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개정안 도입시 해외 투기자본의 놀이터 전락할 것"
[뉴스핌=최유리 기자]국회에서 논의중인 상법개정안에 대해 전문가들의 우려가 깊다. 상법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국내기업들의 경영권 방어 수단을 제한해 해외 투기자본의 놀이터로 전락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한국경제연구원은 15일 '상법개정안의 쟁점과 문제점: 전 상법학회장들에게 듣는다'를 주제로 긴급좌담회를 개최했다.
현재 국회에 계류중인 상법개정안은 ▲감사위원 분리 선임 및 대주주 의결권 3% 제한 ▲집중투표제 의무화 ▲근로자대표 등 추천자 사외이사 의무선임 ▲다중대표소송 도입 ▲전자투표제 의무화 ▲자사주 처분규제 부활 등이다. 모두 기업의 의사 결정 시스템인 지배구조 자체를 수술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15일 '상법개정안의 쟁점과 문제점: 전(前) 상법 학회장들에게 듣는다'를 주제로 긴급좌담회를 개최했다. <사진=최유리 기자> |
그러나 이같은 규제보다는 개별 기업별 최적의 지배구조를 선택할 수 있도록 자율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효율적인 의사결정을 위해선 개별 기업 특성에 맞게 운영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최완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전 상사법학회 회장)은 "상법개정안을 도입한다고 해서 지배구조의 투명성이 바로 담보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오히려 기업의 선택권을 제약해 부담을 가중시키는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특히 감사위원 분리선임제도나 집중투표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감사위원 분리선임제는 감사위원이 되는 사외이사를 주주총회에서 별도 안건으로 분리해 선임하는 내용이다. 지금까지는 감사위원이 될 사외이사를 포함해 이사 후보 전체를 선임하고 이 중에서 감사위원를 뽑았다. 여기에 대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면 소수지분을 가진 투기세력들이 연합해 원하는 감사위원을 선임하고 이사회를 장악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김선정 동국대학교 법학과 교수(전 상사판례학회장)는 "감사위원이 소수주주를 대변하게 된다면 회사 전체의 이익을 추구하기 보다는 경영 외적 목표를 겨냥해 분쟁을 유도하거나 단기 실적에만 집착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경우 기업은 경영권 지키기에 집중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여유 자금이 생겨도 일자리 창출이나 투자 등을 진행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다.
집중투표제도의 경우 기업의 원활한 의사 결정을 막아 경영 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집중투표제는 이사진을 선임할 때 '1주 1표(의결권)'의 원칙을 적용하는 대신 이사의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현행 상법에선 회사 정권을 통해 집중투표제 도입 여부를 선택할 수 있지만, 이를 의무화하는 게 개정안의 내용이다. 해외펀드 여럿이 손잡고 후보 1명에게 표를 몰아줄 경우 이사 선임에서 막강한 권한을 갖게 된다.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전 상사법학회장)는 "집중투표제가 도입될 경우 소수 주주를 대표하는 이사와 최대주주를 대표하는 이사가 이사회에 공존해 서로 당파적인 행동을 할 유인이 높다"며 KT&G 사례를 들었다. 2006년 미국계 투기자본인 칼 아이칸 펀드는 다른 외국계 기관들과 집중투표를 통해 KT&G의 경영진 교체 요구 등 경영권을 간섭한 바 있다.
그는 "상법 개정안이 소액주주를 보호하기 위한 법이라고 하지만 이들이 주식을 보유하는 기간은 평균 3~4개월에 지나지 않는다"며 "회사의 장기적인 성장과 기업가치를 위해서는 금방 떠날 주주가 아닌 지배주주의 경영권을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법개정안 도입을 추진하는 과정에 대한 문제도 제기됐다. 원활한 기업 활동을 이끌기 위한 목적이 아닌 정치적 배경에서 논의가 시작됐다는 지적이다.
최완진 교수는 "상법개정안이 최순실 게이트로 기업 옥죄기 분위기를 타고 졸속 처리될 운명에 있다"면서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기업하기 가장 힘든 나라가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송종준 충북대 법학전문대학원(전 기업법학회 회장) 교수도 "원론적으로 상법은 기업을 옥죄는 법이 아니라 기업 활동을 원활하게 하고 기업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법"이라며 "이번 상법개정안은 기업 부담을 가중하는 것으로 그 취지에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최유리 기자 (yrchoi@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