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학 리스크에도 중동 포기 못 하는 건설업계…"대체 불가 시장"
[서울=뉴스핌] 송현도 기자 = 해외에 진출한 국내 건설사들의 장기 미수금이 7000억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대형 현장이 집중된 중동 지역에서 미수금이 대거 발생하며 재무 리스크가 부각되고 있다.
그럼에도 업계는 대형 플랜트 등 대체 불가능한 초대형 수주 물량 때문에 중동 시장 철수를 고려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 해외 장기 미수금 7천억 절반 중동서 발생…이라크·이란 등 집중

13일 건설업계 등에 따르면 국내 건설사들의 1000만달러(약 150억원) 이상 해외 장기 미수금 발생 현장 총 11건 중 절반가량이 중동에서 발생한 것으로 파악된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이종욱 국민의힘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6월 말 기준 한국 기업이 해외 건설공사를 수행하고 1년 이상 대금을 받지 못한 장기 미수금은 총 4억9492만달러(약 7283억원) 규모다.
이 중 3분의 2에 달하는 3억4393만달러(약 5061억원)가 중동 및 인근 지역에서 발생했으며, 이란에서의 미수금만 약 3339만달러(약 491억원)가 넘는 것으로 확인됐다. 5년 이상 대금을 받지 못한 악성 미수금 역시 전체의 절반에 가까운 2억1003만달러(약 3090억원)에 육박한다.
특히 1000만달러 이상의 대규모 미수금이 발생한 주요 국가별 현장은 이라크 3건, 이란 2건, 리비아 1건, 인도 1건, 베트남 1건, 적도기니 2건, 스리랑카 1건 등으로 파악됐다. 특히 이라크와 이란 두 국가에서만 5건이 집중되며 중동 지역에 쏠린 재무 리스크가 두드러졌다.
우선 이란의 경우 이란 정유공장 개선 공사(약 1297만달러, 약 190억원)와 A건설사의 국영 건설회사 발주 정유시설 증설 프로젝트(약 1085만달러, 약 159억원) 현장 등으로, 지난 2018년 미국의 대이란 경제 제재가 부활하면서 공사가 전면 중단됐던 여파가 크다. 다만 A 건설사 관계자는 "손실 처리를 해 미수금이 현재는 남아있는 것은 없다"고 전했다.
단일 국가로 가장 많은 3건의 장기 미수금이 잡힌 이라크는 B 건설사가 주도하고 있는 초대형 신도시 개발 프로젝트가 대표적인 것으로 파악된다. 이라크 정부의 내전 및 유가 하락에 따른 재정난 여파로 대금 지급이 장기간 지연되면서 대규모 공사비가 미수금으로 누적됐다.
이 밖에도 중동 인접국이자 범중동권으로 분류되는 북아프리카 리비아(1건)에서는 C 건설사가 내전의 여파에 따라 10년 가까이 공사를 멈춘 상태다. 해당 건설사는 내전 등에 따른 공사 중단으로 발주자와 기한 연장 및 보상을 협의 중이다.
아시아 및 아프리카 지역에서도 굵직한 미수금이 적체돼 있다. 적도기니(2건)와 스리랑카(1건) 역시 현지 국가의 채무불이행(디폴트) 사태 등 국가적 재정 악화가 겹치며 국내 중견 건설사들의 인프라 공사 대금 회수가 막힌 것으로 분석된다.
◆ 지정학 리스크에도 중동 포기 못 하는 건설업계…"대체 불가 시장"
수천억원대의 돈이 묶이는 치명적인 재무 리스크와 전쟁, 제재 등 지정학적 위기 속에서도 국내 건설사들은 여전히 중동 시장을 핵심 타깃으로 삼고 있다. 국내 부동산 경기 침체와 원자재 가격 상승,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위기 등으로 내수 시장이 한계에 부딪힌 상황에서, 대규모 수익을 담보할 초대형 수주처로서 중동을 대체할 시장이 전 세계적으로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A 건설사 관계자는 "건설사 입장에서 중동 지역을 제외하면 고도의 기술력이 요구되는 석유화학이나 대형 플랜트 사업이 대규모로 발주될 수 있는 시장 자체가 많지 않다"며 "지정학적 요인이나 국제 제재 등으로 인해 중동 시장의 문이 닫히는 것은 국내 대형 건설사들의 매출 구조에 치명적인 타격이 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나아가 장기 미수금이라는 회계상의 숫자가 곧바로 기업의 유동성 위기나 부실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업계의 해명도 뒤따른다. 겉보기에는 수천억원의 대금을 떼인 악성 사업장처럼 보이지만, 현장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실질적인 재무 타격이 통제 가능한 수준이거나 사업 정상화를 목전에 둔 곳들도 적지 않다.
B 건설사 관계자는 "과거 이라크 정부의 자금 부족으로 공사가 일시 중단되며 회계상 장기 미수금으로 공시된 것은 맞지만, 실제로는 착공 초기부터 대규모 선급금을 충분히 확보해 공사비를 선제적으로 충당해왔기 때문에 회사가 입은 실질적인 재무적 리스크나 타격은 크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이어 "해당 신도시에 대한 현지 국민들의 주거 만족도가 워낙 높아 이라크 정부 측에서 먼저 공사 재개를 지속적으로 요청해 오고 있다"며 "현재 사업 재개를 위한 업무협약(MOU)을 성공적으로 체결하고 이라크 국무회의의 최종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대기 상황이다. 최근의 중동 지정학적 불안 요인이 진정되고 정부 승인이 떨어지면 곧바로 정상 궤도에 오를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회계상 수치로만 악성 미수금으로 묶여 있을 뿐, 사실상 언제든 재개될 수 있는 진행형 프로젝트라는 설명이다.
이종욱 의원은 "해외 건설사업은 국가 간 정치 및 외교 상황에 따라 대금 회수 리스크가 언제든 커질 수 있는 특수성을 지니고 있는 만큼, 정부 차원의 관리와 대응이 필요하다"며 "특히 중동 지역 정세 불안이 장기화될 가능성에 대비해 우리 기업의 미수금 관리와 회수 지원 대책을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dosong@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