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오영상 기자 = 2025년 일본 증시가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닛케이평균주가가 사상 처음으로 5만 엔을 돌파한 올해 일본 주식시장은 단순한 지수 상승을 넘어 기업 간 '서열 교체'라는 구조적 변화를 보여줬다.
인공지능(AI) 수요 확대와 미국 관세 리스크에 대한 대응력이 기업 가치를 가른 한 해였다.
30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닛케이 업종 분류 36개 업종 가운데 업종별 시가총액 1위가 4개 업종에서 바뀌었다. 특히 통신, 비철금속, 기타 제조, 소매 등 익숙한 분야에서 변화가 두드러졌다.
◆ 통신의 왕좌, NTT에서 소프트뱅크로
가장 상징적인 변화는 통신업계다. 소프트뱅크그룹(SBG)이 5년 만에 NTT를 제치고 시가총액 1위를 탈환했다. 비결은 '통신'이 아니라 AI 투자였다.
소프트뱅크는 오픈AI를 비롯한 글로벌 AI 기업에 투자하는 비전펀드가 성과를 내며, 2025년 4~9월 순이익을 전년 대비 2.9배로 키웠다. 시가총액은 1년 새 90% 급증했다. 반면 전통 강자인 NTT는 이동통신 시장 경쟁 심화에 발목이 잡히며 제자리걸음을 했다.
네트워크 기업보다 AI 생태계의 지분을 쥔 기업이 더 높은 평가를 받은 셈이다.

◆ 후지쿠라, 9위→1위...광섬유가 주인공이 된 이유
비철금속 제품 업종에서는 더욱 극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후지쿠라가 업계 1위로 뛰어올랐다. 2023년만 해도 9위였던 기업이다.
배경은 명확하다. 생성형 AI 확산으로 데이터센터 투자가 급증하면서, 광섬유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기 때문이다. 후지쿠라는 이 흐름을 정확히 탔고, 시가총액은 2년 만에 2.7배로 불어났다.
반도체와 AI 서버, 데이터센터라는 글로벌 메가 트렌드가 전통 제조업의 가치까지 바꿔놓은 사례다.
◆ 아식스의 반전 "운동화 회사가 관세를 이겼다"
기타 제조 업종에서는 아식스가 반다이남코홀딩스를 제치고 처음으로 1위에 올랐다. 미국 관세라는 악재 속에서도 실적을 키웠다는 점에서 시장의 평가가 높다.
북미 시장에서 러닝화 판매가 호조를 보였고, 저가 모델을 줄이는 대신 브랜드력을 강화했다. 특히 방일 외국인에게 인기 있는 '오니츠카 타이거'가 실적 개선의 효자 역할을 했다.
증권가에서는 "매 분기 실적이 시장 예상을 뛰어넘는다"는 평가가 나온다. 가격이 아니라 전략으로 관세를 넘은 사례다.
구조조정과 M&A도 주가를 움직였다. 다이세이건설은 해양 토목 강화를 위해 동종 업체를 인수하며 순위를 5위에서 3위로 끌어올렸다. 렌고는 향후 5년간 M&A에 대규모 투자를 예고하며 제지업계 2위로 올라섰다. 닛폰익스프레스홀딩스도 부동산 매각과 인력 구조조정을 통해 물류업계 순위를 끌어올렸다.

◆ 이온, 처음으로 세븐&아이를 넘다
소매업에서는 의미 있는 기록이 나왔다. 이온이 세븐&아이홀딩스를 처음으로 추월해 업종 2위에 올랐다. 1위는 여전히 패스트리테일링(유니클로)이다.
이온은 자회사 완전 편입 등 지배구조 개편에 속도를 냈다. 투자자들은 이를 '변화의 신호'로 받아들였다. 한국 투자자에게도 익숙한 대형 유통사의 체질 개선이 주가를 끌어올린 사례다.
닛케이주가는 연말 들어 5만 엔 부근에서 숨 고르기에 들어갔지만, 시장의 시선은 이미 2026년으로 향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AI·반도체·조선 등 17개 전략 산업에 투자를 집중하겠다고 밝히면서, 업종 내 또 다른 '점프업'이 예고되고 있다.
AI는 이제 테마가 아니라 기준이 됐다. 누가 이 흐름을 자기 사업으로 흡수하느냐에 따라, 일본 증시의 다음 주인공이 결정될 전망이다.
goldendog@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