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기점 현대가 화해 분위기…경영자 모드 ‘순항’
재계 주요 그룹의 후계자들이 뛰고 있다. 창업 오너 세대가 세상을 떠나며 그들의 2세, 3세, 4세로 이어지는 새로운 오너십의 등장이 눈길을 끈다. 오너 패밀리 간 사업을 승계 받고, 이를 분리하고 경쟁하면서 한국식 오너 경영문화가 개화 중이다. 창업세대의 DNA를 물려받고 경영전면에 나설 준비를 하는 후계자들. <뉴스핌>은 연중기획으로 이들 후계자들의 ‘경영수업’ 측면에서 성장과정과 경영 스타일, 비전과 포부 등을 짚어본다.<편집자주>
[뉴스핌=배군득 기자] 지난 2011년 9월 3일. 정지이 현대유엔아이 전무(36)가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일본 금융회사에 근무하는 회사원 신두식씨와 화촉을 밝혔다.
고 정몽헌·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장녀이기 전에 한 여자로서 새로운 삶을 만드는 시점이었다. 지난 2003년 아버지 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 사망 후 앞만보며 달려온 정 전무가 자신의 가정을 갖는 뜻 깊은 순간이기도 하다.
그룹 안팎에서는 지금까지 정 전무의 36년 일생에서 이 결혼식이 외견상 평범했지만 그러나 매우 중요한 출발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그녀가 걸어 온 발자취가 순탄치 않았지만 본격적인 경영자로 성장하기 위한 주요한 과제를 결혼식을 통해 이뤄내는 계기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백부인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결혼 축하 화환은 결론적으로 현대건설을 둘러싼 현대차그룹과 현대그룹의 앙금을 씻는 향기를 담았다. 정 전무의 결혼(식)은 가문내 소통의 길을 텄다.
당시 그녀는 여느 재벌가 3세 처럼 화려하고 멋진 결혼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정 전무가 결혼할 시점에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어머니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사이의 갈등 등 현대일가의 분열이 심각한 수위에 올랐다.
이 때문에 재계와 정치권에서는 정 전무 결혼식을 계기로 현대일가가 화합의 틀을 마련할 수 있을지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정 전무 자신에게도 향후 현대그룹 후계 경영자로서 탄탄한 입지를 다지기 위한 당당함을 가지기 위해서는 현대일가의 화해와 화합은 반드시 필요했다. 결과는 절반의 성공.
초미의 관심이던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개인사정으로 참석은 못하고 자신의 명의로 화환만 보냈다. 정몽준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 의원 부부, 정몽윤 현대해상화재보험 회장 부부, 정몽일 현대기업금융 회장 범 현대가 인사들이 참석했다.
또 고 정순영 성우그룹 명예회장 아들 정몽용 성우오토모티브 회장, 고 정인영 한라그룹 회장 장남 정몽원 한라건설 회장, 정몽혁 현대종합상사 회장 등도 모처럼 얼굴을 보였다.
비록 정몽구 회장이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일가의 축복속에서 이날 정 전무는 현대일가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떠오르는데 손색이 없었다.
한때 현대상선 경영권을 두고 갈등을 빚어온 현대중공업 대주주인 정몽준 한나라당 의원 역시 이날 따뜻한 말로 조카의 결혼을 축하했다.
정 의원은 결혼식이 끝난 뒤 “신랑이 참 잘생겼더라. 형님(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이 오늘 이 자리에 있었으면 좋았을 것인데… 두 사람이 앞으로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결혼 후 한달이 지난 12월 29일,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인수를 놓고 불거진 현대자동차그룹과 갈등을 씻어내기로 결정한 것이다.
정지이 현대유엔아이 전무가 지난 2009년 8월 17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7박8일간 방북 일정을 마치고 경기도 파주 도라산 남측출입사무소를 통해 귀경하고 있다. |
현대그룹은 이날 지난 2010년 11월 현대건설 매각입찰 과정에서 현대차그룹 임원 등을 상대로 허위사실 유포와 명예훼손 등을 이유로 제기한 형사 고소 고발을 모두 취하한다.
먼저 손을 내밀은 현대그룹에 대해 현대차그룹도 받아주면서 1년여간 소송전을 벌였던 앙금이 어느정도 풀어지는 계기가 됐다.
현대그룹이 현대차그룹에 화해의 손길을 보낸 것은 정 전무의 영향도 적지않다. 향후 정 전무가 걷는 행보에 대해 친인척들과 불필요한 다툼은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는 현정은 회장의 판단이 주요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결국 정 전무 결혼식이 양사가 화해를 하기 위한 명분으로 작용했고, 이를 서로가 받아들이면서 정 전무는 경영 구도에서 순항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그녀는 2003년 아버지의 타계후 2004년 현대상선 입사와 대북사업 참여 등 본격적인 경영인 수업에 돌입했다.
물론 입사 3년만에 현대유앤아이 전무로 초고속 승진 수순을 밟았지만 총수들의 후광을 입고 주변 사업을 확장하는 다른 3세 경영인과 달리 정 전무는 평범한 회사원으로 입사해 실력을 입증하는 ‘정공법’을 택했다.
앞으로도 정 전무는 리더십과 경영에 있어 탁월한 능력을 발휘할 것이라는게 그룹 내부의 분위기다. 경력이 쌓이면서 무섭게 받아들이고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경영 감각과 소탈한 성격 등은 큰 장점으로 평가된다. 그룹내적으로는 물론 외적으로도 ‘여풍(女風)경영인’의 중심에서 정 전무가 움직이고 있다.
정 전무가 향후 현대그룹에서 어떤 DNA를 발산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현대유앤아이 전무의 미래를 기대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 또한 알아야 할 대목이다.
<정지이 현대유엔아이 전무 약력>
1977년 12월 서울 출생
연세대학교 대학원 신문방송학 석사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 학사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
2004년 현대상선 입사
2005년 현대상선 과장
2006년 현대유엔아이 기획실 실장
2006.12 ~ 현재 현대유엔아이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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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Newspim] 배군득 기자 (lob13@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