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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티션스토리] (상) 판사에서 여당 대표까지…'미스터 스마일' 황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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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와보니 실망도…아내 말 듣고 크게 반성"
"옛 정치, 여야 구분 없이 동료애·끈끈함 있었다"

[서울=뉴스핌] 신정인 기자 = "가난하지만 열기 있고 나라사랑을 강조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참 그리운 그 시절이 제 인생의 밑바탕이죠."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출신 황우여 상임고문은 20일 유튜브 채널 뉴스핌TV '폴리티션스토리'에 출연해 어린 시절부터 판사, 그리고 집권여당의 대표가 되기까지의 삶을 돌아봤다. 해당 방송은 지난달 30일 촬영됐다.

황 상임고문은 20년 넘게 판사로 재직하며 MBC 언론통폐합 결정을 뒤집는 'MBC 주식 반환' 판결, 국내 1호 재산분할 판결, 국민저항권을 인정한 명동 사건 등 굵직한 재판을 담당했다.

정계 입문은 이회창 당시 대법관의 제안에서 시작됐다. 황 상임고문은 "정치 가문인 아내는 결정을 따르겠다고 했지만 자녀들은 절연하듯 반대했다"며 당시의 복잡한 심정을 털어놨다. 그는 정치 초기에 실망과 우려도 컸지만 아내의 조언을 듣고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새누리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을 앞두고 당대표실을 광주로 옮기는 등 57일간 호남 곳곳에서 집중 유세를 펼쳤다. 그는 "당시 우리 당이 최초로 호남에서 두자릿수의 지지율을 기록했고, 그것이 대선 승리의 큰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황우여 국민의힘 상임고문. [사진=뉴스핌TV]

1947년 인천에서 태어난 황 상임고문은 송림초·인천중·제물포고를 거쳐 서울대 법대와 동 대학원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1969년 제10회 사법고시에 합격한 그는 서울지법·서울고법 판사를 비롯해 춘천·제주지법 수석부장판사로 재직했다. 이후 헌법재판소 헌법연구부장, 인천지법 부장판사, 서울민사지법 부장판사 등을 역임한 뒤 차관급인 감사원 감사위원을 끝으로 법관 생활을 마무리했다.

이어 황 상임고문은 1996년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선거대책위원회 의장의 비서실장으로 정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15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뒤 16대부터 19대 총선까지 인천 연수구에서 내리 당선되며 5선 의원을 지냈다.

18대 국회에서는 한나라당 원내대표로 선출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과 국회 선진화법안 등을 통과를 주도했다. 19대 국회에서는 첫 새누리당 대표를 맡았고, 박근혜 정부에서는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을 지냈다.

올해는 21대 대선 경선과 당 전당대회에서 각각 선거관리위원장을 맡았다. 현재는 황앤씨로펌 대표변호사이자 당 상임고문으로 활동 중이다.

다음은 황 상임고문과의 폴리티션스토리 인터뷰 내용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뉴스핌TV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신정인 기자, 이하 신 기자)
정치인의 인생 궤적을 돌아보는 폴리티션스토리 시작합니다. 오늘은 5선 당대표 출신 황우여 국민의힘 상임 고문님 모시고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고문님, 안녕하세요. 요즘 날이 많이 쌀쌀해졌는데 어떻게 지내셨어요?

▲(황우여 상임고문, 이하 황 상임고문)
그동안 밀려있는 프로그램이 있어서 잠깐 외국에도 갔다 오고요. 동지들이 고생하면 제가 변호사니까 찾아뵙기도 하고 그러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신 기자)
정치 후배님들도 많이 만나시나요?

▲(황 상임고문)
네, 연락 오면 제가 만나러 가고요.

