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인들 간 존경받는 분으로부터 소개받은 김선경 나누리전통예술단장 인터뷰를 위해 전주를 찾은 시각은 늦은 오후였다. 날씨는 맑았고 들판은 넓고 누랬다. 저 들판이 봄 날 새움이 터 파랗게 변할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쿵쾅거렸다. 10여 년 전 전주에 있는 육군 제35보병사단 기무부대장 보직을 받고 부임하던 날도 이날처럼 넓은 들판이 인상적이었다.
인터뷰 장소인 전주천 건너 김 단장 연습실에 들어섰다. 수십 대의 가야금, 장구, 북 등이 가지런하게 정리돼 있었다. 벽면 전체를 장식한 대형 거울속의 내 모습은 마치 소총을 걸머멘 초병같이 무뚝뚝해 보였다. 김 단장이 꽃잎을 분분히 날리며 연습실에 나타났다. 예뻤다. 꽃이 부끄러워할 미모였다. 예술인 특유의 끼와 연연(姸姸)한 한국미가 덧씌워져 있었다.
그녀가 가야금을 끌어안았다. 그리고 탱탱한 현을 중모리 장단으로 희롱하기 시작했다. 실개천을 건너고, 암벽을 오르고, 북풍한설 맞는 소나무가 이면으로 그려졌다. 어느덧 중모리 장단은 중중모리 장단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가냘픈 손가락 끝에서 ‘청 다아응 당 지 당 지따앙 지 따찌찡 찌지찌 따아응 징’ 현이 흔들렸다.
설중매가 요염하게 피었다. 후∼욱 봄바람이 불었다. 빨간 동백꽃이 모가지를 꺾으며 뚝뚝 떨어져 나갔다. 휘모리장단이 타졌다. 이화우가 흩뿌려 졌다. 운우풍뢰가 몰려 왔다 몰려갔다. 꽃가지가 꺾어졌다. 춘향이가 이 도령 무덤 앞 상사목과 망부석이 돼 비 바람을 맞았다. 롱(弄)이 멎었다. 손에 땀이 고였다. 연습실내에 난초향이 번져나갔다. 시(時)와 공(空)이 텅 비워졌다. 하늘에서 나와 사람에게 붙인 소리다웠다. 허(虛)에서 발(發)하여 자연으로 이루어진 소리다웠다.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 :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 : 꿈이요, 환영이요, 거품이요, 그림자다) 여로역여전(如露易如電 : 이슬 같고, 번개 같다.) 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 : 생각하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이와 같이 봐야 한다)’ 금강경 4구계가 맥놀이 돼 갔다.
김 단장은 전북 남원 출신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가야금을 했다. 이후 국립전통예술고와 서울예술대학을 졸업했다. 그에게 가야금은 뭐냐고 물었다. “가야금은 놓을 수 없는 것 같아요. 결혼과 더불어 아이 키우는 생활에 집중하며 살았는데, 항상 가슴속은 가야금 구음으로 꽉 차 있었죠. 국악공연을 보러 가면, ‘저 자리에 앉아서 공연하고 싶다.’는 생각들이 밀물처럼 다가 왔죠.”
결국 그는 가야금을 더 공부해야겠다는 빈 여백의 초심으로 돌아가 우석대학교 국악과와 교육대학원에서는 음악교육학을 전공했다. 그 후, 전주 세계 소리 축제에 참가해 ‘전라도 소리와 국악 관현악’을 공연한 바 있는 등 속칭 가야금 10단이다.
“국악 교육은 교육생이 어른이든 초중등 학생이든 간에 유치원생에게 하듯 해야 해요. 눈높이가 필요 없어요. 쉽고 재미있게 가르쳐야 해요. 예를 들어 휘모리 장단의 경우 ▲ 엄마 사랑해(덩덩 궁따궁) ▲ 할머니 사랑해(덩따따 궁따궁) ▲ 나도 너도 사랑해 나도 너도 사랑해 ▲ 우리 집 친구 집, 우리 집 친구 집,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식으로 장단을 설명하면 금방 이해하지요.”
