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현석 컬처네트워크 대표, 여전한 것을 여전하게 '스테디 나주' 프로젝트 진행
1913송정역시장·무등산 브루어리·아일랜드 리서치 이어 로컬생태계 확장 주도
"내가 사는 동네를 조금이라도 더 좋게 만든다면, 그건 충분히 해볼 만한 도전"
[서울 =뉴스핌] 정상호 기자 = 지역의 일상과 시간이 누적된 골목에서 새로운 산업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사람이 있다. 광주의 오래된 역전시장 '1913송정역시장'을 전국적인 지역재생 모델로 키워냈고, 무등산 브루어리와 제주 아일랜드 리서치, 스테디 나주 프로젝트로 로컬 브랜드 생태계를 확장해 온 윤현석 대표다.
그는 자신을 거창한 도시전문가가 아니라 "지역에서 일을 새로 만드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온라인 플랫폼에서 시작한 작은 실험은 전통시장, 양조장, 패션 브랜드, 한방 웰니스 음료, 타운형 리조트 기획으로까지 이어지며 '로컬'의 의미를 완전히 새로 쓰고 있다.
윤현석 대표가 지난 10여 년 동안 붙들고 온 키워드는 '지역에서 일 만들기'다. 그에게 '일'은 단순한 직업이나 고용이 아니라, 도시가 사라지지 않게 붙잡아두는 업(業)과 산업의 구조를 뜻한다.
그는 지방 소도시의 위기를 '일이 사라지는 과정'으로 본다. 청년 유출, 고령화, 수도권 집중, 문화적 격차 등의 문제를 종합해 보면 결국 그 도시를 떠나는 이유는 '업이 부재하거나 쇠퇴했기' 때문이다.
윤 대표는 "기존의 일자리를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다운 새로운 산업과 일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것이 1913송정역시장, 무등산 브루어리, 아일랜드 리서치, 스테디 나주를 관통하는 공통분모다.
뉴스핌은 5일 [헬로 로컬크리에이터] 아홉번째 방송으로 '로컬을 산업으로 바꾸는 사람' 윤현석 컬처네트워크 대표를 만났다. 로컬전문가 채지민 성신여대 교수가 진행을 겸해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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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현석 대표 |
윤현석 대표의 첫 실험 무대는 오프라인 골목이 아니라, 온라인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이었다. 그는 지역의 문화기획 비즈니스를 '지역답게, 하지만 온라인답게' 풀고 싶다는 생각으로 광주 지역 최초의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을 만들었다.
2013년 당시 대부분의 문화 콘텐츠는 특정 공간에 모여야만 경험할 수 있는 '장소 집약형' 모델에 머무르고 있었다. 스마트폰과 온라인 플랫폼이 이미 소통의 주 무대가 된 상황에서, 지역 문화만 여전히 오프라인에 갇혀 있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고 한다.
그 플랫폼에는 지역 창작자들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올리고, 불특정 다수의 시민들이 소액 후원으로 참여했다. 그러나 곧 플랫폼이라는 비즈니스의 구조적 한계와 마주했다.
윤 대표는 "아이디어와 기획의 실험에는 성공했지만, 플랫폼을 '산업'으로 키우기 위한 토양이 지역에는 충분치 않았다"고 말한다. 이 경험은 그를 자연스럽게 온라인에서 오프라인 도시 공간으로 이동하게 만든 계기가 됐다.
오프라인 첫 실험은 '1913송정역시장'이었다. 2015년부터 2016년 9월까지 약 1년 10개월 동안 진행된 이 프로젝트는 중앙정부, 지방정부, 대기업, 로컬 플레이어가 유기적으로 엮인 민관협력 도시재생 모델이었다.
당시 정부는 '창조경제'를 기치로, 각 지역의 거점 도시에 대기업 계열사를 매칭해 지역 혁신을 돕는 정책을 펼쳤다. 광주의 파트너는 현대자동차그룹이었고, 그 중 브랜드·마케팅 역량을 가진 현대카드가 전통시장 활성화 프로젝트에 합류했다.
이 프로젝트가 기존 전통시장 사업과 달랐던 점은 단순히 시장 매출을 올리자는 차원을 넘어 '권역 전체를 하나의 상품'으로 설계했다는 데 있다. 바로 '상권이 아니라 에어리어를 상품처럼 기획한 것'이었다.
