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박4일 '심신지려'로 북한문제·한중FTA 등 큰 결실
[뉴스핌=이영태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30일 3박4일간의 중국 국빈방문을 통해 시진핑(習近平) 주석으로부터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내고 높은 수준의 포괄적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노력에 합의하는 등 정치·경제·사회·문화 분야에서 풍성한 성과를 안고 귀국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그래픽: 송유미 기자] |
특히 이번 방문을 통해 이명박 정부 기간 중 소원해졌다는 지적을 받았던 양국관계가 두 정상의 '라오펑유(老朋友·오랜 친구)'를 바탕으로 돈독한 신뢰관계를 구축하며 우리나라가 향후 동북아시아 정세 변화에 대처하는 데 유리한 지점을 확보했다는 점은 큰 성과로 꼽힌다.
경제 분야에서도 내수시장 확대에 힘 쓰고 있는 중국 시장 진출을 더욱 확대하고 양국 간 이견차로 지지부진했던 한중FTA의 조속한 체결을 위한 모멘텀을 마련했다.
지난 1992년 수교 이후 정치는 차갑고 경제교류만 활발했던 '정냉경열(政冷經熱)'의 관계가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앞으로는 정치와 경제가 모두 뜨거운 '정열경열(政熱經熱)'의 관계로 변화시키는 데 적잖은 성과를 거둔 것이다.
◆ 미국 이어 중국도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지지
박 대통령은 방중 첫째날인 지난 27일 시 주석과의 정상회담을 계기로 발표한 '한·중 미래비전 공동성명'을 통해 한반도 문제의 핵심 당사자인 미국에 이어 중국으로부터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지지를 확보했다.
공동성명은 한반도 문제와 관련된 장에서 "양측은 한반도 비핵화 실현 및 한반도 평화와 안정 유지가 공동이익에 부합함을 확인하고 이를 위하여 함께 노력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명시했다.
아울러 중국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구상을 환영하고 남북관계 개선 및 긴장 완화를 위해 한국 측이 기울여 온 노력을 높이 평가했다"는 점도 공동성명에 포함시켰다.
양국 정상이 북핵 불용과 북한의 핵보유 반대라는 공통된 인식하에 한반도 비핵화 실현 노력에 대한 확고한 협력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이번 공동성명 중 한반도 문제와 관련된 문항의 비중이 과거에 비해 크게 증가한 점도 양국 간 공감대의 확대폭을 짐작케 한다.
나아가 박 대통령이 지난 29일 칭화대 연설을 통해 강조한 '아시아 패러독스' 극복을 위해 동북아 국가들이 대화와 협력을 통해 신뢰의 발판을 만든다는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에 대해 중국이 지지의사를 표명한 점도 눈길을 끈다.
또한 양국은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우리나라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중국의 외교 담당 국무위원 간에 대화체제를 구축하기로 했으며, 정상 간에는 상호 방문과 정상회담은 물론 서한과 전보교환, 특사파견, 전화통화 등을 통해 상시 소통키로 합의했다.
외교장관 간에 핫라인을 처음 신설하고 정례적인 교환방문을 추진키로 한 것도 의미가 적지 않다. 정당 간 정책대화와 양국 국책연구소 간 합동전략대화도 신설키로 했다.
다만 공동성명에서 '북핵 불용' 혹은 '폐기'라는 표현 대신 '한반도 비핵화'가 쓰인 점은 북핵문제와 관련한 양국 간의 인식차를 그대로 보여준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 대목에선 '북핵' 대신 '한반도 비핵화'란 표현을 통해 혈맹인 북한을 직접적으로 자극하지 않으면서 미국을 견제하려는 중국의 입장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 한중FTA 돌파구·통화스와프 조기연장 등 경제분야 성과도 커
박 대통령이 경제분야에서 거둔 성과도 작지 않다.
대표적인 성과가 양국 정상이 '높은 수준의 포괄적 한·중 FTA 체결'을 위해 노력하기로 한 데 이어 조속히 모델리티 협상을 마무리하고 다음 단계 협상에 진입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일반적인 FTA 협상에서는 서로 주고 받을 것을 설정하는 양허협상에 바로 돌입한다. 그러나 한중 FTA의 경우 준비단계로 전체 협상의 골격을 먼저 논의하는 모델리티 협상부터 시작해 그동안 1단계로 다섯 차례의 협상을 벌여왔으나 양국 간 이견 차로 돌파구 마련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양국 정상 간 합의에 따라 양국 실무자들의 협상에도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정부는 7월 초 부산에서 열릴 예정인 6차 협상에서 의미 있는 진전을 이뤄 가급적 연내 모델리티에 관한 1단계 협상을 마무리 짓고 2단계 양허협상에 돌입한다는 계획이다.