-(신 기자)
네, 고문님 그럼 이제 어린 시절 이야기 좀 여쭤볼게요. 1947년 인천 송림동에서 자라셨는데 당시 어떤 꿈이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황 상임고문)
송림동이 인천에서 아주 어려운 동네예요. 인천이 그때는 아주 조그마한 도시였는데 수도국산 뭐 이러면서 많은 사람이 모여 있기 때문에 한 반이 대개 한 80명으로 12반까지 있어서 한 학년이 거의 1000명 가까이 되고. 한 학교는 5000~6000명 되는 그런 학교를 어렸을 때 다녔죠. 친구들하고 잘 지냈고 가난했지만 안전하고 화목하고 뭔가 열기가 있는 그러한 생활, 그때 당시는 나라 사랑을 굉장히 강조했어요.

예를 들면 국산품 쓰자고 하고, 교장 선생님도 말씀하실 때는 웅변조로 얘기를 하시고 굉장히 독립투사 같은 그런 분위기가 지배하고 또 이제 6.25 전반에 다니는 학교이기 때문에 천막에서 공부했는데 그래도 참 그리운 시절이었죠.

-(신 기자)
어려운 여건 속에서 서울대 법대 전공하시고 28살이라는 사실 되게 어린 나이에 판사 생활을 시작하셨잖아요. 어린 시절부터 꿈이 판사셨는지.

▲(황 상임고문)
고시 붙기는 69년도 대학교 졸업하면서 합격을 해서 군대 갔다 오니까 사법대학원 2년에 군대 갔다 오니까 5년. 그렇죠. 만으로는 한 스물일곱 정도에서 판사 시절을 시작했는데 인천이 법조 분위기가 아니에요. 고시 보고 그러는 것보다는 장사하고 특히 이공계가 강하고 그런 도시 분위기였는데 저도 그때 법대가 뭔지 모르고 갔는데 그 계기가 맨 처음에는 이제 농대 가려고요. 이공계에 가서 공부하다가 우리 교장 선생님이 '땀을 흘리는 것이 최고다'라고 해서 '유한흥국(流汗興國) 땀을 흘려야 나라가 흥한다'. 가만히 생각하니까 땀 제일 많이 나는 학과가 농과다 그래서 제가 농과를 가려고 그랬어요. 그런데 집에 농토가 없잖아요. 그때 역사 토인비 신드롬이 있어서 역사학자가 되려고 문과로 바꿨는데 아버님은 자꾸 상대를 가라고 하셨어요.

그때는 이제 은행이 취업이 제일 좋은 때니까. 그러다 보니 혼란이 생겼고, 특별히 마음도 안 정해지고. 또 특별히 잘하는 일도 없는 사람은 법대가 좋다라는 유진호 선생님의 수필을 하나 읽었어요. 그래서 법대를 가게 된 거예요. 고시가 있는지도 모르고 갔는데 제가 산 타는 걸 좋아해서 암벽 등반에 아주 매료 당해갖고 대학교 3학년 넘어까지 그러고 나니까 영장이 나오는 거예요.

급한 마음에 '아 그러면 나도 변호사 시험을 하나 따놓고 취업 걱정에서 벗어나야겠다' 이런 생각으로 그때부터 고시를 봐서 다행히 이제 졸업할 때 합격을 해서 이제 영장 기피는 안 했죠. 제가 만약에 그때 고시가 안 됐으면 저는 군대 갔다 와서 방향을 다른 걸로 바꾸려고 마음을 먹고 했는데 다행히 변호사 자격을 땄죠.

-(신 기자)
그러면 판사로는 총 몇 년을 재직하셨나요?

▲(황 상임고문)
한 20년 넘게 했죠. 부장 판사까지 했으니까요.

-(신 기자)
돌아보셨을 때 기억에 남는 일화나 이런 게 있으셨을까요?

▲(황 상임고문)
큰 재판을 많이 했는데 기억에 남는 거는 민사부장 할 때에는 MBC가 언론 통폐합을 해서 다 이렇게 묶였어요. 근데 그걸 '강압에 의해서 한 것이다'라고 해서 취소하는 소송이 들어왔어요. 제가 보니까 '이거는 좀 우리 민사법상 문제가 있다. 취소해라 다시 정당하게 수용을 하든가 뭐 다른 계약을 해라' 이런 판결을 한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MBC 사건이 그때 사회 이슈가 됐었고.

