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요(姚姚), 아주 어여쁘고 아리땁다는 뜻이다. 요조(窈窕), 여자의 행동이 얌전하고 정숙하다는 말이다. 고혹(蠱惑), 아름다움이나 매력적인 것에 홀려서 정신을 못 차린다는 의미다. 연연(娟娟), 곱고 또 곱게 아름답고 어여쁘다는 관념어다. 가인(佳人), 요요(姚姚)·요조(窈窕)·고혹(蠱惑)·연연(娟娟)을 모두 아우른 미인을 뜻한다.
신언서판(身言書判). 인물을 고르는 네 가지 조건을 의미한다. 신(身)은 인물 생김이 준수함을 조건으로 삼는다. 언(言)은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설득력 있게 표현함을 의미한다. 상대적으로 어(語)는 묻는 말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것이다. 서(書)는 글재주로써 문장력을 의미하는 데 보고서 작성 능력쯤 된다. 판(判)은 어떤 현상이나 사건에 대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능력이다.
국악이론을 처음으로 정리한 사람이 있다. 조선시대 말 전북 고창 출신 동리 신재효다. 신재효는 예능인의 우수 조건으로 첫째 인물치레, 둘째 사설, 셋째 득음, 넷째 너름새를 꼽았다. 인물치레란 잘 생겨야 한다는 것이다. 사설은 내용이 좋아야 한다는 뜻이다. 득음은 그런 연후에 소리를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 너름새는 소리하는 몸동작이 편안하게 좋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 곳에 가면 그 곳만의 노래가 있다. 민요가 그렇다. 민요는 작사자나 작곡가가 없다. 나라가 생긴 이래 말로만 전수돼 지금까지 불리고 있는 노래다. 지방마다 지세가 다르고 물세가 다르다. 역사적인 배경과 풍습도 다르다. 자연히 사는 방식도 사람끼리의 소통 방법도 달랐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말은 사투리요 노래는 ‘토리’다. ‘토리’는 순수 우리말이다. 지방마다의 독특한 투의 노래를 뜻한다. 그래서 민요는 감칠맛이 난다.
이러한 민요의 토리는 네 개로 나누어진다. 평안도 황해도 지역소리를 <서도 소리> 또는 <수심가 토리>라고 한다. 고구려-고려로 이어지는 관서지방 사람들의 군인 같은 강한 기질의 맛이 나는 소리다. 서울 경기 충청 지역 소리는 <경기 소리> 또는 <창부 토리>라고 한다. 대궐의 단청처럼 단아한 기품이 넘치는 소리다. 강원도 경상도 지역 소리는 <동부소리> 또는 <메나리 토리>라고 한다. 꿈틀대며 용트림하는 태백산맥의 씩씩한 기상이 느껴지는 소리다. 전라도 지역 소리는 <남도 소리> 또는 <육자배기 토리>라고 한다. 전라도 소리는 부드러우면서도 유장한 맛이 나는 소리다. 이렇게 민요는 각 지역마다의 사투리를 바탕으로 고유한 정서적 색깔을 띠고 있다.
어느 봄 날 반바지에 편안 신발을 신은 경기 소리꾼을 만났다. 얼굴은 계란형이었고 이마는 궁궐 처마 끝 곡선이었다. 눈은 초롱초롱했으며, 코는 오똑했다. 입술은 순했다. 한마디로 요조(窈窕)했다. 대화를 나누었다. 차분하게 자신의 말을 분명하게 표현했다. 언(言)을 갖추고 있었다. 소리를 부탁했다. 창부타령을 불렀다. 천구성(--聲)이었다. 타고난 소리인 것이다. 공연 무대에 올랐다. 군부대 장병들을 대상으로 한 공연이었다. 장병들이 그의 너름새에 흥을 타고 출렁였다.
김보성. 1988년 대전에서 태어난 경기민요 소리꾼이다. 서울국악예술중학교, 서울국악예술고등학교, 중앙대학교를 졸업했다. 학창시절 전국 국악경연대회에서 수회에 걸쳐 금상을 수상한 바 있는 등 탄탄한 실력을 갖추었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는 러시아, 중국 등 해외에 우리 소리를 알리는 전통예술 공연을 비롯하여 수많은 공연을 소화해 내고 있다.
강원 인제 문화회관에서 있었던 광복 70주년 기념 공연장을 찾았다. 김보성이 출연하는 무대다. 을지부대 장병들과 강원 인제 군민들이 태극기를 들고 공연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관객은 20대부터 80대까지였다. 어느 세대에 방점을 찍어 공연하기가 매우 어려운 무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기실을 찾았다. 김보성이 시나리오를 보며 열심히 머릿속으로 공연 장면 장면을 상상하며 연습했다. 무대가 열렸다. 무거운 침묵분위기가 무대를 덮쳤다.
김보성이 올랐다. 단정한 검정색 원피스 차림이었다. 국악공연이라면 으레 생각하는 것이 한복인데 원피스 양장 차림의 모습에 관객은 뚱한 반응을 보였다. “안녕하세요. 의리의 소리꾼 김보성 입니다.”해 맑은 미소를 띠고 말을 이어갔다.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처럼 차분하게 진행해 갔다. 줄(絃) 풍류가 흘렀다. 대(竹) 풍류가 울렸다. 태평가가 불려졌다. 자진 뱃노래가 이어졌다. 배 띄워라 국악가요가 울렸다. 관객들 반응이 달아올랐다. 태극기를 흔들려 환호했다. 아리랑을 불렀다. 관객들이 따라 불렀다. 말 그대로 야단법석의 어울림의 한마당 잔치가 열리고 있었다. 관객 여러 명을 무대 위로 올렸다. 평화 아리랑을 부르며 너름새를 이어갔다. 국악을 부르고 들으며 젊은 장병들이 춤을 추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장면이 각본 없이 열광적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국악 대중화의 희망 새싹이 트고 있었다.
국악의 전통과 정통을 지키면서 지금 이 시대 문화기조에 맞게 내용을 다시 쓰고, 너름새를 창작하는 김보성의 공연은 100여 년 전의 협률사, 여성국극단의 전성기가 2015년의 모습으로 다시 재현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여름 끝 무렵 산 공부를 마치자마자 목이 쉰 채 다시 군부대 장병 무대에 선 그의 환한 미소 위로 국악계의 밝은 햇살이 쏟아졌다.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02-794-8838, sm290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