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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석의 컬처스] 광화문 한글 현판 '병기' 공론화...기억과 변화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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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김용석 선임기자 = 서울에 사는 A는 광화문 주변을 늘 다니지만 현판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어느 날 부산에서 친구 B와 논쟁이 붙었다. A는 "한자"라고 말했다. 하지만 친구 B는 자신이 "직접 여러번 봤다"며 "광화문 현판은 한글"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론은 어떻게 났을까. 부산에서 온 친구 B의 말이 맞는 것으로 정리됐다.

예전의 일이다. 우스갯 소리지만 광화문은 늘 우리 곁에 있으면서도 제대로 보지 못할 때가 많다. 광화문 현판 문제는 수십 년을 흘러왔다. 그리고 지금, 또 다른 국면을 맞았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12일 기자 간담회에서 광화문 한글 현판 병기 구상을 다시 한번 설명했다. "한자 현판을 유지하면서 그 아래 한글 현판을 병행하는 아이디어가 나왔고, 그 부분에 대해 의견을 나눠본 적이 없던 것 같아 공론화하겠다"는 것이 요지다.

광화문 3층 누각 처마에 설치된 기존 한자 현판은 그대로 두고 2층 누각 처마에 한글 현판을 새로 설치한 예시 그림. [자료= 광화문훈민정음체현판 설치 국민모임]

최휘영 장관은 1월 20일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에게 "기존 3층 누각 처마의 한자 현판은 그대로 두고, 그 아래 2층 처마에 한글 현판을 추가 설치하는 방안"을 보고했다. 과거 한글단체와 전 장관이 제기했던 '한자 현판을 한글로 교체하자'는 주장과 달리, '병기'라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한 것이다.

최 장관은 "문화재 원형을 지키는 것과 한글이라는 시대적 요구를 포용할 수 있는 대안"이라고 말했다. 과거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이 '교체'안을 막을 때 내세운 논리가 '원형 보존'이었는데, 그 원칙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한글을 추가하는 절충안을 꺼낸 셈이다.

한글 현판 논의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가장 최근인 2024년 유인촌 문체부 장관이 "개인적으로는 당연히 광화문 현판은 한글로 쓰여야 한다. 다시 한번 논의에 불을 지펴보겠다"며 한글 현판'교체'를 제안했다. 하지만 최응천 국가유산청장은 "1865~1868년 경복궁 중건 당시 걸려 있던 현판에 가깝게 고증해야 한다는 것이 문화유산 복원의 원칙"이라며 정면으로 맞섰고, 결국 논의는 무산됐다.

이번에 최휘영 장관의 '병기'안이 힘을 받는 것은 허민 국가유산청장의 태도 변화에서도 감지된다. 허민 청장은 국무회의에서 "한글을 세계화하자는 취지와 그 상징성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문체부와 국가유산청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은 처음이다.

다만 문화유산계 일각에서는 반론이 나온다. "전통 건축에서 현판은 건축의 일부이자 '한 개'여야 한다. 원형에 없던 한글 현판을 물리적으로 추가하는 순간, 이미'원형 변형'이 시작된다. 원칙이 없어진다"는 지적 등이 많다.

광화문 현판 논란의 출발점은 1950년 6·25 전쟁이다. 원래 현판이 전쟁 중 소실되면서, 이를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수십 년째 이어지고 있다.

1968년, 박정희 정부는 전쟁으로 파괴된 광화문을 철근 콘크리트로 복원하면서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쓴 한글 현판을 걸었다. 한글 현판 시대는 그렇게 40여 년간 이어졌다.

한글이 한자로 바뀐 것은 2010년이다. '광화문 제자리 찾기' 사업의 일환으로 그해 8월15일 광복절에 맞춰 새 목조 현판이 공개됐다. 이때 걸린 것이 1865년 경복궁 중건 당시 영건도감 제조를 맡았던 임태영의 글씨를 디지털 복원한 한자 현판이었다. 그러나 불과 석 달 만인 2010년 11월 현판에 균열이 발생하며 부실 복원 논란이 일었다.

2014년 5월에는 두번째 균열이 발견됐다. 이후 2017년경 미국 스미소니언박물관이 소장한 1893년 촬영 광화문 사진이 학계에 주목받으면서 현판 색상에 대한 논란이 본격화됐다. 기존의 흰 바탕에 검은 글씨가 원형이 아니라 검은 바탕에 금색 글씨가 맞다는 것이었다.

2023년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광화문 월대 및 현판 복원 기념행사. [사진=뉴스핌 DB]

현재 광화문에 걸린 현판은 이러한 고증을 반영해 2023년 10월15일 새로 제작·설치된 것이다. 검은 바탕에 금박 글씨로 다시 만든 이 현판은 광화문 월대 복원과 함께 공개됐다.

이미 확정된 정책은 아니다. 최 장관은 "국민 의견 수렴과 절차를 거쳐 추진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공청회, 시민위원회, 전문가 위원회 구성 등 구체적인 공론화 방식은 아직 정하지 않았다. 최 장관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세운상가 앞 종묘에 대해선 "광화문 한글 현판은 원형을 보존한 상태에서의 추가·병기"이고 "종묘 개발은 원형 그 자체에 대한 변형"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런 가운데 BTS(방탄소년단)가 컴백 무대로 광화문을 선택, 지구촌에 생중계될 예정이다. 경복궁에서 출발해 한자 현판이 걸린 광화문과 월대를 지나 광화문광장으로 이어지는 '왕의 길' 무대를 구상 중이다.

광화문이 다시 한번 전세계의 시선을 받게 될 그 무대 위, 현판에는 어떤 글자가 걸려 있을까?

fineview@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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