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業) 따라 인연(因緣)은 찾아온다. 흔연함을 안고 통영을 향하던 맘은 지리산 청학동으로 내 맘과 관계없이 흘러갔다. 우연히 들린 찻집에서 찻집 주인이 권하는 인연 따라 지리산 청학동으로 방향을 바꾼 것이다.
지리산은 묵묵했다. 불경이 들리는 듯 했다. 말없는 푸른 산은 부처님의 마음이었다. 산 위 흘러가는 하얀 구름은 부처님의 발자취였다. 산 속 새소리는 부처님의 말씀이었다. 마음이 장엄해졌다.
지리산은 백두산에서 백두대간을 따라 흘러와서 큰 봉우리를 이루었다 하여 두류산(頭流山)이라고도 한다. 예부터 두류산은 영악(靈嶽)으로 동으로는 천왕봉, 서로는 반야봉, 중앙에는 영신대가 있어 병풍 같은 형세를 이루고 있다.
청학동은 영신대가 남으로 맥(脈)이 이어져 삼신봉(三神峰)을 만들고, 삼신봉이 동서로 맥을 뻗어 신선대, 삼성봉, 미륵봉, 시리봉을 잇는 곳에 위치해 있다.
선가(仙家)에서 말하기를 ‘청학동이란, 천하제일의 명승지로서 두류산 남쪽 기슭에 있다. 들어가는 입구에 폭포가 있으며, 폭포를 지나면 외석문(外石門)이 있고, 외석문에서 내석문(內石門)을 지나 동굴 같은 계곡을 십 리 쯤 들어가면 주위 사십리의 광개평탄(廣開平坦)한 초전(草田)에 신선들이 살고 있는 별유천지(別有天地)가 나온다. 그곳에는 청학이 살고 청학이 노니는 학연(鶴淵)과 석정(石井)이 있으며, 뒤에는 삼신봉이 높이 솟고 앞에는 백운산 삼선봉이 둘러 있다.’고 전한다.
또한 청학동은 땅이 기름져 곡식이 잘되며, 삼재(삼재)가 들어오지 못하고 석정의 물을 마시면 오래 살고 특히 시절인연이 닿으면 인재가 많이 날 것이라고 전한다.
이곳 청학동엔 현대 문명과 전혀 다른 세 개의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하나는 한인, 한웅, 단군을 모신 삼성궁 문화다. 두 번째는 개벽을 소망하며 우주이치를 궁구하는 도인촌 문화다. 세 번째는 전통 유교식으로 인성을 가르치는 서당 문화다.
중화참이 한 참 지난 시각에 청학동에 도착했다. 해 떨어지기 전 청학동 도사를 만나기 위해서는 서둘러 삼선궁을 둘러보아야 했다. 한인, 환웅, 단군을 모신 삼성궁은 엄청난 역사였다. 정식 이름은 지리산 청학선원 삼성궁이다.
묵계 출신 강민주가 1983년부터 33만㎡의 터에 고조선 시대의 소도(蘇塗:삼한시대 천신에 제사를 지내던 곳)를 복원해 놓은 것이다. 관리자들은 이곳을 배달민족 정통 도맥인 선도의 맥을 지키며 신선도를 수행하는 민족 고유의 도량으로 홍보하고 있었다.
즉 오늘날 잃어버린 우리의 위대한 얼과 뿌리를 천지화랑(天指花郞)의 정신을 바탕으로 홍익인간(弘益人間), 이화세계(理化世界)를 실현하는 민족 대화합의 장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내 시야엔 그렇게 보이질 않았다. 성스러운 도의 세계는 볼 수 없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온통 자연을 파괴하고 훼손한 흔적뿐이었다. 거대한 바위를 인간의 문명으로 두부처럼 재단해 버리고, 사무적으로 입장표 파는 상술만 보였다. 청학동 첫 방문 소감이 씁쓸했다. 입안이 떫은 감을 씹은 것처럼 떨떠름했다.
변상문 전통문화연구소장 (02-794-8838, sm290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