김 단장은 2012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 등록된 1,700여 명의 예술 강사 중 최우수 강사로 선정된 후 줄곧 1∼3위권에 있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전남북 지역 15개 초중등학교 예술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교수법은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최고 수준이 아닐까 싶다.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사물, 현상, 말 등을 교육 내용으로 활용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예술 강사로 활동 중인 동료들이 김 단장에게 교수법을 전수 받고 있을 정도다. 김 단장의 교수법을 책으로 출간하면 대박날 것 같다는 영감이 들었다.
“북한에는 우리의 전통소리가 사라졌어요. 판소리는 아예 없고요. 모든 음악이 선동성 혁명가요만 판을 치고 있지요. 북한으로부터 문화적 영향을 크게 받고 있는 동북 3성 지역도 북한과 같이 우리의 소리가 사라져 가고 있거나 변형돼 있어요. 정부차원에서 관심을 갖고 해결해야 할 문화적 숙제이지요.”
“중국 동포 학생들이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우리의 국악을 배우는 모습을 보면 무더위 속 땀이 금방 식혀지지요. 세상의 모든 것은 바꿀 수 있어도 부모는 바꿀 수 없는 것과 같이 우리의 핏속에 흐르는 우리의 문화는 바꿀 수 없어요. 다만 우리 문화를 몰라서 제대로 못하고 있을 뿐이지요. 중국 동포들에게 우리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심어줄 수 있어 보람을 느낍니다.”
김선경 단장은 중국 요녕성 심양시 4중학교·망융소학교, 심양시 조선족문화관, 무순시 조선족문화관 등을 방문해 민요, 가야금, 북, 소고춤, 장고춤, 강강술래, 사물놀이 등 우리 국악을 강습해 왔다. 그러던 중 2012년 나누리전통예술단을 창단하여 중국 심양시 조선족 제1중학교에서 전통국악을 지도 공연하고 있다. 중국이 아리랑, 윷놀이, 지신밟기 등을 문화재로 지정해 사실상 문화의 동북공정을 자행하고 있어 물의를 야기하고 있는 가운데 펼치고 있는 김 단장의 소리 없는 민간 문화외교사절단 역할은 정부당국에게 시사(示唆)하는 바가 작지 않다는 생각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해외의 문화를 일방적으로 수입하던 이전과는 다른 우리나라의 많은 기업, 인재들이 해외에 진출함에 따라 우리의 문화를 세계에 수출하는 시대입니다. 지금부터는 문화시장이 세계경제를 주도할 것입니다. 수천 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우리의 문화를 잘 다듬고 포장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에게 국악교육을 잘 시켜야 합니다. 많은 가정에 피아노는 있어도 가야금은 없습니다. 어린아이에게 피아노는 가르쳐도 가야금, 거문고를 가르치는 가정은 드뭅니다. 한 나라의 혼과 얼은 그 나라의 전통문화를 통해 계승, 육성, 발전합니다. 그리고 그 전통문화의 중심엔 그 나라의 음악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국악 교육자로서 책임감과 함께 자부심을 갖습니다. 바르고 곧은 마음으로 우리 아이들에게 한 결 같이 국악을 지도할 생각입니다. 국악이 정서순화에 도움이 되도록 어린이, 학생들이 마음껏 활개 치며 꿈을 펼치고 연주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을 열어 나갈 작정입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서로의 마음을 공유할 수 있는 화합의 국악 마당을 열 계획입니다.”
해 맑은 웃음 속에 넘치지 않는 비장함이, 넘치지 않는 웅장한 포부가, 넘치지 않는 빗방울 머금은 꽃 잎 같은 김 단장과의 10시간 남짓한 인터뷰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오는 길가엔 가야금 산조가 내 속 뜰에 백열전등을 켜주고 있었다.
변상문 전통문화연구소장 (02-794-8838, sm290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