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글 장주연 기자·사진 이형석 기자] 언제나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고, 참고 참고 또 참던 한효주(30)가 달라졌다.
자신을 배신한 친구와 연인에게 복수하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남자의 품에 안긴다. 돌아선 연인에게 사랑을 갈구하다가도 이내 외면해버린다. 도움을 청하는 친구는 사지로 내몬다. 복사꽃같이 순수하고 어여쁘던 소녀는 그렇게 독하디독한 여자가 됐고, 한효주는 그렇게 낯설게 스크린 한가운데 섰다.
지난여름 영화 ‘뷰티인사이드’로 관객을 만난 배우 한효주가 신작 ‘해어화’를 들고 돌아왔다. 13일 개봉한 이 영화는 1943년 비운의 시대, 최고의 가수를 꿈꿨던 마지막 기생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극중 한효주는 최고의 가수를 꿈꾸는 마지막 기생 소율을 연기했다.
“늘 시나리오 전체를 보고 작품을 선택하는 편인데 이번 영화는 배우로서 욕심으로 선택했어요. 그동안 늘 밝고 맑고 순수하고 이런 역할들을 많이 했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그런 극적인 연기를 할 수 있는 작품이 많이 없었어요. 한참 극적인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을 때 들어온 작품이라 망설임 없이 택했죠.”
해보지 않았던 역할이기에 당연히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소율은 초반과 후반이 명확하게 다른, 한효주의 말대로 극과 극 캐릭터. 그는 “그래도 감정을 쌓아갈 수 있는 신들이 많아서 연기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됐다”고 말했다.
“워낙 비극적인 이야기고 이런 걸 처음 하다 보니까 고민이 많았어요. 또 캐릭터의 초반부와 후반부가 극명하게 다르잖아요. 초반에는 순수하고 여린 모습, 그리고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줘야 했죠. 그래서 초반부 소율을 더 의인화해서 더 순수하고 성숙하지 않은, 소녀에서 여자가 되기 전 어딘가 미묘한 느낌의 캐릭터로 만들려고 했어요. 그래야만 후반부에 변해가는 과정, 혹은 얼굴에 설득력이 생길 테니까요.”
촬영 당시를 회상하며 차근차근 말을 이어가던 한효주에게 초반부와 후반부 중 더 힘들었던 부분은 언제냐고 물었다. 물론 감정이 켜켜이 쌓여 폭발한 후반부를 염두에 두고 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뜻밖에 반대의 답이 돌아왔다.
“연기하면서는 더 힘들었던 부분은 초반부, 순수한 얼굴의 소율이죠. 이미 생각이 너무 많아져서 그런지 마냥 어린아이 같은 마음을 갖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제가 척하는 걸 못하는데 순수한 척, 어린아이인 척하는 게 너무 어렵더라고요. 진짜 오글거렸어요(웃음). 그래도 하긴 했는데 (유)연석 오빠가 ‘너 무슨 일 있었냐고, 몇 개월(두 사람은 지난해 ‘뷰티인사이드’로 호흡을 맞췄다) 만에 180도 달라졌다’며 놀랐죠.”
‘해어화’ 이야기를 나누면서 정가(바른 노래. 옛 선비들이 즐겨 부르던 우리 고유의 성악곡으로 가곡, 가사, 시조로 구성)를 부르는 장면을 빼놓을 수는 없었다. 한효주 역시 세 남녀의 사랑 이야기보다는 예인이 되고자 하는 여인, 그리고 최고의 가수를 꿈꾸는 두 친구에 주안점을 뒀다고 했다.
“사랑도 사랑이지만 전 노래에 대한 열망이 큰 아이라고 생각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노래에 대한 욕심이 있는, 어떻게 보면 사랑보다 노래가 더 위에 있는 캐릭터죠. 시나리오에서도 사랑보다는 라이벌 구도가 더 강하게 다가왔고요. 그래서 노래를 놓지 않으려고 했어요. 굳이 정가를 부르는 신이 아니라도 정가 자체를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죠. 그래야만 소율에게 자신감이 생길 듯했고 소율의 자신감이 제 자신감이니까요.”
그렇다면 준비과정은 어땠을까. 한효주는 정가의 명인이 되기 위해 촬영 전부터 약 4개월간 매일같이 연습에 매진했다. 서울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정가를 전공한 정마리 선생이 그를 직접 지도했다.
“잘해야만 캐릭터가 성립하고 캐릭터 자체가 정가를 잘하는 설정이라 연습을 많이 할 수밖에 없었죠. 근데 처음 정가를 들었을 때는 되게 당황스럽더라고요. ‘제가 이걸 한다고요?’라고 되물었을 정도였죠. 막막했어요. 그나마 다행히 촬영 전 연습할 시간이 여유 있게 주어졌어요. 그렇게 하다 보니 재미가 생겼고 조금씩 느니까 성취감이 느꼈죠. 원래 노래 실력이요? 못해요. 그저 제게 노래는 소리를 밖으로 내보내는 행동일 뿐(웃음).”
온전히 소율이 되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기울인 한효주. 그럼 혹 배신감이나 열등감 등의 감정을 연기할 때도 리얼리티(?)를 추구했을지 궁금했다.
“아니요(웃음). 그런 경험은 없어요. 연기 스타일도 그렇지 않고요. 연기 경험이 부족해서 전에는 제 경험을 끌어다 쓰는 경우가 많았죠. 근데 이제는 제 개인적인 경험이나 기억을 접목하지 않아요. 그저 캐릭터는 캐릭터로만 접근하죠. 오히려 개인 경험을 가져오는 걸 견제해요. 그러면 더 혼란스럽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도 소율로서만 접근하고 집중했어요.”
한효주의 차기작은 MBC 드라마 ‘더블유’다. ‘나인:아홉 번의 시간여행’ 송재정 작가가 극본을 맡고 ‘그녀는 예뻤다’ 정대윤 PD가 연출을 맡아 제작 초기 단계부터 뜨거운 관심을 모으고 있는 작품. 오는 5월 방송을 앞둔 ‘운빨 로맨스’ 후속으로 7월부터 안방극장을 찾는다. ‘동이’(2010) 이후 6년 만에 드라마 복귀다.
“이번엔 또 씩씩한 캐릭터가 될 듯해요. 촬영은 5월 초쯤 시작할 듯한데 많이 떨리고 긴장돼요. 드라마 현장이 너무 오랜만이라(웃음). 어쩌다 보니 의도한 건 아니지만, 그동안 영화만 쭉 해왔잖아요. 물론 영화가 할수록 좋아진 것도 있고 그래서 값진 시간이 많았기도 했죠. 근데 드라마도 그래요. 지나고 보니 힘든 거보다는 좋은 거밖에 생각이 안나더라고요. 그래서 더 설레죠.”
[뉴스핌 Newspim] 글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사진 이형석 기자(leehs@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