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정경환 강효은 기자]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에 대한 첫 공판에서 조 전 부사장이 항로 변경 혐의에 대해 강력히 부인했다.
19일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2부(부장판사 오성우)의 심리로 열린 조 전 부사장에 대한 첫 공판에서 조 전 부사장의 변호인 측은 "항로의 개념에 지상 구간은 포함되지 않는다"며 "항로는 하늘의 공로(空路)를 뜻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공판에서 조 전 부사장 측은 예견됐던 바대로, 항공보안법 상 항로변경죄 혐의를 벗는 데 주력하는 모습이었다.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는 항로변경죄가 조 전 부사장에게 적용된 혐의 중 처벌이 가장 무겁기 때문이다.
앞서 검찰은 지난 7일 항공보안법상 항공기 항로 변경·안전운항 저해 폭행, 위계공무집행방해, 업무방해, 강요 혐의로 조 전 부사장을 구속 기소했다.
당시 검찰은 "이번 사건은 조 전 부사장이 사적 지위를 남용, 항공기를 되돌리고 사무장을 하기(下機)시켜 항공기 안전을 위협하고 법질서를 무력화시킨 사안"이라며 "아울러 사건의 책임을 기장과 사무장 등에게 전가함으로써 그들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2차 피해를 야기했다"고 밝혔다.
이어 "사건 발생 초기부터 적극적 증거 조작을 통한 조직적인 사건 은폐 및 왜곡으로 국토부 조사 과정에서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의 결과를 초래했다"며 "전례없는 항공기 리턴 사태로 대한항공에 대한 신뢰도를 추락시키고 국가 위신 역시 크게 실추시켰다"고 덧붙였다.
조 전 부사장 변호인 측은 "검찰이 '운항'을 지상 구간 이동도 포함하는 것으로 보고, 항로 변경을 주장하는데, 이는 확장해석 또는 유추해석으로서 죄형법정주의에 반한다"며 "항로는 하늘길 즉, 공로(空路)를 뜻한다"라고 말했다.
즉, 엔진 시동이 걸리지 않은 상태로 주기장에서 후진했다가 돌아오며 20미터 가량 움직인 것을 항로 변경으로 볼 수 없다는 것.
변호인 측은 "22초간 20미터 움직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정확히는 17초, 17미터다"엔진 시동 안 건 상태에서 토잉카(Towing Car)에 의해 밀려서 이동한 것으로, 항로변경죄가 적용될 수 없다"고 언급했다.
이어 "국토부 조사 당시 항공보안감독관도 '활주로 이동은 항로 변경으로 보기 어렵다'고 한 바 있다"며 "주무부서인 국토교통부가 명백히 아니라고 하고 있고, 기타 항공 관련 규정 등에서도 항로는 공로를 전제로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조 전 부사장 변호인 측은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 역시 성립될 수 없음을 역설했다.
변호인 측은 "거짓 진술 한 적 없고, 승무원 등으로 하여금 거짓 진술을 지시한 사실도 결코 없다"면서 "공모라고 평가될 만한 회의도 없었으며, 있었다 해도 법리적으로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어 "허위진술이 과연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는지 의문"이라며 "허위진술 만으로는 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게 대법원의 확립된 판례"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조 전 부사장의 변호인 측은 여론재판에 대한 우려를 표하며, 향후 공판과정에서는 주장 사항을 서면으로 대체할 뜻을 밝혔다.
변호인 측은 "기본적 사실관계를 인정하고, 유무죄를 떠나 사려깊지 못한 행동으로 피해를 끼친 데 대해 깊이 반성한다"면서 "다만, 실제보다 과장된 부분 많기에 향후 공판과정에서 주장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공판 전 피의사실이 공표되고, 수사기관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정보들이 공개되는 등 개인의 인권이 무시되고 있는 바, 이는 무죄추정의 원칙에도 반한다는 주장이다.
변호인 측은 "앞으로 공판과정에서 변호인 의견은 서면으로 주장할 방침이며, 법정 외에서 일체 발언을 하지 않겠다"라며 "여론의 영향을 안 받고 실체 관계를 엄격히 따져보고자 한다"고 언급했다.
아울러 이날 공판에서는 조 전 부사장과 함께 구속 기소된 여 모 대한항공 객실승원부 상무와 김 모 국토부 감독관(사무관급)에 대한 심리도 진행됐다.
여 모 상무는 증거인멸·은닉, 위계공무집행방해, 강요 혐의를, 김 모 감독관(사무관급)은 공무상비밀누설 혐의를 받고 있다.
김 모 감독관 측 변호인은 "조 전 부사장에 대한 조사 가능성 관련 언급 등은 이미 언론을 통해 알려진 것"이라며 "형법상 비밀로 볼 수 없기에 비밀누설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공판은 오후 2시 30분에 시작, 기본적인 사실관계 확인 및 의견 개진 4시 10분 경 휴정했다. 이후 4시 30분 속개돼, 증거 확인 절차에 들어갔다.
옅은 푸른색 수의를 입고 법정에 나온 조 전 부사장은 시종일관 고개를 숙인 채 묵묵히 공판에 임했다.
[뉴스핌 Newspim] 정경환 강효은 기자 (hoa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