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반도체 구조, 이번 사이클서 성과로 증명할까
[서울=뉴스핌] 김정인 기자 = 생성형 인공지능(AI) 확산으로 메모리 반도체 수요 구조가 빠르게 재편되면서, 삼성전자의 경쟁력 역시 새로운 시험대에 올랐다. 인공지능(AI) 서버가 고대역폭메모리(HBM)와 더블데이터레이트(DDR)5, 저전력DDR(LPDDR)까지 대량으로 흡수하는 구조가 굳어지며 메모리 가격은 급등하고 있지만, 이 흐름이 삼성에게 곧바로 '수혜'로 이어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AI 메모리 쏠림 속에서 범용·모바일 D램 비중이 높은 삼성의 포트폴리오가 다시 주목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완제품 사업까지 함께 보유한 구조는 가격 상승의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는 조건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AI 메모리 사이클이 삼성이 '메모리 강자'라는 타이틀을 넘어, 통합 반도체 구조를 실제 성과로 연결할 수 있을지 가늠하는 분기점이 됐다고 보고 있다.
◆ HBM 이후의 선택…삼성, 'AI 메모리 다각화' 집중
23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HBM에서 SK하이닉스에 주도권을 내줬다는 평가 이후, AI 메모리 경쟁의 전장을 넓히는 전략을 택했다. HBM 중심 전략에서 벗어나 DDR5, LPDDR, 그래픽D램(GDDR), 저전력서버메모리소캠(SOCAMM)까지 포괄하는 방식이다. AI 서버 수요가 학습에서 추론으로 이동하면서, 초고대역폭뿐 아니라 전력 효율과 비용 균형을 갖춘 메모리 수요가 동시에 늘고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LPDDR 시장에서는 삼성의 경쟁력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최신 아이폰17에 들어가는 LPDDR5X에서 최대 60~70% 수준의 물량을 확보하며 사실상 제1공급사로 올라섰다. 애플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3곳에서 LPDDR을 조달하고 있지만, 최근에는 삼성 비중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전해진다.
배경에는 생산능력과 품질 안정성이 동시에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이 AI 서버용 HBM에 생산능력을 집중하는 사이, 삼성은 상대적으로 범용·모바일 D램 생산 여력을 유지해 왔다. 여기에 애플이 요구하는 '제품 편차 최소화', 장시간 동작 안정성,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와의 정합성까지 충족할 수 있는 양산 역량을 갖춘 점도 삼성 쏠림 현상을 키웠다는 평가다.

이 같은 수급 불균형은 계약 구조 변화로도 이어지고 있다. 최근 오포 등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삼성전자에 최소 4~6개 분기 물량을 보장해 달라는 장기공급계약(LTA)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분기 단위 거래가 일반적이던 관행이 흔들릴 만큼, LPDDR 확보 자체가 전략적 변수로 떠올랐다는 의미다.
◆ '강점'이 곧 '부담'…삼성 내부의 이중 구조
다만 이 지점에서 삼성의 구조적 특성이 다시 시험대에 오른다. 메모리 가격 급등은 반도체를 파는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에는 분명한 호재지만, 같은 메모리를 사서 스마트폰을 만들어야 하는 디바이스경험(DX)부문에는 부담으로 작용한다. 삼성은 메모리 공급사이면서 동시에 최대 수요자라는 이중적 위치에 놓여 있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삼성의 경쟁력을 단순히 '메모리 잘 파는 회사'로만 평가하기 어렵다고 본다. LPDDR, DDR5 등에서 점유율을 높이는 것이 곧바로 그룹 전체의 이익으로 직결되는 구조는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메모리 가격 상승 국면에서는 내부적으로 수익과 비용이 엇갈리는 긴장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같은 구조적 긴장은 실제 내부 거래에서도 감지된다. 업계에 따르면 DS 부문은 최근 모바일경험(MX)사업부가 요청한 모바일 D램 LTA를 받아들이지 않고, 분기 단위 계약을 통보한 것으로 전해진다. MX사업부가 1년 이상 장기 계약을 긴급 타진한 것은 모바일 D램 가격이 올 초 대비 두 배 이상 뛰는 등 가격 상승세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 '수혜론' 아닌 '검증론'…이번 사이클의 본질
결국 업계에서는 이번 AI 메모리 사이클을 단순한 실적 반등 국면으로 보지 않는다. AI 서버가 HBM과 DDR5, LPDDR, GDDR까지 동시에 흡수하는 구조 속에서 삼성은 가장 넓은 메모리 포트폴리오를 보유한 기업이지만, 이 같은 폭넓음이 곧바로 경쟁력 회복으로 이어진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다. 메모리 공급사이면서 동시에 완제품 제조사라는 삼성의 구조적 특성이 오히려 성과를 가르는 변수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관건은 이번 AI 메모리 사이클이 삼성전자에게 '추격자'라는 평가를 벗어나는 분기점이 될 수 있느냐다. 삼성전자의 AI 메모리 전략 성과가 향후 ▲엔비디아 등 핵심 고객사 내 공급 비중 ▲차세대 플랫폼 채택 여부 ▲양산 안정성과 수익성으로 평가받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HBM 이후 삼성은 DDR5, LPDDR, GDDR, 서버용 저전력 메모리까지 경쟁 전선을 넓혔지만, 이 전략이 옳았는지는 아직 결과로 증명되지 않았다"며 "이번 사이클에서 삼성의 메모리 포트폴리오가 실제 시장 지배력과 수익성으로 이어진다면, AI 메모리 경쟁 구도에서의 평가도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kji01@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