그리고 제가 가정법원에 있을 때는 재산 분할을 처음 하는 사건이 있었어요. 최초의 1호 사건이었어요. 그때 법이 바뀌어갖고 이혼할 때 위자료가 아니라 재산을 나눠가지라고 하는 게 법이었는데, 저는 남자 대학생과 여자 대학생이 결혼해 가지고 가정은 여자 대학생이, 부인이 책임지고 또 외부에서 여러 재정적으로 충당하는 건 남자가 했다고 하면 두 사람 사이에 그 재산은 공동으로 모은 것으로 합의가 된 것이라고 생각해서 (재산을) 반반씩 하라고 판결을 했어요.

그런데 이제 뒷말이 많았죠. 국제적으로는 대개 여자한테 3분의 1 주라 그러는 게 기준이었나 본데 우리는 양성평등 아니에요. 그리고 또 부부가 그렇지 않고는 누가 가정을 지키겠어요? 그때만 해도 대부분 주부들이 가정을 지키고 아기 기르고 그런 데 전념하던 시절이거든요. 그래서 이제 그 판결이 기억에 남고.

여러 사건들이 있지만 형사재판에서는 제가 국민 저항권에 대한 판단을 내린 판결이 있었어요. 명동 사건이라고 굉장히 큰 사건인데 성직자도 있고 그래서 제가 사실은 피하려다 목사님들이나 여러분들 얘기가 그냥 맡겨줬으면 하는 게 옳다 그래서 했죠.

그때 전상석 부장께서 이제 재판정이셨는데 (저항권 문제를) 한번 연구해서 써보라고 해서 제가 각종 문안을 섭렵하고 저항권 부분을 정리했죠. 그 판결이 우리나라의 최초의 국민 저항권에 대한 판결이었죠. 대법원에서도 그 부분은 받아들여지고 그랬어요.

-(신 기자)
판사로서 상당히 성공적으로 잘 하시고, 오래 하셔서 애정이 많이 생기셨을 것 같은데 정계로 넘어오셨을 때 고문님 스스로나 아니면 가족분들 우려도 있으셨을 것 같아요.

▲(황 상임고문)
원래는 교수 하라고 우리 선생님이 교수 수업을 시켰는데 판사 한 다음에는 그걸 천직으로 생각하고 판사에 충실하려고 했죠. 그런데 당시 우연치 않게 MBC 판결 같은 것이 뒷말이 있었어요. 당시 이회창 대법관께서 감사원장을 가시면서 저보고 같이 좀 가자고 그러시더라고요. 그때 아주 훌륭한 법관이셨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덕망이 높은 분이거든요.

제가 기도하고 나서는 그냥 모시고 가야겠다, 하나님의 뜻이 아닌가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했고 감사원까지 가는 것은 괜찮았는데 감사원에서도 여러 이야기가 겹치면서 결국은 이회창 감사원장이 정계에 들어오면서 또 저보고 가자고 그러셔서 그때는 좀 어떡할까 하고 고민했죠. 감사원까지만 해도 사법부지만 정계는 우리 사법관들로서는 경계를 넘어서는 거거든요.

제가 같이 하겠다고 결심을 했는데 우리 아내가 정치인 집안의 딸내미예요. 그래서 아내는 아버지 하는 걸 보면서 그렇게 결정이 된다면 자기는 따르겠다고 그랬는데 우리 애들은 아버지하고 딱 절연을 하더라고요. 아버지가 정치한다는 말을 입 밖에도 안 내놓고 그래서 큰딸이 결혼할 때 아무도 몰랐어요. 교회에서 조그맣게 모여서 결혼했는데 큰딸의 가장 친한 친구가 한겨레 신문사 기자였어요. 걔가 와보더니 '저 사람이 네 아버지냐' 그래가지고는 요만한 기사를 사후에 냈어요. 그래서 알려지게 됐죠. 그런데 애들이 아버지가 정치인이면은 어떤 그런 데 휩쓸릴까 봐 저도 애들은 자기 세계를 지킬 수 있도록 신경을 많이 썼죠.

