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생산 + 세계불황 + 정책한계
[뉴스핌=김사헌 기자] 국제유가가 2009년 금융위기 이후 최저치 아래로 떨어지면서 투기세력들도 빠르게 발을 빼는 등 유가 하락에 끝이 보이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공급 과잉 양상이 지속되는 한편 수요 회복이 빠를 수 없는 '뉴노멀'이 당분간 석유시장을 지배할 것이란 분석을 제기하고 있어 주목된다.
지난 12일 미국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자료에 따르면, 8월11일 기준 주간 미국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선물에 대한 투기세력들의 순매수 포지션은 11% 감소한 반면, 순매도 포지션이 9.7% 증가하면서 3월 이후 최고 수준까지 치솟았다.
원유 선물시장의 순매수 베팅은 최근 8주 사이 7주나 줄어들면서, 5월 이후 약 절반 수준으로 대폭 감소했다.
◆ 국제유가 반등, 당분간 힘들다
일각에서는 유가 바닥을 점치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조만간 다시 강세 베팅이 증가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지만, 단기적으로는 쉽지 않은 여건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올여름 미국 원유선물 시장의 부진은 1984년 이래 최악 수준으로 평가된다. 지난 11일 석유수출국기구(OPEC)이 회원국 산유량이 3년여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발표한 뒤 하루 만에국제에너지지구(IEA)는 글로벌 석유시장의 공급과잉은 최소 2016년까지 지속될 것이란 전망을 내놓았다.
이 소식에 13일 뉴욕시장에서 WTI 근월물 가격은 2.66달러나 급락한 배럴당 43.08달러를 기록했고, 17일 아시아시장에서는 41달러대로 추가 하락했다.
WTI 2015년9월물 차트 <출쳐=퓨처소스닷컴, WSJ마켓데이터에서 인용> |
당장 9월까지는 미국 정유업체의 공장정비기간이기 때문에 석유공급이 더 남아도는 시기이고, 북미 석유시추장비 가동률이 최근 7주 사이에 6주 증가세를 보일 정도로 활발하다.
또 7월 이라크 산유량이 일일 418만밸러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가운데 핵협상 타결로 이란산 석유까지 시장에 진입하고 있어서 유가 하락 압력이 더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설상가상으로 중국이 위안화 평가절하에 나서면서 미국 달러화 강세가 지속된 것도 국제유가 약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가운데, 석유시장이 '뉴노멀'에 접어들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돼 주목된다.
알리안츠의 수석경제자문역을 맡고 있는 모하메드 엘-에리언 씨는 14일자 칼럼('Oil's New Normal')에서 석유시장은 두 차례 공급 충격 외에도 중대한 한 가지 수요충격에 직면해 있다면서 "미국이라는 새로운 공급자가 등장하면서 유가 형성 과정은 좀 더 복잡해지고 긴 조정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 뉴노멀: 산유국 '미국'+세계경제 부진+정책 한계
분석에 따르면, 에너지시장의 동학이 크게 바뀌기 시작한 것은 2013년~2014년 사이 셰일오일 생산이 석유시장을 움직일 정도로 현저하게 드러나기 시작하면서다.
셰일오일은 곧바로 미국 에너지 수요자를 만나면서 세계 석유시장과 구분되는 생태계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중동 지정학 불안도 이 시장에는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
비OPEC회원국의 영향력도 높아지는 와중에 OPEC 회원국 중에서도 산유량 한도를 지키지 않는 나라들이 늘어나면서 석유 수요공급 균형은 더욱 안정을 찾지 못하게 됐다.
이러한 공급 측면에서의 근본적인 변화는 지난해 불과 몇달 새 국제유가를 절반 수준으로 뚝 떨어뜨리면서 산유국은 물론 원유 거래인과 분석가들도 놀라게 했다.
물론 국제유가가 폭락한 뒤 한계 생산자들이 무너지는 등 공급이 크게 줄어들고 소비자들도 저유가에 따라 소비를 늘리는 전형적인 시장 동학에 따라 수급균형이 새롭게 만들어졌다. 이에 따라 올해 중반까지 국제유가는 상당폭 반등하기도 했다.
하지만 새로운 요소가 이러한 수급 안정화를 방해했다.
세계경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취약하다는 것과, 특히 이런 취약성이 석유 소비 핵심국인 중국과 브라질 그리고 러시아에서 심각하다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
예상보다 취약한 수출지표와 소비지출 그리고 중국의 갑작스런 위안화 평가절하와 같은 정책적 대응이 이런 세계경제 회복의 취약성을 더 돋보이게 한다.
엘-에리언은 "미국과 같은 새로운 생산조정국은 석유시장 상황의 변화에 대해 사우디와 같은 기존 산유국보다 훨씬 더 느리게 반응하는 편이고, 자유로운 정책 결정이 아니라 전형적인 시장의 힘에 의해 바뀌는 방식을 택한다는 점에서 수급 여건이 언제 개선될지 알기 힘들게 한다"고 지적했다.
물론 그는 미국도 저유가가 장기화되면 예상보다 급격한 공급 감소 양상을 나타낼 수도 있고, 실제로 절대적인 에너지생산량의 감소와 함께 세계시장 점유율 축소를 경험하게 될 것을 분명하다고 단서를 달았다.
다만 그는 "앞으로 미국 경기 회복에 따라 수요가 증가하기는 하겠지만, 유가에 즉각 영향을 줄 정도로 크고 빠르게 늘어나지는 않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뉴스핌 Newspim] 김사헌 기자 (herra79@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