을까' - '사랑의 무게' 전문.
정한용 시인이 평한 대로 이 시인이 궁극적으로 드러내 보이는 것은 "삶에 대한 연민과 뭉근한 슬픔"이다. 사건의 연속인 우리의 일상에 두레박을 깊이 내려 시를 길어 올리는 것이다. 단면의 서사는 이 시인의 주된 시적 장치인 셈이다.
건물 수위 아저씨의 사건을 다루는 '완패'도 그림이 절로 그려진다. 그는 '윗놈'이 부정을 통해 100만 원을 챙기면서 자신에게는 고작 10만 원만 줘 사표를 낸다. 시인은 그를 말리면서 옥신각신한다. "나는 아저씨를 붙잡지 못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는/ 그의 고집도 꺾지 못했다/ 2패지만 숙취처럼 가시지 않는/ 그 무언가도 있어 /3패라는 걸 뒤늦게 알아차렸다"고 독백하면서 사건을 마무리한다.
이건행은 충남 부여에서 태어나 한양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임권택 감독에 의해 '창'으로 영화화 된 장편소설 '세상 끝에 선 여자'(1997)를 펴냈다. 노동자들의 애환을 그린 뮤지컬 '상대원 연가'의 모티브가 된 동명 시를 2015년 발표하기도 했다. 현재는 일간지에 '이건행 칼럼'을 연재하면서 인문학 비평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값 1만1천원. oks34@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