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화 10% 절하 시 교역국 GDP 타격"
[뉴스핌=김성수 기자] 중국이 위안화 평가절하를 통해 경기부양을 도모하고 세계 경제를 희생시키는 '민폐국'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일각의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다만 이미 일본 엔화나 유로화의 급격한 평가절하를 통한 경기부양 노력이나 최근 신흥국통화의 급락을 감안한다면 이웃 나라를 희생해 자국 경제 회생을 꾀하는 '근린궁핍화'라는 식의 우려는 과도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 성장 둔화에 직면한 중국
금융 위기를 거치면서 한때 세계 경제 기관차 역할을 했던 중국은 최근 몇 년간 시장 친화적 경제로 이행하기 위한 개혁을 수행해 왔으나,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은 여전히 어려운 과제로 남았다. 이런 상황에서 위안화 약세가 중국 경제와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히 클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 앞서 위안화 환율 변동성과 국경간 자본흐름을 엄격히 규제함으로써 통화정책과 독립된 환율 정책이라는 무기를 확보하고 있었다. 그 결과 달러대비 위안화 가치를 인위적으로 낮게 유지해 수출을 증진할 수 있었으며, 이는 산업화 진전과 제조업 일자리 창출 등의 원동력이 됐다.
그러나 위안화는 이제 더 이상 저평가된 통화가 아니게 됐다. 일본과 유럽이 양적완화 정책을 유지한 것과 달리 미국이 연내 금리인상 의지를 밝혀 달러 강세가 나타났고, 이는 달러와 연동된 위안화 가치도 따라 오르는 결과를 낳았다.
국제통화기금(IMF)과 JP모간체이스, 골드만삭스 등의 조사에 따르면 위안화 가치는 지난 2009년 이후 20% 넘게 상승해, 같은 기간 달러화(10%)·유로화(약 -10%)·엔화(약 -25%)보다 월등히 높은 수준으로 올랐다.
중국의 경상수지 흑자가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계속 줄었다. 지난 2007년에는 중국 GDP에서 경상수지 흑자가 10%를 차지했으나, 지난해에는 2%로 급감했다.
이 가운데 최근 중국이 단행한 위안화 평가절하에 대해 20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의 진짜 의도는 수출 및 경기부양이며, 이는 세계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비판을 제기했다.
<출처=월스트리트저널(WSJ)> |
인민은행의 일시 평가절하는 투자자들의 위안화 매도 행렬로 이어졌고, 그 결과 위안화 가치는 가격변동 제한폭의 하단까지 떨어졌다.
◆ '경쟁적 평가절하' 유발?
신문은 '경쟁적 평가절하'가 다른 국가들의 성장을 저해하는 '근린궁핍화 정책(beggar-my-neighbor policy)'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위안화 가치가 10% 떨어졌을 경우 30개국 중 중국을 제외한 29개국은 국내총생산(GDP)에 타격을 받게 된다는 씨티그룹의 분석을 소개했다. 이에 따르면 일본과 유로존은 성장률에 0.5% 충격이 나타나며, 중국과 경쟁하는 아시아 국가들의 경우 더 큰 타격을 받게 된다.
한 국가가 양적완화를 실시하면 경제가 호조를 보이면서 상대국가에도 윈윈(win win)이 돼야 하는데, 중국은 오히려 상대국에 피해를 주고 있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위안화 평가절하 정책이 중국 국가위원회에서 환율 유연화를 비롯한 수출 진작 정책을 발표한 지 몇 주 만에 이뤄졌다는 점도 의심스러운 대목이라고 덧붙였다.
골드만삭스는 중국에서 수출 및 수출관련 투자 부문이 지난 3년간 경제성장률에 매년 2%포인트(p)씩 기여해 왔다고 분석했다. 지난 2010년에 비하면 기여도가 줄었지만 중국 경제에서 수출이 여전히 막강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중국은 올해 원자재 수입품 가격 하락 덕분에 경상수지 흑자 규모에서 독일을 뛰어넘을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전세계 소비부진이 지속되는 가운데 중국은 세계 최대 저축 국가로서의 입지 역시 유지하고 있다.
전 세계 보호무역 실태를 연구하는 글로벌 트레이드 얼러트(GTA)의 사이먼 에버넷은 "중국은 지난해 수출품에 대한 부가가치세 환불 수백건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며 "환불 규모가 올 상반기에만 12% 증가하면서 수출 자체보다 빠른 증가세를 보였다"고 분석했다.
WSJ는 "인민은행의 위안화 평가절하는 환율 자유화 목적보다는 수출 및 경기부양 목적이 더 크다"며 "인민은행의 정책은 공산당 관료들의 검열을 통과해야 하고 이들은 인민은행과 같은 자유경제 기조를 공유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 남이 하면 불륜
한편, 위안화 평가절하는 분명히 위축되던 수출경기를 회복하고 국내성장 동력도 확보하겠다는 의지로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그 파장이 만만치 않겠지만, 5% 미만의 제한적인 위안화 절하에 대해 무슨 큰 일이 난 것처럼 호들갑 떠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캘리포니아대 국제정치경제학 담당 벤자민 코언 교수는 19일자 칼럼을 통해 "유로화 20% 평가절하나 엔화의 35% 약세와 비교하면 위안화가 급락했다든지 하는 1면 기사 제목은 너무 상황을 호도하고 있다"면서 "중국이 글로벌 수출 비중을 확대하고 싶었다면 제한적인 평가절하에 그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번 중국의 일시 평가절하는 위안화의 국제 기축통화로의 편입을 노리는 보다 장기적인 포석의 일환으로 봐야 한다면서, 국제통화기금(IMF)이 성명서를 통해 위안화 환율이 좀더 시장에서 결정되도록 한다면 특별인출권 통화로 편입되는 것이 더 쉬워질 것"이란 매우 전향적인 어조를 보인 것은 주목할만한 대목이라고 강조했다.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에서 영국 일본 그리고 유로존까지 이어진 양적완화 정책은 계속해서 '글로벌 환율전쟁'의 공포를 불러일으켰고, 그 때마다 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이나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 총재 등 주요국 정책당국 수장은 "선진국 경제가 살아야 나머지 세계경제에도 좋은 일 아니냐"며 우려를 달랬다. 당시에 월스트리트저널이나 다른 주요 서방 매체들은 대부분 이들 선진국이 전 세계경제에 대한 민폐국이란 식으로 비판하지 않았고, 나머지 세계경제가 경쟁적 평가절하에 나서면 공멸을 자초하는 일이란 식의 태도를 취한 바 있다.
[뉴스핌 Newspim] 김성수 기자 (sungsoo@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