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핵심 요약
beta- 6월 25일 김용웅 소령은 교도대를 이끌고 357고지로 이동했다
- 통신 두절로 교도대와 제1대대는 230고지에서 고립된 채 싸웠다
- 6월 26일 제13연대는 북한군 돌파로 파평산에서 철수했다
!AI가 자동 생성한 요약으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변상문의 '화랑담배'는 6·25전쟁 이야기이다. 6·25전쟁 때 희생된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고, 그 위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제목을 '화랑담배'로 정했다.
노출된 측방
6월 25일 오후, 국군 제13연대는 파평산 정면의 첫 공격을 막아냈다.
북한군 보병이 물러났고, 320번 도로로 접근한 T-34 전차 다섯 대도 더 나아오지 않았다. 대전차특공대원들은 로켓포와 수류탄, 박격포탄을 들고 전차 바로 앞까지 접근했다. 전차를 파괴하지는 못했지만, 그날의 전진은 저지했다.
그러나 정면에서 공격을 막았다고 해서 방어선 전체가 안전해진 것은 아니었다.
파평산 동쪽의 357고지가 비어 있었다.
그곳에 북한군이 올라서면 제13연대의 우측방을 위협할 수 있었다. 연대장 김익렬 대령은 위험을 알고 있었지만 즉시 고지를 채울 병력이 부족했다. 전방의 진지를 지키는 일만으로도 연대의 병력은 빠듯했다.
육군사관학교 교도대가 제13연대에 배속되자 김익렬 대령은 교도대에 357고지를 점령하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교도대가 그곳에 이르기 전부터 북한군이 고지 방면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6월 25일 저녁, 교도대장 김용웅 소령은 병력을 이끌고 파평산 동쪽으로 향했다.
교도대원들은 군장과 탄약을 메고 밤길을 걸었다. 비가 지나간 도로는 젖어 있었고, 어둠 속에서는 지형을 분간하기 어려웠다. 그들은 이동을 멈추지 않고 357고지 부근까지 나아갔다.
김용웅 소령은 장병들에게 도로변에서 잠시 쉬도록 한 뒤 주변 지형과 적정을 살폈다. 교도대는 다시 능선을 따라 움직여 230고지에 도착했다.
그러나 고지에 올랐다고 해서 인접 부대와 방어선이 연결된 것은 아니었다.
교도대는 가까운 곳에 배치된 제13연대 제1대대의 정확한 위치를 알지 못했다. 제1대대도 교도대가 230고지에 들어온 사실을 전달받지 못했다. 두 부대 사이에는 통신이 연결되지 않았다.
같은 전선에 있으면서도 서로 어느 지점을 지키는지 모른 채 6월 26일 새벽을 맞았다.
안개가 고지와 계곡에 남아 있었다. 357고지 부근에서 총성이 들리자 제13연대 제1대대 일부 병력 약 30명이 그 방향을 살폈다. 그들은 230고지에 교도대가 배치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총성이 아군의 것인지, 북한군이 어느 길로 접근하는지 곧바로 파악하기 어려웠다.
북한군은 357고지와 230고지 일대의 능선과 계곡을 이용해 접근했다. 잠시 뒤 230고지에 포탄과 박격포탄이 떨어졌다.
교도대원들은 급히 진지에 들어가 고지 사면을 향해 사격했다. 소총과 기관총이 북한군 보병의 접근을 막았다. 하지만 한쪽의 사격이 잦아들면 다른 쪽에서 공격이 이어졌다.
교도대와 제1대대는 가까이 있었으나 화력 협조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교도대가 공격받는 상황은 제1대대에 즉시 전달되지 않았고, 교도대도 인접 부대에 곧바로 지원을 요청하기 어려웠다.
230고지의 전투는 교도대원들이 각자의 진지에서 북한군을 발견하고 대응해야 하는 싸움이 되었다.
김용웅 소령은 제13연대에 화력지원을 요청했다.
제6야전포병대대 제2중대의 105mm 곡사포 두 문이 용담리까지 추진 배치되어 사격했다. 포탄이 북한군 접근로에 떨어졌다. 그러나 고지에서는 양측 병력이 가까운 거리에서 교전하고 있었다. 포병이 전방 상황을 정확히 파악해
사격 지점을 정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 와중에 제2중대장 전남식 중위가 북한군 박격포탄에 맞아 전사했다. 교도대를 지원하던 포병의 지휘도 어려워졌다.
230고지에서는 사상자가 늘고 탄약이 줄었다. 교도대는 더 머물면 포위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장병들은 사상자를 수습하며 고지에서 철수하기 시작했다.
