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김지나 기자] 30일 별세한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재야운동권에서 '민주화운동의 대부'로 통한다.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며 재야운동과 정치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경기도 부천 태생인 김 고문은 경기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1965년 대학입학 후 반독재 민주화운동에 투신했다. 1967년 서울대 상대 학생회장 때 총ㆍ대선 부정선거 항의집회를 하다 제적당해 군대에 강제징집됐다.
그는 1970년 복학했지만 이듬해 '서울대생 내란음모사건'에 연루돼 지명수배됐다. 이 때부터 1979년 10ㆍ26 사태까지 도피생활을 하기도 했다.
김 고문은 1971년 서울대 내란음모 사건으로, 1974년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수배되기도 했다. 이후 1983년 민청련 초대 의장을 지냈고, 1985년 민청련 사건으로 구속돼 1988년까지 복역했다. 1990년에는 전민련 활동으로 구속돼 1992년까지 복역했다.
그는 1983년 첫 공개적 민주화운동 조직인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을 결성했다.
1985년 투옥될 때까지 두 차례 의장을 맡았는데, 그는 이 때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가 약 보름간 온갖 고문에 시달려야 했다.
그는 "스스로 죽고 싶었다"고 말할 정도로 여덟차례 전기고문과 두 차례 물고문을 받았다. 고문 후유증으로 훗날에도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겪어야 했으며 지난 2007년부터 앓아온 파킨슨병도 고문 후유증이 원인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김 고문은 1995년 새정치국민회의 부총재로 정계에 들어와 15대 국회부터 17대 국회까지 3선 의원을 지냈으며, 지난 2004년부터 2006년까지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했다. 2006년에는 열린우리당 의장을 지낸 바 있으며, 최근까지 민주당 상임고문으로 한반도재단이사장을 맡아왔다.
지난 2008년 총선에서는 낙선의 고배를 마셨고 같은 해 8월 우석대 석좌교수로 임명됐다. 내년 총선에서 지역구인 서울 도봉갑 출마 의지를 보여온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지난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유세현장에 나타나 박원순 당시 야권통합후보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병세 악화로 둘째 딸 병민씨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하고 병상을 지킬 수밖에 없어 주변인들을 가슴 아프게 했다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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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Newspim] 김지나 기자 (fres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