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을 깊이 있게 이해한다는 일은 언제나 눈에 보이는 '지리'의 경계를 넘어, 그 땅이 품고 있는 '의제(Agenda)'를 읽어내는 일에서 출발한다. 각 도시와 지역은 그들만의 고유한 역사적 상처와 현재의 당면 과제, 그리고 미래를 향한 가능성을 층층이 담고 있다.
이러한 의제는 딱딱한 행정 용어에 갇힌 것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의 평범한 일상과 정체성 속에 스며 있는 숨결과도 같은 것이다. 나는 여러 해 동안 이러한 지역적 의제들을 예술적 언어로 치환하고 풀어내는 프로젝트를 꾸준히 진행해 왔다. 이번 칼럼은 지역의 특수한 의제를 미디어 전시라는 입체적인 형식으로 풀어낸 프리존(Free-Zone)의 도시, '김포'에 관한 기록이다.
우연한 기회에 인연을 맺게 된 김포문화재단과 수년간 다양한 기획 작업을 함께 수행하며, 나는 이 도시가 품고 있는 독특한 지형적·역사적 조건을 점차 깊고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김포는 국토 분단이라는 현대사의 비극이 만들어낸 깊은 상흔 위에 놓인 도시이자, 그 비극이 남긴 특수한 공간 구조를 일상의 풍경 속에서 묵묵히 감내하며 살아가는 지역이다.

특히 남과 북이 공동으로 이용하는 수역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 '프리존(Free-Zone)'은 김포만이 지닌 독보적인 지형적 특색이자, 우리 사회에서 아직 충분히 발화되지 않은 중요한 서사였다. 김포는 이 프리존을 통해 파주의 DMZ와는 또 다른 결의 방식으로 분단의 현실을 몸소 품고 있으며, 이 독특한 경계의 이야기를 세계에 알리고자 하는 의지를 문화적 실천을 통해 꾸준히 이어오고 있었다.
이러한 치열한 문제의식은 자연스럽게 하나의 대규모 전시 기획으로 응축되었다. 전시 『다양성: 존재와 존재 사이에서』는 단순히 작품을 나열하는 주제 전시를 넘어, 김포라는 지역이 지닌 고유한 의제를 감각적인 문화적 경험으로 전환하고, 시민들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인식의 틀을 제안하고자 한 시도였다.
김포는 북한과 지척에서 인접한 국경 도시이며,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프리존'이라는 금단의 선을 품은 유일한 지역이다. 이 프리존은 파주의 DMZ와 유사한 비무장 지대의 성격을 공유하지만, 고정된 육지가 아닌 '부단히 흐르는 물' 위에 존재한다는 점에서 한국의 모든 국경 중 가장 이례적이고 특이한 형태를 띤다.
고정된 철책으로 막힌 선이 아니라, 조수간만의 차에 따라 일렁이며 흐르는 강 위에 설정된 이 경계는 분단이 결코 단단히 봉인된 화석화된 선이 아님을 말해준다. 오히려 그것은 끊임없이 흔들리고, 끊임없이 재사유되어야 할 유동적인 조건임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바로 이 지점에서 『다양성: 존재와 존재 사이에서』의 기획이 출발했다.
이 전시는 경계를 나누고 가르는 이분법적 논리를 반복하기보다, 그 경계 사이에서 발생하는 미묘한 관계와 긴장, 그리고 그 틈새에서 피어나는 공존의 가능성을 질문하고자 했다. 김포가 지닌 프리존은 단절의 상징이자 동시에 보이지 않는 연결의 잠재성을 품은 역설적인 공간이며, 전시는 그 모순적인 상태를 예술이라는 은유의 언어로 가시화하려는 간절한 시도였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나는 김포가 안고 있는 국경의 문제를 단순한 정치적·영토적 갈등의 프레임이 아니라, 디아스포라적 관점의 이해로 풀어가야 할 인류학적 갈등이자 공존으로 향하는 긴 여정으로 바라보았다. 이는 한국 사회가 이미 다문화·다정체성 사회로 급격히 전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내면에 여전히 완고하게 남아 있는 인식의 간극과 문화적 충돌, 그리고 국경이 드리운 보이지 않는 그림자를 지역적 맥락에서 다시 사유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다양성: 존재와 존재 사이에서』는 바로 이러한 근원적인 질문들을 김포라는 구체적인 장소의 맥락 위에 올려놓고, 분단 이후의 삶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또 어떤 방식으로 서로를 긍정하며 함께 살아갈 수 있을지를 관람객과 함께 치열하게 고민하는 장이었다.
