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라스케비치 "사람들의 생명과 이들을 기리는 일이 메달보다 중요"
[서울=뉴스핌] 남정훈 기자 = 우크라이나 스켈레톤 대표 블라디슬라프 헤라스케비치가 '추모 헬멧'을 착용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출전이 무산됐다.
IOC는 12일 공식 발표를 통해 "헤라스케비치가 IOC의 선수 표현의 자유 지침을 준수하지 않았다"라며 "이에 따라 2026 동계올림픽 참가가 허용되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문제의 핵심은 그가 착용한 헬멧이었다.

헤라스케비치는 러시아와의 전쟁으로 희생된 우크라이나 선수 24명의 얼굴을 새긴 헬멧을 쓰고 올림픽 연습 주행에 나섰다. 헬멧에는 10대 역도 선수 알리나 페레후도바를 비롯해 권투선수 파블로 이셴코, 아이스하키 선수 올렉시이 로기노프, 배우이자 운동선수였던 이반 코노넨코, 다이빙 선수 겸 코치 미키타 코주벤코, 사격 선수 올렉시이 하바로프, 무용수 다리아 쿠르델 등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이들의 모습이 담겼다.
헤라스케비치는 "헬멧 속 인물들 중 일부는 내 친구였다"라며 "올림픽 무대에서 전쟁의 현실을 알리겠다는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번 행동이 정치적 시위가 아니라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IOC의 판단은 달랐다. IOC는 올림픽 헌장 제50조 2항을 근거로 들었다. 해당 조항은 '어떠한 종류의 시위나 정치적, 종교적, 인종적 선전은 올림픽 경기장과 관련 시설에서 허용되지 않는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IOC는 헬멧에 새겨진 이미지가 정치적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며 착용을 불허했다. 다만, 검은 완장 등 일반적인 추모 방식은 허용할 수 있다는 절충안을 제시했다.

공식 훈련을 마친 뒤 헤라스케비치는 실격 가능성까지 감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이 헬멧이 규정을 위반하는지 명확하지 않다"라며 "나는 이 선수들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목숨을 바쳤고, 그 희생 덕분에 내가 이 자리에 설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올림픽 메달은 어린 시절부터 꿈꿔온 목표지만, 지금과 같은 전면전 상황에서는 메달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라며 "사람들의 생명과 이들을 기리는 일이 메달보다 훨씬 중요하다"라고 덧붙였다.
논란은 경기 직전까지 이어졌다. 헤라스케비치는 예선 1차 주행에서 11번째로 출전할 예정이었지만, 커스티 코번트리 IOC 위원장이 직접 코르티나 슬라이딩 센터를 찾아 설득에 나섰다. 코번트리 위원장은 "원래 이곳에 올 계획은 없었지만, 직접 만나 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라며 마지막까지 교착 상태를 풀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양측은 끝내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코번트리 위원장은 "그의 경기를 정말 보고 싶었지만 해결책을 찾지 못해 안타깝다"라며 감정이 북받친 모습을 보였다고 로이터 통신은 전했다. 결국 헤라스케비치는 "실격 처리됐고, 올림픽에 출전할 기회를 잃었다"라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선수단과 헤라스케비치는 이번 참가 금지 및 실격 조치에 대해 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항소할 계획이다.
한편, 스켈레톤 1·2차 시기는 현지시간 12일, 3·4차 시기는 13일 열린다. 헤라스케비치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12위, 2022년 베이징 대회에서는 18위를 기록한 바 있다.
wcn05002@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