-(신 기자)
자녀분들은 반대가 좀 있었더라도 사모님은 이제 정치 생활 하실 때 고민 상담이나 조언 같은 것도 많이 하셨겠어요.

▲(황 상임고문)
정치권에 들어와 보니 주변에 판사나 이런 고위 관료로서 대하던 사람들하고 다른 거예요.
그래 갖고 어떤 때 실망도 되고 너무 걱정도 되고요. 집에 와서 나도 모르게 좀 훌륭한 사람들하고 이렇게 해야 되는데 이런 얘기를 불만스럽게 했나 봐요.
그랬더니 우리 집사람이 성경에 다윗 임금을 따라다니던 한 300명가량, 요샛말로 하면은 불한당이나 정말 오갈 데 없는 사람 그런 사람들 얘기를 하면서 '다윗 임금은 그런 사람들하고 나중에 훌륭한 임금이 되는데 내가 볼 때는 당신 주변의 사람들 아주 훌륭하더라' 이러더라고요.

그때 크게 반성했죠. 이게 내 문제구나 하고. 그래서 주변 분들을 평하고 그러는 거를 제가 딱 금하고 '그래, 맞아. 다윗 임금과 같이 했던 사람들보다는 100배 훌륭하지 않나' 그런 생각으로 이제 마음을 바꿨고요.

우리 사모님들이 정치인들한테 큰 영향을 미쳐요. 고생하는 것도 우리가 좀 알아드리고 그래서 남편의 일에 그냥 따른다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의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서 잘 좀 대우를 해 드렸으면 하는 게 제 생각이고.

애들은 반대한다기보다도 그걸 이제 절연하고 싶어 하는 거예요. '아버지는 아버지고 우리는 우리다' 그러는데 우리 애들이 그게 좀 강해가지고요. 그런데 선거 때는 아주 열심히 도와주죠.

-(신 기자)
정치 첫 시작을 신한국당에서 하셨잖아요. 그때와 지금의 분위기는 많이 다를 것 같은데 당시에 어떠셨는지도 궁금합니다.

▲(황 상임고문)
지금은 완전히 자유롭고 선수나 이런 것이 별 의미가 없는 정치 분위기인데 옛날에는 선배들에 대한 것이 아주 엄했어요. 선수에 따라서 아주 딱 정해져 있고 그건 벌써 옛날 얘기죠. 그때는 선배들한테 배우려고 그러고 초선에는 뭘 하고 재선에는 뭘 하고 이게 다 정해져 있었어요.

그래서 그대로만 이렇게 잘 진행하면은 배울 수 있고 또 동료들도 형성이 되고 그러는 분위기고. 그때는 국회의원을 '선량'이라고 그래서 상당히 존경하는 분위기고 지도력이 부여되는 그런 시기였는데 벌써 옛날 얘기죠.

-(신 기자)
정치하시면서 어려우실 때 도움이나 조언을 받았던 정치인 분들도 있을까요?

▲(황 상임고문)
그때 당시에는 저희가 우리 당내뿐만 아니라 여야가 참 친했어요. 아주 친해서 어려운 일이거나 뭐 이렇게 의논하고 서로 의지했던 게 김영진이라고요. 해남 완도 출신 국회의원인데 나보다 선수는 한 해 빠르셨고 나중에 농림부 장관도 지내시고 그런 분인데 같은 이제 교회 장로로서 형제 같은 우애를 나누면서 우리 당과 민주당의 당론에 좀 어긋나더라도 누가 뭘 하겠다 그럴 때는 서로 도왔어요. 입장을 같이 하고 그래서 당내를 설득하면서 그때 그렇게 했습니다.

