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박지원 기자] 배우 조여정(37)의 탄탄한 연기 내공이 ‘사이코’라 불리는 이은희 마저 빛냈다. 조여정은 KBS 2TV 월화드라마 ‘완벽한 아내’에서 윤상현(구정희 역)의 스토커이자 사이코패스 이은희의 롤러코스터 같은 감정 변화를 섬세하게 그려내며 호평을 받았다. 특히 눈빛만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등 매회 신들린 연기로 조여정만의 독보적인 캐릭터를 완성시켰다.
“너무 힘들었어요. 캐릭터가 저랑 겹치는 부분이 없어서요. 저는 사람에게 집착을 해 본 적이 없거든요. 그래서 도전해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어려울 줄은 몰랐어요. 표현 방식이 집착에서부터 나와야 하는 거라서 윤상현 오빠한테 엄청 집중했죠. 쉽지 않았어요(웃음).”
자신과 접점이 없는 캐릭터를 연기하느라 스트레스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대본을 보다 잠든 날이면 악몽에 시달릴 정도였다.
“대본이 나오면 대사는 금방 외웠어요. 하지만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분석하는 건 쉽지가 않았죠. 그렇게 고민하다 잠이 들면 꼭 촬영 들어가는 꿈을 꿔요. 총알 없이 전쟁터에 나가는 느낌인 거죠. 놀라서 일어나면 꿈인 걸 알고 다시 고민을 시작했어요.”
극중 이은희는 살인을 저지르고 멀쩡한 사람을 정신병원에 집어넣는 등 매회 악행을 이어갔다. 그러면서도 구정희의 다정한 눈빛 하나에 생글생글 미소를 짓고, 또 일순간 돌변해 광기를 폭발시켰다. 이처럼 오락가락하는 이은희 캐릭터에 명품연기로 설득력을 더한 조여정은 ‘국민 사이코’라는 애칭까지 얻었다.
“월, 화요일 방송이 끝나면 지인들이 제 기사에 달린 댓글을 캡처해서 보내줬어요. 악플일 줄 알았는데 따로 편집한 것처럼 좋은 말만 있어서 감동 받았어요.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이 사람은 노력하는 사람이다’라는 내용의 댓글을 보고는 찡했어요. 진심이 언젠가는 통하는구나 하고요. 사실 노력하지 않는 배우는 없어요. 하지만 그게 다 드러나지는 않거든요. 그런데 시청자들이 제 노력을 알아봐주셨다는 게 너무 감사했어요.”
어느덧 데뷔 20년차가 된 조여정. 제자리에서 안주하는 걸 누구보다 싫어하는 그는 이번 드라마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고, 또 한 걸음 나아갔다.
“처음부터 ‘완벽한 아내’를 통해 뭘 얻으려고 하지는 않았어요. 단지 제가 안 해본 캐릭터라 도전해보고 싶었죠. 아쉬운 부분이 너무 많지만, 그걸 잘 기억해 뒀다가 다음 작품에서는 같은 실수를 안 하려고요.”
조여정은 매번 연기 변신을 꿈꾸면서도 다음 역할을 미리 구상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자신에게 들어온 많은 대본, 장르, 역할 중 맘이 끌리는 것을 선택하자는 주의. 하지만 이번만큼은 ‘사랑 받는 역할’이 욕심이 난다고 했다.
“극중에서 하도 못된 짓을 하다보니까 여기저기서 미움을 받았어요. 연기를 하면서도 다들 저만 노려보고요. 그래선지 어느 순간 ‘나도 사랑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조여정의 재발견’이라는 찬사가 이어질 정도로 명연기를 펼친 조여정. 하지만 그는 “이제야 조금 시야가 넓어진 것 같다”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20년이 훌쩍 간 것 같아요. 잡지 모델로 데뷔해 연기를 한 건 17년 정도가 됐는데, ‘이제야 요정도 하네~’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20대 배우들 중에 연기를 잘하는 친구들을 보면 너무 신기하고 놀라워요. 김우빈, 김수현, 성준 등을 보면 ‘어쩜 저렇게 자유롭게 연기를 하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느덧 삼십대 후반을 향해 달려가는 조여정. 그는 ‘여배우에게 나이가 든다는 것은 어떤 의미냐’는 질문에 “받아 들여야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서른이 넘으면 20대 때는 미처 몰랐던 것들을 자연스레 알 수 있어 더 좋기도 하다고.
“20대에는 또박또박 읽는, 변수 변칙이 없는 정직한 연기를 했어요. 못한다는 소리를 듣지는 않았지만, 매력적이라는 칭찬도 못 들었죠. 그때는 막연하게 ‘잘 하게 되겠지’라는 고민만 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 여러 가지 경험이 쌓이니까 보는 시야가 조금 넓어졌어요. ‘진짜’를 찾아 점점 깊숙이 들여다보게 되는 것 같아요.”
연기 인생에서 제대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조여정. 그는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을까.
“연기를 시작할 때부터 그런 건 없었어요. 제가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어떤 배우가 되는 거겠죠? 정말 모르는 일 같아요. 늘 제게 주어진 것을 완벽하게 소화하는 게 우선이에요.”
[뉴스핌 Newspim] 박지원 기자 (pjw@newspim.com)