윤 대표는 1913송정역시장을 "상품처럼 기획된 장소"라고 표현한다. 정책 사업이지만, 민간 브랜드 전략의 언어로 풀어낸 점이 독특한 지점이다.
그는 먼저 '상인들과 친해지기'에 나섰다. 상인들과 매일같이 밥을 같이 먹고, 집에 초대받아 술자리를 함께 했다. 그래서 가족 같은 정서적 신뢰를 쌓아갔다.
그는 "아들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조카 정도는 되어야 말이 통하겠다 싶었다"고 회상한다. 이 비공식적인 시간들이 이후 디자인·콘텐츠 변화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낸 보이지 않는 인프라였다.
프로젝트 시작 당시 1913송정역시장은 점포의 약 3분의 1이 비어 있을 만큼 쇠퇴한 상태였다. 그러나 리모델링과 청년 상인 유입, 스토리텔링, 환경 개선이 결합되면서 상황은 급변한다.
방문객은 과거 대비 20배 수준으로 늘었고 공실률은 0%에 가까워졌으며 청년 상인과 기존 상인이 공존하는 구조가 자리 잡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시장이 '전국 전통시장 활성화의 템플릿'처럼 인식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각 지자체의 벤치마킹 방문이 줄을 이었고, 1913송정역시장이라는 이름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가 됐다.
윤 대표는 "어떤 하나의 히트 아이템 때문에 성공했다기보다 디자인, 동선, 제품 퀄리티, 상인 인큐베이팅 등 세부 전략을 촘촘히 맞춘 결과"라고 정의한다.
1913송정역시장 프로젝트가 마무리될 즈음 윤 대표는 또 다른 한계를 느꼈다. 프로젝트는 대개 기간과 예산이 정해져 있고, 일정이 끝나면 '이후의 책임'은 다시 공공이나 시장에 넘어가는 구조였다.
윤 대표는 "진짜 지역다운 유형의 상품을 직접 만들고, 그 상품 자체가 도시재생의 엔진이 되는 모델을 해보고 싶었다"면서 로컬 브루어리, 무등산 브루어리를 선택한다.
그는 왜 하필 '술'을 선택했을까. 윤 대표는 "지역의 이야기를 오래, 깊게 담아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상품은 술"이라고 말한다.
스카치 위스키는 스코틀랜드. 보르도 와인은 프랑스 보르도. 사케는 일본 특정 지역. 이처럼 각각의 술 이름에는 곧 지역 이름과 농업, 양조 산업의 역사가 함께 각인되어 있다.
광주와 전라남도 역시 전국적인 쌀·곡물 생산지이며, 이를 활용한 주류 브랜드는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또한 전통주보다 맥주가 더 캐주얼하고 접근성이 넓다는 점도 선택의 이유였다.
양조장 입지는 광주 충장로와 아시아문화전당 인근 원도심과 맞닿은 동명동으로 정했다. 과거 일본인 상인과 고위 공무원들이 거주하던 동네로, 60년~80년대 건축물과 근대가옥이 밀집한 구역이다.
이곳의 1963년 지어진 한옥 폐가를 골라, 양조장과 탭룸으로 리노베이션 했다. 오래된 골목의 정서와 새 산업인 크래프트 비어를 결합해, 동네 전체를 '크래프트 타운'으로 상상한 것이다.
이 공간 선택과 리노베이션 과정 자체가 하나의 스토리가 되어, 광주 원도심 재생의 또 다른 앵커 시설 역할을 하게 됐다.
브랜드 네이밍 과정에서도 많은 고민이 있었다. 그는 "그냥 '광주 맥주'라고 부르면 너무 평면적이고, 5·18과 민주화 운동 이미지를 그대로 쓰는 건 확장성에 제약이 있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택한 키워드가 무등산. 광주의 상징이자, 자연·역사·시민 정신을 모두 응축해 부를 수 있는 이름이었다.
'Drink Local, Only Gwangju'라는 슬로건 아래, '무등산 브루어리'라는 광주다우면서 세계 시장에서도 각인 가능할 이름을 얻었다.
무등산 브루어리에서는 기획, 제조, 유통, 판매, 마케팅까지 전 과정을 직접 수행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멋져 보이지만, 그는 이 경험을 통해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고 말한다.
