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글 장주연 기자·사진 이형석 기자] 취한 듯 만남은 짧았지만 빗장 열어 자리했죠. 맺지 못한데도 후회하진 않죠. 영원한 건 없으니까/ 운명이라고 하죠. 거부할 수가 없죠. 내 생에 이처럼 아름다운 날 또다시 올 수 있을까요/ 하고픈 말 많지만 당신은 아실 테죠. 먼 길 돌아 만나게 되는 날 다신 놓지 말아요/ 이생에 못다한 사랑 이생에 못한 인연, 먼 길 돌아 다시 만나는 날 나를 놓지 말아요.
가수 이선희의 노래 ‘인연’, 배우 이솜(24)이 학규와 덕이의 사랑을 보고 떠올린 노래다. 영화 ‘마담 뺑덕’의 여주인공은 자신의 사랑을 그렇게 묘사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불타올랐다. 사랑이라고 생각했기에 모든 걸 다 줄 수 있었고, 모든 걸 다 줄 수 있었기에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가 떠났고 모든 것을 잃었다. 사랑하는 이에게 버려지자 복수심에 휩싸였다. 헌데 도무지 그를 놓을 수도 버릴 수도 없다.
지난 2일 개봉한 ‘마담 뺑덕’은 눈먼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려고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딸의 희생을 다룬 한국 고전 소설 심청전을 현대로 옮겨온 작품이다. 영화는 효의 미덕을 칭송하는 대표적 텍스인 심청전을 욕망의 텍스트로 바꾸는 역발상에서 시작, 한 남자와 그를 사랑한 여자, 그리고 그의 딸 사이를 집요하게 휘감는 사랑과 욕망, 집착을 그렸다.
개봉 후 오랜만에 다시 마주한 이솜은 많이 달라져있었다. 언제나 말이 없을 줄 알았는데 어느새 재밌는 말장난까지 섞어가며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갔다. 영화에 대한 제 생각을 차곡차곡 전달할 줄 아는 여유도 있었다. 자신이 연기한 덕이를 생각하면서 눈가가 촉촉해졌다가도 칭찬이 이어지자 몸을 배배 꼬며 “쑥쓰러워”하고 푸시시 웃었다. 덕이와 세정이 묘하게 교차되는 시간이었다.
“사실 저 어제 좀 울었어요. ‘마담 뺑덕’ 마지막 무대인사가 있었거든요. 덕이가 불쌍하기도 했고 또 덕이를 떠나보내야 할 때인 거 같아서 섭섭하기도 했죠. 모든 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까 숨겨왔던 감정이 터진 거예요. 물론 아쉬움도 있고요. 제가 존경하는 멋진 선배들 같은 노련한 연기는 아니니까요. 하지만 한 신 한 신 보면 그래도 최선을 다했어요(웃음).”
사실 영화는 뚜껑이 열리기도 전에 세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데뷔 20년차 정우성의 파격적인 베드신이 예고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이솜이 함께 있었다. ‘정우성의 그녀’가 된 이솜은 예고편은 물론, 현장 스틸 하나만으로도 포털사이트에 이름을 올리는 ‘화제의 인물’이 됐다.
“감사하기도 하고 놀라기도 했죠. 이렇게 관심받는 건 아무래도 처음이니까요. 당연히 출연 전에는 고민도 많이 했어요. 가족들에게 보여줬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고요. 원래 시나리오가 들어오면 제가 먼저 봐요. 그런데 이번처럼 엄마나 언니에게 보여줬던 건 고민이 됐다는 거죠. 물어봤더니 ‘네가 하고 싶으면, 매력 있다고 생각하면 해라’고 하시더라고요. 영화 보고 나서는 ‘고생했다. 힘들었겠네’ 위로도 해주셨죠. 근데 자꾸 덕이 불쌍하다고…(웃음).”
가족에게 조언을 구할 만큼 그를 고민하게 만든 건 비단 19금 노출신 때문만은 아니었다. 덕이와 세정이 펼치는 감정연기도 어렵고 낯설긴 마찬가지. 8년의 세월을 오가는 것만으로도 벅찰 텐데 그 감정의 폭도 어마어마했다. 그래서 노래의 도움을 받았다. 평소 지인들에게 어떻게 지내냐는 말 대신 “요즘 어떤 노래 들어?”라고 묻는 이솜 다운 선택이었다.