북한군이 그 뒤를 따랐다.
230고지 방면이 비면서 제13연대 제1대대의 우측방이 위협받았다. 제1대대는 북쪽 정면에서 공격하는 북한군과 싸우는 한편, 교도대가 물러난 방향으로 접근하는 병력에도 대응해야 했다.
전날 밤 정면의 무명고지에 들어온 북한군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2대대 방어지역에서는 북한군 보병과 포병의 공격이 거세졌고, 전차가 도로를 따라 접근했다.
파평산의 장병들은 계속 사격했다. 그러나 인접 부대 사이로 북한군이 들어오면서 하나로 이어져야 할 주저항선에 틈이 벌어졌다.
6월 26일 정오 무렵, 제13연대는 교도대와 함께 230고지를 탈환하기 위한 반격을 시도했다. 그러나 북한군이 먼저 공격해 반격부대는 계획대로 나아가지 못했다.
그사이 북한군은 제13연대의 방어지역을 돌파했다. 보병과 전차가 320번도로를 따라 문산리 방향으로 움직였다. 이 길이 열리면 임진강 철교 정면에서 싸우는 제11연대의 우측방도 위험해진다.
김익렬 대령은 철수를 사단에 건의했다. 제3대대에는 금곡리로 이동해 새로운 진지를 준비하도록 지시하고, 연대를 지원하던 포병부대에도 이동에 대비하게 했다.

사단장의 승인이 내려오자 제13연대가 주저항선에서 철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북한군은 이미 진지 사이로 들어와 있었다. 장병들은 소대와 중대 단위로 추격을 막으며 물러났다. 기관총이 접근하는 북한군을 향해 사격했고, 박격포는 남은 포탄을 쏘았다. 부상병은 전우들이 부축하거나 업었다.
제13연대는 금곡리와 문산리 남쪽으로 이동했다. 파평산의 주저항선은 무너졌다.
제1사단장 백선엽 대령은 제13연대 방어지역에 돌파구가 생겼다는 보고를 받았다.
제11연대는 오후 역습으로 임진강 철교 정면의 주저항선을 회복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오른쪽에서 제13연대가 물러나면 문산 돌출부 전체가 측방 공격에 노출된다. 철교 앞의 진지를 지켜도 퇴로가 끊길 수 있었다.
백선엽 대령은 사단을 최후저항선으로 철수시키기로 결심했다. 각 연대에 명령이 하달되었고 사단 전술지휘소도 봉일천 주미산으로 이동했다.
새로운 방어선에서는 제15연대가 229고지에서 도내리까지 약 4km의 좌측방을 담당했다. 제15연대 제3대대는 119고지–위전리 일대에, 제20연대 제3대대는 도내리 일대 구릉지대에 배치되었다.
제13연대는 도내리–신산리 사이 약 4km를 맡았다. 전술지휘소는 용미리에 설치했다. 제3대대는 151고지, 제1대대는 89고지에 배치되었고, 제2대대는 연대 예비로 광탄 남쪽 무명고지를 점령했다. 사관학교 교도대는 장곡리 남쪽으로 이동했다.
제12연대는 금촌에서 병력을 다시 모으고 있었다. 개성에서 철수한 장병과 각지에서 돌아온 낙오병을 수습했지만, 집결한 병력은 약 1개 대대 규모였다.
제11연대와 보병학교 교도대에도 철수 명령이 내려졌다. 다만 임진강 철교 정면에서 계속 교전하던 제11연대에는 명령이 신속하게 전달되기 어려웠다. 통신이 끊겼고 전령이 지나야 할 길에도 북한군의 포격과 침투가 이어졌다.
일부 부대가 새 방어선에 들어가는 동안, 다른 부대는 아직 임진강에서 싸우고 있었다.
문산리와 금촌의 도로에는 남쪽으로 이동하는 국군이 이어졌다. 포병은 야포를 견인했고, 보병은 옮길 수 있는 장비를 들고 걸었다. 제13연대 장병과 사관학교 교도대, 제12연대 낙오병, 사단 직할부대가 길에서 만났다. 지휘관들은 흩어진 병력을 다시 소속 부대로 모았다.
제1사단은 파평산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전투를 끝낸 것은 아니었다.
각 부대는 도내리–위전리–신산리–광탄을 잇는 최후저항선으로 들어가 진지를 준비했다. 뒤에서는 북한군 전차가 320번도로를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그 길은 위전리로 이어졌다. 그곳에는 제15연대 제3대대가 배치되어 있었다.
/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