조원동 경제수석은 "이번 정상회담이 끝난 다음에 바로 부산에서 한·중 간 6차 실무협상이 열릴 것"이라며 "한·중 FTA와 관련해 양국 정상이 공동선언문뿐만 아니라 기자회견에서까지 비중있게 다룬 것으로 봐서 양국 실무자한테는 상당한 인스트럭션(instruction·지침)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1단계 모델리티 협상이 구체화되면 될수록 2단계 양허협상은 더욱 빠른 속도로 이뤄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양국 정상은 또 2015년까지 무역액 3000억달러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양국 간 무역을 지속적으로 확대한다는 구체적 목표도 세웠다.
양국 정상이 한·중 통화스와프의 만기일 조기연장에 합의한 점도 최근의 불안정한 외환시장을 감안할 때 상당한 의미가 있다.
양국은 기존 만기인 2014년 10월을 2017년 10월로 3년 연장해 국제금융 시장의 불안정성에 공동 대처키로 했다. 양국은 현재 3600억 위원(한화 64조원) 규모의 통화스와프 계약을 맺은 상태다.
통화스와프 만기가 1년4개월여 남은 상황에서 만기 연장을 조기 확정함에 따라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양국간 협력관계도 보다 돈독해진 것으로 평가된다. 2017년 만기 이후 통화스와프 존속기간의 추가 확대를 검토하는 데도 합의했다.
양국 간 민감한 문제였던 불법어업과 관련해서는 힘을 합치기로 했다. 양국 간 지도선 공동순시, 어장청소 등 어장환경 개선과 모범선박 지정제, 수산고위급 협의기구 신설 등 구체적인 불법어업 방지대책에 대해 조속한 시일 내로 협력방안을 협의하기로 했다.
중국 내수시장에 대한 진출기반을 조성한 것도 주목할 만한 성과로 꼽힌다.
일례로 SK그룹(SK이노베이션)은 박 대통령의 방중 기간 중 중국 국영석유회사인 시노펙(Sinopec)과 우한(武漢)에 완공된 에틸렌공장의 합작법인 설립계약(총 투자비 30억달러)을 체결했다. 지난 7년간 민관이 함께 노력한 결과로 좀처럼 외국에 기회를 주지 않는 중국이 국가기간산업 분야에서 동아시아 기업에 처음 진출을 허용한 성과다.
석유공사는 동북아오일허브 구축사업 일환으로 시노펙과 울산북항 투자유치를 위한 협력의향서(LOI)를 체결해 장기적으로 중국의 전략적 비축유를 우리나라에 저장할 수 있는 가능성도 확보했다.
이 외에도 양국 정상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수출입 안전관리 우수공인업체 상호인정 약정 ▲수출입은행 간 상호 리스크 참여 약정 ▲따오기 보호·협력에 관한 MOU ▲해양과학기술협력에 관한 MOU 개정 ▲에너지절약 분야 협력 강화에 관한 MOU ▲경제통상협력 수준 제고에 관한 MOU ▲응용기술 연구개발 및 산업화 협력 강화에 관한 MOU ▲한·중 외교관 여권 소지자 사증면제 협정 등 8개 조약을 체결했다.
이는 역대 우리나라 대통령이 중국 방문을 계기로 정상 간에 서명한 조약 중 가장 많은 것으로 양국 간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의 내실화가 다방면에서 추진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라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이번 국빈방문이 성공적이었다는 점은 박 대통령의 방중 기간 중 각별한 예우를 아끼지 않았던 중국 측의 태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시 주석은 방중 첫날인 27일 공식환영식, 정상회담, 공동기자회견, 국빈만찬 등의 일정에 이어 다음날 펑리위안 여사를 대동한 특별오찬까지 7시간30분 간 박 대통령과 함께 하며 각별한 우의와 신뢰를 표시했다.
시 주석과의 정상회담 이후 중국 내 국가권력 서열 2~3위인 리커창(李克强) 국무원 총리와 장더장(張德江) 전국인민대표회의 상무위원장과의 면담도 중국이 박 대통령에게 극진한 예우를 아끼지 않았음을 보여준 일정이라는 게 외교전문가들의 분석이다.
3박4일간의 '마음과 믿음을 쌓아가는 여정'을 통해 중국으로부터 풍성한 선물을 받고 귀국한 박 대통령이 앞으로 남북관계 및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과의 외교무대에서 대한민국의 국익 극대화를 위해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주목된다.
[뉴스핌 Newspim] 이영태 기자 (medialyt@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