-(신 기자)
당시가 조금 더 끈끈했던 분위기였던 것 같아요.

▲(황 상임고문)
여야를 넘어서도 뜻이 맞고 올바른 일이라고 하면 마음을 합치는 의원들이 형성이 되고 그랬어요.

-(신 기자)
새누리당 대표도 역임하셨잖아요. 사실 새누리당 때도 내분이 굉장히 심하고 당이 많이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혹시 그때 힘들면서도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으시다면.

▲(황 상임고문)
새누리당 당대표를 할 때는 그때 대선을 치러야 되는 당 대표였거든요. 어려운 자리죠. 박근혜 후보가 대선 후보로 나서면서 당 대표의 최대 임무가 대선을 성공시키는 거였는데 제가 이렇게 생각하니까 핵심이 호남이 우리 당을 얼마나 인정해 주느냐일 것 같아요.

대선 기간 동안에 대표실을 광주로 옮겼어요. 그래서 광주에서 조그마한 호텔에서 머물면서 지냈죠. 57일 동안 호남을 샅샅이 다니면서 선거 유세하고 또 무슨 민원이 있으면 우리가 그때 여당이었으니까 원스톱으로 해결하고 최고위회의도 웬만하면 내려오라고 그래서 거기서 하고 이렇게 하면서 호남 분들에게 다가가려고 노력을 했는데 그래서 그때 저희가 두 자릿수의 지지를 받았어요. 최초죠.

수도권에는 호남 분들이 많이 계시잖아요. 거기서 20% 이상의 지지가 나왔다라고 저는 보는 거죠. 그것이 대선 승리의 하나의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고 또 한편에서는 호남에 대한 애정이 생기더라고요.

호남이 아주 산천 경계가 아름답고 무엇보다도 음식이 맛있어요. 그래서 음식을 너무 좋아하게 됐고 또 호남 분들이 아주 정이 많고 의리를 중요시해요. 그래서 한 번 이렇게 인연을 맺으면 아주 절대적이에요. 지금도 그분들하고 교우를 하고 이렇게 지내는데 좋은 추억이 됐죠.

-(신 기자)
고문님께서 생각하시기에 호남 분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이 있으셨는지 궁금한데요.

▲(황 상임고문)
그분들이 원하는 것이 현지인의 중용이에요. 수도권에 와있는 호남 출신 분을 장관에 앉히고 또 무슨 귀한 일을 맡기고 그러는 것도 고맙지만 현장에 있는 분들 직접 불러야 호남인을 썼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호남에서 생활하는 호남인을 발탁해 줘야죠. 그렇지 않으면 서울에 와있는, 고향만 호남인 분들만 있다면 호남분들이 '우리도 다 서울 가야 되잖아요' 이렇게 느끼거든요. 그 말은 제가 아주 뼈아프게 받아들여서 그 후에 우리 당에게 제가 '지방을 우대한다고 할 땐 그 지방에 있는 분들을 모셔서 정무직이나 당직을 드리는 게 맞다'고 얘기하죠.

-(신 기자)
고문님 혹시 별명 뭔지 알고 계세요? '어당팔'이라고 '어수룩하지만 당수가 8단'이란 별명인데 혹시 그 별명 어떻게 나오게 됐는지요.

