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금리동결·세계 경기둔화·증시 부진 삼중 호재
[뉴스핌=배효진 기자] 상반기 널뛰기 장세를 펼친 글로벌 채권 시장은 3분기 들어 다시 강세를 보였다.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금리인상에 실패한 가운데 세계경기 우려가 확산돼, 채권의 안전자산 매력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린다.
7, 8월까지 미국 금리인상 개시를 둘러싸고 움직임이 분주했지만 9월 들어 부각된 세계 경기둔화 우려가 금융시장을 강타하면서 위험회피 심리가 뜨겁게 타올랐다.
지난달 유럽 채권시장은 독일과 네덜란드, 덴마크 등 주요국 단기 국채 수익률이 마이너스권으로 내려갔다. 주식시장이 불안한 흐름을 유지한 데 이어 미국 연준과 유럽중앙은행(ECB) 정책 기조가 엇갈린 영향이다.
미국 국채시장은 강세 흐름을 유지한 가운데 호악재 공방 속 혼조 양상이 지속되고 있다.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금리동결 결정 이후 국채가는 큰 폭으로 상승했지만 이후 연준 위원들의 매파적 발언과 경제지표 호조가 투자자들의 불안감을 다소 누그러뜨렸기 때문이다.
신흥국은 원자재 가격 하락 등으로 경기침체 우려를 자아낸 브라질 국채 수익률이 큰 폭으로 뛴 것을 제외하고 대다수 신흥국 국채는 선진국 국채 강세 분위기를 이어갔다.
◆ 세계 경기 둔화… 미국 긴축 압도한 대형 악재
9월 FOMC에서 미국 기준금리가 동결됐지만 채권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여전히 불확실성을 남겨둔 금리동결과 달리 세계 성장률 둔화가 초대형 악재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이에 금리동결 이후 자넷 옐런 연준 의장을 비롯한 고위 관계자들이 연일 매파적 발언을 쏟아내고 있지만 시장은 세계 경제 성장률 둔화에 촉각을 곤두세운 상황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의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는 30일 연설에서 중국을 필두로 한 신흥시장 경기둔화가 전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을 악화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라가드르 총재는 "올해 전 세계 경제성장률은 지난해보다 둔화되고 내년은 소폭 상승에 그칠 것"이라며 "신흥국 경제는 5년 연속 성장세가 둔화될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예상 외로 가파른 중국 경기둔화가 세계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데 이어 원자재 가격 하락이 여타 신흥국 경제에도 부담을 지우고 있다는 분석이다.
세계 무역 성장률 <출처=세계무역기구> |
세계무역기구(WTO)도 신흥국 경제의 부진한 성장과 선진국의 더딘 회복을 이유로 올해 전 세계 무역 성장률 전망치를 낮췄다.
WTO는 30일 올해 세계 무역 성장률이 2.8%를 기록해 당초 전망치 3.3%보다 낮을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세계 경제 전망이 좋지 않기 때문에 실제 성장률은 전망치를 밑돌 수 있다고 설명했다.
WTO 이코노미스트는 "신흥국 경기가 추가로 악화될 경우, 하향 조정된 전망치 역시 낙관적일 수 있다"며 "여기에 더딘 선진국 수입 회복세는
세계 최대 뮤추얼펀드 업체 뱅가드의 조셉 데이비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세계 저성장은 앞으로 우리 일생을 정의하는 흐름이 될 것"이라며 "중국 경기둔화는 세계 경제의 꼬리위험"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향후 10년간 경제 성장률 5%는 중국 경제 저점이 아닌 최상단이 될 것"이라며 "중국 경제가 침체를 경험하거나 추가로 위축될 경우, 이는 세계 경제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향후 50년간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로는 과거 50년의 절반 가량인 2%를 제시했다.
◆ 유로존 물가, 6개월 만 하락…디플레 우려 재부상
지난달 말 유럽 선진국 국채는 마이너스 금리에서 거래되는 현상을 되풀이했다. 중국을 필두로 한 신흥시장 경기위축에 따른 수요 둔화 우려에 제조업과 서비스업 경기 모두 확장세가 다소 약화된 영향이다.
9월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제조업 구매관리자자지수(PMI) 잠정치는 52.0으로 전망에 부합했지만 직전월 52.3에서 하락했다. 유로존 최대 경제국 독일의 9월 제조업 PMI 잠정치는 52.5로 전망치와 직전월 수치 모두 밑돌았다.
이에 5년 만기 독일 국채(분트채) 수익률은 23일 5bp(베이시스포인트, 1bp=0.01%) 하락한 마이너스 0.011%를 나타냈다. 5년 물 분트채 수익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진 것은 지난 7월 25일 이후 처음이다.
9월 유로존 소비자물가지수 <출처=유로스타트> |
이 같은 우려는 물가가 6개월 만에 하락해 디플레이션(물가 하락 속 경기 침체) 우려가 재부상하면서 더욱 높아질 것으로 관측된다. 30일 유럽연합 통계기관인 유럽통계청이 발표한 9월 유로존 소비자물가지수(CPI) 잠정치는 전년 동기 대비 0.1% 하락하며 지난 3월 이후 6달 만에 마이너스권으로 밀려났다.
