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부, 현대건설과 협상 거절하더니 결국 22개월 연장
'자기모순' 비판에 "현실적으로 고려한 것"
정책 일관성 논란에 재입찰 여부도 '불투명'
[서울=뉴스핌] 정영희 기자 = 가덕도신공항 부지조성공사의 공사 기간이 22개월 연장되는 방향으로 일정이 재조정됐다. 정부는 연약지반 계측 기간을 추가 반영했다고 설명했지만, 업계에서는 사실상 현대건설이 이전부터 주장한 일정에 뒤늦게 맞춘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따라 재입찰 흥행 여부가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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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덕도신공항 부지조성공사 변경 내용 [그래픽=AI 활용] |
◆ "이상적 공기에 치우쳤다" 국토부 뒤늦은 자성…"책임은 글쎄"
21일 국토교통부와 가덕도신공항건설공단은 가덕도신공항 부지조성공사 공기를 기존 84개월에서 106개월로 늘리기로 했다. 당초 우선협상대상자였던 현대건설과 결별한 주된 이유가 공기에 대한 입장 차이였음을 고려한 결정으로 해석된다.
가덕도신공항 공사는 부산 강서구 가덕도 일대 666만9000㎡에 활주로와 방파제 등을 포함한 공항 시설 전반을 건설하는 사업이다. 지난해 국토부가 경쟁입찰을 진행하면서 4차례 유찰을 겪다가 수의계약으로 전환, 현대건설 컨소시엄을 우협으로 선정했다.
현대건설은 올 4월 말 국토부가 입찰 공고상 제시한 공기인 84개월보다 2년 긴 108개월로 기본설계도서를 제출했다. 최대 깊이 60m에 달하는 대심도의 연약 지반을 매립해야 하는 공항 부지 특성상 지반 개량을 위해 해상 구조물인 케이슨을 설치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소요되는 시간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토부는 현대건설에 기본설계 보완을 요구하면서 이를 준수하지 않으면 재입찰을 진행해야 한다고 엄포를 놨다. 현대건설도 그 이상 기간을 줄이긴 무리라는 입장을 표하며 6월 사업을 포기했다. 이후 정부는 사업 재개 방안을 모색해왔다. 공항 건설과 운영 과정에서 '안전 확보'가 가장 중요하다는 판단 아래 입찰 방식과 공기에 대한 내부 기술검토, 전문가 자문회의 등을 진행했다.
그렇게 나온 공사기간은 106개월이다. 연약지반의 안정화가 공항의 안전한 건설·운영을 위해 핵심이라는 전문가 의견을 반영했다. 시공 방법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만 입찰 단계에서는 충분한 기간을 부여했다는 설명이다.
업계에선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현대건설이 제시했던 공기와 2개월 차이라 사실상 당시 입찰 조건을 수용했다면 최소 반 년의 사업 지연이 없었을 것이란 주장이다. 정부 또한 이 부분은 인정했다. 김정희 가덕도신공항건립추진단(추진단) 단장은 "2029년으로 정해진 개항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상당히 도전적인 공기를 설정했던 건 맞다"며 "결과적으로 빠듯했고 무엇보다 업계가 이 조건을 얼마나 받아들일지 잘 계산하지 못한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결과적으로 이상적인 공기에 치우쳐 있었고 이는 업계가 실제로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과 차이가 있었다"며 "공사용 도로나 항행시설 등도 기본계획에 존재했지만, 크리티컬 패스(전체 공사 일정에서 가장 오래 걸리는 작업 순서)도 실제 난이도에 비해 다소 낙관적으로 봤기에 이제는 건설업황 악화·여건 변화 등을 생각해서 더 현실적인 공기를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공기를 조정한 가장 큰 이유는 안정화 시점에서의 계측 기간 연장에 있다. 기본계획에서는 성토가 끝난 직후를 안정화 시점으로 추정했지만, 이번에는 성토 이후 안정화가 실제로 완료됐는지 여부를 확인한 뒤 다음 단계로 넘어가게 했다. 이 과정에서 늘어난 기간은 13개월(53→66개월)이다.
이 또한 추산한 것이라 단언은 어렵다. 침하나 배수 속도는 공사 과정에서의 여러 조건에 따라 달라지기에 현재로써는 추정만 가능하다. 현대건설 또한 기본설계도서를 제출하면서 안정화 계측 기간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 단장은 "국토부와 현대가 사용한 해석 모델·추정 방식이 달라 제시한 기간이 달랐던 것"이라며 "전문가 의견을 반영했을 때 18개월은 과한 측면이 있었다"고 말했다.