한 조직이 전 과정을 모두 통합 관리하면, 오히려 역량 분산과 비효율이 커진다. 제조·유통에 집중하거나, 브랜드·마케팅에 집중해 파트너와 협업하는 구조가 장기적으로 더 확장 가능하다.
이 깨달음은 이후 아일랜드 리서치와 스테디 나주에서 '선택과 집중+지역 파트너십' 전략으로 이어진다.
제주 프로젝트의 출발점은 관광객 감소와 산업 구조의 취약성이 드러났던 시기였다. 농업·어업·관광서비스에 크게 의존하던 제주는 특정 외부 수요가 줄어들면 곧바로 연쇄 타격을 받는 구조를 갖고 있었다.
윤 대표는 여기서 '제주다운 제조업, 특히 라이프스타일 기반의 패션 산업'에 주목했다.
사람들은 흔히 동문시장을 제주 대표 재래시장으로 떠올리지만, 실제로 제주 원도심의 심장부는 무근성 일대 서문시장이다. 이 서문시장 2층에는 한때 200여 개에 달했던 한복집과 포목점이 있었다.
지금은 10여 팀만 남았지만, 이들은 40년 이상 재단·재봉 기술을 유지해 온 장인들이다. 윤 대표는 "이 노하우와 감각이 사라지기 전에, 제주다운 옷을 함께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다.
이 협업을 통해 탄생한 브랜드가 바로 '아일랜드 리서치'다. '섬을 연구한다'는 이름처럼, 제주의 자연환경·기후·일상을 해석한 디자인을 옷으로 구현하고자 했다.
그가 떠올린 레퍼런스는 파타고니아, 아크테릭스 같은 특정 자연환경과 결합한 글로벌 아웃도어 브랜드였다. 아일랜드 리서치는 '전문 산악 장비'가 아니라, 제주를 여행하고, 제주에서 살아가는 일상을 위한 옷에 초점을 맞췄다.
윤 대표는 "제주를 찾는 사람들이, 서울 브랜드가 아닌, 제주의 시간과 풍경이 담긴 옷을 입고 다니길 바랐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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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현석 대표가 5일 뉴스핌TV에서 채지민 교수와 대담을 하고 있다. |
현재 윤 대표의 주요 무대는 전라남도 나주다. 그는 "나주를 잠재력이 가장 높은 도시 중 하나"라고 평가한다. 전주와 함께 전라도라는 이름을 구성했던 고도(古都), 고대 마한·삼한 시대부터 고려·조선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거점 도시였던 나주는 오랜 번영 이후 쇠퇴를 겪었다.
혁신도시 정책이 적용됐지만, 여전히 원도심은 비어 있고 시간이 멈춘 듯한 인상을 풍긴다.
윤 대표는 나주의 정체성을 요약하는 키워드로 '스테디니스', 즉 꾸준함과 지속성을 들었다.
수백 년간 이어져 온 나주 배 농업. 100년 넘게 대를 이어온 나주 곰탕집. 종가에서 350년째 이어지는 씨간장 문화. 고택 남파고택에서 지금도 생활하는 종부의 일상 등. 이 도시에는 '한 번 만든 것을 아주 오래, 성실하게 이어가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프로젝트 이름을 '스테디 나주'로 짓고, '베스트셀러가 아니라 스테디셀러를 만드는 도시'라는 브랜드 스토리를 입혔다. NAJU의 N은 Native, Natural의 N이기도 하다. 토착성과 자연스러움을 동시에 담은 언어적 장치다.
스테디 나주의 앵커 공간인 남파고택에는 350년 된 씨간장이 있다. 수백 년 전 선조가 담근 간장을 계속 이어 덧부어 쓰는 방식으로, 그 발효균과 맛의 계보가 지금까지 살아 있다.
곰탕 한 그릇을 위해 48시간 이상 끓이고, 김치를 3~4년 묵혀야 제대로 된 맛으로 인정받는 문화. 홍어를 삭히는 시간에 담긴 인내와 고집. 윤 대표는 이런 태도를 '나주의 라이프스타일'로 본다. 효율과 속도를 중시하는 시대와 정반대에 서 있는 듯하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이 도시의 가치가 또렷해진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나주를 장인의 도시, 크래프트 시티로 정의하고, 장인정신을 기반으로 한 브랜드와 상품, 공간을 발굴·기획하는 일을 하고 있다.
스테디 나주는 이름만 프로젝트가 아니다. 그 안에는 실제 비즈니스 모델이 촘촘히 설계되어 있다.
