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김윤경 국제전문기자] 프랑스 배우 제라드 드 파르디외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주연인 코미디 영화 한 편이 벽두부터 속된 말로 썩소(썩은 미소)를 짓게 한다.
프랑스 사회당 정부가 재정난 해소를 위해선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물리는 수밖에 없다며 강수를 둔 것이 시발점. 부자들은 반발했다. 세금 저항이야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이거나 마찬가지로 자연스러운 반응일 것이다.
프랑스 정부가 무리수를 두긴 했다. 연 소득 100만유로(14억1800만원) 이상 소득을 올리는 개인에게 최고 75%의 세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헌법재판소가 조세 평등에 어긋난다고 위헌 결정을 내렸지만 프랑수와 올랑드 대통령은 조금 내용을 수정하긴 해도 부유세를 철회할 생각은 전혀 없다고 밝혔다. 그랬더니 벌써 지난해부터 거주지를 벨기에로 옮기고 있었던 프랑스의 대표적인 배우 드 파르디외가 러시아 귀화를 선언했다. 그는 지난 3일(현지시간) 프랑스 여권을 반환했고 5일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나 러시아 여권을 건네받고 향후 활동 등을 놓고 환담했다.
프랑스 국적을 가진 부자들의 세금 망명은 더 이어질 기세다.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비통모엣헤네시(LVMH) 그룹 회장의 벨기에 귀화설도 떠돈다. `개고기 논쟁`으로 유명한 왕년의 섹시 스타 브리지트 바르도는 동물 권익 보호라는 다른 이유 때문에 러시아행을 고려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드 파르디외는 너무도 불공평한 정책 집행으로 인한 희생양"이라고 밝힘으로써 정부의 부자증세에 신랄한 비판을 퍼부었다.
배우가 공인(公人)은 아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인물인 만큼 신중한 판단을 해야한다는 사회적 준칙은 분명히 존재한다. 개천에서 용이 된 드 파르디외는 성공한 영화 <시라노>의 브랜드를 자신이 하는 와인 사업에 이용하기도 하면서 정작 프랑스 정부가 어렵다고 하니 국적마저 버리는 길을 택한 건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기회주의적 행태에 지나지 않는다. 그의 과거 정치적 행보도 오락가락해 왔는데, 피델 카스트로와 다정한 포즈를 취하면서 좌파적 냄새를 피우기도 했지만 알고보면 그건 그가 쿠바 석유개발에 많은 돈을 투자했기 때문이란 후문이다.
제롬 카우작 예산장관은 드 파르디외의 소식이 전해진 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75%라는 세율은 낮출 가능성이 있지만 오히려 당초 이를 2년만 한시적으로 하기로 했던 것을 올랑드 대통령 임기 내내 지속할 수도 있다고 밝혀 부자들과의 세금 전쟁이 계속될 것임을 시사했다.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내게 하면 오히려 경제 동력이 상실될 수 있다는 주장도 물론 있다.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이 부자증세를 통해 세수가 얼마나 증대되는지를 산출한 수치도 무려 8배나 차이가 난다. 프랑스 내부에서도 정부의 강경 정책 때문에 부자들이 줄줄이 빠져나가게 되면 경제에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것이란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말이 무색한 상황이다. 대공황 때야 정부가 나서서 경기를 살릴 수 있었고, 4년여 전 글로벌 금융위기 때만 해도 전 세계 정부는 재정정책이든 통화정책이든 뭐든 써 볼 여지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진퇴양난이다. 정부의 곳간은 바닥났고 경기는 늪에 빠져 있다. 몇 안되는 가용 카드 중 하나가 부자증세다. 밀고 당기기 끝에 미국도 부자증세안이 의회를 통과했고, 심지어 우리나라도 `무늬만`이란 혐의가 있지만 고소득자에게 더 많은 세금을 물리기로 한 예산안을 통과시킨게 바로 그래서다.
새 정부가 시행하게 될 우리의 세법개정안을 보면 고소득자들에 대한 비과세, 감면 혜택을 줄이는 간접적인 증세가 추진된다.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과세 강화, 탈세나 해외금융계좌 미신고 등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는 항목들은 방향성 만큼은 틀리지 않았다고 본다.
경제민주화가 있는 자 때리기가 되어선 안된다는 말도 맞다. 그러나 여력이 있는 부자와 대기업들이 세금을 더 내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가 지금은 절실히 필요하다. 복지를 늘리면서도 재정건전성을 지키고 경기도 살릴 수 있는 선순환 고리를 만들 것인가, 아니면 정부지출을 줄여 복지도 위축되고 소비와 투자도 위축되는 악순환 고리를 만들 것인가. 프랑스 배우의 세금망명 같은 일이 적어도 우리나라에선 없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세금은 늘 뜨거운 이슈다. 그래서 그것을 늘리느냐 줄이느냐는 늘상 선거의 주요 떡밥이 돼 왔다. 위기의 순간을 맞아 세금이 더 이상 정치용어가 아니라 비로소 경제용어가 될 수 있을 지 지구촌 전체의 흐음을 두 눈 크게 뜨고 지켜봐야겠다.
[뉴스핌 Newspim] 김윤경 국제전문기자 (s914@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