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한 양적완화 예고..장기처방 없이는 엔도 日경제도 추락
[뉴스핌=김윤경 국제전문기자] 일본 엔화가 또다시 세계 경제의 큰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윤전기로 돈을 찍어서라도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재가 이끄는 자민당이 예상대로 지난 16일 총선에서 압승했기 때문이다. 엔화는 아베 신조의 의지대로라면 최근의 약세 추세를 계속할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투자은행들도 엔저를 내년 세계 경제의 주요 변수로 보고 있다. 모간스탠리는 내년을 `엔화 약세의 해(The Year of JPY Weakness)`라고 했다.
추세적인 엔화 약세가 일본 경제에 궁극적으로 약이 될 수 있을 지 여부도 그렇지만, 주변국, 특히 우리나라를 포함한 주변국 경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 관심이다. 미국이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려대면서 브라질 등 신흥국들을 중심으로 선포됐던 글로벌 환율전쟁이 일본을 중심으로 아시아권에서 재현될 가능성도 부인할 수 없다.
◇ 엔화 약세 속도 낼 듯..정부에 더 종속될 BOJ
디플레이션에 빠진 경제 상황과 반대로 지난 수 년간 엔화 가치는 높은 수준에서 형성돼 왔다. 불황에다 재정절벽에까지 몰린 미국 돈이나 국가부도가 거론되는 유럽 돈을 사느니 오랫동안 안전자산으로 여겨져 온 일본 돈을 사겠다는 수요가 몰려서다. 이른바 안전통화의 저주(curse under safe haven)에 빠진 것.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늘려놓은 유동성까지 엔고 형성에 한 몫을 했고, 이는 수출 주도적인 일본 경제에 치명타가 됐다. 그래서 노다 요시히코 정부는 엔고 저지에 총력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새 총리가 될 아베는 노다 정부보다 한 술 더 뜬다. 무제한적인 양적완화가 그것. 그는 지난달 한 강연에서 "일본은행(BOJ)의 윤전기를 돌려 돈을 찍어내겠다"고 했다. 그리고 이 돈으로 일본 정부가 발행한 건설채권을 직접 사들이는 방식으로 시중에 돈을 풀겠다고 했다. 이를 제대로 하기 위해 중앙은행의 인플레이션 타깃팅선도 현재의 연 1%에서 2%까지로 높이겠다고 했다. 뼈아픈 인플레이션에 대한 기억은 일단 무시하고 단기적으로 경기를 살리는데에만 모든 힘을 쏟겠다는 기세다.
16일 총선에서 압승한 자민당의 아베 신조 총재 |
인플레 저지가 근본 목표여야 할 중앙은행은 그럼 정부의 꼭두각시냐는 얘기가 나올 수 있다. 일본의 경우는 대개 그래왔다. 전통적으로 재무성 관료에 의해 좌지우지됐던 것이 사실이다. 아베는 아예 이를 굳히려는 계획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998년 BOJ가 독립성을 보장했던 법을 다시 간섭이 용이한 쪽으로 바꾸려 하고 있다. 법을 98년 이전으로 되돌리게 되면 물가에 신중한 입장인 시라카와 마사아키(白川方明) 현 BOJ 총재는 곧 자리에서 내려올 가능성이 크다.
앤디 시에 전 모간스탠리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별 다른 수단이 없어 엔저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일본을 비꼬기도 했다. 시에는 "일본 경제에 있어 유일한 해법은 엔화 절하"라면서 수단이 없는 일본 정부(엔화)가 심판의 날을 맞을 수도 있다고 면서 현재 84엔대인 달러-엔 환율이 연내 100엔까지 오를 수 있다고(엔화 가치 하락) 봤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아베는 추가경정예산 편성도 약속했다. 통상 예산안은 12월 말까지 의회를 통과하지만 이번엔 선거가 12월에 치러진 터라 예산안 통과는 내년 5월골든위크께까지 미뤄질 수 있을 전망이다. 교도통신은 추가예산 규모가 10조엔(12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 엔-캐리 급증 엔화 더 떨어질 듯..亞 환율전쟁 가능성?
회색 선이 달러-엔 환율 추이(자료: 노무라, 블룸버그 등) |
엔-캐리 트레이드 움직임에 다시 활기가 붙을 수도 있어 보인다. 금리가 제로(0) 수준인 엔화를 빌려 상대적으로 이자율이 높은 타국 통화에 투자하는 엔 캐리 트레이드가 급증하면 엔화를 팔고 다른 통화를 사려는 수요가 많아지므로 엔화 약세는 더 추세화될 수 있다.
엔화 가치가 급락하면 당장 일본과 수출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는 우리나라가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미국과 유럽은 자국내 경기 살리기가 관건이라 돈을 푸는 것이다. 또 미국은 거대 무역 파트너이자 자신들의 경제적 위상을 넘보고 있는 중국이 최대 눈엣가시. 일본 역시 중국처럼 미국을 자극하면서 환율조작국 지정 가능성을 높이는 일은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일본의 타깃은 미국보다는 한국이다. 당장 자동차 등 수출 시장에서 직접적인 경쟁에 붙고 있는 우리나라를 따돌리는 것이 관건인 것이다. 얼마 전엔 일본이 한국 국채를 매입할 것이란 보도가 올해 일본 언론을 통해 전해지기도 했다. 결국 이를 유보한다고 하면서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이는 일본이 움직이고자 하는 환율은 결국 달러-엔이라기보다는 엔-원 환율임을 암시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이런 가운데 중국도 한국 국채 매입에 나서고 있다. 올해 초 한중일 외환당국은 외환보유액을 이용해 이들 국가들 국채에 투자할 때 투자 규모와 목적, 시기 등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기로 했지만 강력한 구속력을 갖고 있지 않은 만큼 자국의 이익을 위한 행보는 언제든지, 또 암암리에 이뤄질 수 있다.
◇ "엔저가 정답 아니다"
그러나 엔화 가치가 계속 떨어질 때 일본이 안게 될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부양 기조로 인해 재정적자나 국가채무는 더 늘어날 것이고, 재정건전성에 대한 우려 때문에 엔화로 대표되는 일본 경제가 갖고 있던 위상도 내동댕이쳐질 수 있다. 국가신용등급 강등의 위험은 계속 도사리고 있다. 당연히 유동성이 부를 인플레이션도 문제다.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 아베노믹스가 성공하는 듯 보일 수 있으나 문제는 인구의 65%가 고령화돼 있는 등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일본 경제에는 장기적인 처방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NMI 리서치 인스티튜트의 하지 고이치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아베의 경제 정책이 시행되면 내년 일본 경제는 나아질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에 생긴다"면서 "아베 정권이 일본 경제를 장기적인 관점에서 구조 개혁을 하고 성장 전략을 짤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언급했다.
[뉴스핌 Newspim] 김윤경 국제전문기자 (s914@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