“노래는 그 사람의 기분을 알게 해주니까요. 먼저 순수했던 덕이의 사랑이 담긴 1막에서는 밝은 힙합 음악을, 덕이의 복수가 주를 이루는 2막에서는 몽환적인 느낌을 살리기 위해 일레트로닉 장르를 들었어요. 파국으로 가는 애증의 3막에서 ‘인연’을 들었고요. 개인적으로는 이 모든 감정을 이겨 내보고 싶은 마음이 컸죠. 물론 덕이만큼 힘들진 않았더라도 사랑했을 때 제 경험을 감정에 이입하려고도 했고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덕이의 감정으로 쌓여간 듯해요.”
모두가 알다시피 이솜은 모델 출신이다. 그가 배우 활동을 시작한 건 모델 데뷔 2년 후, 영화 ‘맛있는 인생’을 통해서다. 모델 출신 배우들이 흔하긴 하지만, 그 텀이 그리 길지 않다는 점에서 특별히 눈길이 갔다. 물론 굳이 ‘배우가 하고 싶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낸 적은 없다. 하지만 그는 “그런 생각이 있었기에 욕심이 났을 거”라 털어놨다.
“(배우에 대한) 생각은 있었겠죠. 어느 순간 영화를 보면 영화를 보는 게 아니라 그 안에 캐릭터나 배우들의 연기를 보고 있더라고요. 그런 것들이 보이면서 연기에 대한 욕심이 생겼고 때마침 좋은 기회가 오면서 자연스럽게 넘어온 게 된 거죠. 모델 일도 많은 매력이 있지만, 확실히 배우, 감독님과 스태프들과 소통하고 완성해서 스크린으로 보여주는 건 엄청난 매력이 있는 듯해요.”
어쨌든 배우로 전향한 그는 영화 ‘푸른 소금’(2011), ‘뒷담화:감독이 미쳤어요’(2013), ‘사이코메트리’(2013), ‘더 엑스’(2013), ‘하이힐’(2014), ‘산타바바라’(2014) 등에 연이어 출연, 영화 관계자들의 눈을 사로잡으며 성공적인 시작을 알렸다. 그리고 이제 풋풋한 동생에서 성숙한 여성으로의 변신에도 성공했다. 이번 영화를 통해 덕이뿐만 아니라 배우 이솜도 어른이 된 기분이라는 평에 맞장구를 치던 그는 “이젠 아이 티를 좀 벗고 싶다”며 수줍게 웃었다.
“나이를 넘나들 수 있는 연기를 해보고 싶어요. 제 나이의 연기도 좋지만, 해보지 못한 게 많으니까 다양한 걸 많이 경험해보고 싶은 거죠. 근데 사실 이게 딱 한 가지 목표만으로 되는 건 아니잖아요. 배우라는 직업은 계속해서 노력하는 직업이니까요. 그리고 전 이제 대중들에게 첫발을 내딛는 거고요. 그때그때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면 좋은 배우로 남지 않을까요?(웃음). 이왕이면 몸 사리지 않고 연기를 위해 노력하는 배우로요.”
“정우성 선배의 배려에 더 잘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앞서 뉴스핌과의 인터뷰에서 정우성은 이솜에 대해 “한국 영화계에 가능성이 큰 배우가 나타났다”고 말했다. 물론 이외에도 그의 칭찬은 인터뷰 내내 이어졌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이솜은 대번에 “전부 정우성 분”이라고 받아쳤다. “(정우성) 선배 덕분에 늘 재밌는 촬영이었어요. 조언도 많이 해주셨고요. 물론 조언은 볼 때마다 매일 해주세요(웃음). 주로 배우로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거죠. 예를 들면 ‘행동들을 항상 조심하고 잘 해야 한다’, ‘작품을 고를 줄 아는 눈을 길러야 한다. 그러려면 책도 많이 보고 영화도 많이 봐라’ 같은 거예요. 물론 촬영장에서도 많이 배웠죠. 제가 놀란 게 (정우성이) 현장 분위기를 항상 즐겁게 해주시거든요. 근데 또 집중해야 되는 부분에서는 눈빛 하나만으로 분위기를 만드세요. 그걸 보면 ‘아, 지금은 집중해야겠구나’ 하죠(웃음). 신기해요. 그리고 항상 배려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행동을 좀 더 조심해야겠다 싶었죠. 이번 부산국제영화제 레드카펫 때도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혼자 갔으면 더 떨렸을 건데 (정우성) 선배도 그걸 잘 알고 같이 들어가 주신 거겠죠. 또 영화도 둘의 사랑을 다룬 거니까요. 그래도 엄청 떨리긴 하더라고요. 레드카펫 자체에 대한 설렘과 긴장이 있었거든요. 그날 긴장을 어찌나 많이 했던지, 저녁에 긴장이 풀리고 나니까 먹은 게 다 체한 거 있죠(웃음).” |
[뉴스핌 Newspim] 글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사진 이형석 기자 (leehs@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