유로존 CPI가 지난 4월 0%대로 올라선 지 약 반년 만에 재차 마이너스대로 떨어진 것이다. 앞서 5얼 3%까지 치솟았던 CPI가 8월 0.1%로 밀려나며 우려됐던 디플레이션(물가 하락 속 경기 침체)이 현실화 된 셈이다.
매파로 분류되는 핀란드 중앙은행의 에르키 리카넨 총재는 "신흥 시장의 성장률 둔화와 시장 기대를 저버린 물가상승률이 유로존 성장의 리스크로 자리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대체적으로 ECB 추가 양적완화 단행 가능성을 점치는 상황이다.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의 장 미셀 식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ECB가 양적완화 프로그램을 오는 2018년 중순까지 연장하고 자산 매입규모를 기존의 두 배 수준인 2조4000억유로까지 확대해도 놀랍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RBC캐피탈마켓의 티모 델 카피오 이코노미스트는 "저물가 환경은 물가상승에 대한 기대를 식히기 때문에 ECB는 물가가 점진적으로 오를 수 있다는 기대를 조성하는 데 노력할 필요가 있다"며 "다만 ECB가 오는 12월 회의 전까지 추가 완화 카드를 꺼내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 연준, 경기 우려 넘고 연내 긴축 성공할까?
옐런 의장은 24일 대학 강연에서 "미국 경제가 튼튼한 것으로 확인됐으며 올해 말 부터 금리인상을 시작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9월 FOMC 금리동결 원인이던 세계 경기 둔화에 대해서는 "미국 금리인상 계획을 변경할 정도로 중요한 변수는 아니다"고 일축했다.
하지만 전 세계 경기둔화에 대한 우려가 일파만파 확산되면서 미국의 연내 금리인상 가능성은 점차 후퇴하고 있다. 옐런이 연내 금리인상 의지를 재확인했지만 시장은 이를 신뢰하지 않는 모습이다.
알리안츠의 모하메드 엘-에리언 수석 경제고문은 "신흥국발 경기둔화로 인한 세계 성장 문제가 금리인상 시기 결정에 어려움을 주고 있다"며 "적절한 시기가 아닌데도 금리를 올리는 것은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세계은행의 김용 총재도 미국 연내 금리인상은 중국 경기둔화로 고통받는 신흥국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 총재는 긴축 환경 마련 전까지 금리를 올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CME페드와치에 의하면 1일 기준으로 10월과 12월 금리인상 가능성은 각각 14%, 41%다. 반면 내년 1월과 3월은 각각 50%, 62%며 4월은 66%로 더욱 높은 수치로 확인됐다. 연내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이 절반도 넘지 않는 셈이다.
ANZ뱅크의 마틴 휘튼 전략가는 "시장은 대외 여건과 변동성이 매우 거친 상태로 연준이 간단히 긴축에 나서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며 "시장은 그저 '너희는 인상을 말하지만 우리는 준비가 안됐다'는 말만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연준이 지체하지 말고 금리인상에 나서는 것을 촉구하는 의견도 있다.
글로벌 대체투자 전문 운용사 오크트리캐피털의 하워드 마크스 회장은 "연준은 곧 금리인상이 있을 것이라는 말만 되풀이 하면서 통화정책 정상화에 몹시 두려워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마크스 회장은 "연준이 금리인상에 나서지 않으면 모든 사람들은 이를 시장이 매우 취약하다는 것으로 볼 것"이라며 "연준은 몹시 두려워하는 그저 이를 악물고 긴축을 시작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블룸버그가 지난 25일부터 나흘간 이코노미스트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4%가 12월 금리인상을 점치며 연방기금금리 선물 시장과 상반된 견해를 드러냈다.
◆ 주춤해진 금리인상, "투자 적기"
연준이 연내 금리인상에 머뭇거리는 상황이야말로 채권 투자에 나서야 할 때라는 의견이 나온다. 특히 중단기 미 국채와 투자등급 회사채에 투자 기회가 있다는 판단이다.
세계 최대 자산 운용사 블랙록의 릭 리에더 글로벌 채권 최고투자책임자는 "지난 수년간 투자등급 채권의 투자가치가 제한적이라고 판단했지만 현재 일부 스프레드 수준은 매우 매력적이다"고 진단했다.
저금리와 저인플레 환경에서 최근 3년 반래 가장 크게 벌어졌던 투자등급 회사채와 미 국채 리스크 프리미엄이 줄어들 것이란 기대에서다. 특히 제조업 부문 투자등급 회사채 비중을 확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중국을 필두로한 신흥 시장 부진에 ECB 추가 완화 기대가 높은 유로 채권 역시 매력적이라고 설명했다.
새로운 채권왕으로 불리는 더블라인캐피털의 제프리 군드라흐는 5년 만기 미 국채를 사들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로이터 인터뷰에서 "세계 경제 성장이 충분치 않고 연준도 이를 느끼고 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웨스턴애셋매니지먼트의 존 벨로우 채권 매니저는 장기물 미 국채 보유로 큰 수익을 걷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낮은 인플레 환경을 벗어나고자 연준이 금리를 올리겠지만 연내 인상은 힘들다는 분석에서다.
[뉴스핌 Newspim] 배효진 기자 (termanter0@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