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피하고 사회·경제 분야 '새 협력모델 모색'
조세이 탄광 논의는 과거사 문제 새로운 접근법
다음 달 '다케시마의 날' 행사 日총리 결정 주목
[서울=뉴스핌]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일본 총리의 고향이자 지역구인 나라(奈良)현에서 열린 13일 한·일 정상회담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총리는 양국 간 갈등을 초래할 수 있는 현안들을 부각시키지 않고 '미래지향적 협력 관계'를 강조했다. 전례 없는 국제정세 불안정으로 다양한 공통적 고민을 안고 있는 한·일 양측이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고조되는 현 시점에서는 양국 간 협력이 가장 절실하다'는 공감대를 이룬 결과다.
이번 회담은 이 대통령 취임 후 5번째이자 다카이치 총리 취임 이후 두 번째다. 특히 이 대통령과 다카이치 총리가 지난해 10월 31일 경주에서 첫 회담을 가진 이후 석 달도 지나지 않아 다시 만난 것은 이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총리가 부활시킨 '한·일 정상 셔틀외교'가 일본 정권 교체 이후에도 변함없이 유지되고 사실상 정착 단계로 접어들었음을 보여준다.

이번 회담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양측이 정치·안보적인 무거운 주제보다 경제·사회 분야에서 호혜적 결과를 낳을 수 있는 '새로운 협력 모델'을 찾는 데 주력했다는 점이다.
양국 정상은 미래산업 분야인 인공지능(AI)과 지식재산 보호 협력을 위한 실무 협의 등을 이어가기로 했으며, 민간 교류 확대를 위해 출입국 간소화 및 수학여행 장려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또한 한국이 초국가 스캠범죄에 대한 국제적 공조를 위해 발족한 협의체에 일본이 참여하기로 했다. 양국이 정치적 부담 없이 호혜적 성과를 거둘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함으로써 현재의 우호적 흐름을 이어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 같은 기조에 따라 민감한 주제는 원론적 차원에서 짚고 넘어가는 수준으로 우회했다. 한·일 간 최대 갈등 요소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독도 문제 등은 공동언론발표문에 등장하지 않았다. 단기간에 해결할 수 없는 근본적 문제들이므로 먼저 다른 분야에서 협력을 확대하고 신뢰를 쌓아 긍정적인 여건을 조성하겠다는 '장기적 접근법'에 양측이 공감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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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산 수산물 수입 규제에 관한 문제가 발표문에 포함되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앞서 이 대통령은 전날 일본 NHK방송 인터뷰에서 이 문제에 대해 "대한민국 국민의 정서적 문제와 신뢰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단기적으로는 (해결이 어렵다)"며 "장기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언급한 바 있다. 서둘러 해결하려다가 셔틀외교 복원으로 이뤄진 우호적 흐름을 망칠 수도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양국 간 과거사 문제가 전혀 거론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날 양국 정상이 조세이 탄광 희생자의 유해 공동 발굴하고 신원확인을 위한 DNA 감식을 추진하기로 한 것은 과거사 문제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이다. 과거사 문제에서 법적으로 충돌하고 있는 책임 인정과 배상 요구 등에서 벗어나 '인도주의적 차원의 협력'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변화를 모색한 것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 중 하나다.
중국과 일본 강하게 충돌하고 있는 불안한 동북아 정세 속에서 이 대통령이 한·중·일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도 눈에 띈다. 중국과 일본이 서로 한국을 '우군'으로 끌어들이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거나 불개입을 선언하지 않고 현 정세를 풀어나가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정부의 외교소식통은 "중·일 갈등은 한국의 외교적 입지를 넓혀주는 효과도 있지만 갈등이 심화되고 동북아 정세가 불안정한 상태로 빠지면 중·일은 물론 한국도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위기 의식의 발로"라고 지적했다. 최근 중국이 일본에 대해 희토류 수출을 통제한 것이 공급망 연쇄 충격 효과로 인해 한국에게도 영향을 주는 것처럼 중·일 충돌 격화 및 장기화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다른 외교소식통은 "한국이 중·일 갈등을 중재할 능력은 없다"면서 "한국을 매개로 소통하면서 충돌을 완화하고 갈등을 희석시킬 수 있도록 양쪽 모두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고 '더 이상의 상황 악화는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일이 갈등 요소를 부각시키지 않고 일단 덮어두는 방식을 취함으로써 한·일 관계의 현상 유지는 어느 정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덮어두었을 뿐 해결된 것이 아니어서 언제든 다시 돌출할 수도 있다. 첫 번째 고비는 다음 달 22일 일본 시마네현이 주최하는 '다케시마(竹島·일본이 주장하는 독도의 명칭)의 날' 행사다.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 시절 이 행사에 지금보다 중앙정부 파견 인사의 급을 높여 각료급을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만일 다카이치 총리가 총재 시절 언급을 실행에 옮긴다면 한·일 관계는 빠르게 냉각될 가능성이 크다. 다카이치 총리가 국내정치적 불이익을 감수하고 자신의 주장에서 한 발 물러날 수 있는지 여부가 당분간 한·일 관계 흐름을 좌우할 전망이다.
opento@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