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핵심 요약
beta- 전혜연 대표가 19일 베이징 798 예술특구 상업화와 예술 생태 변화에 대해 왕춘천 교수를 인터뷰했다
- 왕 교수는 관광지화·임대료 상승으로 예술 담론과 실험성이 사라지고 젊은 작가들이 외곽으로 밀려나는 구조를 지적했다
- 798은 자본과 대중화 속에서도 왕 교수의 비영리 포럼 등 남은 예술가들의 저항으로 예술적 정체성을 지키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AI가 자동 생성한 요약으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베이징 예술특구 798 공장은 2024년 기준 1,200만 명이 찾는 798은 숫자로만 보면 완벽한 성공이다. 그러나 그 숫자 뒤에는 조용히 사라져가는 것들이 있다. 화려한 팝업 스토어가 들어선 자리에 한때 작업실이 있었고, 세련된 브랜드 쇼룸이 된 공간에는 아직 마르지 않은 물감 냄새가 배어 있던 때가 있었다.
거대했던 날것의 창작 산실이 도시재생과 상업화의 바람에 변모하는 것을 묵도한 뒤, 나는 798의 현재를 더 심도 깊게 들여다보고 싶었다. 앞으로의 798은 어떻게 변해갈 것인가. 지금 이 공간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그 질문을 들고 찾아간 사람이 있다.
나의 오랜 친구이자, 제55회 베니스 비엔날레 중국관 총감독, 전 북경중앙미술원(CAFA) 교수, CAFA 미술과 국제파트 부관장을 지냈으며 현재 798에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 왕춘천(王春辰) 교수다. 798의 가장 치열했던 시간을 함께 통과한 동료이자, 지금도 그 공간에서 가장 완강하게 예술의 언어를 붙들고 있는 사람. 그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왕춘천 교수가 가장 먼저 짚은 것은 예상외로 단순한 지점이었다.

"10년 전만 해도 저와 동료 평론가들은 현대미술에 대해 토론하기 위해 매주 798에 초대받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포럼이나 세미나을 기획하는 갤러리가 거의 없습니다. 오직 제 공간만이 그런 일을 합니다." 이 한 문장이 현재 798의 온도를 가장 정확하게 측정한다. 예술 담론이 사라진 예술지구. 토론이 멈춘 창작의 공간. 왕 교수가 지목한 것은 단순한 상업화의 문제가 아니다. 예술이 살아있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지적 마찰'이 소멸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798의 변화를 상업화만으로 설명하는 것은 절반의 진실이다. 왕 교수는 더 깊은 층위를 건드렸다. 초창기의 798은 예술가와 전문가들만이 드나들던 공간이었다. 갤러리 오프닝에는 작가와 큐레이터, 비평가들이 모였고, 과감한 실험들은 그 좁은 공동체 안에서 자유롭게 호흡했다. 누가 무엇을 보는지가 중요했고, 그 시선이 작업의 방향을 결정했다. 어떤 의미에서 그 시절의 798은 스스로를 지키는 울타리가 있었다.
그러나 798이 세계적 관광지가 되면서 그 울타리는 사라졌다. 수백만 명의 일반 방문객이 몰려드는 공간이 되자, 공간의 성격 자체가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소수의 전문가들 사이에서 깊이 있게 통용되던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작업들은 불특정 다수의 대중을 향한 공간에서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갔다. 대중적인 공간에 맞추어 전시의 문턱과 대중성이 강조되면서, 거칠고 도발적인 실험예술들은 자연스럽게 자취를 감추었다.

이것은 공간이 대중화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구조적 변화에 가깝다. 관광지가 된 공간은 관광지의 문법을 따를 수밖에 없다. 초기 798이 '자유로운 실험실'이었다면, 지금의 798은 누구에게나 열린 문화 소비의 공간이 됐다. 그 개방성이 798을 살렸고, 동시에 798이 가졌던 가장 날카로운 날을 조용히 무디게 만들었다.
"상업 화랑만이 다수 존재하게 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갤러리들도 살아남기 위해 상업적인 작품을 선호하니까요. 여전히 예술을 찾을 수 있는 곳이긴 하지만, 과감하고 실험적인 작업은 보기 힘듭니다.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변화된 경제 상황과 환경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면이 있습니다." 경제와 환경, 이 두 가지 압력이 동시에 작동하는 곳. 그것이 지금 798의 현실이다.
"많은 젊은 작가가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베이징을 떠나 허베이성의 옌자오 같은 외곽으로 밀려났습니다. 재능 있는 졸업생들이 작품 판매로 생계를 잇지 못해 예술을 포기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이 말의 무게를 나는 현장에서 이미 온몸으로 겪었다. 2004년부터 2012년까지 북경에 있었던 나 역시, 두 개의 공간을 운영하다 끝내 치솟는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헤이차오로 밀려났다. 그것이 단순히 나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었음을 이제는 안다. 런던 이스트엔드, 뉴욕 소호, 서울 성수동과 문래동까지 — 예술자가 먼저 들어가 지역의 온도를 높이면, 자본이 그 온기를 가져가는 구조는 세계 어디서나 반복된다. 발전이라는 이름 아래, 예술가는 언제나 자신이 살려낸 공간에서 가장 먼저 쫓겨난다.