▲(황 상임고문)
정치부 반장들이 지어준 이름이에요. 제가 당수는 모르겠지만 검도는 7단에요. 당수는 입문도 안 했는데 이제 (기자들이) 저 사람이 뭘 할까 하고 보면은 '그래도 열심히 해서 일을 해결해내는구나' 생각해서 칭찬 반 놀리는 것 반으로 지은 별명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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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임 법무장관에 민변 출신 이용철 '성남라인' [서울=뉴스핌] 박찬제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은 6일 새 법무부 장관에 이용철(66·순창) 현 방위사업청장, 국세청장에 안덕수(55·부산) 서울지방국세청장을 후보로 지명했다. 청와대 새 정무수석으로는 최인호(60·창녕) 더불어민주당 재선 의원 출신인 주택도시보증공사 사장을 임명했다. 임광현 대통령 비서실장은 이날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인사 발표 브리핑을 했다. 임 실장은 "국민의 목소리를 더 많이 듣고 소통하겠다는 의지이며 국민 삶 속에 정책 변화와 효능감이 체감될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이번 인사 방향을 설명했다. 임 실장은 이 법무장관 후보에 대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출신으로 인권 보호와 민주 가치 증진에 힘써 온 변호사"라며 "참여정부 민정수석실 민정2비서관과 법무비서관을 역임하며 반부패와 제도개혁을 주도한 바 있다"고 소개했다. 임 실장은 "법조인이면서도 구조개혁 등 다양한 행정 경험을 갖춘 만큼 새로운 형사사법 체계를 안착시키고 누구도 소외되거나 억울한 일을 겪지 않는 법무 행정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이번 인선 배경을 설명했다. 임 실장은 이 후보가 과거 대장동 사건에 연루됐다는 언론 질문에 "그 부분은 검증 때 감안됐고 자세한 건 국회 인사청문회 때 본인이 소명할 걸로 기대한다"며 "적임자를 뽑기 위해 다양한 많은 분에 대한 검증이 있었다"고 밝혔다.  안 국세청장 후보에 대해 임 실장은 "국세청 1조사국장과 징세법무국장, 납세자보호담당관 등 주요 보직을 두루 거친 세무 행정 전문가"라며 소개했다. 임 실장은 "성실하게 세금을 내는 국민이 손해 보지 않도록 악의적 탈세와 숨긴 재산은 끝까지 추적해 조세 정의를 실현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인선 이유를 설명했다. 최 정무수석 내정자에 대해 임 실장은 "부산 지역 재선 국회의원 출신으로 민주당 최고위원과 수석대변인을 역임하며 소통과 통합의 가치를 실천해 온 정치인"이라고 소개했다. 임 실장은 "우리 사회의 통합과 성장을 위해 더 낮은 자세로 여야, 국민과 소통하며 국민이 하나 되는 정치를 뒷받침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인선 배경을 설명했다.  임 실장은 "청와대 내부 인사는 검토가 되는 대로 업무의 연속성과 개혁 성과, 국민 체감을 위해서 필요한 경우에는 적당한 시점에 인사를 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pcjay@newspim.com 2026-11-06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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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칼 최대주주 오른 호반건설…항공업 진출? [서울=뉴스핌] 송현도 기자 = 호반그룹이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측을 0.11%p(포인트) 차로 제치고 한진칼 최대주주(지분율 20.69%)에 오르면서 호반건설의 지분 매입 의도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단순 투자라는 공식 입장과 달리, 건설업 불황 속 한진칼 지분이 그룹의 재무적 가치를 