그 중 하나가 동신대학교 한의과대학과 함께 진행 중인 나주 배 기반 한방 음료 개발이다. 나주 배는 이미 기관지·소화·피로 회복 등에 좋다는 인식을 갖고 있지만, 제품화·브랜딩 수준은 아직 높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배, 도라지, 홍삼, 더덕, 생강, 맥문동 등 한약재를 조합해, 기력 회복과 면역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프리미엄 건강 음료를 공동 연구·개발 중이다. 시제품 출시 후에는 효능 검증, 기준 강화, 해외 수출, K-웰니스·K-헬스 산업과의 연계를 전망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대학은 '연구역량을 가진 지역의 인적 자원'으로, 로컬 브랜드는 '시장과 스토리를 가진 실행 주체'로 서로를 보완한다.
이제 윤 대표의 시선은 5년 후를 향한다. 한 도시의 에어리어 전체를 '리테일+리조트+웰니스'로 엮는 것이다.
나주 읍성 안에는 비어 있는 한옥과 오래된 주택이 많다. 그는 이 공간들을 리노베이션해, 스테디 나주가 만드는 제품과 경험을 중심으로 숙박, 스파, 힐링, 건강 프로그램이 결합된 타운형 웰니스 리조트, 일종의 '리테일 코(RETail Co.) 모델'을 구상하고 있다.
단일 대형 리조트 건물이 아니라 동네 곳곳에 흩어진 한옥과 건물이 각각 스테이, 라운지, 체험 공간이 되어 방문객이 마을 자체를 리조트처럼 걷고 머무는 구조다.
한방 음료, 로컬 디저트, 전통 식문화, 장인 공방, 러닝·자전거 라이프스타일 등이 하나의 서사로 묶이는 도시 단위의 브랜드 경험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윤 대표는 로컬 프로젝트에서 대학과 청년의 역할을 매우 중요하게 본다.
성신여자대학교와 함께 한 나주 방식 아카데미 프로그램에서 수도권 청년들은 처음 접하는 지방 도시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고 나주 청년들은 "우리가 부족한 게 아니라, 이미 많은 것을 갖고 있다"는 자부심을 얻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제안 중 하나는 영산강 러닝·라이딩 문화를 관찰해 나주 농산물을 활용한 에너지바를 기획한 작업이었다. 도시의 라이프스타일과 농업 자원을 연결한 발상으로, 윤 대표는 "짧은 기간이지만 가장 직관적이고 확장성 있는 아이디어였다"고 평가했다.
그는 "지금 세대의 청년들은 자기 생각을 분명히 말하고, 어른들에게도 기죽지 않고 질문을 던진다"며 "이들이 오래된 도시의 아집과 관성을 깨는 창조적 균열을 만들어준다"고 말한다.
"창업은 무섭고, 변수도 많고, 실패할 확률도 높다. 하지만 세상에 없던 일을 내 손으로 끄집어내는 경험은 그 모든 위험을 감당할 만큼의 가치가 있다. 게다가 그 일이 내가 사는 동네를 조금이라도 더 좋게 만든다면, 그건 이미 충분히 해볼 만한 도전이다."
윤현석 대표는 '지역의 재료와 자원을 바탕으로 이전에 없었던 방식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비즈니스로서 지속 가능하게 유지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지역의 산업과 삶은 더 오래, 더 단단하게 이어질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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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지민 성신여대 교수 |
뉴스핌TV로 만나는 [헬로 로컬크리에이터]는 로컬크리에이터들의 활동을 지방소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실질적인 방안 중 하나로 보고, 전국의 로컬크리에이터를 만나 로컬콘텐츠를 통한 청년 창업과 생태계를 진단한다. 나아가 지역에 특화된 콘텐츠를 가진 기업가형 소상공인, 글로컬상권으로의 성장성을 들여다보고 있다.
진행은 채지민 성신여대 교수가 맡고 있다. 채 교수는 현재 성신여자대학교에서 새로 신설된 지역개발 및 로컬디자인 전공과정에서 골목경제 및 로컬크리에이터, 지역가치 창조론 및 실습, 지역 및 공간정책 실습 등 현장중심형 실습 위주의 교육프로그램을 강의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지역개발 및 로컬콘텐츠 분야의 전문인재 양성 및 지역창작자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uma82@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