그러나 798의 경우, 이 구조는 한 겹 더 복잡하다. 한국의 성수동이나 문래동에서 예술가를 밀어내는 것이 주로 자본이라면, 798에서는 대중화와 함께 찾아온 대중적 기준이 자본과 나란히 작동한다. 임대료가 몸을 밀어내는 동안, 공간의 문법이 바뀌면서 고유의 예술 언어도 밀려난다. 이 두 겹의 압력이 동시에 가해질 때, 예술가가 지킬 수 있는 것은 점점 좁아진다.
그렇다면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순환인가. 어쩌면 예술가와 관광객은 본질적으로 같은 공간에 오래 공존할 수 없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예술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곳을 찾아 이동하는 존재고, 관광객은 이미 이름 붙여진 곳을 안전하게 소비하러 오는 존재다. 이 두 주체는 발전하는 모든 공간에서 결국 엇갈린다. 예술가가 떠난 자리에 공간이 정비되고, 정비된 공간에 사람이 몰려오고, 사람이 몰려온 뒤 예술가는 다시 다른 곳으로 향한다. 798에서 밀려난 예술가들이 차오창띠, 헤이차오, 송장으로 이동하며 새로운 생태계를 만든 것처럼 — 이 이동 자체가 하나의 문화적 에너지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이동이 에너지가 되려면 조건이 필요하다. 쫓겨난 예술가들이 다음 공간에서 다시 실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상업이 완성한 공간이 예술이 시작했던 역사를 기억하고, 그 기억을 다음 세대의 창작자들에게 전달해야 한다는 것.
798은 원래 자발적인 에너지가 모여 구축된 공간이었다. 거대한 기획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예술가들의 자발적인 점거로 시작됐고, 공간의 위기를 맞았을 때도 예술가 스스로가 지켜냈다. 그 저력이 지금도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상업의 물결이 높아질수록, 반대편 어딘가에서 더 작고 더 완강한 불씨들이 켜진다.
왕 교수가 홀로 유지하는 비영리 포럼 공간이 그 증거다. 798에서 밀려난 작가들이 송장과 헤이차오에서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어낸 것도 그 증거다. 담론이 사라진 공간에서 담론을 이어가는 일. 실험이 비워진 자리에서 다시 실험을 채우는 일. 그것은 향수가 아니라 예술에 대한 신뢰이고, 이 공간이 다시 자신의 언어를 찾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나는 798의 상업적 성공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성공이 가장 빛날 수 있는 방법은, 처음 이 공간을 살려낸 예술적 기운을 제도 안에서라도 지속적으로 보호하는 일에 있다고 믿는다. 자발적인 흐름이 정착되고 브랜드가 되는 과정에서 — 그 씨앗을 심은 이들을 위한 자리가 반드시 남아 있어야 한다. 그것이 798이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살아있는 예술의 장소로 기억될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이다.
공간의 시간은 그렇게 흐른다. 날것의 에너지가 밀도를 만들고, 밀도가 가치가 되고, 가치가 자본을 부르고, 자본이 날것을 지운다. 그 순환 속에서도 798이 798일 수 있는 것은, 아직 그 순환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왕춘천 교수가 그 자리를 지키는 한, 나는 798이 다시 자신의 언어를 찾을 것이라 믿는다.

*전혜연은 여성인권·미디어아트·도시교류를 통해 예술을 사회변화의 도구로 만드는 행동하는 큐레이터다. 2014년 글렌데일 '위안부의 날 특별전'을 시작으로 소녀상 지키기 국제 연대전을 이끌었고, 2017년부터 글렌데일시 공식 행사로 승격, 8개국 100여 명 작가가 참여했다. 국내에선 《여성인권이야기: 행진》을 성북, 부산, 보은, 고성, 포항, 인천, 김포, 파주 등 지방정부와 함께 이어가고 있다. 2018 평창올림픽 미디어아트 기획을 계기로 공공 미디어아트의 사회적 소통 가능성을 열었고, 수원문화축전·국립극장 등에서 지역 역사와 장소성을 담은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김포-글렌데일 교류전은 '경계'와 '자유'를 주제로 일상 공간에 공공미술을 설치했으며, 2024년에는 김포의 지역 의제를 다룬 '다양성'이란 전시로 네 지역을 아우르는 28명 작가 참여한 대규모 미디어아트전도 기획했다. 최근에는 사이버불링을 여성인권 의제로 삼아 국회 논의·전시·온라인 캠페인을 준비 중이다. 그는 예술이 비판에서 그치지 않고 실질적 대안과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믿는다. 현 국제예술생태연구협회 대표, 귀주사범대 동아시아미디어센터 책임연구원, 비영리 단체 문화유목민 대표, 전시 기획사 SR Comm 대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