전시는 디아스포라(Diaspora), 이주(Migration), 다문화(Multiculture), 국경(Border)이라는 네 가지 핵심 키워드를 축으로 삼아 세계관을 확장했다. 김포라는 도시는 이 네 가지 거대 담론을 담아내기에 매우 상징적이고 적절한 지점이다. 남북의 접경지라는 긴장의 최전선에 놓여 있으면서도, 동시에 산업 단지를 중심으로 세계 각지의 이주민들이 활발히 유입되는 역동적인 공간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복합적인 지리적·문화적 조건을 전시의 핵심 동력으로 삼아, 김포의 대표적인 네 공간—애기봉 평화생태공원, 김포 아트빌리지, 김포 아트센터, 포지티브 스페이스 766—을 하나의 '열린 플랫폼'으로 유기적으로 연결했다. 관 주도의 공공 공간과 민간의 자율적인 상업 공간이 경계 없이 참여함으로써, 시민들이 일상 속 도시 곳곳에서 자연스럽게 전시를 경험하고 사유할 수 있는 구조를 완성하고자 했다.

이 전시에는 31명의 국내외 작가들이 참여하여 저마다의 시선으로 주제를 변주했다. 그들은 디아스포라가 지닌 깊은 감정적 지층부터 문화적 혼종성, 파편화된 기억의 조각들, 그리고 국경이 만들어낸 단절과 경계의 정치학 등을 다층적인 미디어 언어로 드러냈다.
특히 김포 아트빌리지 아트센터에서 선보인 'Glocal; 김포' 섹션에서는 김포의 들녘과 강가에서 직접 채집한 소리, 환경의 데이터, 그리고 접경지 특유의 미묘한 긴장감을 담아낸 작업들을 통해 '글로벌한 주제 속의 구체적인 지역성'을 시각화하는 데 주력했다. 참여 작가들은 김포가 지닌 독특한 지리적 긴장을 현대인의 정체성, 이동의 자유, 문화적 경계의 충돌이라는 문제와 자연스럽게 연결해냈으며, 관람객들은 작품을 매개로 지역이 가진 현실적 이슈를 더 넓은 국제적 맥락과 인류 보편의 가치 속에서 바라보는 귀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전혜연은 여성인권·미디어아트·도시교류를 통해 예술을 사회변화의 도구로 만드는 행동하는 큐레이터다. 2014년 글렌데일 '위안부의 날 특별전'을 시작으로 소녀상 지키기 국제 연대전을 이끌었고, 2017년부터 글렌데일시 공식 행사로 승격, 8개국 100여 명 작가가 참여했다. 국내에선 《여성인권이야기: 행진》을 성북, 부산, 보은, 고성, 포항, 인천, 김포, 파주 등 지방정부와 함께 이어가고 있다. 2018 평창올림픽 미디어아트 기획을 계기로 공공 미디어아트의 사회적 소통 가능성을 열었고, 수원문화축전·국립극장 등에서 지역 역사와 장소성을 담은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김포-글렌데일 교류전은 '경계'와 '자유'를 주제로 일상 공간에 공공미술을 설치했으며, 2024년에는 김포의 지역 의제를 다룬 '다양성'이란 전시로 네 지역을 아우르는 28명 작가 참여한 대규모 미디어아트전도 기획했다. 최근에는 사이버불링을 여성인권 의제로 삼아 국회 논의·전시·온라인 캠페인을 준비 중이다. 그는 예술이 비판에서 그치지 않고 실질적 대안과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믿는다. 현 귀주사범대 동아시아미디어센터 책임연구원, 비영리 단체 문화유목민 대표, 전시 기획사 SR Comm 대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