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년 11월 신한금융투자 포럼 강연에 나선 이성태 전 한국은행 총재. |
[뉴스핌=안보람 기자] "가계부채 문제는 장기간 우리에게 짐이 될 수 있다. 모든 정책당국자들이 대한민국의 가계부채가 매우 높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당장 금융안정에 큰 문제가 안 생긴다고 가볍게 보면 안 된다."
지난해 2월 임시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업무보고에서 퇴임을 앞두고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묻자 이성태 전 한국은행 총재가 작심한 듯 내뱉은 말이 요즘 자꾸 머릿속을 맴돈다.
이성태 총재가 재직할 당시 한국은행은 한국경제의 견조한 성장을 이유로 금리인상을 주장했다. 하지만 번번히 기획재정부장관은 물론 대통령까지 나서며 금리인상 불가론을 펼쳤다.
세계 금융시장의 불확실성, G20의 정책공조 등이 이유였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의 경우 과잉유동성 논란이 심화되면서 완화적 통화·재정정책의 전환 가능성이 제기되자 단호히 '노(NO)'를 외치며 금리인상 가능성을 일축했다. 거의 매번 금통위가 다가올 때마다 나오는 재정부 혹은 청와대는 금리관련 발언들은 내놓으며 금통위원들을 압박했다.
실제 한 금통위원은 "(금리관련 발언이 나오면) 위축되는 게 사실"이라며 "영향을 받지 않고 소신껏 하려고 노력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고백했으며, 다른 위원은 "우리가 알아서 잘하는데 왜 자꾸 끼어드는지 모르겠다"며 불편함을 내비췄다.
이 전 총재는 가계부채와 관련해서 종종 '18도론'을 밝혔다. 공부할 때 너무 더우면 졸릴 수 있으니 약간 쌀쌀하다 싶게, 18도 정도의 온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금융시장에 적용해 보면 금리가 너무 낮으면 남의 돈을 쓰는데 고민이 없어지는 만큼 '좀 비싸다' 싶어야 대출에 고민이 생기고 자연히 대출증가 속도도 조절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정책당국자들은 "가계부채도 많은데 금리까지 올리면 이자부담이 더 늘어난다"는 논리로 대응했다. 가계부채의 빠른 증가를 제어하기위한 대책도 없었다. 오히려 부동산 시장을 살린다는 명목으로 LTV, DTI 등의 규제를 풀고, 금리를 낮추며 '싸게 갖다 쓰라'고 유도했다.
금리인상을 주장하는 또 다른 근거는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자는 것이었다. 국내 경제가 견조히 성장을 이어갈 때 조금이라도 올려 혹시 나빠질 상황을 대비해야 한다는 논리다.
이런 논란은 2009년 5~6월부터 고개를 들기 시작했지만 첫 번째 금리인상이 이뤄진 시기는 1년도 더 지난 후인 2010년 7월이었다.
이성태 전 총재가 퇴임한지 2년도 채 지나지 않은 지금, 그가 우려했던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가계부채의 빠른 증가가 지속되며 정책의 손발을 묶어버렸다.
가계부채 해결을 위한 묘수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주요 선진국을 중심으로 경기가 휘청대며 금리인하 가능성이 대두 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물가는 고공행진을 하며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마저 부르는 상황이다.
정책당국은 일단 '총량규제'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효과를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이는 되레 은행권 대출금리 인상이나 제2금융권으로의 이탈을 불러 결과적으로 가계의 이자부담만 늘릴 가능성이 크다. '고정금리·분할상환 대출로 유도할 것'을 권고하고 나섰지만 세계금융시장의 불안으로 시장금리가 저점을 맴도는 상황에선 변동금리가 유리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안전자산 선호로 은행권으로 돈은 몰리는데 대출을 막다보니 예금금리는 오히려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저축을 통해 받는 금리는 낮고, 대출로 인한 이자비용은 늘어나 서민들의 고통만 가중되는 형국이다. 게다가 부동산 시장은 살아나지 않고, 전세금은 날로 오른다.
이성태 전 총재는 이런 경제상황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자못 궁금해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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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Newspim] 안보람 기자 (ggarggar@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