뒷받침하는 핵심 자산으로 자리 잡은 데다 과거 금호산업 인수전부터 이어진 항공업 진출 구상에도 다시 힘이 실릴 수 있기 때문이다. ◆ 분양 반토막·PF 대위변제 덮은 6152억 평가차익… 호반의 '손익 방어막' [AI그래픽=송현도 기자] 6일 건설업계 등에 따르면 호반건설이 주택·건설 경기 침체 속에서도 수천억원을 투입해 한진칼 지분을 확보한 배경에는 재무적 실익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진칼 주가 상승에 따른 대규모 평가이익이 건설업 불황으로 악화한 그룹의 실적을 보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호반건설의 2025년 연결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연결 매출액은 1조2326억원, 영업이익은 1361억원으로 전년(매출 2조3706억원, 영업이익 2716억원) 대비 각각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주력 사업인 분양수익이 1조1476억원에서 2531억원으로 급감한 영향이 컸다. 영업활동 현금흐름도 4728억원 적자로 돌아섰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보증 의무에 따라 4395억원을 대위변제하면서 2381억원의 기타대손상각비를 인식하는 등 재무 부담도 커졌다. 올해 2월에는 대위변제에 따른 구상채권과 상계하는 방식으로 대구 황금동 주상복합 용지를 2750억원에 취득하기도 했다. 이 같은 본업 부진을 상쇄한 것은 한진칼 지분에서 발생한 평가이익이다. 취득원가가 6966억원인 한진칼 지분의 장부가액은 지난해 말 1조5544억원으로 늘었다. 호반건설은 이를 통해 한 해 동안 6152억원의 금융자산 평가이익을 인식했다. 영업이익이 큰 폭으로 감소했음에도 당기순이익은 4752억원으로 전년(2657억원)보다 78.8% 증가했다. 100% 자회사인 호반호텔앤리조트도 비슷한 구조다. 본업 영업이익은 182억원에 그쳤지만, 보유 중인 한진칼 주식(장부가액 5902억원)에서 2267억원의 평가이익이 발생하면서 당기순이익 1872억원을 기록했다. 호반호텔앤리조트는 이를 바탕으로 모회사 호반건설에 1000억원의 현금배당을 결의하며 자금 공급 역할도 했다. 결국 한진칼 지분은 호반그룹의 실적 방어와 현금 확보에 기여하는 핵심 자산으로 자리 잡았다. 향후 경영권 분쟁 가능성이 이어지면서 한진칼 주가가 추가 상승할 경우 평가이익 확대는 물론 그룹의 순이익과 배당 여력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 '집중투표제' 무기 쥔 호반… 이사회 진입 시 한진 경영권 영향 호반이 내년 3월 정기주총에서 이사회 진입에 성공할 경우, 단순 주주를 넘어 한진그룹 지배구조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한진칼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한진칼은 올해 3월 정기주총에서 상법 개정에 맞춰 정관 제30조의 '집중투표제 배제 조항'을 삭제했다. 집중투표제란 주주총회에서 2명 이상의 이사를 선임할 때, 주주가 1주당 선임할 이사의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받고 이를 특정 후보 1명에게 몰아주거나 나누어 투표할 수 있는 제도로, 내년 3월 주총이 한진칼에 집중투표제가 의무 적용되는 첫 무대가 된다. 내년 3월 20일 임기가 만료되는 사외이사는 배성례(ESG경영위원회·보상위원회 위원장), 송백훈(분리선출 감사위원 겸 감사위원장), 홍동표(감사위원 겸 독립이사후보추천위원장) 위원 등 3명이다. 특히나 분리선출 감사위원 표결에서는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합산 3%로 제한하는 강화된 '3% 룰'이 적용된다. 오는 12월 31일 주주명부 폐쇄일 기준 최대주주가 되는 쪽이 의결권에서 불리해지는 구조다. 조원태 회장이 예고대로 12월 중 지분 0.49%를 추가 매수해 최대주주를 탈환하면 조 회장 측 전체 의결권은 3%로 묶이는 반면, 2대 주주가 되는 호반 측은 계열사별로 나눠 총 6.32%를 행사할 수 있다. 