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선 자구 노력, 후 지원' 방침...업계 "자율 구조조정 한계"
中·日, 정부 주도 석유화학 설비 폐쇄 대책 속도감 있게 추진
[서울=뉴스핌] 정탁윤 기자 = 정부가 국내 석유화학 나프타분해설비(NCC)를 최대 25% 줄이는 등 구조조정 대책을 발표했지만, 업계와의 엇박자로 구조조정이 지연되는 것 아니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기업들이 선제적으로 NCC를 감축하면 금융과 세제 등을 지원한다는 방침이지만, 기업 간 협의만으로 매각이나 설비 통폐합 같은 구조 재편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웃 중국과 일본이 정부 주도의 석유화학 구조조정으로 효과를 거두고 있는 반면 한국 정부는 업계 자율에만 맡겨 구조조정 '속도' 경쟁에서 뒤쳐지는 것 아니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설비 통폐합을 위해선 원가와 생산량 등을 확인해야 하는데, 현행 공정거래법은 이를 부당 행위로 규제하고 있어 공정위 규제 완화가 시급하단 지적이다.
◆ 정부, '선 자구 노력, 후 지원' 방침...업계 "자율 구조조정 한계"
9일 석유화학업계에 따르면, 현재 대산 산업단지의 HD현대오일뱅크와 롯데케미칼간 NCC 설비 통합 운영을 논의중이지만 진척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두 회사는 롯데케미칼의 NCC 설비를 HD현대케미칼이 통합 운영하고, 모회사인 HD현대오일뱅크가 추가 출자하는 방안을 논의중이다.
또 울산 산단에서는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인 SK지오센트릭과 대한유화가 NCC 설비를 통합 운영하는 방안을 논의중인데, 역시 속도가 더디다. SK지오센트릭은 정유사인 SK에너지에서 나프타를 공급받아 에틸렌과 프로필렌 등을 생산한다. 여수에서는 LG화학과 GS칼텍스가 NCC 통폐합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
LG화학 여수 공장 전경 [사진=LG화학] |
업계 한 관계자는 "업계 차원의 자발적 구조조정 노력은 이미 일년 넘게 진행중인데 업체간 서로 '눈치 보기'로 속도가 나지 않았던 측면이 있다"며 "개별 기업의 대응만으론 한계가 있고 공정위 규제 완화나 특별법 제정 등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현재 석유화학 과잉설비 해소를 위한 전면 개편 작업을 진행중이다. 중국 정부는 이르면 이달 중 대책을 내놓을 예정인데, 소규모 시설은 단계적으로 폐쇄하고, 노후 설비는 업그레이드 대상으로 삼으며, 투자는 고부가 소재로 재배치하는 방안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또 에틸렌 공급 과잉으로 인해 2026년부터 신규 허가 억제 조치 발표 가능성도 거론된다.
일본은 지난 2014년 정부의 산업경쟁력강화법을 통한 구조조정이 2020년까지 진행된 바 있다. 한 지역당 NCC 1개 사만 남기고 기업간 통폐합을 유도했고, 일본 석유화학공업협회는 2020년까지 NCC 설비 20% 감축을 발표해 실질적 축소를 진행했다. 2021년 이후로도 일본 업체들의 NCC 폐쇄는 진행중이다.
◆ 中·日, 정부 주도 과잉 석유화학 설비 폐쇄 대책 속도감 있게 추진
앞서 한국 정부는 ▲과잉 설비 감축 및 고부가 스페셜티 제품으로의 전환 ▲재무 건전성 확보 ▲지역경제·고용 영향 최소화 등 '구조개편 3대 방향'을 제시했다.
더불어 ▲3개 석유화학 산업단지를 대상으로 구조개편 동시 추진 ▲충분한 자구노력 및 타당성 있는 사업재편계획 마련 ▲정부의 종합지원 패키지 마련 등 '정부지원 3대 원칙'을 확정했다.
정부는 업계 전반의 자구노력을 강조하며 '무임 승차'에는 단호하게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정부 지원으로 연명하거나 다른 기업들의 설비감축 혜택을 누리는 행위를 묵인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각 기업이 보이는 노력과 성과, 열의에 따라 정부 지원도 차등 적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석유화학업계는 지난 4년 동안 70% 넘게 오른 산업용 전기료 인하, 기업활력법 특례 적용 및 특별법 제정, 기업결합 심사 간소화, 대규모 정책금융 지원 등 구체적 지원책을 기대하고 있다.
tack@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