홍복의 추진단 건설팀장은 "연약지반 안정화 기간은 수치해석 프로그램으로 계산하는데 기본계획 당시 수치 모델로는 충분히 안정화가 가능하다는 결과가 나왔고 그에 근거해 발주했다"며 "현대건설은 같은 기초자료를 다른 모델로 해석해 더 긴 기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고, 전문가 자문 결과 양쪽 모두 이론적으로 완전히 틀렸다고 보긴 어렵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말했다.
공사 지연에 따른 책임을 묻자 "구체적으로 어떤 손해가 발생했는지 특정할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홍 팀장은 "개항이 늦어지면 국가 차원에서 손해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대형 인프라 사업에서 이런 절차·조정은 어느 정도 불가피한 과정"이라며 "현대건설은 이를 감수하고 설계에 참여한 부분이기 때문에 모든 피해를 한쪽 책임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와 공단은 이번 재추진 계획을 통해 적기에 개항해 전체 편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책임 있는 대응이라고 본다"고 부연했다.
◆ 개항 2035년으로 미뤄져…재입찰 속도가 핵심
공기 문제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과제는 산적해 있다. 가덕도신공항은 활주로 부등침하 확률이 높은 어려운 공사다. 개항 지연 가능성이 여전한 상황이다. 가덕도신공항보다 규모가 작은 울릉공항도 공사상 난이도와 기후 등 다양한 변수를 이유로 개항을 2년 미룬 바 있다.
정부는 더 이상의 지연은 없을 것으로 확언했다. 홍 팀장은 "이 공사는 설계·시공 일괄입찰(턴키) 방식으로, 국토부는 106개월 안에 완공해야 한다는 최소 요구조건만 제시하고 구체적인 설계·공법은 입찰자 책임"이라며 "어떤 공법을 쓰든 시간만 지키면 되고 공사를 빨리 끝낼수록 건설사도 비용 대비 이익이 커지기에 불가능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개항 목표가 2029년에서 2035년으로 밀리면서 부산시 반발도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부산 시민단체들은 가덕도신공항 건설과 관련해 정부의 미온적 대응을 강하게 비판했다. 정부도 이를 인지하고 있으나 우선 공기를 늘린 뒤 그 필요성을 차차 설명해 나가겠다는 입장이다.
김 단장은 "부산시도 사업 재추진의 시급성과 안전한 공항 건설 필요성, 업계 수용성 보장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지만 개통이 상당 기간 미뤄진 만큼 불만과 우려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은 알고 있다"며 "업체 선정 이후 부산시·공단·국토부가 함께 계측 결과에 따라 공정 연계·단축 방안을 모색하고, 안전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부산시 의견을 적극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사업자 선정도 문제다. 108개월의 공기를 주장했던 현대건설은 당시 지자체와 시민단체로부터 무책임하다며 비난을 받았다. 추가 공사비 요구 꼼수와 특혜 의혹이 불거졌고 사익을 위해 의도적으로 개항을 지연시키고 있다는 주장도 고개를 들었다. 현대건설 측은 "공항을 이용하게 될 국민의 안전과 국책사업의 성공만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책임 있는 판단이었다"고 호소했으나 우협 지위 포기를 이유로 공공입찰 참가 자격 제한(부정당업자 지정) 위기에까지 처했다.
이처럼 한 차례 폭풍이 불었던 국책사업장에 입찰하기란 상당히 부담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김 단장은 "업계 수용성과 전문가 의견을 충분히 반영한 조건을 제시했기 때문에 업계에서도 긍정적으로 검토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설명회 등을 통해 추가 소통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전과 같은 '줄줄이 유찰'이 다시 현실화되더라도 긴급 수의계약을 체결하거나 우선협상대상자 지정 시점을 앞당기긴 어렵다. 입찰은 '국가계약법'상 관련 규정을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박성출 가덕도신공항건설공단 건설본부장은 "공단이 임의로 법을 뛰어넘는 의사결정을 하긴 어렵다"며 "대형 공사는 최소 2회 이상 입찰 시도 후 우선협상대상자 지정 절차를 고려하는 것이 관행"이라고 말했다.
chulsoofriend@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