호반 입장에서는 감사위원 표결의 실리를 챙기기 위해 연말까지 조 회장의 최대주주 복귀를 용인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일반 사외이사 선임에서도 호반이 주총 6주 전(내년 2월 중순)까지 보유 목적을 경영참여로 바꾼 뒤 집중투표제를 신청해 특정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면 이사회 진입 가능성이 높아진다. 호반 측 인사가 이사회와 감사위원회에 1석이라도 진입하면 상법상 회계장부 열람권과 주요 안건 의결권을 바탕으로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통합 자금 지원, 자회사 부동산 매각, 배당 정책 등에 관여할 수 있다. 나아가 호반호텔앤리조트(리솜리조트)와 한진칼 산하 호텔·관광 계열사(칼호텔네트워크, 한진트래블) 간의 사업 시너지나 자산 매각 협상을 요구할 기반도 확보하게 된다. 반면 한진칼은 지난해 8월 보유 자사주 44만44주(0.66%)를 사내근로복지기금에 전량 출연해 현재 방어에 쓸 수 있는 보통주 자사주가 3주뿐이다. 올해 1월 자회사 칼호텔네트워크가 그랜드하얏트인천 웨스트타워를 2100억원에 매각해 한진칼 본사 현금성자산(단기금융상품 포함 3201억원)은 늘어났지만, 회사 자금으로 자사주를 사들여 방어에 나설 수는 없어 조 회장 개인과 우호 세력의 자금 부담이 커지는 상황이다. ◆ 금호산업 인수전부터 이어진 항공업 진출 시도… 산은 지분 매각이 승부처 재계와 투자은행(IB) 업계에서는 호반의 목표가 단순 차익 실현을 넘어 한진그룹 경영권 인수에 맞춰져 있다는 시각이 나온다. 김상열 호반그룹 창업주는 지난 2015년 아시아나항공의 모회사였던 금호산업 인수전에 단독 응찰하며 항공업 진출을 시도한 바 있다. 당시 채권단과의 가격 이견으로 무산됐지만, 이후 리솜리조트와 퍼시픽랜드를 인수해 레저 사업을 확장했고 2022년 사모펀드 KCGI로부터 한진칼 지분을 사들이며 항공·레저 수직계열화를 추진했다. 주택 사업에 편중된 그룹의 포트폴리오를 바꿀 카드로 한진칼을 낙점했다는 평가다. 내년 3월 주총에서는 조 회장 측과 델타항공, 한국산업은행(10.58%) 등 우호 지분이 과반에 육박해 당장 경영권 확보가 쉽지 않다. 한진칼 시가총액이 적정 가치(3조3000억원 추산)를 웃도는 12조3000억원대까지 올라, 장내에서 지분 1%를 추가 확보하는 데 1230억원이 드는 점도 부담이다. 호반건설의 지난해 말 연결 현금 및 단기유동성 금융자산이 1조1916억원 수준이지만, 단기금융부채 역시 1년 새 679억원에서 5172억원으로 늘어 장내 매수를 지속하긴 어렵다. 결국 향후 승부처는 항공 산업 구조 개편이 끝난 뒤 시장에 나올 산업은행의 한진칼 지분 10.58%다. 대한항공은 올해 5월 아시아나항공 흡수합병을 결의한 데 이어 8월 12일 소규모합병 승인 이사회 결의를 완료하며 연말 통합 항공사 출범을 앞두고 있다. 내년 3월 저비용항공사(LCC) 3사 통합까지 마무리되면 산은이 지분을 보유할 정책적 명분은 사라지고 공적자금 회수 절차가 진행된다. 산은은 2020년 11월 체결한 투자합의서에 따라 의무 위반 시 5000억원의 위약벌을 부과할 담보로 조원태 회장의 한진칼 주식 385만8869주(약 5.78%)에 근질권을 설정해 두고 있으며, 유사시 조 회장 지분까지 묶어 제3자에게 팔 수 있는 동반매각요구권과 동반매도참여권을 보유하고 있다. 호반이 20%대 지분을 바탕으로 이사회에 진입해 경영에 관여하다가 향후 산은 지분 10.58% 인수전에 참여해 이를 확보할 경우, 지분율을 31% 이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산은 지분 인수나 경영권 확보가 여의치 않더라도, 과거 대우건설·금호산업 사례에서 보듯 지분 가치를 높인 뒤 조 회장 측 우호 세력에게 경영권 프리미엄을 얹어 블록딜로 넘기는 출구 전략을 택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dosong@newspim.com 2026-11-06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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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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